2004년 2월에 세상을 떠나신 고 김진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김진균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여름에 ‘김진균여름캠프’를 열어서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나는 김진균기념사업회의 총무간사를 맡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올해는 김진균여름캠프의 기획과 진행도 도맡게 되었다.

올해는 어디에서 김진균여름캠프를 열까 생각하다가 새만금 갯벌을 중심으로 김제, 부안, 전주를 둘러보기로 했다. 부안은 핵폐기장 반대투쟁과 새만금 갯벌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부안은 김제, 전주와 함께 동학혁명의 핵심적 무대이기도 하다. 핵폐기장을 반대하거나 새만금 갯벌을 지키자는 운동의 바탕에는 동학혁명의 이상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민중이 자연과 어우러져 고루 잘 사는 세상이 ‘개벽’ 이후의 세상이라면, 핵폐기장을 반대하거나 새만금을 지키자는 운동이 추구하는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그러므로 새만금 갯벌에서 우리는 좋은 세상을 향한 꿈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다.

첫날인 7월 5일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김제로 갔다. 김제는 동학혁명의 상징적 존재인 녹두장군 전봉준 선생이 살던 곳이다. 이곳에는 전봉준 선생의 고택이 복원되어 있으며, 그가 처음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했던 백산 산성이 있고, 또한 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던 황토현이 있다. 지금 황토현에는 전봉준 선생의 사당과 동학혁명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만석보도 바로 이곳에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쌓고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극단화했고, 이에 맞서서 농민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내를 해 주신 정읍의 농민이자 지역운동가인 곽상주 선생은 비옥한 들이 있어서 가렴주구가 더욱 극심했던 곳이 바로 김제였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가슴을 파고드는 정확한 설명이었다. 일찍이 벽골제라는 거대한 저수지를 쌓을 정도로 김제평야는 드넓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농민들은 학정에 시달려야 했다. 이 드넓은 평야를 만든 것은 바로 만경강과 동진강이다. 그리고 바로 이 두 강이 새만금 갯벌도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도 막히게 되었다. 새만금 갯벌의 어민들뿐만 아니라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의 농민들에게도 거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둘째날인 7월 6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만금 갯벌을 둘러보았다. 사실 ‘새만금 갯벌’은 없다. 실제로 있는 것은 최병수 화백이 나무조각들을 세워 놓은 곳으로 잘 알려진 해창갯벌을 비롯해서 여러 갯벌들이다. 새만금 갯벌이라는 말은 이 지역의 갯벌들을 모두 없애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농림부가 만경강의 ‘만’과 금강의 ‘금’을 합하고 그 앞에 ‘새’ 자를 붙여서 만든 이상한 말이다. 이제는 널리 퍼진 이 말이 가리키는 갯벌의 면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무려 1억 2천만평에 이르는 것이다. 여의도의 면적이 80여만평일 뿐이다. 부산시와 비슷한 면적이다. 남북이나 동서의 길이가 모두 30㎞가 넘는다. 세계적으로 손꼽는 대규모 갯벌인 것이다. 더욱이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든 ‘하구갯벌’이라는 점에서 새만금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더욱 더 크다. 하구갯벌은 지구상 모든 갯벌의 5%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새만금 갯벌은 특히 큰 갯벌로서 더욱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곳에 살고 있던 무수한 생명체들이 이런 사실을 웅변한다. 동죽, 백합, 바지락, 농게, 칠게, 방게 등 64종의 저생(底生)동물, 158종의 물고기, 371종의 저생 규조류 등이 살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도요새, 저어새를 비롯한 수많은 물새들이 새만금 갯벌을 찾았다. 새만금 갯벌은 세계에 자랑할 한국의 자연자원이었으며, 길이 보존해야 할 인류의 자연자원이었다.

그러나 이제 방조제가 완공되어 바닷물이 드나들지 못하게 되면서 새만금 갯벌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바닷물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무려 1시간여를 걸어 들어가야 했다. 남은 바닷물도 장마가 끝나고 나면 며칠 안에 모두 말라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만금 갯벌은 세계 최대의 ‘킬링필드’가 될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새만금 갯벌은 소금이 허옇게 떠오른 세계 최대의 ‘소금 사막’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안내를 해 주신 부안생태문화활력소의 허철희 대표는 아마도 새만금 갯벌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 같다고 쓸쓸히 말했다. 그리고 새만금 갯벌의 죽음과 함께 수천년간 이어져온 새만금 유역의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도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와 농촌공사에게 이런 끔찍한 파괴를 저지를 권리는 없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는 새만금간척사업에 반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전북의 표를 얻기 위해 새만금 갯벌을 죽이는 정치인을 그 누가 올바른 정치인으로 기억하겠는가? 새만금 갯벌을 죽이기 위해 쏟아 붓는 천문학적 금액의 세금을 복지와 문화의 진작을 위해 쓴다면, 새만금 갯벌과 주변 지역의 자연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출산의 문제나 빈약한 도서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세째날인 7월 7일에는 아침에 학습장이자 숙소였던 부안생태문화활력소를 떠나 전주로 가서 전주한옥마을과 전주천을 둘러보았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 근처에 있다. 태조 이성계의 영전을 봉안한 경기전이 있어서 근처에 한옥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전주에서 한옥마을지키기 정책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한옥체험관을 만들었다. 전주시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학자 이성호 박사의 안내로 한옥체험관으로 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관장이 사무실에서 나와 인사를 하는데 낯익은 얼굴이다. 2000년에 문화연대에서 용산미군기지를 돌려받아 생태문화공원을 만들자는 운동을 벌일 때 함께 활동했던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의 김병수 부장이었다. 2001년에 경실련을 그만두고 지역운동을 하러 떠났다고 들었는데 전주에서 한옥체험관의 관장으로서 한옥마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개발주의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전주천으로 향했다. 전주천은 전주를 가로질러 만경강으로 흘러들어 새만금 갯벌에서 바다와 만나게 된다. 다른 모든 도시하천과 마찬가지로 전주천도 하수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 생태적 복원이 이루어져서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전주천의 생태적 복원을 배우러 온다. 전주의제21의 신진철 사무국장이 와서 설명해주었다. 그는 전주천의 생태적 복원을 위해 애꿎은 산들이 파괴되었다고 설명했다. 억지로 자연석을 가져다 쌓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한쪽에서 생태적 복원을 한다며, 다른 한쪽에서 생태적 파괴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 나라의 조경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나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떠올린다. 전주천의 생태적 복원이 추진되는 바로 그 시간에 전주천이 마침내 이르게 되는 새만금 갯벌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생태적 파괴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전라북도 도지사가 된 사람은 전주시장이었던 사람이다. 그는 시장 시절에 용감하게도 새만금 갯벌에 반대했으나, 전주시민의 격렬한 항의를 이기지 못하고 뜻을 바꿨다. 그가 본래의 올바른 뜻을 다시 세우고 이룰 수는 없을까?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새만금 갯벌에서 만났던 생명들을 다시 떠올렸다. 새만금 갯벌에서 나올 때 만난 조그만 게 한 마리가 집게발을 쳐들어 내게 방어태세를 보였었다. 나는 그 친구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꼭 너를 지켜줄게, 라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새만금 갯벌을 꼭 지켜야 한다. 방조제를 터서 해수를 24시간 유통시키는 것만으로도 새만금 갯벌의 죽음과 서해안의 생태적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새만금 킬링필드’는 세계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 책임은 ‘킬링필드’와 마찬가지로 두고두고 밝히고 묻게 될 것이다.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2006/07/10 10:09 2006/07/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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