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호 쓴소리] 경찰 폭력과 '사적 폭력'에 내몰리는 민중들입니다.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1/06/14 00:00
"경찰은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합니다. 경찰은 최일선에서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어느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공권력의 정당성과 권위의 확보도 인권의 보호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지난 6월 2일 중앙경찰학교 임용식에서 직접 연설한 말입니다. 그러나 경찰의 현실은 어떨까요?
대통령님,
취재를 나가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듣다보면 '몰매 맞지 않고' 사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2월 들어 1천 6백 명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그들이 4월 10일 자신들이 일하던 직장 문 앞에서 경찰들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취재를 다니느라 1주일에 한두 번씩은 봐왔던 사람들이기에 처음엔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이내 그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알았을 때 전 꽤나 좌절하고 동시에 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저에게 뿐만 아니라 전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켜 일선 경찰서장이 경질되고 국제 사회에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찰에 의한 폭행은 4월 이후 뜸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4월 막바지에 들면서 경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캐리어, 효성 등 노동 현장과 각종 철거 현장에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동안 반성이라도 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상상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죠. 이후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각종 폭행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5월 2일엔 레미콘을 운전하는 건설운송노조 노동자들, 5월 11일에는 김포 신곡리 철거민들, 심지어 5월 31일에는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114노조 여성노동자들까지…… 언제 어디서든 몰매 맞고 살아야할 것을 각오해야하는 삶, 그것이 바로 지금 이 나라 민중들이 살고있는 삶입니다. 조심조심 살아야 합니다.
특히, 4월 29일 광주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경찰과 구사대에 의해 처참하다 싶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을 땐, '아, 이제 세상이 거꾸로 가는가보다' 했습니다. 그 날 폭행을 당한 노동자 가운데 한승육 씨라는 노동자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심해 '정신병동'에 입원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 땐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노사 갈등→ 사측의 교섭 해태→ 파업 돌입→ 전경련, 경총 등의 공권력 투입 요청→ 경찰의 눈치보기→ 사측의 계속되는 교섭 해태와 공권력 투입 요청→ 경찰의 폭력적 파업 진압'이라는 형식입니다.
진압 현장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곳은 정말 아수라장입니다. 비명과 핏자국이 난무하고 오직 경찰만이 그 무대를 장악합니다. 상식적으로 공권력을 사용할 땐 필요 이상의 폭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을 터인데도 경찰은 막무가내입니다. 파업 진압을 수행하는 경찰들은 마치 먹잇감을 해치우는 짐승들처럼 노동자를 사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 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만 죽도록 맞은 줄 아는데 사실 '파업이 진압됐다'는 말은 파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죽도록 맞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권력이란 법의 집행입니다. 엄정하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의 적용을 엄격히 받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들뿐입니다.
노동자들은 얻어터지고 스스로의 자주적 권리 행사인 파업이 깨진 것도 억울합니다. 하지만, 더더욱 노동자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들을 무지막지하게 패고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입니다. 자기 물건을 훔쳐 가는 사람을 잡아다 패도 형사 처벌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팬 사람이 실실 웃으며 자신을 취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사람 잘 잡는 경찰은 승진도 빠릅니다. 그것뿐입니까. 파업을 하게 만든 당사자, 자본가는 교섭을 해태하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보란듯이 잘 먹고 잘 삽니다. 노동자들이 그들을 바라볼 때 어떨까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집회에 나갔을 때 들은 어느 노동자의 한 맺힌 절규입니다. "신이 죽었다고요? 하이고∼ 이 땅에는 신도, 정의도, 뭣도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노동자들은 자신을 폭행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절망을 보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경찰과 더불어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구사대와 경비용역업체 들입니다. 흔히 경비용역업체 사람들은 '용역깡패'라고 불리는데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적 폭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노조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거나 철거민들을 내쫓는데 폭력을 사용합니다. 특히, 철거민이나 노점상들에게 있어 용역깡패들은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대부분 20대 남자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육십 먹은 할아버지건, 오십 먹은 아주머니건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잡아 팹니다.
2월에는 안양에서 한 노점상 할머니가 용역깡패들에게 뭇매를 맞아 전치 10주에 달하는 중상을 입은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할머니가 그런 부상을 당했으니 그 삶이 얼마나 더 비참해 졌을까요.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근처에 경찰이 있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긴 법을 수호하는 경찰 입장에서 '불법' 노점상을 '응징'하는 그들이 기특해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용역 깡패들은 흔히 '경찰2중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용역깡패들은 온갖 욕설과 무례함으로 무장하고 민중들을 탄압합니다. 이는 결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5월에 김포 신곡리와 안산 고산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대낮이든 새벽이든 무조건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가재 도구를 파괴하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어머니에게 쌍욕을 합니다.
용역깡패들에게 맞은 사람 중에는 아직까지 입원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참다 참다 못한 철거민이 용역깡패들을 신고라도 하려니까 파출소 경찰이 "자꾸 철거지역에서 버티면 나중에 진짜 일날 수도 있으니까 피하는 게 좋아요"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던졌다고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찰이 용역깡패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을 만도 합니다.
지금 한창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효성 얘기를 해볼까요. 그곳에 공권력이 들이닥치기 전인 5월 29일까지는 용역깡패들이 공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노조는 파업을 하느냐 마느냐 총회를 거쳐야 했구요. 그런데 사측은 용역깡패를 이용해 노조원들의 조합활동을 방해하고, 그래도 안될 것 같으니까 아예 조합원들에게 단체 휴가를 줘서 공장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권에 절박한 위험을 느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고 파업에 들어간 것이 효성노조입니다.
경찰에게 당하고, 용역깡패들에게 당하고 민중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이라고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없는 자의 절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일 뿐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께서 취임한 98년부터 현대자동차·만도기계·롯데호텔·사회보험노조 등 경찰을 앞세운 폭력사태가 해마다 잦아질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사대·용역깡패들까지 합세해 극성을 떨고있으니 군사정권 시절과 다를 것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폭력의 빈도수나 세기가 지난 시절과 비교해 현저히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치안이 '강화될 대로 강화'된 것 같은데 경찰은 시시때때로 모여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회의를 엽니다.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언제 우리나라에서 불법 파업을 엄단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경찰이 얘기하는 '공안'은 '공포'와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은 정말 군사정권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부당노동행위 엄단, 재개발 사업 감시 철저, 용역깡패 처벌'이라는 검경의 방침을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국민에게 공포감을 심어줘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공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며 인류는 그러한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폭력의 방치에 대해 손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1백여년 만의 가뭄이 왔다고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권도, 민심도 "이제는 마음을 모아야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다시금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하고, 용역깡패와 같은 사적 폭력을 방치한다면 국민은 공권력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민중들은 정부가 발표한 "사용주나 노동자나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의 실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 군사정권과 다름없는 '명분'용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대통령님,
취재를 나가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듣다보면 '몰매 맞지 않고' 사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2월 들어 1천 6백 명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그들이 4월 10일 자신들이 일하던 직장 문 앞에서 경찰들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취재를 다니느라 1주일에 한두 번씩은 봐왔던 사람들이기에 처음엔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이내 그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알았을 때 전 꽤나 좌절하고 동시에 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저에게 뿐만 아니라 전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켜 일선 경찰서장이 경질되고 국제 사회에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찰에 의한 폭행은 4월 이후 뜸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4월 막바지에 들면서 경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캐리어, 효성 등 노동 현장과 각종 철거 현장에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동안 반성이라도 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상상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죠. 이후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각종 폭행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5월 2일엔 레미콘을 운전하는 건설운송노조 노동자들, 5월 11일에는 김포 신곡리 철거민들, 심지어 5월 31일에는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114노조 여성노동자들까지…… 언제 어디서든 몰매 맞고 살아야할 것을 각오해야하는 삶, 그것이 바로 지금 이 나라 민중들이 살고있는 삶입니다. 조심조심 살아야 합니다.
특히, 4월 29일 광주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경찰과 구사대에 의해 처참하다 싶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을 땐, '아, 이제 세상이 거꾸로 가는가보다' 했습니다. 그 날 폭행을 당한 노동자 가운데 한승육 씨라는 노동자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심해 '정신병동'에 입원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 땐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노사 갈등→ 사측의 교섭 해태→ 파업 돌입→ 전경련, 경총 등의 공권력 투입 요청→ 경찰의 눈치보기→ 사측의 계속되는 교섭 해태와 공권력 투입 요청→ 경찰의 폭력적 파업 진압'이라는 형식입니다.
진압 현장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곳은 정말 아수라장입니다. 비명과 핏자국이 난무하고 오직 경찰만이 그 무대를 장악합니다. 상식적으로 공권력을 사용할 땐 필요 이상의 폭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을 터인데도 경찰은 막무가내입니다. 파업 진압을 수행하는 경찰들은 마치 먹잇감을 해치우는 짐승들처럼 노동자를 사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 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만 죽도록 맞은 줄 아는데 사실 '파업이 진압됐다'는 말은 파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죽도록 맞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권력이란 법의 집행입니다. 엄정하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의 적용을 엄격히 받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들뿐입니다.
노동자들은 얻어터지고 스스로의 자주적 권리 행사인 파업이 깨진 것도 억울합니다. 하지만, 더더욱 노동자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들을 무지막지하게 패고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입니다. 자기 물건을 훔쳐 가는 사람을 잡아다 패도 형사 처벌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팬 사람이 실실 웃으며 자신을 취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사람 잘 잡는 경찰은 승진도 빠릅니다. 그것뿐입니까. 파업을 하게 만든 당사자, 자본가는 교섭을 해태하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보란듯이 잘 먹고 잘 삽니다. 노동자들이 그들을 바라볼 때 어떨까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집회에 나갔을 때 들은 어느 노동자의 한 맺힌 절규입니다. "신이 죽었다고요? 하이고∼ 이 땅에는 신도, 정의도, 뭣도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노동자들은 자신을 폭행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절망을 보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경찰과 더불어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구사대와 경비용역업체 들입니다. 흔히 경비용역업체 사람들은 '용역깡패'라고 불리는데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적 폭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노조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거나 철거민들을 내쫓는데 폭력을 사용합니다. 특히, 철거민이나 노점상들에게 있어 용역깡패들은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대부분 20대 남자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육십 먹은 할아버지건, 오십 먹은 아주머니건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잡아 팹니다.
2월에는 안양에서 한 노점상 할머니가 용역깡패들에게 뭇매를 맞아 전치 10주에 달하는 중상을 입은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할머니가 그런 부상을 당했으니 그 삶이 얼마나 더 비참해 졌을까요.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근처에 경찰이 있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긴 법을 수호하는 경찰 입장에서 '불법' 노점상을 '응징'하는 그들이 기특해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용역 깡패들은 흔히 '경찰2중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용역깡패들은 온갖 욕설과 무례함으로 무장하고 민중들을 탄압합니다. 이는 결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5월에 김포 신곡리와 안산 고산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대낮이든 새벽이든 무조건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가재 도구를 파괴하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어머니에게 쌍욕을 합니다.
용역깡패들에게 맞은 사람 중에는 아직까지 입원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참다 참다 못한 철거민이 용역깡패들을 신고라도 하려니까 파출소 경찰이 "자꾸 철거지역에서 버티면 나중에 진짜 일날 수도 있으니까 피하는 게 좋아요"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던졌다고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찰이 용역깡패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을 만도 합니다.
지금 한창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효성 얘기를 해볼까요. 그곳에 공권력이 들이닥치기 전인 5월 29일까지는 용역깡패들이 공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노조는 파업을 하느냐 마느냐 총회를 거쳐야 했구요. 그런데 사측은 용역깡패를 이용해 노조원들의 조합활동을 방해하고, 그래도 안될 것 같으니까 아예 조합원들에게 단체 휴가를 줘서 공장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권에 절박한 위험을 느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고 파업에 들어간 것이 효성노조입니다.
경찰에게 당하고, 용역깡패들에게 당하고 민중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이라고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없는 자의 절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일 뿐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께서 취임한 98년부터 현대자동차·만도기계·롯데호텔·사회보험노조 등 경찰을 앞세운 폭력사태가 해마다 잦아질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사대·용역깡패들까지 합세해 극성을 떨고있으니 군사정권 시절과 다를 것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폭력의 빈도수나 세기가 지난 시절과 비교해 현저히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치안이 '강화될 대로 강화'된 것 같은데 경찰은 시시때때로 모여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회의를 엽니다.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언제 우리나라에서 불법 파업을 엄단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경찰이 얘기하는 '공안'은 '공포'와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은 정말 군사정권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부당노동행위 엄단, 재개발 사업 감시 철저, 용역깡패 처벌'이라는 검경의 방침을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국민에게 공포감을 심어줘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공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며 인류는 그러한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폭력의 방치에 대해 손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1백여년 만의 가뭄이 왔다고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권도, 민심도 "이제는 마음을 모아야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다시금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하고, 용역깡패와 같은 사적 폭력을 방치한다면 국민은 공권력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민중들은 정부가 발표한 "사용주나 노동자나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겠다"는 의지의 실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 군사정권과 다름없는 '명분'용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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