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5.18 광주민중항쟁 주간입니다. 노동자 민중이 죽음으로 지켰던 항쟁의 정신을 되새기는 주간입니다. 그런데 21년이 지난 5월 광주는 또다시 노동자의 피로 얼룩졌습니다. 광주 하남공단에 있는 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에 대한 폭력 탄압을 알고 계십니까?

경찰에게 쇠파이프로 집단구타 당해 죽음의 공포감에 하루에도 수 차례 발작하여 정신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노동자를 알고 계십니까? 경찰의 방조 속에 용역깡패에게 쇠파이프로 집단폭행을 당해 머리가 깨지고 허리가 꺽이고 등짝이 찍히며 무참히 짓밟힌 노동자들을 알고 계십니까?

이번 폭력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먼저 캐리어사내하청노조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는 광주에서 에어콘, 냉동공조기를 생산하는 미국기업 캐리어(주)의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지난 2월 18일 결성되었습니다. 7명의 발기인으로 만들어진 노조는 며칠되지 않아 조합원이 450여 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이경석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집행간부 7명을 바로 부당해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4월 25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습니다. 또 업체는 단체교섭마저 성실하게 임하지 않아 노조에서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조정종결를 거쳐 4월 16일부터 합법적으로 부분파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하청업체와 원청회사는 노조의 교섭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은 채 4월 25일 직장폐쇄신고를 하고 원청 관리직원 수백명을 모아 우리를 공장에서 내쫓으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4월 25일 밤 10시 30분부터 제 1공장 조립룸 농성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60여명이 시작했던 농성단은 교섭을 촉구하며 단계별로 사람을 내보내 4월 28일에는 단지 7명만 남겼을 뿐입니다.

하지만 원하청 업체는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채,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해 5월 1일 농성단을 폭력으로 짓밟았습니다. 또한 4월 29일에는 한승육 조합원이 경찰로부터 쇠파이프로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통령님,

먼저 광산경찰서 형사들이 한승육씨를 쇠파이프로 집단폭행한 사실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5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 출동과 캐리어사내하청노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이 사건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승육씨는 4월 29일 새벽 2시 30분에 제 1공장 조립룸 농성단에서 "농성장을 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조합원 20여명과 후문에서 구사대와 대치했습니다. 이때 구사대 속에 광산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있는 것을 발견한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치기 위해 온 것'으로 판단해 대여섯명이 공장안으로 들어갔다가 곧 밀려납니다. 그런데 한승육씨가 혼자 붙들려 구사대에게 1차 집단폭행을 당했습니다.

새벽 3시 30분께 전투경찰 1개 중대가 출동해 조합원들은 해산했고 한상육씨는 경찰에 인계되었습니다. 한승육씨는 새벽 3시 55분께 인터넷 하니리포터 조상영씨가 먼저 감금돼 있던 광산서 형사기동대차량에 연행되었습니다. 이 때 같이 있던 형사들이 욕설을 하며 공포감을 조성했는데 4시 10분께 조상영씨가 먼저 풀려났습니다.

그후 혼자남은 한상육씨는 형사기동대 차량 안에서 형사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형사 하나가 손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내가 '때리지 말라'고 했더니, 내머리를 당겨 차량 철망에다 대여섯차례 부딪치게 했다. 다시 뺨을 몇차례 때렸고, 심한 욕을 하면서 전경헬멧을 씌운 채 쇠파이프로 내 머리를 수도 없이 때리고 손등을 내밀라고 해 쇠파이프로 쳤다. 다시 머리숙이라고 한 뒤 발로 마구 차고 짓밟았다. 지금도 그 얼굴들 다 기억한다."

한승육씨에 따르면 동료의 이름을 대라고 해 잘 모른다고 하자 계속 때렸다고 합니다. 너무 아프고 정신이 없어 그만 때리라고 수차례 외쳤지만 막무가내로 쇠파이프로 쳤다고 합니다.

새벽 5시가 넘어 광산서에 도착한 한승육씨는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병원치료없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조사를 계속 받았습니다. 또한 1차 조사가 끝나고 오전 10시 30분∼11시께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 박병규 본부장이 접견했는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승육씨의 옷을 벗겨 왼쪽 허벅지와 옆구리에 쇠파이트로 맞은 듯한 멍 자국 등을 확인하고 병원치료를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습니다.

조사를 계속받던 도중 12시 30분을 넘겨 한승육씨가 경련을 일으키며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낮 1시 30분께 호산병원에서 1차 진찰을 받은 뒤 오후 5시께 조선대학교 대학병원 응급실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을 거쳐 지금은 정신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CT촬영결과 뇌좌상이 있는데, 문제는 경련과 호흡곤란, 무호흡증을 일으키는 발작증세가 하루에도 대여섯차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보호자가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따르면 "때리자마!, 경찰이 싫어", "무서워"을 내뱉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몸을 오그리며 발작으로 한다고 합니다. 담당의사는 '좁은 공간에서 정신적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극도의 공포를 겪어야 일어날 수 있는 정신학적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남지방경찰청은 경찰의 폭행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첫째, 전남지방경찰청은 집단폭행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일어나는 발작증세를 호도하기 위해 건강했던 한승육씨를 간질환자로 몰아갔습니다. 경찰은 한승육씨가 어렸을 때부터 간질발작 증상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했으나 본인이나 가족은 그렇게 진술한 사실이 없다고 합니다.

또 경찰쪽은 호산병원의 진단결과에 간질발작 증상이 있었다고 했으나 호산병원쪽은 그런 진단을 내린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승육씨는 육군 병장을 제대한 신체 건강한 사람으로 간질을 앓은 적이 없습니다.

둘째, 경찰측은 30여분간의 폭행 시간을 숨기기 위해 연행시간을 30분쯤 조작했습니다. 경찰 주장은 한승육씨를 새벽 4시 30분경 형사기동대 차량에 인계했다고 했으나 차량에 태운 실제시간은 3시 55분 입니다. 당시 먼저 차량에 감금돼 있었던 조상영씨는 "한승육씨는 3시 55분경 차량에 연행되어 왔고, 나는 4시 10분쯤 차에서 먼저 풀려났다"고 증언하여 연행시간을 30분쯤 늦춰 조작했음이 밝혀습니다.

셋째, 광산서는 사건 초기 기자들에게 무장하지 않고 출동해 당시 현장에는 헬멧이 없었다고 주장했다가, 캐리어사내하청노조 조합원이 무장을 갖췄던 사실을 증언하자 태도를 바꿨습니다. 광산경찰서장은 5월 4일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대표단이 면담했을 때 당시 무장장비를 갖춰 출동한 사실을 인정하고, 형사기동대 차량에 쇠파이프 23개가 적재되어 있었다고 밝힌 것입니다.

형사기동대 차량에 헬멧을 적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위와 같은 조건이라면 한승육씨 말대로 '전경헬멧을 가져오라'고 해서 한승육씨 머리에 씌우고, 차량 안에 있던 쇠파이프로 얼마든지 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경찰당국은 CT촬영결과 최종판정이 뇌출혈이 아니어서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아서 일어난 주장이 잘못된 것인 양 호도했습니다. 물론 CT촬영결과 뇌출혈이 아니라 뇌좌상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뇌좌상도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았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증세입니다.

대통령님,

이처럼 경찰당국은 거짓말임이 뻔히 보이는데도 폭행사실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광산경찰서는 가족들을 회유하여 사건을 은폐하려다 오히려 폭행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였습니다.

"'00년 0월 0일 00에서 발생한 대우캐리어 사건과 관련하여 노사갈등 과정에서 한승육(남·34세)을 경찰이 대우캐리어로부터 신병을 인계받아 호송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한데 대해 본인과 가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강진성 서명"

위 내용은 사과문 초안 전문으로 4월 30일 오후 8시 30분께 광주시 동구 학동 베네치아 레스토랑에서 광산서 수사과장과 강력2반장, 한승육씨의 큰형, 넷째형이 만난 자리에서 가족이 '경찰의 선 사과, 후 배상 및 향후 치료 책임'을 요구한데 따라 강력 2반장이 자필로 초안을 작성한 것입니다.

또 한승육씨 가족은 5월 4일 광산서쪽 요청으로 학동 그랑프리 호텔 커피숍에서 다시 만난 수사과장과 강력 2반장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와 녹취록도 공개했는데, 폭행 사실을 시인하고 치료비를 대겠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5일 전남경찰청은 경찰청 홈페이지에 '캐리어하청노조 불법파업 관련 진상' 이란 글에서 "경찰이 한씨를 폭행했다는 일부 노동단체의 주장은 허위이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국민여론을 호도하여 경찰명예를 훼손,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전남지방경찰청과 광산경찰서는 경찰의 폭행사실을 숨기고 은폐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도대체 부평에서의 대우자동차 노조원 폭행사건이 있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형사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노동자를 쇠파이프로 두들겨 팰 수 있단 말입니까? 대통령님의 사과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났다고 폭행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해한단 말입니까?

대통령님,

게다가 5월 1일 캐리어(주) 회사의 조합원들에 대한 폭력행위에도 경찰이 방조하거나 개입한 의혹이 있습니다.

5월 1일 캐리어(주) 구사대와 용역깡패는 지게차, 쇠파이프, 최루가스 분사기, 진압봉, 공포탄(권총)으로 무장하여 농성장을 침탈해 농성자를 쇠파이프로 난타했습니다. 이에 따라 9명의 노동자가 머리가 깨지고, 등짝이 찍혀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부상자 가운데는 교섭대표단으로 들어간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 박병규본부장도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회사 경영진뿐만 아니라 광산경찰서 사복형사들이 배치돼 있었고, 광산경찰서장 말대로 해도 정보과 형사 1∼2명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농성장 침탈 직전에 전경들이 공장주위에 배치되었습니다. 경찰의 방조와 직무유기 속에 노동자들이 무참히 짓밟혔던 거입니다. 특히 농성자들에 따르면 권총모형의 총기를 들고 어깨위에서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쏘았다고 증언하는데, 경찰이 아니라면 어떻게 공포탄을 쏠 수 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대통령님,

이번 캐리어사내하청 노조원에 대한 경찰의 집단폭행과 캐리어(주) 회사측 폭력행사에 대한 경찰의 방조와 묵인에 대해 5.18 광주민중항쟁 영령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깨진 머리와 쇠파이프로 찍힌 등짝과 다리 사진, 한승육씨의 모습을 본 광주시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도시를 자처하는 광주에서 5.18을 앞두고 일어나 허탈해하고 자괴감마저 갖고 있습니다. 폭력경찰을 규탄하고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명백히 진상을 밝히고 관련 책임자를 엄중 문책해야 합니다. 이무영 경찰청장을 비롯해 전남지방경찰청정, 광산경찰서장을 직위 해임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폭력을 사주한 캐리어(주)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물론입니다.

공권력의 폭력행위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공권력은 인권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송영진(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 사무국장)
2001/05/17 00:00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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