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 방송된 어느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흥미로웠습니다. 돈세탁 규제에 관한 법제정 문제를 둘러싸고 같은 정당의 두 의원이 서로 상반된 주장으로 논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정당은 바로 민주당이고, 두 의원은 조순형 의원과 이상수 의원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요. 야당도 아닌 집권 여당에서, 그것도 3대 개혁법안의 하나로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사안에 대하여, 당론으로 정당의 입장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희귀하고 한편으로 진지한 사건에 대하여, 민주적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요 아니면 항상 개혁을 앞세우면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집권당의 실체와 진의를 확인했다고 분노해야 할까요?

참여연대가 수많은 정치인들의 지지서명을 받아가며 부패방지법안을 청원한 것은 무려 5년 전입니다. 그 법안의 핵심적 내용 중의 하나는 돈세탁방지입니다. 그리고 돈세탁행위를 법으로 규제하여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이 땅의 부정부패를 감소시키려면, 최소한 두 가지를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나는 돈세탁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한 금액 이상의 현금거래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수단이 강행력을 가져야 정치인과 기업가의 깨끗하지 못한 돈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두 가지 조항이 들어 있어야 그걸 돈세탁방지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해부터 국가의 형식적인 입장만 내세우며 위 두 가지 핵심 내용을 송두리째 제외한 채 법안을 통과시키려 안달하고 있습니다. 경제관련 부처를 앞장세워 세계적 경향이니 전문성과 효율성이니 하며 논리를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과 고액의 현금거래의 도피처를 마련해주고자 합니다.

우선 모든 걸 제쳐놓고라도,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해 보십시오. 조순형 천정배 의원들이 반기처럼 들고 나온 수정안과 당론이란 한마디로 고집하는 정부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릴지 상상해보십시오.

자금세탁규제와 관련한 법안이 정부와 민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형태로 법사위를 통과한다면,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개혁의 이름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말 것입니다. 당론의 명분이란 것이 개혁보다 위에 있는 것인가요?
2001/03/08 00:00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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