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한미FTA와 두 개의 대한민국
칼럼/기고 :
2007/03/28 22:05
노무현 정부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려는가
바리케이드의 저쪽과 이쪽
2007년 3월 대한민국의 강과 산, 광장과 거리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 왔다. 그러나 만물이 소생하는 생(生)의 시간, 산속에 쌓인 눈이 녹고,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매화와 산수유 꽃이 피는 봄이 왔건만 결코 예전 같은 봄은 아니다. 2007년 3월, 대한민국 봄은 중국대륙 발 황사가 아니라, 태평양 바다를 건너 온 한미 FTA라는 신종 괴물의 출현 때문에 빼앗긴 봄이 되고 있다. 지금은 비상한 시국이다. 빼앗기고 있는 우리 봄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한미FTA의 최종 고위급 “막판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3월, 대한민국의 광장과 거리는 전경버스로 엮어놓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다. 아니 대한민국이 갈라져있다. 바리케이드의 저편에는 집회와 시위의 기본적 시민권마저도 억압하고, 시민적 자유의 공간을 박탈하면서, 나라경제의 주권과 민중 생존권을 팔아넘기려 하는 “자유-보수 연정”의 지배 블록이 군림하고 있다. 한편 바리케이드의 이쪽 편에는 노숙과 릴레이 단식농성으로 광장과 공원에서, 거리에서, 자유의 공간을 탈환하고자 하면서, 나라 경제의 주권과 민중 생존권을 수호하고 사회통합적인 공공의 선진국가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연대세력이 진지를 치고 저항하고 있다
이 광경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오늘의 아방과 타방이 20년 전 6월 독재 대 민주로 대치했던 그때의 구도와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본의 세계화 시대, 재구조화된 한국의 국민국가와 신경제질서에서 신자유주의 지배 동맹 대 새롭게 성장하는 시민적 저항과 진보 연대를 각기 대변하고 있다.
바리케이드의 저쪽과 이쪽이 한미FTA를 보는 시각, 그리고 한미FTA 공방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단계를 읽고, 미래를 세우려는 방향은 너무 다르다. 서로 간에 벌어져 있는 간극이 너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한미FTA를 통해, 자신의 집권을 뒷받침했던 지지 세력을 배반하고 맹백히 자유-보수 세력 간의 실질적 대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노대통령과 참여 정부 4년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이는 무척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최대의 문제는 대한민국과 국민 대중의 삶에 가져다 줄 대재앙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쇼크 요법식 맹목적 개방주의, 나라와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무책임한 도박 때문에, 다시 말해 97년 IMF 위기 이후의 급진적 개방과 파괴적 구조조정 충격이 만들어 낸 양극화 성장체제, “두개의 대한민국”체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ㆍ심화시키려는 제 2차 시장보수적 정치기획 때문에 위험에 빠지고 위태롭게 된 것은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이다. 나라경제의 주권과 주권적 공공정책, 절차적·실질적인 것을 모두 망라한 우리의 약한 민주주의, 사적자본의 맹목적인 이윤쟁탈전과 경쟁에 종속되지 않는 기본권으로서 양질의 일자리, 생명 및 건강권과 보편적인 공공 서비스, 농도불이(農都不二)의 생태적 균형과 풀뿌리 자치,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 요컨대 더불어 잘 살아 보고자 몸부림치는 이 땅의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꿈이 그것이다. 나라의 주권, 민주, 공공, 생태, 그리고 평화, 이 모든 것을 짓밟는 것이라면 한미FTA는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협상인가. 노대통령은 기어이 범국민적인 거센 반대와 저항을 짓누르고, 결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려는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헌정 쿠데타
참여정부는 이번 최종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신고한 한미FTA반대 집회에 대해 금지통보를 내렸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집회 금지통보 철회에 대해서도 묵살로 일관했다. 그리하여 작년 11월 이후 범국본이 신고한 모든 한미FTA반대 집회는 금지 조치를 당했다. 정부는 집회의 자유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거주 집회 참가자들의 상경을 폭력적으로 원천봉쇄하였다. 정부는 심각한 위헌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이름으로 국민들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이런 정부의 한미 FTA 협상은 법을 지키고 국민의 동의를 얻었는가. 한미FTA 협상에는 원천적, 태생적 위헌 행위가 있다. 참여연대의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한미 FTA협상은 어디를 보아도 국민들이 동의한 흔적이 없다면서 몇 명의 통상 관료들이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행위는 “헌정 쿠데타”라고 불러야한다’고 주장했다.(협상장에서 벌어지는 '쿠데타'를 막아내자, 2007/3/26 pressian.com). 한미FTA를 ‘헌정 쿠데타’로 규정한 것은 한미FTA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미FTA 협상은 국민의 동의를 얻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일종의 ‘헌정 쿠데타’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한다. 정부는 협정 초안을 국회에조차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헌법 60조에 규정된 국회의 체결 동의권을 부정한 위헌적 행위다. 뿐만 아니라 한미FTA는 헌법을 포함하여 최소한 100개 이상의 현행 법률의 개폐를 요구한다. 따라서 현 정부는 6월 항쟁의 핵심적 성과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시계바늘마저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한미FTA 협상이 중단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이익의 균형?
그러면 ‘헌정 쿠데타’로 밀어부치고 ‘4 대 선결조건’을 보장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온 협상의 결과, 한미FTA는 양국 간에 이른바 ‘이익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가. 협상 결과는 한마디로 처참하다 할 정도로 불공정, 불평등 협상이 되고 말았다. 한미FTA 협상은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 보다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조금이라도 달래면서 협상 타결 자체에 매달리는 양상으로 변질됐다.
먼저 협상 결과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실익으로 무엇을 얻었나. 우리 정부가 내세웠던 기대 이익 목표들은 대부분 상품 수출에서 시장 접근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비관세 장벽으로 반덤핑 등 무역 구제법의 개선,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관세 조기 철폐, 섬유류의 관세 조기철폐 및 원산지 관련 원사기준(얀 포워드 원칙)의 완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그리고 서비스 분야에서 전문직 비자쿼터의 완화, 존스법(Jones Act)의 완화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중 우리 정부가 제대로 달성한 성과는 거의 없거나 지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로서 무역구제를 보자. 이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사항으로 정부가 최우선적인 전략적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15개 항목의 개선요구를 제시하다 핵심적인 ‘제로잉’(Zeroing)조항을 포기하는 등 5개 항목으로 대폭 축소하였고, 마침내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무역구제 협력위원회설치로 끝이 났다. 또한 한미FTA가 미‘연방정부’와 체결하는 것이라서 주의 경우는 개별 주정부가 동의할 때만 구속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또한 심각한 불균형 협정이 되는 중요한 이유다.
반면에 우리가 감수해야 할 비용과 고통은 엄청나다.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미국식 표준 FTA에 고유한 원칙이자, 우리 정부가 나라경제와 사회를 미국식으로 개조하기 위해 이미 자발적으로 수용했거나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협정의 기본 제도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
- 투자자-국가 소송제 : 전방위적으로 외국투자자에 나라 주권을 양도하고 공공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참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대부분도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예외 항목에 부동산, 과세 등을 집어넣는 정도가 쟁점으로 남아 있긴 하나, 얼마나 실제적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 비위반 제소 : 최근 범국본이 새롭게 문제제기한 것인데, 협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협정에 의해 부여된 “합리적 기대이익”이 침해될 경우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상품무역, 원산지, 서비스, 정부조달 등 4개 분야가 포함되는 것은 이미 합의되었다. 최종고위급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포함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 네거티브 방식의 개방 : 이는 개방 유보를 명시한 부문을 제외하고는 전면 개방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생겨날 신생 서비스 산업도 자동적 개방 대상이다. 개방의 폭, 속도, 순서 등을 조절해야 하는 정책 자율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대우 : 이는 외국공급자에 동등한 경쟁기회를 제공해서 국내 시장, 영세 업체, 공기업 등을 무차별한 개방과 경쟁 바다 속에 집어넣는 조항이다.
- 래칫(역진 방지) 조항 : 현재 유보 분야를 더 많은 개방의 방향으로만 진행되도록 구속 하는 제도이다.
이같이 주권을 양도하고 공공의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 제도들을 이미 수용했거나 수용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임에도 정부는 농산물, 쇠고기, 의약품, 자동차, 지적 재산권(TRIPS), 방송시청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방적 양보를 거듭했다. 대표적인 예만 보자. 미국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수용하였다고는 하나, 20개에 달하는 새로운 요구를 내어 놓았다. 이는 사실상 한국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하며, 약가의 심각한 폭등을 가져올 것이다. 쇠고기 분야에서 미국은 살코기만이 아니라 광우병 위험 물질이 가득한 뼈 수입을 요구하였다. 마치 뼛조각은 뼈가 아니라는 듯이 수입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사상 최대 폭의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은 괴멸적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자유무역은 공정무역이 아니다
한미FTA 협상은 굴욕적인, 퍼주기식 ‘깡통 FTA‘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멕시코와 미국 간의 협상도 이같이 일방적 퍼주기는 아니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다. 97년 외환위기 극복 방식에서
자발적ㆍ맹목적으로 개방하고, 나라경제를 미국식으로 개조하고, 미국과 전면적 경제통합을 이루는 것만이 한국이 살 길이고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간주하는 정책노선, ’4대 선결조건‘을 내어주며 시작했던 굴욕적 협상자세의 당연한 귀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면에 미국 협상단은 진정 “FTA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데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로 축하를 받아도 좋을듯 하다.(이해영, “God Bless America! 체결전야의 한미FTA”, 한미FTA의 쟁점과 대안적 발전모델 모색, 4개 싱크 탱크 토론회, 2007/3/7).
그런데 다른 나라 FTA와 비교도 비교지만, 우리는 “자유”무역(Free Trade)협정이라는 일견 그럴싸한 이름을 가진 한미 FTA가 결코 “공정무역”(Fair Trade)협정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개방은 그 자체가 자기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나라의 지속가능한, 사회통합적 발전이라는 목표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정한, 관리된 개방과 공정무역이 요구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글식 자유무역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정무역”협정이 되려면, 첫째 더 많은 개방, 무차별한 자유경쟁 시장(level playing field)의 수립이 아니라, 협정 당사국의 발전수준의 차이와 제도적,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독자적 발전 목표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협정의제를 가능한 한 무역 관련 이슈와 발전 친화적인 이슈로 한정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조항, 금융 서비스 조항, 의약품 조항, 지재권 조항, 경쟁 조항 등은 무역 협정 의제에서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다 (스티글리츠 외, <모두를 위한 공정 무역>, 지식의 숲,2007, 특히 제 10장을 참조하라). 그러나 한미 FTA는 처음부터 이 “모두를 위한 공정무역” 원칙과 충돌하고 위배된다. 바로 이것이 큰 문제다.
한미 FTA는 왜 나라를 죽이는가
그런데 미국이 자기식대로 들고 나오면서 강자 이익 보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화하려는 것은 당연히 그렇다고 하자. 그렇지만 왜 우리 정부가 덩달아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비롯한 미국식 표준, 달리 말해 “FTA의 워싱턴 컨센서스“를 마치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처럼 금과옥조로 삼는 것일까. 미국의 요구를 자진해서 수용하면서 나라경제를 미국식으로 개조하려 드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나라경제와 국민의 삶을 깊은 구렁텅이속에 빠트리려고 하는가.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어떤 시장, 어떤 나라인가”, 즉 자유시장과 시장 국가인가, 사회통합적 시장과 사회국가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 이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논의해야 할 이야기는 실로 많다. 여기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노무현 정부가 시장 만능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80%가 한미 FTA의 3월말 타결을 반대하고,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데도 노무현 정부가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협상을 밀어부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각계각층의 요구를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낼 능력을 상실하고 단지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치부하고 오로지 시장 경쟁이 발휘하는 합리성이 이 자폐적 집단이기주의를 깨트리고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할 도리밖에 없다. 얼마 전 노대통령이 농업도 시장논리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까지 말할 지경에 이른 이런 사고야말로 바로 신자유주의 이념의 골간인데, 이는 하나만 알뿐, 시장의 실패와 그 파괴력은 모르는 반식자우환(半識字憂患)의 소치이다.
둘째, 노대통령이 주장한 전면 개방을 통한 쇼크 요법식 전략에 내재된 근본 문제점을 짚어야 한다. 후발 중소국 경제가 대외 개방을 통해서 경제 기적을 이루고 상당한 국민적 동의와 통합을 달성한 것은 동아시아나 북구의 경험이 보여 주는 바와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기적은 정부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맹목적 개방이 아니라 관리된 개방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국민적 통합의 경제적 기초에는 복지의 저발전을 만회하는 고용 증대와 안정이 있었다. 그러나 97년 체제에서 이 두 가지가 모두 깨어져 버렸다. 관리된 개방은 맹목적인, 급진적 개방으로 전환되어 국민경제 전반을 여과 없는 세계화와 미국식 스탠더드의 함정 속에 집어넣었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초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이 파괴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으나 이를 받쳐줄 수 있는 복지와 사회 공공성의 토대는 정비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보다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못가진 자들이 십시일반 ‘금 모으기’를 통해 나라경제를 살리는데 힘을 모아 주었는데, 이에 대해 가진 자들은 정리해고로 화답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화 시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 현대사와 함께 오랜 공익의 사적 전유와 그에 따른 공(公)에 대한 불신 현상을 심화시키고 공공성의 뿌리 내림을 더욱 곤란케 만든 근본 요인이다. 이로써 대한 민국은 “두 국민”으로 갈려 졌으며,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공공의 감각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 노무현 정부가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 요인이 놓여있다 하겠다.
노무현 정부가 돌진적으로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서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발상과 전략이 헛된 것이며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유, 그리하여 그것이 나라를 죽이는 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방의 충격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안의 복지와 공공성의 토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비책 없이, 97년 위기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몰고 온 양극화 성장체제, 바로 ‘두개의 대한민국’의 아픈 상처와 팽배한 불신에 대한 아무런 치유책 없이, 97년 체제가 주는 교훈을 망각하고 다시금 나라경제와 국민 대중의 삶을 몇 배의 충격으로 닥쳐올지 모를 새로운 위험과 공포 속으로 강압적으로 집어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한미FTA가 미약하나마 존재하는 사회 공공성의 기반마저 허물어뜨리고, 나라경제의 발전 방식과 국민 대중의 삶의 방식에서 우리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두개의 대한민국’의 강을 건너게 할 것임을 모른다. 아니, 돌이킬 수 없이 공고한 ‘두개의 대한민국’의 길로 가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이면서도, 한미FTA가 동반 성장을 가져온다고 운운하는 등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두 국민의 시장 국가는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죽이고, 나라를 죽일 것이다.
‘모두의 대한민국’의 길로 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개방 경험과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의 개방 경험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양자 간에는 노동의 정치적 참여 여부에서 사회적 개발주의 대 사회 민주주의라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개방을 달성한 이들 국가에는 반드시 개방의 충격에 대해 완충 작용을 하는, 개방과 사회 통합이 선순환 할 수 있는 ‘시장의 비시장적 기초’, 즉 국민이 동의할만한 사회 공공성의 탄탄한 안전판이 공통적으로 존재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와 북구의 성공한 소국 개방 경제는 개방과 ‘큰 정부’(Big Government)가 결합되어 있으며, 반드시 공공성의 토대를 구축하는 ‘사회적 조정’(social adjustment)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만 해도 공공주택과 공공의료의 비중이 80% 수준이다. 그 반면에 한국의 경우, 공공 임대주택 비중은 5%에 불과하다. 공공의료 비중은 10% 대다. 그리고 전체 교육비 지출은 높지만, 그 대부분은 사교육비가 차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부는 시장과 개방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바로 이 명백한 진실을 간과한다. 이런 상태로 주권을 양도하고 공공정책을 무력화하는 한미 경제통합으로 갔을 때 그것이 어떤 위험한 결과를 빚어낼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호텔의 밀실에서 최종 고위급 협상이 진행되고 가운데, 국민들이 생업을 마다하고 3월의 광장과 거리에 나서, 한미FTA 협상은 나라경제와 민중 생존권을 팔아넘기는 작업이라 규탄하면서 그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하다. 노무현 정부는 이같은 다수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재앙을 안겨 줄 한미 FTA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
97년 체제가 낳은 ‘두 개의 대한민국’, ‘두 국민’ 분열의 시장 국가를 넘어서, 무모하고 무책임한 외부적 충격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개방과 사회 통합이 선순환 할 수 있는, 관리된 개방과 사회통합적인 공공의 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모두의 대한민국’을 위해 국가가 할 일, 민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되묻고 되찾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나라 경제와 국민 대중이 사는 길이자 노무현 정부도 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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