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치솟는 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더구나 올 겨울 난방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온몸에 한기가 든다고 합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기름값이 오른다니 별 수 없지요. 다만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를 원망해보지만, 결국 날씨가 춥지 않기를 하늘에 기댈 수 밖에요.

최근 병원에 한번 다녀온 시민들의 경우 걱정이 한가지 더 늘어납니다. '없는 사람은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데.' 의사들 파업에 수가인상이다 뭐다 하는 정부의 발표에 잔뜩 겁을 먹고 다녀온 병원이건만, 막상 손에 쥐어진 진료비 청구서를 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습니다. 분명 정부는 의약분업으로 인해 국민부담은 없다고 선전을 해댔건만, 막상 병원비는 2배 이상 뛰어 올라 있었습니다. 약오르는 마음에 복지부에, 국회에, 시민단체에 항의도 하고 호소도 해보지만 결국 '서민만 봉이구나'하는 허탈감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국민들에게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비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폐업을 하며 실력행사에 들어가자 정부는 너무도 쉽게 수가인상, 즉 의료비 인상에 동의해줬고, 올해만 해도 벌써 세차례에 걸쳐 수가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가계약제에 따라 연말에 또 한차례의 수가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가인상은 결국 의료비인상으로 직결됩니다. 특히, 최근 잇따른 수가인상으로 인해 동네 병의원을 이용할 때 적용되던 '정액진료비', '정액조제비'의 혜택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시민들이 체감하는 의료비인상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의약분업 이전엔, 달랑 3,200원만 들고 가면 웬만한 질병은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의약분업 직후에도 병원에 2,200원, 약국에 1,000원을 내면 이전과 다름없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 7월 의보수가 인상, 9월 의보수가 인상 이후 달라졌습니다. 처음 병원에가서 3일치 약을 받아오려면 4,700원, 여기에 주사라도 맞으면 7,300원 돈을 내야 합니다. 이것도 낮에 갔을 경우이고, 오후 6시 넘어 병의원과 약국을 이용하려면 야간할증이 붙어 약 1,000원정도의 비용이 더 추가됩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처럼 만성질환으로 인해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도, 30일 투약기준으로 볼 때 의약분업 이전보다 20-24%의 본인부담금이 증가합니다.

이런 큰 폭의 본인부담금 인상은 직접적으로는 의보수가 인상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도 큰 몫을 합니다. 즉, 정부가 의보수가를 인상하면서 환자들에게 미칠 직접적 영향에 대해서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액진료비'와 '정액조제비'는 현재 진료비 총액 12,000원과 조제비 총액 8,000원을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초진 환자로서 주간에 진료하고 하루 1,000원의 약을 3일분 처방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책정된 것입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은 보통 진료비 총액이 11,300원, 조제료 총액이 7,350원으로 의원에서는 2,200원, 약국에서는 1,000원을 부담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환자가 다른 처치나 검사, 주사 중 하나라도 더하면 진료비 총액이 12,000원 수준을 넘게 되어 무조건 진료비 총액의 30%를 부담하게 됩니다. 지난 8월의 경우 환자가 1,000원짜리 주사를 맞게되면 정액진료비 기준을 넘게되어 총 진료비의 30%를 부담하게 되므로 약 6,778원을 의원에 내게 됩니다. 따라서 정액진료비의 기준에 따라 환자의 본인부담금 수준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문제는 9월 수가인상 이후 환자 대부분의 진료비 총액이 정액진료비의 수준을 상회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조제비총액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현재대로라면 '정액진료비', '정액조제비'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동네의원 환자들은 무조건 진료비의 30%를 부담하는 정률제만 존재하는 것이지요. 병의원 한번 방문에 거의 10,000원 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정액진료비'와 '정액조제비'의 기준이 조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12,000원과 8,000원으로 되어 있는 기준을 15,000원, 10,000으로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총액기준을 초과할 경우의 부담율을 30%에서 25%로 낮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병의원을 이용하는 환자의 본인부담금 수준이 의약분업 이전 수준과 비슷해집니다.

현재 수차례에 걸친 수가인상으로 인해 본인부담금은 물론 의료보험료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더불어 정부의 재정지원도 늘게 되겠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구조가 저부담-저급여-저수가체계로 문제가 있었다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고부담-저급여-고수가 체계로 가고 있는 인상입니다. 따라서 수가인상은 의료보험 전체의 개혁아래 진행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의료계의 요구를 받기에 급급하여 국민들의 부담만 증가한다면, 이를 국민들이 동의하기 힘들 것입니다. 외래환자의 본인부담금만 해도 수가인상에 앞서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조금만 고려했다면, 사전에 조정하여 이런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입장을 한번 더 배려하는 정부의 마음씀이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도 좀 후련한 조치들을 기대해봅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이은경
2000/09/28 00:00 200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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