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호 권두언] 원칙은 없고 혼란 뿐입니다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0/09/07 00:00
뜨거웠던 여름이 서서히 식어가는데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것이 어수선합니다. 보다 정제되고 정리된 느낌을 주는 계절이 가을임에도, 이번 9월의 시작은 어지럽기만 하군요. 국회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금년 초 개정된 국회법에선 정기국회 집회일을 9월 1일로 당겼습니다. 그러나 당일 개회식만 서둘러 끝내고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의사당은 텅 비고 말았습니다. 형식적인 개원 선포는 국회의 목숨이 붙어있다는 정도의 의미만 남기고 바로 '식물국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금 여의도에 조용히 서있는 돔형 건물은 국회의원들이 헌법과 국민의 명령을 거스르고 있다는 상징인 셈이지요. 반면 장외투쟁이란 구호로 의사당 밖이 떠들썩한 건 원칙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여당의 방관은 제도에 대한 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로 시작된 국회 파행은 여당과 검찰의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으로 증폭돼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습니다. 장외투쟁으로 진로를 정한 야당이나 야당을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런 노력이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여당은 새 천년의 첫 번째 정기국회의 막중한 임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임무란 이런 것입니다.
100조원이 넘는 내년 예산안의 처리가 놓여있습니다. 흔히 말하듯 지속적 난관이 예상되는 경제사정 아래서 늘어난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심의하려면 신중한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따른 법과 제도의 정비를 늦출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정치형법의 개폐,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제도의 고안은 방치해버릴 것인가요? 국가인권법과 부패방지법안도 같은 처지이고,
동성동본금혼 폐지처럼 위헌 결정이 난 민법 조문의 수정도 남아있습니다. 2개월째 계류중인 구조조정 관련 법안은 금융지주회사법,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 소득특례제한법 개정안, 소득세법 개정안 등입니다.
대략 살펴봐도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의 무게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특정 사건을 놓고 여야가 한심한 대치를 지속하는 것은 정치적 균형감각의 상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균형감각 상실의 원인은 원칙과 제도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합니다. 새로운 제도보다는 기존의 원칙이 우선합니다. 필요한 제도는 그에 앞선 원칙에 따라 싸워 쟁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야당에 대해서는 장내에서 싸우라는 주문을, 여당에 대해서는 장내로 끌어들이라는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자고 다투는 모양은 비효율적이기 이전에 지겹기만 할 뿐입니다.
의약분업제도는 제도 이전의 원칙과 제도의 경계선에서 혼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도 이전의 원칙은 사회적 필요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승인에서 세워지고, 그것은 다시 법률로 구체화됩니다. 의약분업제도가 끊임없이 수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애초 원칙의 수립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만들어진 제도 내에서 다시 원칙을 상대로 벌이는 이익집단의 싸움이 국회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열렸던 인사청문회는 그럭저럭 완성되어 운용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운용상의 원칙이 다시 마련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제도 설립의 취지를 벗어나선 안 되지요. 하지만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정략적이고 형식적입니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바라보는 국민이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것은,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의 취지에 해당하는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정치상황'을 원칙대로 쉽게 풀어갈 것이라고 장담하셨습니다. 그 원칙은 궁극적으로 국회법에 따른 다수결이라 하셨지요. 하지만 그 자신감은 안타깝게도 다수결원칙이라는 동전의 뒷면에 해당하는 소수의견 또는 반대의견의 존중이란 근원적 원칙을 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의 안팎과는 관계없이 다시 원칙을 공부해야 합니다. 원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을 버려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번 호에서는 정치분야에 대한 개혁정론과 정보통신부의 내용등급제에 대한 쓴소리를 실었습니다.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 초 개정된 국회법에선 정기국회 집회일을 9월 1일로 당겼습니다. 그러나 당일 개회식만 서둘러 끝내고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의사당은 텅 비고 말았습니다. 형식적인 개원 선포는 국회의 목숨이 붙어있다는 정도의 의미만 남기고 바로 '식물국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금 여의도에 조용히 서있는 돔형 건물은 국회의원들이 헌법과 국민의 명령을 거스르고 있다는 상징인 셈이지요. 반면 장외투쟁이란 구호로 의사당 밖이 떠들썩한 건 원칙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여당의 방관은 제도에 대한 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로 시작된 국회 파행은 여당과 검찰의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으로 증폭돼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습니다. 장외투쟁으로 진로를 정한 야당이나 야당을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런 노력이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여당은 새 천년의 첫 번째 정기국회의 막중한 임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임무란 이런 것입니다.
100조원이 넘는 내년 예산안의 처리가 놓여있습니다. 흔히 말하듯 지속적 난관이 예상되는 경제사정 아래서 늘어난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심의하려면 신중한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남북관계에 따른 법과 제도의 정비를 늦출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정치형법의 개폐,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제도의 고안은 방치해버릴 것인가요? 국가인권법과 부패방지법안도 같은 처지이고,
동성동본금혼 폐지처럼 위헌 결정이 난 민법 조문의 수정도 남아있습니다. 2개월째 계류중인 구조조정 관련 법안은 금융지주회사법,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 소득특례제한법 개정안, 소득세법 개정안 등입니다.
대략 살펴봐도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의 무게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특정 사건을 놓고 여야가 한심한 대치를 지속하는 것은 정치적 균형감각의 상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균형감각 상실의 원인은 원칙과 제도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합니다. 새로운 제도보다는 기존의 원칙이 우선합니다. 필요한 제도는 그에 앞선 원칙에 따라 싸워 쟁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야당에 대해서는 장내에서 싸우라는 주문을, 여당에 대해서는 장내로 끌어들이라는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자고 다투는 모양은 비효율적이기 이전에 지겹기만 할 뿐입니다.
의약분업제도는 제도 이전의 원칙과 제도의 경계선에서 혼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도 이전의 원칙은 사회적 필요성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승인에서 세워지고, 그것은 다시 법률로 구체화됩니다. 의약분업제도가 끊임없이 수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애초 원칙의 수립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만들어진 제도 내에서 다시 원칙을 상대로 벌이는 이익집단의 싸움이 국회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열렸던 인사청문회는 그럭저럭 완성되어 운용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운용상의 원칙이 다시 마련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제도 설립의 취지를 벗어나선 안 되지요. 하지만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정략적이고 형식적입니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바라보는 국민이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것은,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의 취지에 해당하는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정치상황'을 원칙대로 쉽게 풀어갈 것이라고 장담하셨습니다. 그 원칙은 궁극적으로 국회법에 따른 다수결이라 하셨지요. 하지만 그 자신감은 안타깝게도 다수결원칙이라는 동전의 뒷면에 해당하는 소수의견 또는 반대의견의 존중이란 근원적 원칙을 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의 안팎과는 관계없이 다시 원칙을 공부해야 합니다. 원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을 버려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번 호에서는 정치분야에 대한 개혁정론과 정보통신부의 내용등급제에 대한 쓴소리를 실었습니다.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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