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저는 오늘 지금까지 개혁통신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평소 역설해오신 "전국민의 정보화 촉진, 정보화강국"이라는 주제와 아주 많이 관련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7월 20일 정보통신부에서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공청회가 있기 전까지 개정법률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에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행사가 있기 바로 며칠 전에서야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 비로소 알려져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늘 소위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 법에 대해서는 7월 20일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습니다. 이 법은 아주 비밀리에 준비되고 몇몇 사람들만이 그 내용을 검토하면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이전에 정통부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토론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저는 "비밀"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전국민 인터넷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 같은 방식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제 인터넷 이용당사자인 네티즌들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지 않은 법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긍을 하고 인정하려 하겠습니까? 이는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대통령님의 지론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사실이 아닌가요?

지난주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사이버 상의 음란물, 폭력물, 사이버성폭력, 개인정보유출 등의 문제에 대해 현실세계(Off-Line)와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법의 기본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 일명 CDAⅠ)에 대한 미연방대법원의 위헌판결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 법의 기본취지도 "유해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1년 여에 걸친 논란 끝에 이 법이 위헌판결을 받은 이유는, 첫째 통신품위법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둘째 이런 유해한 프로그램을 사전에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는 현재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결국 미연방대법원은 검열을 통한 이익보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을 유해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나 동의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가상세계(On-Line)와 현실세계 모두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왜 유독 온라인에서 더욱 강력한 법을 만들어서 청소년을 보호하려 하는지요? 이미 우리사회에는 청소년보호법 등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법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법들만 잘 지키고 시행하더라도 사이버상에서 청소년을 유해물들로부터 충분히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마당에 질서확립법과 같은 별도입법은 아무런 법적 실효성이나 사회적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셈입니다.

사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유해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음란 비디오를 구해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법만 있을 뿐 지켜지지 않는 것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문제가 많은 현실세계는 그대로 방치한 채 오히려 온라인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온당할까요? 우리 청소년들은, 아무리 온라인에 음란물이 판치고 있다하더라도, 90% 이상의 생활을 현실세계에서 하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의 유해한 환경부터 먼저 개선해야 합니다. 이것만도 벅찰지도 모릅니다.

내용등급제와 관련해서 그 실효성을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내용등급제는 "내용 선별 소프트웨어"를 학교, 도서관, 공공시설, 청소년 이용시설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 설치·의무화시킨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식의 내용선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이 분야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인터넷의 홈페이지들, 매일 생겼다 사라지는 수많은 홈페이지들의 컨텐츠에 대해 동일한 표준으로 이를 선별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면 결국 "건전성"의 판단은 사람, 더 정확하게는 관료들이 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이 법의 입법취지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진 채 오직 규제와 검열이라는 형해(形骸)만 남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설혹 국내의 서비스 업체들에 대해서는 규제한다 치더라도, 해외의 그 수많은 문제 사이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금번의 질서확립법 입법 논란은 이 속담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내용등급제는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나 정통부에서 강력한 표준을 만들어 강제적으로 무소불위의 규제와 통제를 실시하면 정말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터넷으로 뻗어나가는 정보통신강국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규제와 검열은 반드시 이 분야의 위축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무한한 적극성과 능동성으로 임해도 모자라는 상황에 이같은 규제는 최소한 사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필경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네티즌이 만들어 왔던 인터넷 문화는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문화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의구심은 이번 법률 개정작업을 진행한 정보통신부의 행태입니다. 사실 이 법은 개정안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법이라고 칭해야 맞습니다. 기존법이 부칙포함 35조인데 반해 개정안은 무려 91조에 달하니까요. 실제 이용주체인 네티즌으로부터 어떤 목소리도 듣지 않고, 민간 소비자 단체나 시민사회단체로부터의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법개정작업이 진행된 이면에는 새로운 매체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에 대해 정통부가 어떤 식으로든 주도권을 행사해 보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듯이 인터넷의 주권 또한 네티즌에게 있습니다. 정말로 인터넷의 미래를 걱정하고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을 만들어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왜 우리에겐 몇몇 사람들이 뚝딱뚝딱 법안을 만들어서, 다만 형식일 뿐인 의사수렴을 하고, 법을 통과시키는 그런 구시대적 작태가 계속 반복되어야만 하는지 정말 서글픕니다.

지난 9월 5일 법안 개정과 관련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청소년 보호단체의 관계자는 지난 97년부터 청소년 범죄율의 추이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청소년 폭력 등의 사회문제를 사이버스페이스의 까닭으로 돌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입장을 비판했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행법률로도 충분히 사법처리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왜 이 법안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 방법이 아니면 규제가 불가능한지에 대해 문제제기 했습니다.

이밖에도 개인정보보호, 표현의 자유, 인터넷주소자원관리 문제 등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만 오늘은 가장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등급제"만을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님,

진실로 호소하건대 질서확립법에 반대하는 네티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이 점과 관련해서는 http://freeonline.or.kr에 다양한 네티즌의 목소리와 자료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참여연대 웹사이트 운영자 이샛별 드림
2000/09/07 00:00 2000/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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