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호 개혁정론]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보다도 신뢰의 위기가 더 걱정입니다.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1/03/29 00:00
대통령님,
최근 역사적인 남북 평화관계의 정착이 대통령님의 미국방문이 있은 후 매우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자칫 표류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높은 가운데, 언제나 그랬듯이 좀더 당당한 민족자존의 확립이 우리 민족에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쉽게도 그동안 신념을 갖고 남북관계의 개선에 노력해 오신 대통령께 국내의 개혁정책 추진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로 이어져야 함에도 오히려 정책추진상의 부실과 혼선이 대통령님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을 볼 때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가 건강보험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로 대통령님의 집권과 더불어 그동안 사회보장원리에 충실한 사회보험제도의 정착을 갈구해온 자들이 주장해왔던 통합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보장사를 말할 때 매우 의의있는 일로 평가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간 동일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사는 지역에 따라, 자신이 속한 직장에 따라 각기 다른 의료보험혜택을 받는 가운데 소득역진적인 현상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리고 250여 개가 넘는 조합들이 난무하면서 그렇다고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도 아닌 채, 행정지역별, 직장별로 독점적인 조합운영이 이루어온 터라 전반적인 관리운영비의 과다지출이 행해짐으로써 형평과 효율, 두 가지에 모두 문제가 있어온 기존의 의료보험제도는 분명 커다란 방향수정을 해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의약분업 또한 국민의 건강권 확보와 적정한 의료비 지출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으로서, 무엇보다 의사와 약사의 이윤추구동기와 연결되어 과다한 진료와 약물 투여가 이루어지는 기본 구도를 끊어내고 의사는 진료와 처방의 본분을, 약사는 조제의 본분을 다 하면서 정상이윤을 내고,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정상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매우 합목적적인 제도이지 않았습니까?
역대 정부에서는 누구도 감히 현실의 이해관계를 끊어내면서까지 이러한 과감한 손질을 하지 못하였지만, 국민의 정부에서만이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통령님,
소득보장과 함께 현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또 하나의 영역인 의료보장 측면에서 헌정이후 가장 두드러진 개혁을 추진한 현 정부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극도의 불신과 공분의 대상이 된 것은 왜일까요?
그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시민운동을 통해 사회개혁에 일조하겠다고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이루어내는 데에 기여하는 실천적 노력을 아끼지 않아왔던 사회보장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의료보험제도의 변혁과 의약분업의 도입이라는 두 과제는 현재의 국민의식과 사회여건을 생각할 때 일정한 홍역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서 현재의 국민적 동요와 혼란은 과도기적으로 거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반드시 거쳐야 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동요야말로 우리 사회가 개혁을 행함에 있어 어떤 저항요소와 실력부족이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건강보험재정파탄을 통해 대통령께서는 국민의 저항에 따른 부담이 크겠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인 의사집단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기이익 추구에 빠져 있어 수많은 부당청구와 과잉진료를 저지르고 있었는지, 정부내의 관료들은 무소신과 무능에 쩔어 개혁정책의 추진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정책추진의 의지마저 갖지 않고 있는 얼마나 허약한 집단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치인들이란 국민의 진정한 복리를 위해 정확한 판단과 신념을 지니고 여론을 주도해야 함에도 얄팍한 여론에 편승하여 오히려 정책적 혼선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얼마나 쉽게 변하는 지, 그리고 언론 역시 자사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국민여론을 호도하며 여론몰이에 앞장서 올바른 정책방향을 얼마나 쉽게 뒤집어 버릴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우리사회가 지닌 문제의 본질을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러나 정녕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러한 한국적 상황을 예상하고 좀더 치밀하게 그에 합당한 추진인물을 포진시키고 추진전략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간 생산적 복지를 천명하신 대통령께서는 우리사회에서의 사회보장정책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안전망 역할을 하리라 확신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그에 걸맞는 인물을 정책추진의 사령탑으로 세우시는 데에는 거의 실패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집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이나 복지노동수석의 면면을. 저희가 보기에는 아직도 이 자리는 정치적 안배나 지역적 안배에 가까운 자리이지 진정 대통령님의 개혁의지를 읽고 이를 추진하며 한국사회에 있어서 사회보장부문을 정책기조에 있어 적절한 위상을 지니도록 기여할 인물이 기용되는 자리는 아니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정부 정책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국무총리나 부총리, 그리고 예산을 통하여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는 기획예산처 장관, 또한 당의 정책위의장과 같은 핵심 당료들이 생산적 복지의 취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정부와 집권당의 의지를 보여주는 데에 협조적이었는지, 저희들로서는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것이 대통령님의 사회보장부문에서의 개혁 추진에 부하가 걸린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좁게는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복지노동수석실, 나아가서는 정책조율을 행해야 하는 부총리, 그리고 당 정책위 및 보건사회상임위소속 국회위원들이 그 구성과 기능면에서 전면 재검토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들 라인에서 복지정책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면밀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세우면서 추진에 방해되는 비본질적인 장애요인을 과감히 제거하는 한편, 대국민 홍보와 설득에 나선다면 현재의 건강보험재정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리며, 의약분업의 정착도 난망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재정위기라는 것만 보아도 그 요인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모두 제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4조원에 이르는 적자폭이라지만 몇 가지 큰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의료수가인상분입니다.
이로인해 1조 8천억원이 발생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여타 단체의 분석에서 누누히 지적된 것이지만 이는 순전히 의사들에게 보건복지부가 국민호주머니로부터 돈을 '퍼 주게' 만든 것입니다. 지난 1997년 이후 43.9%, 1999년 이후만도 23%에 이르는 수가 인상을 한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현재 병의원마다 수익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어 표정관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시정에 떠도는 헛말이 아니리라 봅니다. 따라서 의료수가를 과감히 인하하십시오. 정부의 정책의지로 가능합니다.
둘째, 의약분업 시행으로 의료기관과 약국을 각기 방문, 전문서비스를 받게 되는 명목으로 6,800억원이 증가되었습니다.
의료기관에는 외래환자가 20%정도 증가하였고, 약국에도 원외처방을 받는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진찰료와 처방료, 그리고 약국에는 조제료가 각기 늘었으니 의료재정을 압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시민단체들은 진찰료와 처방료를 일원화하자고 하였으며 처방과정에서의 고가약품 사용,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 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아있는 과잉청구 및 허위청구에 대한 매우 강도높은 실사과정이나 감시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바, 현재의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 및 심사평가원이 기관의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그리고 추가로 의료기관 및 약국에 총량규제를 한다면 이 부분도 가능한 부분입니다.
셋째, 고가약품 처방과 임의조제 약품비의 보험이전으로 인한 약제비 증가가 연간 7,000억원 정도 추가 발생할 것으로 말합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아직도 제약회사가 약가의 수준을 원가에 비해 훨씬 높게 잡고 이를 광고비와 리베이트자금, 그리고 폭리로 연결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약가의 추가인하를 통해 절감가능한 것입니다. 즉, 약가를 추가 인하함으로써 약효가 인정되면서도 좋은 약품을 쓰는 동시에 최대 1조원정도까지도 절감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현실화다면 전체 보험재정에는 지출감소효과까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본인부담금의 정액구간을 12,000원에서 15,000원으로 조정한 것이 연간 3,350억원의 재정지출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수가인상의 부당성을 생각할 때 연동되어 취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약분업이 국민적 반감을 불러 일으켰던 지난 해 하반기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즉 한 감기환자가 종전에는 12,000원 이내의 총진료비가 산출되어 정액 본인부담금인 2,200원을 내면 되었지만, 작년 9월말만해도 의료수가 자체가 인상되어 동일한 진료임에도 불구 15,000원이 되었다면 이때는 30%라는 정률이 적용되어 4,500원을 냄으로써 2,300원이 추가됩니다. 따라서 국민은 이것이 수가인상 때문이라는 것은 모르고 당연히 의약분업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여 의약분업 추진에 반대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이유에서 본인부담금의 정액구간을 15,000원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로인해 초래된 보험재정의 추가적인 지출은 자명한 결론이지만 그 책임을 굳이 묻는다면 수가인상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요인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수진율과 자연증가율 9,000억 원인데 바로 이 러한 '자연증가분'만큼을 국민이 부담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된다면, 아니 애초에 이렇게 되었더라면 이러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정부가 지역의료보험가입자에 대하여 재정의 50%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이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이를 기초로 국민이 피부에 와 닿도록 국민이 더 많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적극적인 진료수단이라 할 수 있는 건강진단이나 예방적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현주소 아닙니까? 또한 중병이나 장기입원, 희귀병 환자의 경우는 거의 가산을 탕진해야 되는 것이 21세기 한국의료험의 현실인데, 이런 것들이 해소되는 것이야말로 건강보험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의료보험제도하에서라면 국민들은 건강보험료율 인상에 있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보험료율은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주관하는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되어있는 데,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consensus) 정신이 관철되고 있습니다.
즉, 지역가입자대표 10명, 직장가입자대표 10명, 보건복지부와 공단을 비롯한 공익대표 10명 등 총 30명의 위원들이 모여 최적의 보험료율을 결정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보장사에서 국민이 참여민주주의의 정신과 사회적 합의정신에 의거하여 제도의 결정이나 집행과정에 적극 동참한 역사가 일천한 상황에서 재정운영위원회의 존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지역가입자의 보험료율을 15% 인상하기로 하고,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수월액기준 3.4%로 인상조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정신이 인내심속에 견지되었던 것은 분명 평가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 속에서 더 이상의 의료수가 인상으로 인해 국민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정부에게 제시하였던 바 있으나 끝내 7.08%의 수가인상 결정으로 되돌아왔을 때 이곳에 참여한 가입자대표들의 허탈함과 공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대통령께서 이해하시겠습니까?
대통령님, 결국 신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이러한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몇 가지 과감한 조치에 의하여 해결가능할 수도 있지만, 한번 깨진 정부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조치에 의해서도 복구되기에는 요원합니다.
국민들이 말단 공무원부터 대통령님까지 끝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들이라고 신뢰한다면 어떤 제도도 성숙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이고 외국에서는 성공적으로 정착된 제도라도 우리에게만은 예외로 부정당할 것입니다.
3월말에 흩뿌리는 춘설속에서 국민 모두가 다가올 봄의 따스함을 더욱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우리 정부에도 신뢰의 봄이 벅차게 찾아오기를 고대하면서 대통령님의 건강과 현명한 판단을 기원합니다.
최근 역사적인 남북 평화관계의 정착이 대통령님의 미국방문이 있은 후 매우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자칫 표류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높은 가운데, 언제나 그랬듯이 좀더 당당한 민족자존의 확립이 우리 민족에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쉽게도 그동안 신념을 갖고 남북관계의 개선에 노력해 오신 대통령께 국내의 개혁정책 추진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로 이어져야 함에도 오히려 정책추진상의 부실과 혼선이 대통령님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을 볼 때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가 건강보험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로 대통령님의 집권과 더불어 그동안 사회보장원리에 충실한 사회보험제도의 정착을 갈구해온 자들이 주장해왔던 통합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보장사를 말할 때 매우 의의있는 일로 평가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간 동일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사는 지역에 따라, 자신이 속한 직장에 따라 각기 다른 의료보험혜택을 받는 가운데 소득역진적인 현상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리고 250여 개가 넘는 조합들이 난무하면서 그렇다고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도 아닌 채, 행정지역별, 직장별로 독점적인 조합운영이 이루어온 터라 전반적인 관리운영비의 과다지출이 행해짐으로써 형평과 효율, 두 가지에 모두 문제가 있어온 기존의 의료보험제도는 분명 커다란 방향수정을 해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의약분업 또한 국민의 건강권 확보와 적정한 의료비 지출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으로서, 무엇보다 의사와 약사의 이윤추구동기와 연결되어 과다한 진료와 약물 투여가 이루어지는 기본 구도를 끊어내고 의사는 진료와 처방의 본분을, 약사는 조제의 본분을 다 하면서 정상이윤을 내고,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정상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매우 합목적적인 제도이지 않았습니까?
역대 정부에서는 누구도 감히 현실의 이해관계를 끊어내면서까지 이러한 과감한 손질을 하지 못하였지만, 국민의 정부에서만이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통령님,
소득보장과 함께 현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또 하나의 영역인 의료보장 측면에서 헌정이후 가장 두드러진 개혁을 추진한 현 정부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극도의 불신과 공분의 대상이 된 것은 왜일까요?
그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시민운동을 통해 사회개혁에 일조하겠다고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이루어내는 데에 기여하는 실천적 노력을 아끼지 않아왔던 사회보장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의료보험제도의 변혁과 의약분업의 도입이라는 두 과제는 현재의 국민의식과 사회여건을 생각할 때 일정한 홍역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서 현재의 국민적 동요와 혼란은 과도기적으로 거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반드시 거쳐야 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동요야말로 우리 사회가 개혁을 행함에 있어 어떤 저항요소와 실력부족이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건강보험재정파탄을 통해 대통령께서는 국민의 저항에 따른 부담이 크겠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인 의사집단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기이익 추구에 빠져 있어 수많은 부당청구와 과잉진료를 저지르고 있었는지, 정부내의 관료들은 무소신과 무능에 쩔어 개혁정책의 추진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정책추진의 의지마저 갖지 않고 있는 얼마나 허약한 집단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치인들이란 국민의 진정한 복리를 위해 정확한 판단과 신념을 지니고 여론을 주도해야 함에도 얄팍한 여론에 편승하여 오히려 정책적 혼선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얼마나 쉽게 변하는 지, 그리고 언론 역시 자사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국민여론을 호도하며 여론몰이에 앞장서 올바른 정책방향을 얼마나 쉽게 뒤집어 버릴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우리사회가 지닌 문제의 본질을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러나 정녕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러한 한국적 상황을 예상하고 좀더 치밀하게 그에 합당한 추진인물을 포진시키고 추진전략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간 생산적 복지를 천명하신 대통령께서는 우리사회에서의 사회보장정책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안전망 역할을 하리라 확신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그에 걸맞는 인물을 정책추진의 사령탑으로 세우시는 데에는 거의 실패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집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이나 복지노동수석의 면면을. 저희가 보기에는 아직도 이 자리는 정치적 안배나 지역적 안배에 가까운 자리이지 진정 대통령님의 개혁의지를 읽고 이를 추진하며 한국사회에 있어서 사회보장부문을 정책기조에 있어 적절한 위상을 지니도록 기여할 인물이 기용되는 자리는 아니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정부 정책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국무총리나 부총리, 그리고 예산을 통하여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는 기획예산처 장관, 또한 당의 정책위의장과 같은 핵심 당료들이 생산적 복지의 취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정부와 집권당의 의지를 보여주는 데에 협조적이었는지, 저희들로서는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것이 대통령님의 사회보장부문에서의 개혁 추진에 부하가 걸린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좁게는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복지노동수석실, 나아가서는 정책조율을 행해야 하는 부총리, 그리고 당 정책위 및 보건사회상임위소속 국회위원들이 그 구성과 기능면에서 전면 재검토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들 라인에서 복지정책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면밀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세우면서 추진에 방해되는 비본질적인 장애요인을 과감히 제거하는 한편, 대국민 홍보와 설득에 나선다면 현재의 건강보험재정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리며, 의약분업의 정착도 난망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재정위기라는 것만 보아도 그 요인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모두 제도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4조원에 이르는 적자폭이라지만 몇 가지 큰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의료수가인상분입니다.
이로인해 1조 8천억원이 발생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여타 단체의 분석에서 누누히 지적된 것이지만 이는 순전히 의사들에게 보건복지부가 국민호주머니로부터 돈을 '퍼 주게' 만든 것입니다. 지난 1997년 이후 43.9%, 1999년 이후만도 23%에 이르는 수가 인상을 한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현재 병의원마다 수익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어 표정관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시정에 떠도는 헛말이 아니리라 봅니다. 따라서 의료수가를 과감히 인하하십시오. 정부의 정책의지로 가능합니다.
둘째, 의약분업 시행으로 의료기관과 약국을 각기 방문, 전문서비스를 받게 되는 명목으로 6,800억원이 증가되었습니다.
의료기관에는 외래환자가 20%정도 증가하였고, 약국에도 원외처방을 받는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진찰료와 처방료, 그리고 약국에는 조제료가 각기 늘었으니 의료재정을 압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시민단체들은 진찰료와 처방료를 일원화하자고 하였으며 처방과정에서의 고가약품 사용,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 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아있는 과잉청구 및 허위청구에 대한 매우 강도높은 실사과정이나 감시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바, 현재의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 및 심사평가원이 기관의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그리고 추가로 의료기관 및 약국에 총량규제를 한다면 이 부분도 가능한 부분입니다.
셋째, 고가약품 처방과 임의조제 약품비의 보험이전으로 인한 약제비 증가가 연간 7,000억원 정도 추가 발생할 것으로 말합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아직도 제약회사가 약가의 수준을 원가에 비해 훨씬 높게 잡고 이를 광고비와 리베이트자금, 그리고 폭리로 연결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약가의 추가인하를 통해 절감가능한 것입니다. 즉, 약가를 추가 인하함으로써 약효가 인정되면서도 좋은 약품을 쓰는 동시에 최대 1조원정도까지도 절감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현실화다면 전체 보험재정에는 지출감소효과까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본인부담금의 정액구간을 12,000원에서 15,000원으로 조정한 것이 연간 3,350억원의 재정지출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수가인상의 부당성을 생각할 때 연동되어 취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약분업이 국민적 반감을 불러 일으켰던 지난 해 하반기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즉 한 감기환자가 종전에는 12,000원 이내의 총진료비가 산출되어 정액 본인부담금인 2,200원을 내면 되었지만, 작년 9월말만해도 의료수가 자체가 인상되어 동일한 진료임에도 불구 15,000원이 되었다면 이때는 30%라는 정률이 적용되어 4,500원을 냄으로써 2,300원이 추가됩니다. 따라서 국민은 이것이 수가인상 때문이라는 것은 모르고 당연히 의약분업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여 의약분업 추진에 반대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이유에서 본인부담금의 정액구간을 15,000원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로인해 초래된 보험재정의 추가적인 지출은 자명한 결론이지만 그 책임을 굳이 묻는다면 수가인상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요인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수진율과 자연증가율 9,000억 원인데 바로 이 러한 '자연증가분'만큼을 국민이 부담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된다면, 아니 애초에 이렇게 되었더라면 이러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정부가 지역의료보험가입자에 대하여 재정의 50%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이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이를 기초로 국민이 피부에 와 닿도록 국민이 더 많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적극적인 진료수단이라 할 수 있는 건강진단이나 예방적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현주소 아닙니까? 또한 중병이나 장기입원, 희귀병 환자의 경우는 거의 가산을 탕진해야 되는 것이 21세기 한국의료험의 현실인데, 이런 것들이 해소되는 것이야말로 건강보험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의료보험제도하에서라면 국민들은 건강보험료율 인상에 있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보험료율은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주관하는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되어있는 데,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consensus) 정신이 관철되고 있습니다.
즉, 지역가입자대표 10명, 직장가입자대표 10명, 보건복지부와 공단을 비롯한 공익대표 10명 등 총 30명의 위원들이 모여 최적의 보험료율을 결정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보장사에서 국민이 참여민주주의의 정신과 사회적 합의정신에 의거하여 제도의 결정이나 집행과정에 적극 동참한 역사가 일천한 상황에서 재정운영위원회의 존재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지역가입자의 보험료율을 15% 인상하기로 하고,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수월액기준 3.4%로 인상조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정신이 인내심속에 견지되었던 것은 분명 평가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 속에서 더 이상의 의료수가 인상으로 인해 국민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정부에게 제시하였던 바 있으나 끝내 7.08%의 수가인상 결정으로 되돌아왔을 때 이곳에 참여한 가입자대표들의 허탈함과 공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대통령께서 이해하시겠습니까?
대통령님, 결국 신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이러한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몇 가지 과감한 조치에 의하여 해결가능할 수도 있지만, 한번 깨진 정부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조치에 의해서도 복구되기에는 요원합니다.
국민들이 말단 공무원부터 대통령님까지 끝내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들이라고 신뢰한다면 어떤 제도도 성숙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이고 외국에서는 성공적으로 정착된 제도라도 우리에게만은 예외로 부정당할 것입니다.
3월말에 흩뿌리는 춘설속에서 국민 모두가 다가올 봄의 따스함을 더욱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우리 정부에도 신뢰의 봄이 벅차게 찾아오기를 고대하면서 대통령님의 건강과 현명한 판단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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