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의 대외지급 및 자본거래 규제를 풀고 외국인의 자본거래 자유화 폭을 확대하는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가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자본자유화조치들이 주로 외국돈과 자본이 자유롭게 국내에 들어오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조치는 국내 돈이 바깥으로 자유롭게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한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이제 제도상으로는 외국돈이 국내자본시장으로, 또 국내 돈은 외국자본시장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자본이동에 관한 한 머잖아 국경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이로써 97년 위기이래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자본자유화는 몇몇 절차적 규제만 남겨놓은 채 일단 완결된 셈입니다.

자본자유화가 세계적 추세이고 또 한국처럼 수출로 꾸려가는 대외의존적 개방경제가 금융세계화 추세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급하고 자본자유화의 과속은 위험하다는 게 필자를 비롯한 다수 경제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우선 이번 외환거래 자유화조치만 보더라도, 과연 정부의 장담대로 자본유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지 의문입니다.

정부는 자본거래 사전신고제, 금융정보분석기구 설치, 국세청 및 관세청 통보제, 비상시 외화예치제 등의 보완조치를 통해 내국인의 불법적·투기적 자본유출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최근의 정현준 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 조그만 종금사 하나도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하는 금융당국이 신종 금융기법들이 난무하고 또 자금이동이 빠르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국제자본거래를 제대로 모니터하고 통제하리라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더구나 걱정인 것은 현재의 금융개혁이 일본처럼 장기간 지지부진할 경우입니다. 현재의 금융개혁은 좀 과장하자면 기업의 부실을 금융기관이 떠안고 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다시 국민의 세금인 공적 자금으로 메워 넣는 일종의 부(富)의 이전이자 단기적 금융시장 안정화 정책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은 금융기관의 경쟁력강화라는 금융개혁의 핵심을 비껴가는 단기처방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구나 내년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부분예금보장제가 한꺼번에 실시되어 금융시장이 꽤 동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도 일본처럼 앞으로 상당 기간 금융개혁의 과제를 끌어안고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불안정적인 국내금융시장에 불안을 느낀 뭉치돈들이 해외 투자처를 찾아 빠져나가게 될 것이고, 그랬을 때 국내투자가 국내저축으로 충당되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높은 저축-높은 투자-고도성장으로 이어지는 호(好)순환적 경제구조이었는데, 금융개혁의 장기 지연으로 인한 자본유출 때문에 이 호순환의 고리가 깨어져 국내저축이 국내투자로 연결되지 못해서 (그 부족분의 일부를 외국인 투자가 대신하겠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투자위축으로 인해 국내산업의 기반이 약화되고 마는 우울한 중장기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남미가 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자본도피였고, 대영제국이 20세기 들면서 쇠퇴한 것도 국내자본부족 때문이 아니라 해외로의 자본유출로 인한 국내투자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IMF위기이후 위기극복 차원에서 시행된 일련의 자본자유화 정책의 결과 한국경제의 작동원리는 과거와는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외국인직접투자도 크게 늘어났고, 국내자본시장은 외국돈이 좌지우지하게 되었으며, 또 외국인 투자자가 지배하는 주식시장의 평가에 따라 기업과 국내금융기관의 행위가 결정되고, 국가정책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국가정책의 자율성 내지는 정책선택의 폭도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퇴각하면, 그때는 또 한번의 IMF위기가 발생할 것입니다. 설사 우리가 아무리 구조조정을 잘하고 거시경제적 조건을 건전하게 유지하더라도 예컨대 미국주가의 폭락과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급변은 즉각 국내위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직접 연결통로가 자본시장 자유화입니다.

이처럼 자본자유화로 말미암아 국민경제가 외국금융자본에 좌지우지되고 외부충격에 극도로 취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연결통로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가 강요되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시장 속에서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 비정한 시장경쟁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그런 신자유주의 사회가 자본자유화의 미래인 것입니다.

당시의 위기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IMF위기이후 우리는 자본시장을 너무 빨리, 너무 활짝 열었습니다.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IMF 눈치보기에 급급한 정책대응이었습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국경제를 낙관하거나 국제금융시장의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식의 요행에 국가경제를 내맡겨 놓은 채 손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자본자유화의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투기성 단기자금 유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외환거래세 도입과 위기시 동아시아 역내 공동대처노력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000년 12월 6일

참여사회연구소 경제분과장, 고려대학교 교수 김 균
2000/12/07 00:00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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