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호 쓴소리]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경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0/12/07 00:00
참 기막힌 일로 쓴소리를 씁니다. 얼마전 행정자치부에서 입법예고를 하나 하였습니다. 11월 3일자 관보에 실린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시행령개정안'(관보 14644호)이 그것입니다. 이 입법예고에는 공공기록물의 전자등록제도를 2003년 말까지 시행 유예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문제는 24일 법제처에 심사의뢰한 개정안(정부기록보존소 행정12301-2856)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입법예고에는 전자등록제도의 시행 연기 내용만 들어있었는데 법제처 심사의뢰개정안에는 그 외에 두 가지 사항이 더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추가내용은 회의록 작성부분과 기록관리전문요원 관련부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공공기록의 과학적 관리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행정자치부는 이를 슬쩍 법제처에 심사의뢰하고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주무기관인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내에서조차 이 내용들을 극비에 부쳤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문제가 배후에 숨어있다는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과학적 기록관리는 길게 보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적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국민이 공유하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온갖 불신과 부조리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차 사라져갈 것입니다.
근대적 기록관리의 개념조차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말에 절대권력인 국왕조차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말은 결국 공적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두려워하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사초(史草)를 기록하고 왕조실록을 편찬한 중세국가 조선은 어쩌면 나름대로의 민주주의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요한 공적 행위를 하여도 문제가 생길 성싶으면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음은 물론 기록으로 남겨진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죄 의식 없이 무단 폐기하는 일을 밥먹듯 하고 있으니까요.
대통령께서도 정부기관의 공문서 파기문제에 대해서는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는 공공기관 운영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개혁정책을 화려하게 펼쳐도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계속된다면 장기 지속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합니다. 과학적 기록관리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행정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며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를 쌓게 하는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관리법으로 줄임)을 올해부터 시행한 것은 기록관리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는 일대 사건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 법률에는 정부가 공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는 공공기록 생산 강제 및 등록 제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요 회의의 경우는 반드시 회의록을 남기도록 하고, 회의록을 포함한 모든 공공 기록물을 전산 목록화하여 무단 폐기를 원천적으로 막은 조치는 개혁의 커다란 진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이러한 개혁적 제도를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말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를 정부기관에 배치하여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 내용만 본다면 관련학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명한 정부 운영에 의해 불이익을 당할 사람들의 반대와 저항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참여연대에서 판공비 공개운동을 추진하였을 때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이에 저항하였습니다. 아마도 판공비의 집행과정을 기록으로 충실히 남기고 이를 빠짐 없이 공개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의해 행정권이 옥죄여지는 것으로만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또 굳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관행에 메스를 대는 것 자체가 거부감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스스로 장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아픈 부분을 도려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한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했었습니다. 기록관리법의 법 정신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자각하고 이번에 행한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행령 개정작업을 스스로 막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행정자치부는 편법을 써서 기록관리법의 기본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입법예고조차 불철저하게 하였고 기록보존소 내에서조차 비밀에 붙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부채질한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내용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우선 회의록에 발언내용을 기재하도록 하였던 것을 발언요지로 바꾸었고, 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록물 등록제도를 3년간이나 시행 연기하도록 하였으며, 대학원 이상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될 새로운 전문가 집단에 대신해서 기존의 공무원들이 약간의 재교육과정을 거쳐 기록관리 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에 기록관리학계는 물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 모두가 찬성하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결국 편법을 동원해서 기존 공무원 사회의 관행을 고수해보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공기록의 관리를 둘러싼 이번의 불행한 사태를 보면서 더욱더 기록관리법의 정신이 살아나야 함을 절감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그 동안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정부정책을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몇 십 년만에 겨우 찾은 민주주의의 토대,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공공기록을 관리하겠다는 공언조차 용두사미가 되고 말아서야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작인 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에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될 것임을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편법을 써서 통과시키려 했던 기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하고 기록관리법의 원정신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관련학계와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개정안을 다시 만들도록 조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선인들의 경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4일 법제처에 심사의뢰한 개정안(정부기록보존소 행정12301-2856)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입법예고에는 전자등록제도의 시행 연기 내용만 들어있었는데 법제처 심사의뢰개정안에는 그 외에 두 가지 사항이 더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추가내용은 회의록 작성부분과 기록관리전문요원 관련부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공공기록의 과학적 관리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행정자치부는 이를 슬쩍 법제처에 심사의뢰하고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주무기관인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내에서조차 이 내용들을 극비에 부쳤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문제가 배후에 숨어있다는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과학적 기록관리는 길게 보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적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국민이 공유하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온갖 불신과 부조리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차 사라져갈 것입니다.
근대적 기록관리의 개념조차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말에 절대권력인 국왕조차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말은 결국 공적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두려워하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사초(史草)를 기록하고 왕조실록을 편찬한 중세국가 조선은 어쩌면 나름대로의 민주주의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요한 공적 행위를 하여도 문제가 생길 성싶으면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음은 물론 기록으로 남겨진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죄 의식 없이 무단 폐기하는 일을 밥먹듯 하고 있으니까요.
대통령께서도 정부기관의 공문서 파기문제에 대해서는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는 공공기관 운영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개혁정책을 화려하게 펼쳐도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계속된다면 장기 지속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합니다. 과학적 기록관리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행정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며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를 쌓게 하는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관리법으로 줄임)을 올해부터 시행한 것은 기록관리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는 일대 사건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 법률에는 정부가 공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는 공공기록 생산 강제 및 등록 제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요 회의의 경우는 반드시 회의록을 남기도록 하고, 회의록을 포함한 모든 공공 기록물을 전산 목록화하여 무단 폐기를 원천적으로 막은 조치는 개혁의 커다란 진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이러한 개혁적 제도를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말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를 정부기관에 배치하여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 내용만 본다면 관련학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명한 정부 운영에 의해 불이익을 당할 사람들의 반대와 저항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참여연대에서 판공비 공개운동을 추진하였을 때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이에 저항하였습니다. 아마도 판공비의 집행과정을 기록으로 충실히 남기고 이를 빠짐 없이 공개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의해 행정권이 옥죄여지는 것으로만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또 굳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관행에 메스를 대는 것 자체가 거부감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스스로 장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아픈 부분을 도려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한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했었습니다. 기록관리법의 법 정신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자각하고 이번에 행한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행령 개정작업을 스스로 막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행정자치부는 편법을 써서 기록관리법의 기본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입법예고조차 불철저하게 하였고 기록보존소 내에서조차 비밀에 붙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부채질한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내용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우선 회의록에 발언내용을 기재하도록 하였던 것을 발언요지로 바꾸었고, 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록물 등록제도를 3년간이나 시행 연기하도록 하였으며, 대학원 이상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될 새로운 전문가 집단에 대신해서 기존의 공무원들이 약간의 재교육과정을 거쳐 기록관리 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정에 기록관리학계는 물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 모두가 찬성하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결국 편법을 동원해서 기존 공무원 사회의 관행을 고수해보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공기록의 관리를 둘러싼 이번의 불행한 사태를 보면서 더욱더 기록관리법의 정신이 살아나야 함을 절감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그 동안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정부정책을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몇 십 년만에 겨우 찾은 민주주의의 토대,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공공기록을 관리하겠다는 공언조차 용두사미가 되고 말아서야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작인 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에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될 것임을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편법을 써서 통과시키려 했던 기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하고 기록관리법의 원정신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관련학계와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개정안을 다시 만들도록 조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선인들의 경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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