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지난 10월 31일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은 '정보공개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시민 공청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0월 11일자로 입법 예고한 행정자치부의 개정안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항들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법 시행이래 줄기차게 제기되어온 현행 정보공개법의 문제점을 수렴하여 시민단체들의 공동 개정안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알고계시듯이 정보공개법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 13번째로 만들어진 선진적인 법률입니다. 한국의 정보공개법 제정에 고무되어 일본에서도 내년 4월 1일부터 정보공개법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이미 82년부터 자치단체에 정보공개조례가 존재해왔으니 제도 운영의 역사로만 본다면 오히려 한발 앞섰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국가적인 효력을 미치는 정보공개법이 한국에 제정되어 있는 것을 부러워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보공개제도 운영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참여연대와 서울대 공익법 학회가 지난 10월 30일 발표한 '중앙행정기관의 정보공개성실도 조사 결과 발표'에 의하면 중앙부처의 27%가 낙제 점수를 받았으며, 80점 이상을 받은 기관도 2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 행정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공무원과 전문가 집단(교수 및 민간단체 참여자) 모두 "공개의 폭이 확대되고 있으나 국민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항목에 가장 많이 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정된 정보공개법 이 시행은 되고 있지만, 행정 기관의 무관심과 홍보 부족, 현행 정보공개법이 갖고 있는 제도적인 결함 등으로 인해 국민들은 법으로 정해진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통령님,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개선되지 않는 현실과 제도저 문제점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왔음에도, 정보공개청구제도를 관장하고 있는 주무부서인 행정자치부에서 10월 11일자로 입법 예고한 개정안에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보공개법을 본래 취지에 맞게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공개 조항을 늘리고 행정편의주의적 조항만 더 신설하였습니다.

첫째, 행정자치부는 개정안에서 '공공기관의 필요에 의하여 법인등으로부터 공개하지 않기로하고 취득한 정보는 비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현재 제3자(주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생산자)의 의견청취가 필요한 정보에 관하여는 무조건 제3자의 의견을 들어 비공개하는 예에 비추어 볼 때, 이의 남용은 눈에 보듯 뻔합니다.

현행 정보공개법 상에 '제3자의 의견청취 및 이의신청' 규정이 있고, '법인·단체의 경영·영업상의 비밀 보호와 관련있는 정보의 비공개' 조항으로 제3자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면 충분함에도 새로 비공개 조항을 추가하여 공공기관과 이해관계가 있는 법인들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여지를 굳이 봉쇄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과민한 제어 장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행정자치부는 '국가 주요정책의 심의 또는 조정을 목적으로 내부 또는 상호간의 회의·협의·권고·조언·자문 등에 관한 사항으로써 공개될 경우 자유로운 의견 교환 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추가하였습니다. 물론, '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이나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현행 법령에서도 비공개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회의 자체를 비공개하도록 신설된 조항에 대한 행자부의 설명은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의 시행과 더불어 회의록 작성이 의무화되었고, 따라서 국무회의 같은 국가의 주요한 정책 결정 회의가 외부에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논의 내용이 공개되면 국무의원들이 회의시에 발언을 제대로 하지않을 것이므로 회의 문화 정착을 위해 비공개해야한다'라는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정책결정 입안자들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조차지지 못하는 것인가요? 과연 정부에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입니까?

이번 개정안이 국민의 편의와 권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악안이라는 중요한 근거가 시행령에도 있습니다. 행정자치부는 시행령에서 '정당한 사유없이 동일한 내용의 정보를 2회 이상 반복하여 청구하는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종결 처리 할 수 있도록'하는 조항을 신설하였습니다. 행정기관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이미 공개된 사례가 있을 경우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나 즉시 이용 가능하도록 하고, 만약 거부하였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재차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실제로 한국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동일한 내용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공개 결정 여부는 행정기관에 따라 달랐습니다).

그러나, 단지 공공기관의 업무부담을 완화하고자 이러한 조항을 신설한 것은 매우 안이하고 행정 편의적이며 주객이 전도된 발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시행령에서 이러한 조항을 첨가하면 모법이 정하고 있는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을 무시하여 법률 위반임을 물론입니다.

대통령님,

아직도 몇가지 지적사항이 더 남았으나 지면이 허락하지 않는 관계로 줄이겠습니다. 그러나 이상 세가지 문제 조항만 살펴보아도, 이번 개정안은 결국 정보공개의 청구권자인 시민의 입장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행정의 능률 및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정보를 미리 비공개 조항으로 지정하려는 취지의 반영인 것입니다.

정부에서 입법 예고한 개정안의 내용이 이러하다면, 차라리 현행대로 법령을 유지하는 것이 나을 형편입니다. 비공개 사유를 더 늘려 신설하거나 비공개 규정을 교묘하게 강화하고, 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을 시행령에서 차단하는 개정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여연대는 행정자치부의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며, 10월 31일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수렴하고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시민단체 개정안을 가까운 시일 내에 발표할 것입니다. 수요자인 시민의 입장에서 정보공개청구권을 확대하고 용이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시민단체 공동 개정안에 담을 것이며, 아울러 입법 추진 운동을 벌일 계획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어, 정보공개법 개정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납세자 운동본부 간사 이경미
2000/11/09 00:00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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