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최근 국세청은, 4대 재벌 대주주의 주식이동상황 조사, 법인세 정기조사 등의 강도높은 세무조사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재벌의 변칙적 증여와 상속문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조세형평의 실현'은 솔직히 '속 빈 강정'처럼 보일 것입니다. 특히, 삼성그룹 이재용씨의 경영권승계과정에서의 편법적 증여·상속문제는 저희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고 국세청에 대해서도 여러번 조사요청을 한 바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들은 이야기는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다.", "현실적으로 조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단 삼성만이 아니라 현대나 LG, SK 등과 같은 다른 재벌들 역시 엄청난 규모의 탈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국세청의 발표는 다소 때늦은 감마저 있고, 또다시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국세청이 이번만은 제대로 '법과 원칙'에 입각해서 일을 처리해 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저희들은 또 저희들 나름대로의 조사와 판단에 근거해서, 재벌의 변칙 증여/상속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용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로의 변칙적 증여/상속 문제인 것이고, 이번 참여연대의 조사결과 이에 대해선 반드시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고, 과세해야 한다는 자료와 논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들 주장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삼성그룹의 이재용씨 등은 지난 1999년 2월 당시 시가 58,000원대의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주당 7,150원에 취득함으로써, 약 1,650억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취했고, 이 경우 718억원 정도의 증여세를 납부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측은 당시 거래가격이 58,000원대였음을 인정하면서도 거래량이 작았다는 이유로 이를 시가로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부당이득에 따른 증여세 납부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당시 거래가격을 상속/증여세의 기준이 되는 '시가'로 볼 것인가입니다. 상속/증여세는 '시가'를 기준으로 과세하도록 하고 있고, 시가 산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예를 들어, 거래량이 하나도 없거나 너무 오래 전에 거래가 있은 경우)에는 회계장부 등을 활용하여 보충적으로 평가하여 이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문제는 오늘 저희 참여연대가 문제삼기 이전에 이미 한차례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다툼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참여연대가 이재용씨등의 삼성SDS 신주인수권행사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는 삼일회계법인의 의견을 바탕으로 저희들의 신청을 기각했던 것입니다. 당시 판결의 요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가 57,000원대에서 거래된 사실은 인정하지만, 거래량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이를 시가로 판단할 수 없고, 삼일회계법인의 의견을 따라 7,150원의 취득가격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증여'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따라서, 신청을 기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저희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우선 당시 삼성 SDS 주식의 거래는 매우 활발했고(이는 매일경제신문 등 당시 언론보도에서도 확인된 바입니다.), 설령 활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비상장주식의 거래가 특수관계인들의 담합에 의해서가 아니었다면, 그 거래가격을 시가로 본다는 대법원과 국세심판원의 판례들을 저희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개월 동안 248주의 거래만 있었음에도, 이 거래가격을 '시가'로 본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거래량이 적었다는 이유로 거래가격을 시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법원의 판례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희들의 이러한 주장이 재판판결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국세청의 과세와 앞서 언급한 재판과는 별개의 것이므로 오히려 저희들은, 이번에 참여연대가 제시한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국세청이 엄정하게 탈루된 증여세에 대해 추징을 해 줄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희 참여연대는 국세청에 정식으로, 삼성그룹 이재용씨 외 5명이 증여세를 탈세했다는 제보를 하게 된 것이고, 이를 계산해본다면 아래와 같이 무려 700억원 이상의 증여세를 추징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취득할 주식수시가인수가액시세차익납부할증여세
이재용656,21538,388,577,5004,691,937,25033,696,640,25014,753,488,113
이부진476,00727,850,504,5003,403,950,55024,446,553,95010,590,949,278
이서현476,00727,850,504,5003,403,950,55024,446,553,95010,590,949,278
이윤형476,00727,850,504,5003,403,950,55024,446,553,95010,590,949,278
이학수755,93444,222,139,0005,404,928,10038,817,210,90017,057,744,905
김인주376,35822,016,943,0002,690,959,70019,325,983,3008,286,692,485
3,216,738188,179,173,00022,999,676,700165,179,496,30071,870,773,335


[표 1] 이재용 외 5인의 시세차익 및 납부할 증여세(99년 2월 18일 거래기준가인 58,500원으로 계산할 경우)

그리고, 비단 이 문제만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의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 이재용씨가 이번에 문제가 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이외에 삼성SDS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그 자금을 어디서 동원했는지, 적정한 가격으로 취득했는지 이번 국세청의 주식이동상황조사과정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고, 주가조작사건까지 일으켰던 현대그룹의 경우에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정도경영'을 내걸고 있는 LG 역시, 대주주의 비상장주식을 시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 주어 이들의 자본이득을 도왔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낸 것으로 알려진 SK의 경영권 세습과정조차도, 그것이 결코 솔직하고 완전한 납세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씁쓸한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대통령님,

요즘 언론지면에선, 연일 국세청의 재벌 세무조사에 관한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이를 대통령님의 '레임덕 방지'를 위한 재벌길들이기에 불과하며, 더 이상 이런 방식의 '동원형' 길들이기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신(新) 세풍'이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모든 논의가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니, 사실이 아니어야 합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당연한 것이고, 변칙적인 증여나 상속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이러한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조금 덜 내고 큰 부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재벌'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그들은 이미 단순한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봉건적 재벌가계가 21세기를 경영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대통령님,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 특히,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재벌가의 변칙적 증여/상속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삼성의 3세 승계과정은 모든 재벌그룹의 교과서로 꼽힐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국세청이 또다시 '겁만 주는 종이호랑이' 노릇만 할 지, 아니면 진정 조세개혁과 재벌개혁에 한몫을 톡톡히 해낼지를, 이제 저희들이 감시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저 잘 해주기만 바랄 뿐'이라는 소극적 자세는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거보다 더욱 어둡기 때문입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간사 홍일표
2000/04/27 00:00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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