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재건축은 바로 온갖 부패의 온상이며 복마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전문 브로커들을 앞세워 ○○평짜리 아파트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허황된 유혹으로 평범한 시민들을 재건축이라는 복마전으로 끌어내고 계속된 추가공사비 요구,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합집행부를 매수하거나 일방적인 공사중지, 나아가 입주 단계에서 "열쇠를 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등 시공사의 횡포와 재건축조합의 비리로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재건축 과정에서 새 아파트를 장만해보겠다는 소박한 기대는 무너지고 추가공사비 부담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새 아파트에는 입주조차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입니까?

문제는 재건축 사업의 준비단계부터 시작됩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재건축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드문 경우여서 건설회사들이 재건축사업을 할 만한 곳을 먼저 물색하고, 전문가를 투입합니다. 전문가는 몇 평짜리 아파트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말만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며 재건축사업에 동의하도록 하고 드디어 재건축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전문가는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이 되기도 하고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사업시행권을 위임받은 시행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재건축사업에 대해 어떠한 교육이나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재건축 사업에 뛰어 듭니다. 조합간부를 어떻게 선임해야 하는지, 조합의 정관은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시행사와의 계약은 어떻게 체결되고, 이후에 청산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 채 오직 몇 평짜리 아파트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달콤한 유혹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재건축조합의 임원은 밀실에서 선출되고, 그 안에는 재건축 사업의 이권에 흑심을 품은 사람들도 끼어들게 되고, 조합정관도 비민주적으로 만들어져 이후 조합임원의 전횡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때부터 시행사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는데 우선 조합장과 임원들을 매수하여 이후 건축과정에서 조합원들 몰래 추가분담금에 관해 시행사에게 유리한 약정을 하도록 합니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추가분담금을 요구하는데 추가분담금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재건축 사업을 계속 할 수 없다며 공사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기도 하고, 조합장이 도장을 찍었으니까 적법하다는 주장도 합니다. 조합원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분담금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한 시행사는 아파트 건설에 대한 대가로 상가 분양권을 넘겨받기로 하고는 그 상가를 애초의 약속보다 턱없이 크게 지어서 분양하는 것으로 이득을 챙기는데 이를 위해 설계변경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과의 밀착은 또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조합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게 전개됩니다. 조합장과 임원들이 시공사의 매수되거나 밀실에서 합의서를 써준 사실을 알게 된 후 들고 일어나 소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임시총회소집요구 등 온갖 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만 법적 절차는 왜 그리 까다롭고 더딘지, 대개는 소송을 하다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설사 천신만고 끝에 조합장을 불신임하고 새로운 조합장을 선출해도 이미 건설회사에 매수된 공무원은 이리저리 트집을 잡으면서 새로운 조합장의 신고를 받아주지 않고 미루기만 합니다. 이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새 조합장은 어느새 시행사에게 다시 매수되고 이런 일들을 겪으며 도시공동체는 철저히 붕괴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란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주민들 사이의 반목과 불신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시행사와 벌이는 주민의 힘겨운 싸움의 마지막 고비는 입주시점입니다. 시행사는 입주시기가 임박하면 조합원들이 개별적으로 납입해야할 추가분담금 청구서, 분양계약서,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각서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입주시키지 않겠다고 주민을 협박합니다. 시행사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주민들은 도장과 요구하는 돈을 모두 내주고 입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재건축 사업의 실상입니다. 집 한채가 재산의 전부인 서민들이 새집에 살아보려고 하는, 조금 더 큰 집을 가져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에서 시작한 재건축은 이렇게 시행사의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횡포와 재건축조합의 각종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지고 멍들고 맙니다.

지금껏 재건축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조합내부의 분쟁이나 시공사와 조합의 사적 분쟁으로만 보아 행정기관도 법도 주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모른 척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재건축 사업은 수천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의 경향을 띠고 있어 그 피해규모도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는데다 도시서민들이 낡은 서민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재건축을 도시계획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제하고 조합원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재건축 추진과정에서 추가부담금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부담금 인상은 반드시 조합원 총회의 동의를 받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재개발의 경우, 조합원 총회를 통하여 관리처분계획을 승인하도록 되어 있으나 재건축의 경우에는 명문 규정이 없어 아예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거나 대의원대회나 운영위원회 등 소수의 간부들 사이에서 추가부담금 인상을 결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리가 싹 틀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공사의 일방적 공사중단에 대해 재건축조합이 지체상금과 기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재건축 표준계약서에 명시하고 재건축 공사도급계약 체결시 행정지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재건축도 재개발과 같이 책 한권이 될 정도로 자세히 공사비용내역과 일반분양을 통하여 얻게 될 수익의 내용을 자세히 밝히어 추가부담금 인상을 둘러싼 분쟁을 예방하게 하는 등 행정감독을 철저히 하고, 재건축 조합집행부와 조합원들에 대한 감독관청의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건설회사가 공사비를 체계적으로 인상해 나가기 위해 벌이는 각종 공작도 문제지만 조합원들의 재건축에 대한 이해부족이 분쟁의 중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조합집행부와 조합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행정기관의 전문컨설팅제도가 필요합니다. 한편 무자격한 컨설팅 회사가 대기업 건설회사를 시공사로 끼고 마치 대기업 건설회사가 일반분양을 하는 것처럼 하여 조합원을 모집한 후 컨설팅회사 직원이 지역주택조합 조합장이 되어 전횡을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전문컨설팅 업체의 자격요건을 엄격히 하고 전문컨설턴트들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하도록 할 필요도 있습니다.

셋째, 민주적인 조합운영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는 민법 제70조에 따라 조합원 1/5 이상이 조합집행부 불신임과 새로운 집행부 구성에 관한 건으로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하여 조합장이 이를 거부할 경우 법원에 임시총회소집신청을 하는 형태를 취해야 하나 시간이 많이 들고 비용이 많이 들므로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경우 감독관청이 소집권자를 지명하여 임시총회를 열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울러 비리 조합집행부가 비리사실을 숨기기 위해 문서를 은닉하는 것에 대비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서류와 통장 등을 명시하고 이를 15일 이내에 이전하지 않고 은닉하는 경우에는 형법상의 문서은닉죄와 별도로 가중처벌할 수 있는 규정과, 조합원의 장부열람권 및 정보공개청구권의 보장하는 규정을 신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건축 비리 수사를 위한 전담 수사부 구성을 촉구합니다. 재건축 비리는 고소인들이 다수이고 피고소인들도 집행부와 건설회사 관계자 등 다수이며 참고인들도 많은 내용이어서 한달에 수백건씩의 일반사건을 다루고 있는 경찰서 조사계나 검찰의 일반형사부에서는 이러한 방대한 수사를 할 여력이 없게 됩니다. 또한, 재건축관련 법령이 집합건물에관한법률, 주택건설촉진법 등 방대하고 재건축의 추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없이는 수사가 어려워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입니다. 수사여력과 전문성이 결여된 수사기관은 재건축과 관련되 고소가 접수되어 시간을 끌다가 무혐의 처분하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한 점에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서울의 경우에는 검찰과 경찰에 전문 수사부를 신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여연대 아파트공동체연구소 간사 한재연
2000/04/27 00:00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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