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7일자 주요 일간지에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뉴스 하나가 실려 주목을 끌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가축복제연구센터] 개소식을 갖고 2008년까지 우량 한우를 복제한 소 10만 마리를 전국에 보급하겠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에 17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복제된 가축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위한 농림부의 [가축복제연구센터]를 폐쇄하고 그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왜냐면 농림부의 이번 계획은 생명윤리와 식품안전, 생물다양성 훼손, 축산농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사전평가와 대책 없이 복제가축의 연구와 대량보급을 추진하는 무책임한 처사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금 전국의 축산농가를 울리고 있는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들에 복제가축은 유전적 동일성 때문에 더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사전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들은 또 있습니다. 1998년에는 정보화사회에 대한 장미빛 선전과 함께 행정자치부에서 추진하였던 전자주민카드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한 시민사회단체와 수많은 시민들의 저항 앞에서 철회되었습니다. 이 역시도 사전에 전자주민카드가 내포한 사회적, 법적, 윤리적 문제들이 평가되고 이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었더라면 행정·정책의 혼선, 예산 낭비와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월은 '과학의 달'입니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천년 과학기술과 함께"란 구호 아래 사이버 과학행사 및 지역과학축전 등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인식을 제고하려는 목적의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예정으로 있다 합니다. 이는 과학기술문화의 창달을 통해 과학기술입국 실현을 앞당김으로써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서 크게 아쉬운 점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일방적으로 찬양할 뿐 그것이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여러 위험과 사회적 문제점에 대하여서는 어떤 언급이나 대책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 역시 무한경쟁시대의 살 길은 기술혁신 뿐이라고 입을 모아 외치지만, 무절제한 기술혁신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리고 그것이 삶을 지배할수록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위험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생명복제기술이나 전자주민카드 이외에, 예컨대 핵발전소, 쓰레기소각장, 경부고속철도, 시화호와 새만금 댐 건설 등이 초래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도 사회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기술의 무모한 개발이 내포한 문제점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뿐입니까?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대구 지하철공사장 사고와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건, 괌행 대한항공 비행기 추락사건 등도 역시 따지고 보면 우리가 믿었던 거대 기술시스템이 실은 얼마나 위험하고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나라의 여론에서 이러한 사건들은 “인재(人災)냐 아니냐”등 과학기술의 이용구조에서의 잘못으로만 부각될 뿐, 정작 현존 과학기술의 성격과 그 개발구조가 지닌 문제점으로 제기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은 좋고 선한 것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선진국이 되는 관건이므로 전폭 지지해야 한다는 과학기술지상주의가 우리 나라에선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전자주민카드와 생명공학도 이용만 잘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그러한 기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위험에 대한 우려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지배적인 것은 우리 나라에서 기술시스템의 도입이 그 동안 시민들의 진지한 여론 형성이나 동의 과정 없이 정부·기업·과학부문 엘리트간의 폐쇄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시민은 단지 이들이 결정한 정책의 홍보 대상이거나 기술시스템의 수동적 소비자 역할을 해왔을 뿐입니다. 미래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있어 사실상 법이나 정치제도 못지 않게 중요한 과학기술에서 시민은 무력하고 소외된 존재였던 것입니다.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과학연구의 자유와 과학기술의 산업화·군사화를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반해, 과학기술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공공책임성(public accountability)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시민의 감시나 의사반영이 불필요한 전문가의 특수영역으로 신비화 되어왔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은 다른 정책과는 달리 아직도 민주주의보다는 종래의 엘리트적·관료주의적 의사결정이 마치 정당하고 최선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의 참여기회가 박탈되다보니 시장경쟁력이나 군사력보다 복지, 환경, 안전, 윤리 등 삶의 질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시민의 가치관과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과학기술이 기존 사회구조에 의해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과학연구의 자유나 그 상업적·군사적 활용은 절대적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정보기술·생명공학·핵기술처럼 사회적 영향이 크고 시민의 세금이 중요한 후원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의 경우에 시민참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마땅히 보장되고 확대되어야 할 시민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최근 서구에서 발전되고 있는‘기술적 시민권(Technological Citizenship) 개념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표현한다고 보겠습니다. 이러한 시민권의 확보는 엘리트에 의한 통제로부터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로 과학기술의 사회적 형성과정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이 되어, 과학기술의 탈신비화와 민주적 변화를 촉진해줄 것입니다. 시민참여는 또한 잘못된 과학기술투자로 인한 환경적 비용 및 사회적 갈등의 최소화를 기할 수 있게 하고, 산업화·군사화가 초래한 '위험사회'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성찰성을 높임으로써 보다 안전하고 인간적인 미래를 열어가게 하는 토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과학기술의 민주화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서구 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시민참여는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서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ment),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과학상점(Science Shop), 참여설계(Participatory Design) 및 신기술협약(New Technology Agreement)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흔히 정책결정가들과 일부 과학기술자들은 시민이 과학기술에 대해 본래 무관심하고 무능하다고 속단하지만 이들 제도의 성공적 운영이 그러한 사실을 부정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시민참여가 비효율성을 낳는다고 꺼리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 핵폐기물 처리장, 경부고속철도 등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오히려 사전에 시민의 평가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이 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경험을 통해 과학기술은 시민에게 친근한 것이 되고 전문가와 비전문가간의 거리가 좁혀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 토론의 활성화로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시민문화의 성숙이 촉진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시민참여는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허황된 기대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의 시민참여제도로서 널리 알려지고 국제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되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최한 1998년의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한 합의회의와 1999년의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가 그것입니다. 두 번의 합의회의의 개최는 우리 나라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의 시민참여가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지난 해 6월말부터 7월초까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유네스코와 국제과학협회 공동주최로 '세계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가 열려 21세기 과학의 미래와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세계 190여개국의 대표들이 논하였습니다. 여기서 각국의 참석자들은 과학과 윤리의 조화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였고, 이를 위해 과학자와 시민의 대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연설에서도 앞으로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경제성장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그 목표를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이러한 정책목표의 전환은 세계의 흐름과도 같이 하는 바람직한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을 시민참여를 통해 과감하게 민주화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이른바 '기술적 시민권'을 보장함으로써 일반시민의 목소리를 과학기술정책에 담아야 과학기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고, 과학기술이 바람직하게 발전해야 비로소 우리 후손이 지속가능한 미래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절실한 역할은 과학기술의 이점을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홍보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기술적 시민권'을 국민에게 보장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학기술입국'이요, '지식기반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2000년 4월6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소장 김환석
2000/04/06 00:00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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