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국가채무에 관한 논쟁이 매우 뜨겁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에 대해 단호하고도 명확하게 국가채무논쟁이 왜곡되고 있음을 밝히셨으며, 시민단체와 사회복지계 인사들은 이러한 대통령님의 입장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사실 4.13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정책공약이 무성하게 제시되는 가운데 한나라당에 의해 먼저 제기된 국가채무 문제는 국가채무의 정확한 규모가 얼마이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리고 이를 시급히 해소하기 위하여 어떤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는 지 등에 대하여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전개되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모든 시민들은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중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기대와는 달리, 무분별한 수치의 나열과 일반적인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시민들을 혼동 속에 몰아 넣고 있습니다. 더욱이 불행하게도 국채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 가운데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왜곡이 개재되어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가채무의 규모가 매우 크고 그 대책이 시급하므로 추경예산의 편성을 불허하며, 나아가 사회복지 등에 대한 무모한 예산편성을 자제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채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사회복지지출과 연계하여 마치 복지부문의 지출이 국채를 조장한 듯, 향후 사회복지의 지출을 억제함으로써 국채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된다는 듯한 주장은 매우 경계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대통령님,

따지고 보면 시민의 입장에서는 현재 국채의 규모를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404조라고 보아야 하는 지, 아니면 정부와 국민회의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111조라고 보아야 하는 지의 문제는 분명 국채에 대한 정의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시작 전에 비하여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직접 채무는 50여조, 보증성 채무는 70여조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단기간내의 급증 현상과 그 규모는 결코 안이하게 대처할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빚의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한 것이며 오늘날의 경제회생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많은 시민들은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경제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국가채무를 변제하기 위한 우리 세대의 슬기로운 지혜가 모아져야 함은 매우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대통령님, 그러한 국가채무의 해소방안을 생각함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국채변제 제일주의'를 고수하며 정부의 예산증대가 요구되는 부문들을 무시하면서까지, 특히 사회복지관련 지출을 억제하여서 국채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발상임을 대통령께서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사회의 균형잡힌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사회에서 사회복지부문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수많은 사회문제의 실재(實在)를 부정함은 물론, 사회복지 자체의 역할과 의의를 왜곡하는 것인 동시에 나아가 향후 우리사회가 선진국형의 시민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복지부문의 확대발전을 무조건 지연시키는 데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폐단을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아시다시피, 이제까지의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예산지출은 국가채무의 급증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즉, 사회복지는 국채증가의 주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채의 변제와 관련하여 사회복지부문의 지출을 억제하자는 것은 매우 천박한 사회인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IMF의 경제위기에서 가장 고통받는 실업자와 최빈계층을 위해 지출한 10조원의 돈은 비록 일부 비효율적인 집행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의적절한 지출이었다고 인정됩니다. 국가가 그러한 사회적 위기 앞에서 과감한 지출을 선도하지 않았다면 이는 후에 역사의 비난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복지부문의 지출이 국채증대의 주요원인이라 주장되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님,

그렇다고 국채변제에 있어서 사회복지부문이 그렇게 주요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저희 시민들이 생각하기에 국채변제의 중요한 원칙은 국채의 급증을 가져온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그간 국가의 공적 자금 투입으로 경제회생이 이루어진 결과 가장 그 혜택을 많이 본 계층으로부터 우선적인 재원을 마련하여 갚아 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국민의 혈세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면, 이로부터 상대적으로 이득을 취한 계층이 국채변제의 재원을 마련하고 아직도 경제회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빈민계층과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간접세의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세계잉여금과 불용액 등 재정운영의 여유분 모두를 무조건적으로 국가채무 해소에 사용한다면 결국 가진 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빚잔치에 서민계층의 호주머니가 동원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며, 이는 결코 사회정의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균형재정확립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도 신중하게 재고되어야 한다고 보며, 부득이 이 법이 제정된다면 재원의 확보 측면에서 형평성이 파괴되지 않는 방향으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통령님,

결국 정치권에서 현재 국채의 심각성에 대하여 불필요한 과장이나 인위적인 축소없이 있는 그대로 나름대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되, 사회복지의 지출억제 등을 주장하기보다는 주식의 양도차익과세 등과 같은 사회정의에 부응하는 진정한 대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여야 할 것이 최선이라고 보며 이러한 방향에 대하여 대통령께서도 생각을 같이 하시리라 봅니다. 특히 현재 절대빈곤계층은 물론,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IMF 경제위기에서 맞은 실질생활의 추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실행 및 각종 사회복지급여 및 서비스를 통하여 이들의 고통을 완화해주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으므로 이는 국가채무 못지 않게 현재 우리사회의 급선무에 속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 미래세대에게 빚을 넘겨주지 말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빈곤 또한 미래세대에 상속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빈곤의 엄존은 그로부터 수많은 사회적 비용이 유발되고 이는 미래세대의 실제적 부담이 될 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그러진 사회상을 남겨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다시 한번 정치권의 국가채무 논쟁이 무분별하게 복지축소론과 연계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환기시켜 주시길 부탁드리며, 향후 국가채무의 해소와 생산적 복지의 추진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더욱 힘써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2000년 3월 23일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이태수
2000/03/23 00:00 2000/03/23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PSPD/trackback/219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