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변칙 상속ㆍ증여가 사회적 문제로 된 지 오래입니다. 변칙 상속ㆍ증여의 대명사가 된 삼성재벌의 경우에도 최근 몇 년간에 걸쳐서 비상장주식,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이용한 변칙증여 기법들을 개발하여 3세인 이재용씨에게 변칙적인 부의 이전을 해 왔습니다. 그 동안 변칙증여에 이용된 기업만 열거하더라도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에버랜드, 삼성데이타시스템(SDS) 등이 있고, 이 기업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기업들입니다.

삼성그룹에 속한 기업이 재벌총수와 그 일가족들의 개인기업이 아니라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동안 여러 차례 비판이 있었고 사회적 물의가 있었음에도, 그에 굴하지 않고 삼성재벌은 꿋꿋하게 변칙증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너희들이 지껄이더라도 나는 내 갈 길을 간다"는 식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여러 차례 세금도 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변칙적인 부의 세습을 막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재벌의 변칙증여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나 조치를 취한 적은 없습니다. 세법을 고쳤다고 하지만, 재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구멍이 숭숭 뚫린 세법에 걸릴 리가 없습니다.

이재용씨에 대한 변칙증여 과정에서 이재용씨가 낸 증여세는 겨우 16억여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증여세를 내고 이재용씨는 지금 수조원대의 자산가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해 두고 어떻게 조세형평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사태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대통령에게 변칙 상속ㆍ증여를 막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재벌의 변칙 상속, 증여를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참여연대는 법에 호소해서라도 이를 막아보려고 여러 차례 소송 등의 법적 수단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은 번번이 삼성재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법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법원과 검찰이 어떻게 재벌을 손대겠어?"라며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법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도 법원과 검찰은 삼성데이타시스템(SDS) 사건과 관련하여 삼성재벌에게 면죄부를 발행해 주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삼성데이타시스템은 작년 2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면서, 이재용씨를 비롯한 이건희씨의 자녀들에게 주당 7,150원의 가격에 삼성데이타시스템의 신주를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에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던 삼성데이타시스템의 가격은 주당 55,000원에 이르렀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거래가격이 55,000원에 달하던 주식을 재벌총수의 자녀들에게 그 1/7도 안되는 가격에 취득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입니다. 삼성데이타시스템 주식의 가치는 그 이후에도 계속 올라 지금은 주당 500,000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이재용씨는 또다시 손쉽게 무려 70배 정도의 불로소득을 올린 셈이 되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그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이재용씨에게 신주를 취득할 수 있게 해 준 삼성데이타시스템(주)의 임원들을 배임죄로 고발하고, 이재용씨에게 신주가 발행되지 않도록 신주발행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피고발인들을 소환조사하지도 않고 서면조사만을 한 채 무혐의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심문을 종결한 이후에 한달 보름 남짓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신주인수권행사일을 불과 몇 일 앞둔 시점에서 기각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결국 검찰과 법원이 삼성재벌의 변칙증여를 합리화시켜준 것입니다. 그리고 재벌들의 변칙증여에 대해 정당한 과세를 해야 할 국세청도 이와 같은 변칙증여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삼성재벌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재벌이 이번 삼성데이타시스템 사건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에 관한 규정입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보면 비상장주식의 평가는 시가평가를 원칙으로 하되,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위해 보충적으로 일정한 산식(자산가치와 3년간 가중평균 수익가치의 단순평균)에 의해 계산한 금액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보충적 평가방법으로 사용되는 산식에 따르면, 주식의 실제가치보다 낮은 금액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삼성측은 이러한 법상의 헛점을 이용하여 7,150원이라는 가격이 위와 같은 평가방법에 의한 가격이라고 주장하였고, 법원과 검찰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으로 비상장주식 평가의 원칙은 분명히 '시가평가'입니다. 그런데도 법원과 검찰은 세법에 대한 무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으로는 분명히 시가평가가 원칙이라는 것을 철저히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재용씨가 신주인수권을 취득할 당시에 삼성데이타시스템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55,000원 정도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주식거래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하더라도 3개월 전후에 거래가 있었던 경우는 그 거래 가액을 시가로 보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법을 잘 알아야 할 검찰과 법원은 그러한 세법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삼성재벌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법원과 검찰마저도 재벌의 변칙증여에 대해 무관심 내지는 방관으로 일관해도 좋은 것인지... 그리고 변칙증여를 막아야 할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규정이 오히려 재벌의 변칙증여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참여연대는 검찰의 무혐의처분에 대해 이미 항고를 해 둔 상태이고, 법원의 기각결정에 대해서도 불복절차를 밟아 나갈 것입니다.

재벌의 세부담 없는 변칙증여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재벌과 같은 대재산가들이 세금한푼 내지 않고 자식들에게 부를 이전시켜주는데, 어떻게 서민들과 중산층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능한 자손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재벌총수들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경영상의 난맥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탈법적인 부의 세습을 어떻게 방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미 삼성재벌의 변칙증여 문제는 이 사회에 최소한의 정의가 숨쉬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IMF위기가 고비를 넘겼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상태이고, 최저생계수준 이하에서 허덕이는 절대빈곤층의 숫자도 엄청난 수준입니다. 그리고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에 들어간 비용 때문에 국민들은 앞으로 상당한 세금을 부담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저지르고 있는 변칙증여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인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국세청은 이번 삼성데이타시스템 변칙증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고 증여세를 부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보다는 재벌일족의 이익에만 충실했던 삼성데이타시스템 임원들을 기소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재벌의 변칙증여를 오히려 합리화시켜 주고 있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규정들도 손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2000년 3월 2일
참여연대 조세팀 실행위원, 변호사 하승수
2000/03/02 00:00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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