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쓴 소리를 들으십니까

개혁통신 쓴소리 하나를 참여연대 간사로부터 강청받았을 때 저는 솔직히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쓴소리를 과연 대통령께서 읽으시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쓴소리일수록 참모들의 휴지통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하물며 그동안 치적을 평가받고 싶다는 대통령의 마음이 말씀을 통해 비춰나오는데, 측근들이 왜 쓴소리를 골라 읽으라고 올리겠습니까. 먼저 묻고 싶습니다.

요즈음 쓴소리를 매일 얼마나 듣습니까 ?

쓴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십니까?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개혁이 삽니다

민주주의자로서 저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고도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통령의 관심과 방향은 행정, 정치, 사회 전체의 풍향을 좌우하는 현실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무엇보다 인권대통령을 표방하셨습니다. 많은 인권의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앞서 있음을 저는 느낍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직접 작용하는 분에서는 이전보다 큰 진전이 있습니다.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의 여건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의문사법, 민주화운동관련법, 4.3특별법도 제정됩니다. 인권법과 국가보안법에 있어서도 적어도 대통령의 시각은 정부, 여당, 자민련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듯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난 곳에 개혁이 가시화됩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없습니다

지난 해 4월 대통령께서는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선언했습니다.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검찰을 바로 서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검찰을 청와대의 하수인이 아니라 청와대의 감시자로 만드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 역대 정권에 충성을 다해왔던 그 검찰을 이제는 정권 편이 아니라 정권의 감시자로 바꾸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을 여전히 정권의 하수인으로 이용했습니다. 최근 분명해진 바이지만,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검찰총장이 언제든 연락하고, 법무비서관의 구속을 앞두고 검찰간부들이 전전긍긍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오지 않았습니까. 과거 검찰의 행태를 비판했던 대통령께서는 과거검찰의 권력추종적 체질을 이용함으로써, 정권의 유지에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대통령께서는 '옷사건' 하나로 그 동안 피땀흘려 이룩한 경제.외교의 성과를 까먹었다고 허탈해 합니다. 사실 옷 몇 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수구세력들이 이 옷 몇 벌을 물고 늘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옷 몇 벌 문제로도 청와대에 도사린 검찰출신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올리고,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알려주고 했다면, 그보다 더한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었을 것입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 검찰총장의 말을 늘 듣는 입장에서, 외부로부터의 검찰개혁 주장은 대통령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봉쇄되었습니다. 전혀 개혁되지 않은 검찰을 이용한 분은 바로 대통령 자신입니다. 때문에 옷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대통령 자신에게 귀속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현재의 정권의 신뢰의 실추에 대한 책임은 검찰개혁을 거부한 대통령, 검찰측근의 말만 들은 대통령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냉엄히 자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법개혁추진위 안에도 검찰개혁은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대한 주문을 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보고되었듯이, 사개추 안에도 검찰개혁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사개추 자체가 법무부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의 검찰개혁안, 정부조직 경영진단에서 제시된 검찰개혁안은 사개추에서 일축되었을 뿐입니다. 다수결을 친검찰인사들로 구성했으니까요. 또 대통령께서 검찰개혁에 대한 아무 의지가 없음이 드러났으니까요.

측근이 싫어하는 개혁이 진짜 개혁입니다

이미 대통령 공약집에도 들어있는 검찰개혁.법무개혁안을 완강히 거부하다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법률을 했다는 측근들의 충고대로 특검제를 거부하다, 마지못해 특검제를 받아들였지만 그렇게 질질 끌려가면서 조금씩 양보하다가는 개혁의지만 의심받을 뿐입니다. 저는 먼저 권고하고 싶습니다.

검찰 및 법무개혁을 수세적으로가 아니라 공세적으로 실천하십시오.

측근들이 싫어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대통령이 앞서가야 합니다.

개혁의 충격효과가 큰 쟁점을 먼저 실천하십시오.

특검제, 인사청문회가 그 예입니다. 임기 초에 특검제와 인사청문회를 했다면 어찌 현재의 위기가 났겠습니까. 특검제를 가장 싫어할 세력은 권력핵심부 인사와 검찰입니다.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장관직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인사청문회가 달가울 리 있습니까. 때문에 측근들이 특검제와 인사청문회를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조직이익상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릅니다. 측근의 이익이 극대화될수록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나라의 명운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고독한 대통령은 측근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잇단 측근들의 낙마 앞에서, 진정한 개혁은 권부에 있는 주위사람들이 싫어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에 있음을 절감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한인섭
1999/12/30 00:00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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