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호 쓴소리] 후퇴하는 조세개혁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1999/12/09 00:00
대통령께서는 그 동안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을 여러 가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모습 중의 하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세정의'를 강조하신 점입니다.
사실, 조세제도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골치아프다'는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해왔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무관심은, 기득권층과 정치권이 야합하여 조세제도를 마음대로 농단하는 현실을 방치하였습니다. 올해 4월에 발생한 국민연금보험료파동은 우리나라의 조세제도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62%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입니다. 4인가족을 기준으로 볼 때, 월소득이 39만원 이하이어야 과세미달자에 해당됩니다. 이 통계수치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절대다수는 극빈층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소비수준은 봉급생활자의 소비수준을 능가합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월급쟁이가 봉이냐'는 봉급생활자의 불만은 계속 고조되어 왔으며, 이들의 불만은 국민연금보험료파동을 가져온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제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국민연금제도나 의료보험제도등과 같은 주요 복지정책이 정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통하여 대통령님께서는 조세정의확립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그 기념사를 듣고 우리는 대통령님께서 이제 현실의 심각성을 인식하셨다는 안도감과 함께 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느꼈던 안도감과 기대감이 지금은 실망감과 분노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조치는 과세특례자와 간이과세자의 폐지입니다. 자영업자의 탈세는 주로 매출누락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매출누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금계산서나 신용카드영수증 같은 정규영수증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금계산서의 수수의무가 없는 과세특례자 및 간이과세자가 자영업자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될 리 없고,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합니다.
올해 정부에서는 과세특례자는 없애고 간이과세자는 현행 과세특례자의 범위인 '연간매출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로 그 범위를 축소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비록 정부측 개정안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실효성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임을 전제로 우리는 정부측의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함을 계속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30일에 열린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정부측의 개정안을 '연간매출액이 4800만원 이상인 자로서 대통령이 정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자'로 수정하여 통과시켰습니다. 즉, 간이과세자의 기준금액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에서 '4800만원 이상인 자'로 바뀐 것입니다. '4800만원이상인 자'라 함은 매출액이 1억원이 될 수도 있고, 10억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명백히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되는 위헌조항입니다. 그 후, 법사위에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4800만원을 기준으로 하여 30% 범위내의 금액'으로 수정함으로써 사실상 6240만원의 상한선을 법에 명시하였습니다.
▲
여기서,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을 고려할 때 전혀 만족스러운 법개정이 아닙니다. 국세청에서 발표한 국세통계자료에 의하면, 자영업자중 연간매출액이 2400만원 - 4800만원인 자는 10만명 정도입니다. 법에 간이과세자의 기준을 4800만원미만으로 묶어놓는다는 것은 향후 국세청이 간이과세자의 수를 10만명으로 묶어 두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법개정이후 간이과세자가 10만명을 초과하여 급격히 증가한다면, 국세청에 대하여 '10만명 정도도 관리하지 못하여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엉망으로 만드냐'고 질타할 수 있으며, 이를 인식한 국세청은 간이과세자의 관리를 철저히 할 것입니다. 즉, 4800만원과 6240만원의 차이는 단지 1440만원이라는 금액차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자료에 의해 국세청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어느 정도 실효성 있는 행정을 펴고 있는지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느냐 못되느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측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영업자중 연간매출액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는 전체 자영업자의 40%에 달합니다. 이는 정부측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자영업자의 40%는 영세업자로서 보호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측 개정안을 '영세업자를 다 죽이는 악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세업자가 자영업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해야 합니다. 원칙이 소수이고 예외가 다수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분명 조세제도의 근본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보호하고 싶은 자영업자는 영세업자가 아니라, 그 동안 간이과세자의 우산 속에 숨어있던 고소득자영업자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자영업자들입니다. 봉급생활자나 영세업자는 선거운동을 할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측 개정안에 따르면, 간이과세자에 속한 고소득자영업자들은 일반과세자로 전환되므로 그 동안 누려왔던 탈세의 특혜를 상당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통하여 정부측 개정안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정부측 개정안을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들의 선거운동원인 고소득자영업자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그들의 표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몇몇 선거운동원의 표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전국에서 1100만 근로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지난 8월 16일에 정부는 재벌의 비상장주식을 통한 변칙증여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 방안은 직접적인 '증여'의 경우에만 적용될 뿐이어서 매매나 우회매매 등 기타 변칙적인 거래를 포착할 수가 없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비판과 함께 그 대안까지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 30일에 통과된 내용을 보면, 직접적인 증여외에 '매매'의 경우만을 추가시킨 것이어서 여전히 우회매매 등 여러 가지 변칙적인 거래를 통한 편법증여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또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상속증여세법의 관련조항을 보강하는 것 외에, 금융실명제의 정착을 위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조기시행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설득력도 없는 이유를 들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시행시기를 2001년으로 늦추었습니다. 재벌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의 문제에 있어서 그 동안 정부는 항상 뒷북만 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러한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까지 '뛰는 재벌, 기는 정부'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합니까?
또한,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전용면적이 50평이상이면서 취득가액이 6억원 이상인 고급주택에 대하여는 취득세를 중과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8월 16일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 법안이 철회되었습니다. 전용면적이 50평 이상이면 아파트분양면적으로 60평이 넘습니다. 60평이 넘으면서 6억원 이상인 아파트가 전국에 몇 채나 되겠습니까? 아마, 서울 강남요지의 일부 대형아파트와 고급빌라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내년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표계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정치권이 한줌도 안되는 부유층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분노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권내의 정치인 또는 고급관료중의 누군가가 이 법안의 피해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추측은 옷로비사건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현정권의 도덕성에 또 한번의 치명타가 될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지주회사의 배당소득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는 요건이 당초 정부측 개정안에 따르면 자회사지분의 '50%이상 소유'였는데, '30%이상 소유'로 완화되었습니다. 또한 대기업 대주주의 주식양도에 대한 누진세율 적용범위도 축소되었습니다.
연초에 정부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한다며 국민총리 직속으로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까지 구성해놓고 온갖 법석을 다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영자소득파악의 기초가 되는 제도마저 기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재벌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방지한다고 해놓고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같은 본질적인 제도보완은 뒤로 미룬채 껍데기뿐인 법조항만 만들었습니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며 이것저것 법안을 만들어놓고는 소리소문없이 없애거나 적용범위를 축소하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조세정의'의 무엇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세종대왕께서 남기신 위대한 업적중의 하나는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의 세제를 마련하신 일입니다.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은 세율등 과세요건을 법제화함으로써 세리(稅吏)들의 재량권에 한계를 준 것입니다. 당시 기득권층이던 고급관료와 세리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을 것임은 충분히 예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강력히 추진하여 농민들의 세부담을 줄이면서도 국가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와 그 후 조선이 번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조선후기에 삼정문란등으로 세제세정이 무너지자 곧 국력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세제세정이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이 결정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세제도는 나라의 흥망과 직결되는 중요한 제도이므로 눈앞에 보이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조세제도를 애국적인 견지에서 百年之大計로서 다루어주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가슴과 머리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대통령님뿐이기에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표는 진정한 개혁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시기 바랍니다.
1999년 12월 9일
사실, 조세제도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골치아프다'는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해왔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무관심은, 기득권층과 정치권이 야합하여 조세제도를 마음대로 농단하는 현실을 방치하였습니다. 올해 4월에 발생한 국민연금보험료파동은 우리나라의 조세제도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62%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입니다. 4인가족을 기준으로 볼 때, 월소득이 39만원 이하이어야 과세미달자에 해당됩니다. 이 통계수치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절대다수는 극빈층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소비수준은 봉급생활자의 소비수준을 능가합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월급쟁이가 봉이냐'는 봉급생활자의 불만은 계속 고조되어 왔으며, 이들의 불만은 국민연금보험료파동을 가져온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제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국민연금제도나 의료보험제도등과 같은 주요 복지정책이 정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통하여 대통령님께서는 조세정의확립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그 기념사를 듣고 우리는 대통령님께서 이제 현실의 심각성을 인식하셨다는 안도감과 함께 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느꼈던 안도감과 기대감이 지금은 실망감과 분노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조치는 과세특례자와 간이과세자의 폐지입니다. 자영업자의 탈세는 주로 매출누락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매출누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금계산서나 신용카드영수증 같은 정규영수증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금계산서의 수수의무가 없는 과세특례자 및 간이과세자가 자영업자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될 리 없고,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합니다.
올해 정부에서는 과세특례자는 없애고 간이과세자는 현행 과세특례자의 범위인 '연간매출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로 그 범위를 축소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비록 정부측 개정안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실효성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임을 전제로 우리는 정부측의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함을 계속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30일에 열린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정부측의 개정안을 '연간매출액이 4800만원 이상인 자로서 대통령이 정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자'로 수정하여 통과시켰습니다. 즉, 간이과세자의 기준금액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에서 '4800만원 이상인 자'로 바뀐 것입니다. '4800만원이상인 자'라 함은 매출액이 1억원이 될 수도 있고, 10억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명백히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되는 위헌조항입니다. 그 후, 법사위에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4800만원을 기준으로 하여 30% 범위내의 금액'으로 수정함으로써 사실상 6240만원의 상한선을 법에 명시하였습니다.
▲
여기서,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을 고려할 때 전혀 만족스러운 법개정이 아닙니다. 국세청에서 발표한 국세통계자료에 의하면, 자영업자중 연간매출액이 2400만원 - 4800만원인 자는 10만명 정도입니다. 법에 간이과세자의 기준을 4800만원미만으로 묶어놓는다는 것은 향후 국세청이 간이과세자의 수를 10만명으로 묶어 두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법개정이후 간이과세자가 10만명을 초과하여 급격히 증가한다면, 국세청에 대하여 '10만명 정도도 관리하지 못하여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엉망으로 만드냐'고 질타할 수 있으며, 이를 인식한 국세청은 간이과세자의 관리를 철저히 할 것입니다. 즉, 4800만원과 6240만원의 차이는 단지 1440만원이라는 금액차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자료에 의해 국세청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어느 정도 실효성 있는 행정을 펴고 있는지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느냐 못되느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측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영업자중 연간매출액이 4800만원에 미달하는 자는 전체 자영업자의 40%에 달합니다. 이는 정부측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자영업자의 40%는 영세업자로서 보호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측 개정안을 '영세업자를 다 죽이는 악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세업자가 자영업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해야 합니다. 원칙이 소수이고 예외가 다수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분명 조세제도의 근본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보호하고 싶은 자영업자는 영세업자가 아니라, 그 동안 간이과세자의 우산 속에 숨어있던 고소득자영업자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자영업자들입니다. 봉급생활자나 영세업자는 선거운동을 할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측 개정안에 따르면, 간이과세자에 속한 고소득자영업자들은 일반과세자로 전환되므로 그 동안 누려왔던 탈세의 특혜를 상당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통하여 정부측 개정안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정부측 개정안을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들의 선거운동원인 고소득자영업자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그들의 표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몇몇 선거운동원의 표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전국에서 1100만 근로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지난 8월 16일에 정부는 재벌의 비상장주식을 통한 변칙증여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 방안은 직접적인 '증여'의 경우에만 적용될 뿐이어서 매매나 우회매매 등 기타 변칙적인 거래를 포착할 수가 없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비판과 함께 그 대안까지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 30일에 통과된 내용을 보면, 직접적인 증여외에 '매매'의 경우만을 추가시킨 것이어서 여전히 우회매매 등 여러 가지 변칙적인 거래를 통한 편법증여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또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상속증여세법의 관련조항을 보강하는 것 외에, 금융실명제의 정착을 위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조기시행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설득력도 없는 이유를 들어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시행시기를 2001년으로 늦추었습니다. 재벌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의 문제에 있어서 그 동안 정부는 항상 뒷북만 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러한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까지 '뛰는 재벌, 기는 정부'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합니까?
또한,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전용면적이 50평이상이면서 취득가액이 6억원 이상인 고급주택에 대하여는 취득세를 중과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8월 16일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 법안이 철회되었습니다. 전용면적이 50평 이상이면 아파트분양면적으로 60평이 넘습니다. 60평이 넘으면서 6억원 이상인 아파트가 전국에 몇 채나 되겠습니까? 아마, 서울 강남요지의 일부 대형아파트와 고급빌라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내년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표계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정치권이 한줌도 안되는 부유층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분노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권내의 정치인 또는 고급관료중의 누군가가 이 법안의 피해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추측은 옷로비사건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현정권의 도덕성에 또 한번의 치명타가 될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지주회사의 배당소득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는 요건이 당초 정부측 개정안에 따르면 자회사지분의 '50%이상 소유'였는데, '30%이상 소유'로 완화되었습니다. 또한 대기업 대주주의 주식양도에 대한 누진세율 적용범위도 축소되었습니다.
연초에 정부는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한다며 국민총리 직속으로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까지 구성해놓고 온갖 법석을 다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영자소득파악의 기초가 되는 제도마저 기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재벌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방지한다고 해놓고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같은 본질적인 제도보완은 뒤로 미룬채 껍데기뿐인 법조항만 만들었습니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며 이것저것 법안을 만들어놓고는 소리소문없이 없애거나 적용범위를 축소하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조세정의'의 무엇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세종대왕께서 남기신 위대한 업적중의 하나는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의 세제를 마련하신 일입니다.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은 세율등 과세요건을 법제화함으로써 세리(稅吏)들의 재량권에 한계를 준 것입니다. 당시 기득권층이던 고급관료와 세리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을 것임은 충분히 예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강력히 추진하여 농민들의 세부담을 줄이면서도 국가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와 그 후 조선이 번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조선후기에 삼정문란등으로 세제세정이 무너지자 곧 국력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세제세정이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이 결정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세제도는 나라의 흥망과 직결되는 중요한 제도이므로 눈앞에 보이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조세제도를 애국적인 견지에서 百年之大計로서 다루어주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가슴과 머리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대통령님뿐이기에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표는 진정한 개혁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시기 바랍니다.
1999년 12월 9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