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해 시비논란이 오가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200억 원의 국고지원으로 건립한다는 것은 납세자의 귀한 세금이 국민적 합의없이 투입된다는데 문제가 있죠. 순수 민간단체의 재정력으로 건립한다면 사실 별 문제가 없지만 말입니다. 세금은 나라에 대한 백성의 도리로 당연히 바르게 내야죠. 그러나 나라는 그 귀한 세금으로 백성이 원하고 바라는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공급해 줄 때 백성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점에서 200억이라는 국민의 세금부담이 기념관에 쓰여져도 좋을 것인지 납세자의 국민적 합의 없이 국회라는 공권력으로 예산에 반영해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그런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납세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쯤은 경제논리에 밝은 대통령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재정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 재정이론(J.Buchanan)에서는 납세자의 선호를 무시한 정치가의 예산 지출은 재정착취(fiscal exploitation)라고 했습니다. 최근 본인의 여론조사결과 그런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납세자는 조사대상자 중 약 70%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백성을 다스리는 왕은 왕도를 지켜야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것은 바로 '천심은 민심이고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했으니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다스릴 때 하늘의 뜻을 좇게 됨을 가르쳐 주는 유가의 정치 철학이죠. 이를 근거로 했을 때,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추진 완수한다면 김대통령은 '재정착취자'라는 오명을 쓸까 두려워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현정부는 '국민의 정부'(of the people)라고 했는데 나아가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그리고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정부를 지향할 때 민주주의와 재정민주주의가 실현될것이며 그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기능을 주축으로 우뚝 서는 투명한 자유시민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대통령기념관 건립도 납세자의 합의에 의해서이지 특정 정치집단의 의지에 의해서라면 주권재민의 원칙은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의 정치적인 동기가 지상에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해소한다는 데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갈등은 사실상 지난 개발 년대에 독재정권의 정치적 이기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기에, 현재 그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면 권력의 안배와 분산에 있지 어느 한 과거의 지도자(개발 독재)의 기념관을 짓는다고 해서 그러한 갈등이 해소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핍박과 고통을 큰 관용으로 용서하여 화해정신으로 민족의 화합과 융합을 가져올 수 있다는데 기념관 건립의 취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개인적인 한과 고통이었으며 그것을 이 나라의 주인인 백성들, 납세자 국민에게 추가부담을 주어 화해에 동참하라는 일은 올바른 처사가 못되며 정치적 독선에 빠지게 되니 이를 유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이 나라 백성을 위해 훌륭한 일을 성취해 이를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이제 사후 20년이 지났는데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초근목피의 4000년 빈곤을 해소하고 고도 성장하여 오늘의 한국적 풍요를 가져 왔다는 것이죠. 흔히 '한강의 기적'을 독일의 전후 '라인강의 기적'과 비유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두 나라의 경제성취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 같아요. '라인강의 기적'은 시장기능을 떠받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soziale Marktwirtschaftsordnung)에 의해 이룩된 그래도 순리적이고 자발적(spontaneous)인 성취였는데 반해, '한강의 기적'은 개발독재에 의해 수출 지향적 정책수단을 힘으로 하여 시장기능을 외면한 인위적인 개발 위주의 정책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IMF라는 90년대의 역사상 최대 경제시련을 겪게 된 것도 실은 과거 개발 독재의 권위주의적 명령경제체제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까? 정경유착, 돈의 흐름을 권력 있는 자가 임의로 운용하는 관치 금융, 그에 따른 부정비리, 사회는 '총체적 비리 공화국'(ROTC, Rcpublic of Total Corruption)으로 전락되어 비리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경제사회 여건을 누구의 책임이라고 보시는지요? IMF 난국을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이 나라를 지키는 주체는 권력 없는 힘 없는 국민, 서민, 근로자, 대중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 고통(IMF)의 연원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명되며 이를 기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겠기에 말입니다(이와 관련한 학술적 연구서는 이필우저, 「개발독재와 재정환상」,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이밖에도 박정희 유신체제하에서 고통받고 희생된 사람들이 아직도 그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께서도 이에 포함되지만 이를 용서와 관용으로 화해할만큼 그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임을 이해하셔야 되겠지요. 마치 독재자를 추앙하는 사업을 국민의 혈세로 이룩하겠다는 우(禹)를 저질러 후세에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치가의 평가는 역사가 하지 말라도 다 잘 해줄겁니다. 역사를 외면한 인위적 평가는 삼가야 겠지요. 이에 그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사안을 건의하오니 넓고 큰 혜량으로 수용해주시길 이 나라 납세자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지상에도 누누이 거론되고 있듯이 '박정희기념관' 대신 '대통령역사자료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건립하는 사안입니다. 동 사업추진위원회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박정희 기념관은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또 못한 것이 있다면 역시 못한 대로 그 자료를 전시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박정희 대통령에게만 국한하여 그런 치적의 잘잘못을 가려 전시하느냐이며 기왕이면 모든 역대 대통령의 치적의 공과를 자료로 제시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70여개 시민·사회 단체는 '대통령역사자료관'을 건립할 것을 강력히 주장, 건의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미 예산에 책정된 200억 원 국고지원은 납세자에게 역대 대통령의 치적의 공과로부터 얻는 정보와 지식을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의 순 공공재적 편익으로 환원받아 이 나라의 정치적 양심을 깨닫게 될 것이며 이로써 국민의 정치적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한편, 새로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지도자도 그런 '대통령역사자료관'으로부터 얻는 교훈을 통해 자신의 재임기간에는 과거의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 내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도를 깨달아 대통령의 도리를 차질 없이 수행할 것이고 이 나라 이 민족의 발전과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에 이 나라 납세자의 이름으로 조세정의와 재정민주주의를 위해 건의 촉구하며 위의 내용을 이 나라 최고의 지도자로서 측은지심(測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헤아려 수용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조세정의를 위한 한국납세자 연합회장, 건국대 명예교수, 이필우
2000/07/27 00:00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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