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현재 전국에는 약 10만 정도의 말기 신장병환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틀에 하루씩 그것도 4-5시간을 꼬박 피를 걸러야 살아갈 수 있는 환자들입니다. 신장의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서 체내에 있는 독소나 노폐물, 수분 등을 제거할 수 없기에 인공신장기계를 통해 이러한 혈액 내의 노폐물을 걸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치료비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어도 본인부담액이 4-5만 원 가량이라서 한 달 평균 13번의 투석치료를 받노라면 50-80만원을 평생동안 병원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이러한 치료도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생명보존을 가능케 하며 정상 신장기능의 10%정도를 위한 치료법일 뿐입니다. 결국 신장으로 인하여 심장, 폐, 당뇨, 뼈, 신경 등에 합병증을 초래하여 잦은 입원과 응급사태를 야기하게 됩니다.

만성신부전에 걸리면 처음에는 가족들이 좋다는 약들을 다 구해다가 낫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불치병이며 평생 수 천만 원, 수 억을 가져야 겨우 생명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차츰차츰 가족관계가 소원해집니다. 그래도 그나마 가족의 희생으로 몇 년간 치료를 받으면 환자의 부모나 형제나 자녀들은 모두 빚쟁이가 되어 있습니다.

10만여 명의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한 번씩 아니 자주 죽음을 생각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구차하고 질긴 자신의 생명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이혼 등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면서까지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것만이 생존의 방편이 되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부산에서는 치료비 마련이 어려워 강도행위를 하다 체포된 만성신부전환자가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본 다른 신장병환자들은 차라리 교도소에 가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교도소에 가면 형을 집행하기 위해서라도 치료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의료보호를 받았기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말기신장병환자의 55%가량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과 함께 치료를 포기해야할 절망적인 위기에 놓여져있습니다.

금년 10월부터 시행되는 '기초생활보장법'에 앞서 수급권자 실태조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생활보호를 받던 환자들이 수급자에서 탈락될 예정입니다. 처음에는 치료비를 목적으로 배우자와 이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여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눈물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이 국가로부터도 버림을 당하게 된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신장병환자 가운데는 지난해 IMF 경제체제에서 한시적으로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된 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과 함께 이 제도마저 폐지되게 되어 더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의 경우 재산 및 소득이 4400만 원 이하에 월소득 23만 원 이하로서 그나마 당시의 현실에 맞춘 재산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앞으로 시행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 신청자격은 가구원수(1-6인기준)에 따라 32-120만원 이하의 소득과 2900-3400만원 이하의 재산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재산기준의 적용에 있어서도 기존 생활보호법에 의해서는 공시지가와 과표로 산정되었던 것이 앞으로는 부동산협회등을 통한 현시세 기준이라서 수급대상자의 범위는 오히려 축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있어도, 자식이 고등학교만을 졸업해도, 농지개량으로 개축한 시골집이 15평 이상만 되어도, 20평 이상의 전셋집에 살아도, 형제가 많아도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됩니다. 부양의무자의 범위 역시 비현실적인 점이 많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의 2촌이내의 직계혈족이나 동거 친족의 재산도 120%를 초과해서는 수급자가 되기 힘듭니다.

기존의 생활보호법 안에서도 과중한 의료비 부담으로 짖눌려 살아온 신장병환자들이 법적 이혼을 강행하고 결국 사실이혼과 가정파괴의 원인이 되어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되었는데 만약 현재의 기초생활보장법을 그대로 강행한다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하게 될 것입니다.

기초적인 대안의 마련없이 궁하게 내놓는 타질병과의 형평성 문제는 국민건강에 대한 방관적 태도로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정부에게 바라는 신장병환자의 의견은 첫째, 기초생활보장법을 전면 수정하여 생활보호법에 의한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 수준에 맞추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산상의 문제로 세대단위의 생활보장이 어렵다면 신장장애인만이라도 가족과 분리하여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저희 환자들에 관한 내용이 신문, 방송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신장병환자들의 요구사항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며 특히 지난 6월 8일 종묘공원에서 가졌던 전국신장병환자 총궐기대회를 통해 전국의 신장병환자와 그 가족들은 생명을 걸로 우리의 의견을 정부에 관철시키고자 결의를 다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한시적생활보호대상자 중 탈락이 예상되는 만성신부전환자 55%(약5500여명)의 차상위계층에 대해 본인부담금 351억원을 기획예산처에 신청해둔 상태입니다. 이들에게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예산도 중요하지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의료보험환자들에게 본인부담율을 10% 인하해 주는 내용을 적극 검토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이는 전국의 10만 신장병환자의 가정 파괴를 방지하고 기초생활보장을 통한 가족들의 사회참여를 확대하여 국가생산력을 향상시키며 건강한 사회분위기 조성으로 선진복지국가로서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님,

저희 신장병환자는 장기 기증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식을 받아도 영원하지 못하고 평생 병원 출입을 하며 살아야 하는 저희 환자들은 죽는 그 날까지 모질고 질긴 생명을 부지하느라고 치료비 마련을 위한 극도의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치료비 만이라도 국가에서 지원하여 가정파괴를 막을 수 있도록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신장병환자의 자녀들은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아픔을 여러분이라도 지나치지 말아주십시오.

신장병환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한 끼의 식사를 제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가정을 이루며 자신들이 가진 질병의 제약조건을 극복하며 살 권리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밟고 선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이 가진 적성과 재능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들이 가정을 이루며 사회 속에서 장애를 극복하며 삶터를 찾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회의 할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필요하겠다고 여겨져서 주는 선물보다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가 아니겠습니까? 대통령님과 정부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신장장애인협회 복지과장 전효신
2000/07/27 00:00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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