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호 시민제언] 보존해야 할 집 한 채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0/06/29 00:00
오늘은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까 합니다. 항상 정치와 관련된 떠들썩한 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만, 이번에는 골목에 파묻힌 어느 집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것까지 대통령께 호소하고 해결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굳이 하려는 이유는, 평범한 시민의 불편함과 안타까움 하나를 대통령께 전달하는 것이 국민과 청와대를 이어준다는 <개혁통신>의 창간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되고, 더 나아가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재산의 보존에 관한 정책의 결정과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여연대가 위치한 건물 바로 옆의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꺾어지기 전에 한옥 한 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집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인데, 종로구 안국동 8번지의 1 소재 윤보선가(尹潽善家)입니다.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이 소유하고 살았던 집이기에 그렇게 부릅니다.
윤보선가는 대지 1411평에 건평 250평의 구한말 전통 양반가옥으로, 1880년경 건축된 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부속건물이 지금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축사적으로는 우리나라 19세기 후반 전통 양반가옥 양식의 99칸이고, 서울의 북촌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당에 조성된 정원도 독특한 양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집은, 약 130여년 전 고종 시대 세도가 민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다가, 박영효를 거쳐 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부모에게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윤보선을 비롯, 백관수, 백남훈, 김도연, 허정, 장덕수, 김병로, 조병옥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민주정치의 꿈을 키우던 곳으로, 정치사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1950년대부터 약 20년간은 공화당에 대항한 야당의 실질적인 사무실 겸 회의실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이 집은 윤씨 일가가 5대에 걸쳐 90여년간 소유하고 생활의 거처로 삼아오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데다, 보기 드물게 일가가 실제 생활하면서 보존을 하고 있는 고옥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윤보선가는 197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민속자료라는 형식적 이름과는 관계없이, 윤보선 전 대통령의 후손들은 이 집을 정성껏 관리해 왔습니다. 조상의 유산이자 현재 자신들의 소유라는 사유재산권의 의미를 넘어서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유지하며 보존해야 할 사회적 유산이라는 공공적 책임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윤씨 가족들은, 그런 이유때문에 서울의 도심 부근이면서도 개수나 보수에 유념하고 개축을 통한 재산적 가치의 증식을 자제하였습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 결과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윤보선가에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소유자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발에만 급급하여 더 높은 가치를 고려하지 못한 서울시의 건축정책이 이런 집 한 채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존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9년 건축과 관련한 규제의 완화로, 윤보선가 담장에 잇대어 4층 건물이 신축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윤보선가에 '민속자료'라는 이름만 붙여 두고, 그 진정한 가치의 보전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맹목적이고 편의적인 행정의 단편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입니다. 이 급작스런 현상에 대해 당사자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첫째, '민속자료'란 현행 문화재보호법에서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의 하나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제20조에서는 이러한 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하려면 반드시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 제14조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장은 어떤 경위로 민속자료로 지정된 건물의 4층의 연립주택을 신축하도록 허가를 내 준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건물의 신축이 문화재 보존에 영향이 없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실질적인 평가에 따른 허가 행위 자체가 없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둘째, 문화재보호법 제74조는 문화재 주변의 경관도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주변의 경관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문화재청장은 건설공사 시행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건의 경우 문화재청장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직무유기라는 책임을 부담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필요한 조치를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셋째, 문화재보호법 제3조에 의하면 문화재청에 있는 문화재위원회는 국가지정문화재의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시설의 제거나 이전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장은 윤보선가 주변의 건물신축허가를 하면서 문화재위원회를 열 생각이나 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문화재를 소유하고 점용하고 있는 개인이나 일가족의 감정적인 민원이 결코 아닙니다. 문화재 관리를 위해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상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법률상의 절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문화재의 경관이나 보존이 함부로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을 어디에 어떻게 호소해야 할 지를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지금 신축중인 건물의 건축주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한 건축허가를 얻었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면 그것은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경위에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화재보호법은 무엇이며 문화재의 보존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문화재청장은 지금이라도 이 안국동의 집 한 채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빠를수록 서로의 피해는 줄어듭니다. 이 점을 대통령께서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것까지 대통령께 호소하고 해결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굳이 하려는 이유는, 평범한 시민의 불편함과 안타까움 하나를 대통령께 전달하는 것이 국민과 청와대를 이어준다는 <개혁통신>의 창간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되고, 더 나아가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재산의 보존에 관한 정책의 결정과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여연대가 위치한 건물 바로 옆의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꺾어지기 전에 한옥 한 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집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인데, 종로구 안국동 8번지의 1 소재 윤보선가(尹潽善家)입니다.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이 소유하고 살았던 집이기에 그렇게 부릅니다.
윤보선가는 대지 1411평에 건평 250평의 구한말 전통 양반가옥으로, 1880년경 건축된 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부속건물이 지금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축사적으로는 우리나라 19세기 후반 전통 양반가옥 양식의 99칸이고, 서울의 북촌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당에 조성된 정원도 독특한 양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집은, 약 130여년 전 고종 시대 세도가 민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다가, 박영효를 거쳐 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부모에게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윤보선을 비롯, 백관수, 백남훈, 김도연, 허정, 장덕수, 김병로, 조병옥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민주정치의 꿈을 키우던 곳으로, 정치사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1950년대부터 약 20년간은 공화당에 대항한 야당의 실질적인 사무실 겸 회의실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이 집은 윤씨 일가가 5대에 걸쳐 90여년간 소유하고 생활의 거처로 삼아오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데다, 보기 드물게 일가가 실제 생활하면서 보존을 하고 있는 고옥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윤보선가는 197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민속자료라는 형식적 이름과는 관계없이, 윤보선 전 대통령의 후손들은 이 집을 정성껏 관리해 왔습니다. 조상의 유산이자 현재 자신들의 소유라는 사유재산권의 의미를 넘어서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유지하며 보존해야 할 사회적 유산이라는 공공적 책임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윤씨 가족들은, 그런 이유때문에 서울의 도심 부근이면서도 개수나 보수에 유념하고 개축을 통한 재산적 가치의 증식을 자제하였습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 결과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윤보선가에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소유자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발에만 급급하여 더 높은 가치를 고려하지 못한 서울시의 건축정책이 이런 집 한 채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존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9년 건축과 관련한 규제의 완화로, 윤보선가 담장에 잇대어 4층 건물이 신축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윤보선가에 '민속자료'라는 이름만 붙여 두고, 그 진정한 가치의 보전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맹목적이고 편의적인 행정의 단편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입니다. 이 급작스런 현상에 대해 당사자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첫째, '민속자료'란 현행 문화재보호법에서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의 하나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제20조에서는 이러한 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하려면 반드시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 제14조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장은 어떤 경위로 민속자료로 지정된 건물의 4층의 연립주택을 신축하도록 허가를 내 준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건물의 신축이 문화재 보존에 영향이 없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실질적인 평가에 따른 허가 행위 자체가 없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둘째, 문화재보호법 제74조는 문화재 주변의 경관도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주변의 경관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문화재청장은 건설공사 시행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건의 경우 문화재청장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직무유기라는 책임을 부담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필요한 조치를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셋째, 문화재보호법 제3조에 의하면 문화재청에 있는 문화재위원회는 국가지정문화재의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시설의 제거나 이전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장은 윤보선가 주변의 건물신축허가를 하면서 문화재위원회를 열 생각이나 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문화재를 소유하고 점용하고 있는 개인이나 일가족의 감정적인 민원이 결코 아닙니다. 문화재 관리를 위해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상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법률상의 절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문화재의 경관이나 보존이 함부로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을 어디에 어떻게 호소해야 할 지를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지금 신축중인 건물의 건축주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한 건축허가를 얻었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면 그것은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경위에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화재보호법은 무엇이며 문화재의 보존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문화재청장은 지금이라도 이 안국동의 집 한 채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빠를수록 서로의 피해는 줄어듭니다. 이 점을 대통령께서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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