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규모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의 본격화 이후 사회정책의 핵심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근로사업과 민간의 다양한 실업극복운동에 힘입어 일정한 수의 일자리가 마련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업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심리적, 사회적 차원의 부적응 문제를 야기합니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경향이 더욱 심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수급자에 대해서 자활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생계급여가 제공되는 '조건부수급자'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구법에서는 아무리 생계가 막막해도 연령에 따른 인구학적 조건에 따라 젊은 층은 생계급여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건부수급자에 대한 자활급여의 신설은 청년실업자들에게 희망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활급여의 시행을 앞두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기대보다는 우려의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롭게 시행되는 자활사업은 저소득층의 빈곤완화를 위해 단순히 일 자리를 마련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서구에서는 국가복지의 대안으로까지 그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제3섹터형 자활사업의 지향을 가져야 합니다. 제3섹터형 자활사업의 추진은 국가복지의 한계와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서구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제3섹터 자활사업의 활성화로 대량실업에 대한 일정한 대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활사업의 활성화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강한 정책적 의지가 필요합니다. 자활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 국가의 전체 자활정책을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기구 마련과 자활사업을 위한 예산 편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편성 과정에서 보여지는 현재 정부당국의 의지 정도는 자활사업의 본격화를 이루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활사업의 핵심은 '사회적 고용창출'에 있습니다.

사회적 고용창출은 시장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일자리 창출을 의미합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조건부수급자의 경우, 정당한 경쟁을 통한 시장에서의 일자리 마련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에게 재차 시장을 통한 고용창출을 도모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며, 이들에게는 일종의 보호상품 및 보호시장, 사회적 협동조합 등 제3섹터형 고용창출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실증적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성공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공근로와 민간위탁 및 특별취로사업 중에서 무료간병인 파견사업, 태백 "생명의 숲"가꾸기 사업, 집수리 사업과 음식물 찌꺼기 재활용사업, 봉제업, 도시락배달업, 세탁업, 청소용역업, 건설업 분야 등등의 사례가 있습니다. 이것에 더하여 기존 시장에서 다루지 않던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합니다. 이상에서 제시한 일자리 창출의 전제는 '보호상품 및 보호시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며, 이에 대한 국가의 강한 정책지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책적 아젠다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활사업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창조적 파트너십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루어내기에 만만한 과제는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 관이 민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강제 조항이 아니라면 그 실현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사회복지분야에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경우 행정 당국의 재량권을 많이 부여하기보다는 시시콜콜한 사항까지도 법 조항에 넣어서 강제화해야 현실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자활사업 실천에는 반드시 (1) 지역 내 다양한 민간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활사업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2) 지역사회 차원의 자활복지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① 지역사회 내 저소득층의 자활 수요에 대한 정기적 조사와 분석, ②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활관련사업에 대한 현황과 미래 계획의 수립, 그리고 무엇보다 ③ 수요와 공급을 연결시켜 주는 자활전달체계의 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3섹터형 자활사업이 단순히 저소득층의 일자리 마련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삶의 질을 고양한다는 소박한 지향에서부터 우리 삶의 틀을 바꾸는 궁극적 지향까지 포괄하는 근본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면, 이상의 여러 과제들이 실현되기 위해서 국가 최고 정책결정자이신 대통령님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인재
2000/06/01 00:00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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