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오늘은 검찰의 형 집행 절차의 하나인 벌금 예납제도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벌금예납 제도란, 말 그대로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검찰이 벌금을 미리 받는 제도를 말합니다. 실무상으로는 검찰이 약식기소를 하는 단계에서 피의자들로부터 벌금을 예납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벌금예납 제도는 법무부령인 검찰징수사무규칙 제34조 제1항에 "검사는 형집행의 효율화와 납부의무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벌금ㆍ과료 또는 추징의 재판을 구할 피의자에게 그 벌금ㆍ과료 또는 추징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납할 것을 고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벌금 예납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시행상의 문제점 또한 적지 않습니다.

벌금예납제도의 위헌성

우선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기소단계에서 벌금을 납부하도록 고지하는 것은 유죄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합니다. 벌금도 형벌인 이상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야 집행이 가능한 것이 당연한 원칙입니다.

벌금예납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에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행 벌금예납 제도는 단지 법무부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상의 '기본권 제한의 법률유보원칙'에 어긋나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정당성에 의문이 가는 벌금예납

벌금예납은 제도 자체로 보아도 상식적이지 못한 측면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판결 확정 후에 납부하면 되는 벌금을 미리 받음으로써 국가는 이자상당액의 이득을 얻고, 반대로 납부자들은 이자상당액만큼 손해를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판결에 의해 벌금이 감액되어 환급해 주는 경우에도 이자 상당액을 반환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세나 지방세를 환급할 시 이자까지 반환하는 경우에 비추어 볼 때, 벌금에 대해서만 이자를 반환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피의자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구속된 피의자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하면서 예납 받는 경우입니다. 피의자로서는 당장의 인신구속으로부터 풀려나기 위해서는 예납에 응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경우 거의 100% 예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사실상 예납이 강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납강요 등 시행상의 문제점

벌금예납 제도는 운용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선 검찰직원들이 예납실적을 올리기 위해 피의자들에게 벌금예납을 사실상 강요하는 사례들입니다. 검찰징수사무규칙 제37조는 이 같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예납'을 금지하고 있지만, 대다수 피의자들의 진술은 이 같은 규정을 무색케 합니다. 또한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검찰에서 벌금예납 실적이 높은 검사실에 포상이 주어지고, 이를 위해 도표까지 작성하며 실적경쟁을 벌이던 풍경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 실태를 미루어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선 검찰청에서 사용하는 벌과금 예납고지서의 표현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일부 검찰청에서 사용하는 예납고지서를 입수하여 검토한 결과 몇월 몇일까지 벌금을 납부하라는 내용과 함께 굵은 글씨로 "벌금이 확정되어도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 전국에 지명수배되고 노역장 유치되니 기일엄수하여 납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예납은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에 불과하며, 예납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벌금형이 확정되었는데도 납부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법률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 국민들은 '예납고지서' 문구의 의미를, 예납을 하지 않으면 지명수배나 노역장유치라는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는 사실상 예납과는 무관한 위협적인 조항을 예납고지서에 넣음으로써 피의자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압박을 느껴 예납을 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벌금을 예납 받도록 하는 것은 검사나 검사실 직원들에게 불필요한 업무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검사의 기본업무는 수사입니다. 그런데 검사에게 벌금 예납에 대한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별도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집행부문의 인력보강 및 전문성 강화 등 다른 보완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대통령님,

이상의 문제점으로 볼 때, 벌금예납제도는 검찰의 징수편의를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능성을 용인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물론 벌금 예납제도가 없으면, 검찰의 징수사무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징수편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고, 헌법상의 기본원칙입니다.

최근 검찰은 벌금예납제는 오히려 피의자에게 더 편리한 제도라고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주장인 즉 '예납을 함으로써 재판에 참석하는 횟수를 줄이고, 이사 등으로 인해 형 확정 통지가 전달되지 않아 지명수배자가 되는 등의 불이익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그 동안 검찰의 예납강요 관행 등으로 인해 많은 피의자들이 겪은 심적 고통을 간단히 무시하는 원론에 불과한 것이며, 여전히 검찰의 징수편의를 위해 기존제도를 유지하려는 관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대통령님,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는 이처럼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예납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 전에라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벌금예납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길 기대 합니다.

2000년 5월 25일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부장 박원석
2000/05/23 00:00 2000/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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