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사법개혁과제 중 법조인의 관심과 저항이 가장 큰 것이 사법시험 선발 인원수입니다. 누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변호사 수의 문제에 관해서는 전법조인이 놀라울 정도의 일체감을 보입니다. 법조인은 예외없이 감축론을, 비법조인은 개인이건 단체이건 증원론을 외쳐 첨예한 대결양상을 연출합니다. 법조인들이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그토록 안간힘을 다해 고집하고 있고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과를 얻고 있는 감축론의 이유가 무엇인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첫째, 변호사 수가 늘어날 경우 사건수임을 위한 과다경쟁으로 인해 법조비리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조비리란 주로 브로커고용과 공무원들에 대한 소개료지급을 둘러싼 추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조계에 상처를 주었고 지금도 사회를 들끓게 하는 비리사건의 주인공들은 주로 과거 제한된 인원을 선발하던 시절에 배출된 변호사들입니다.

둘째,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하에서 과잉공급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수요공급론도 마찬가지의 논리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변호사를 채용하려 해도, 변호사 스스로 지나치게 높은 기대 수입으로 회피하거나 전해 내려온 잘못된 권위의식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셋째,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체제하의 국가적 경제불황을 이유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매년 100명씩 늘여 2000년대부터는 1000명을 선발하기로 하였으나, 지금은 증원 결정당시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재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국민소득의 감소나 경제불안이 변호사의 수와 무슨 관계에 있다는 말인지 얼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얄팍해져 의뢰사건의 수가 준다는 것인지 변호사수입의 감소가 우려된다는 것인지, 좀더 솔직한 주장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넷째, 변호사의 질이 저하된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변호사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공익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덧붙입니다. 수험생들의 수준문제는 법학교수들이 논박한 바가 많고, 법률기술의 소송기술의 문제는 연수원 이후의 교육과정이 해결합니다. 변호사법에는 첫머리에 장식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변호사가 제대로 공익활동을 수행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수가 늘어나면 굳이 모든 변호사에게 공익성을 요구할 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 사람은 돈을 벌면 되고, 공익활동을 할 사람은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일원화가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까?

다섯째, 현재 사법연수원의 수용규모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말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연수원은 증축하든지, 신축하든지, 아니면 사법연수제도를 법조3역이 분리하여 혁신하라는 얘기에는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여섯째, 법과대학의 고시학원화를 눈뜨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정당한 걱정입니다. 그러나 왜 법학교육 개혁에는 모두들 반대만 하고 나섰던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일곱째,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 사건 당 평균수임료가 증가해 국민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기발한 착상도 있습니다. 그 수식에서 변호사의 평균수입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못박아 놓았다. 법조인들은 한사코 변호사 수의 감축 아니면 최소한 동결을 주장하며, 결국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해서라고 둘러댑니다. 그런데 법조인을 제외한 국민들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대체 법조인들은 왜 국민들이 외면하는 이유를 거듭 고집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법조인들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정직성 때문에 스스로 지금의 법조파국과 위기를 자초했던 것입니다. 법조인들이 변호사 수의 증가를 원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를 한가지로 축약하라면, 그것은 돈 때문입니다. 일정한 고소득과 안정된 수입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증원에 반대하는 논리들은 따져보면 하나 하나가 그 욕심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은 법률가 세계의 전통적 내림이라는 문학가와 철학자들의 비아냥이,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시처럼 깔려있는 것입니다. 굳이 숨겨진 이유 하나를 더 대라면, 물론 제한된 수의 희소가치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계급적 명예욕입니다. 이러한 진짜 이유를 뒤로 둘러만 놓고 있으니 설득력없는 외침만 되풀이 될 뿐이지요.

지금까지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변호사 수의 증가를 불가능하게 하려면 다음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법시험이라는 제도적 관문을 통과하여 자격을 얻게되면 모든 변호사에게는 반드시 상당수준의 소득이 보장되어야만 하는가? 그 소득의 수준은 사회의 다른 계층의 사정변경에 가능한 관계없이 항상 안정적이어야만 하는가? 일단 변호사 개업이후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 안정된 지위는 변함없이 지속되어야만 하는가? 변호사 개인의 특별한 노력이나 소송기술의 발휘에 따른 수입의 격차는 상당한 수준 위에서만 존재해야 하는가?

변호사는 과거의 치열했던 수험생활의 보상으로 고용이 보장되어야 하는가?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의 실업은 이 사회의 가장 큰 인적 손실인가?

물론 예외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변호사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지만 법조계 전반의 분위기 속에 향수에 젖은 과거지향적 명예욕과 금욕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률서비스의 체계와 공급에 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요구를, 그것이 아무리 형식적인 변호사 수와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구태의연한 종래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무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의 변호사들의 처지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인간적인 연민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변호사들을 존중하거나 신뢰하거나 동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변호사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며 나약한 인간본연의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법조계 이외의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변호사들이 직시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변호사 수의 증감이 아니라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입니다.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고 난 후에 살길을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일 것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백미순 간사
1999/01/21 00:00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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