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은 신년벽두에 올해를 사법개혁 완결의 해로 선언하였습니다.

지난해 의정부 판사비리사건으로 치욕의 상처를 입은 데다, 임기 마지막해를 맞은 대법원장으로서는 심기일전의 의욕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법원부터 솔선수범하여 개혁을 마무리 짓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에는 더 이상 사법개혁이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검찰총장은 부정부패를 척결하여 21세기를 준비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검찰총장의 신년사에는 검찰권에 대한 신뢰회복의 바람이 내포된 것으로 선의의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법조계 수장들의 다짐이 있은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대전 법조비리사건이 모든 것을 무색케 하고 말았습니다. 성수대교 무너지자 삼풍백화점이 내려앉은 꼴이지요. 한편에서는 이종기 변호사 사건은 과거의 일이요, 장부에 거명된 판검사들은 단순소개의 관행일 뿐이라고 냉소적 변명을 내뱉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전사건이 과거의 사실에 불과한 것일까요? 법조계가 지금 이 사건에는 깨끗하며, 앞으로는 그런 추문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법조계 내부에서 오고가는 정리는 반드시 떳떳한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합니다. 적어도 법조계의 속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전사건은 충격적이거나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더러운 현상의 하나,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터져버린 사건에 무심한 채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법조계입니다. 오늘 신문에 또 다른 사건이 보도되지 않은 것은 그런 비행이 없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사무장 김현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법조계의 정화와 개혁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해마다 사건마다 이어지는 지겨운 이 '민주법치국가'의 질곡입니다. 그 때마다 비판의 매질은 거세었고 자성의 목소리는 높았으며 대안은 백출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머리로는 고안해 낼 새로운 제도가 없을 지경입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그토록 거듭하여 법조개혁을 외쳐대었건만 법원이나 검찰이나 변호사회는 국민의 신뢰회복은커녕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개혁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거나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런저런 개혁이 미봉책에 그치고 실패의 처참한 결과에 이르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바로 보아야 할 때입니다.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짚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개혁다운 개혁을 항상 좌초하게 만든 장애물이 바로 법조계 자신이란 사실입니다. 그 동안 하나의 개혁안이 구체화될 순간이면 그때마다 법조개혁은 법조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개혁의 수위를 끌어내리는 데 안간힘을 쓴 것이 변호사들이요 검사들이요 판사들이었습니다. 법학교육의 개편, 사법시험 합격자 수, 법조일원화, 특별검사제, 인사제도, 고위법관과 검찰관의 임명절차, 변호사 세제와 단체구성에 대한 입법,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 모든 것들이 어느 하나 법조계로부터 저항 받지 않은 것이 없고, 따라서 제대로 개혁된 것조차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법조개혁의 개요이자 전부입니다. 단기간의 수련으로 시험에 합격하고 자격을 획득하면 불안한 사회에서 독보적 안정과 균형을 확보한 철옹성에 들어설 수 있다고 믿는 소수 엘리트들의 힘을 현실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법조계 각자의 영역에 맞게 맡겨 둔 결과가, 비록 부분적인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모습입니다.

법조계의 진정한 개혁 없이는 새로운 시대의 개혁은 미완일 뿐입니다. 법조계의 개혁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개혁의 모든 것을 법조계에 맡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주권자이자 법률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의사를 기준으로 개혁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행은 과감하고 단호해야 합니다.

1999/01/14 00:00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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