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개혁을 위한 다섯가지 제언
국가적 경제위기와 함께 '국민의 정부' 출범이라는 두 개의 사건은 한국 사회복지의 전개 방향을 고려할 때 분명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IMF 체제하에서 '저성장·고실 업 구조'는 안정된 고용에서 나오는 가계 소득이나 기업복지를 통해 복지욕구를 해결 하던 민간부문 중심의 복지공급 메커니즘이 급속히 해체되어가고, 이에 비례하여 실 업에 의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계파탄, 가족의 해체 등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국가부문 중심의 복지공급메커니즘의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민의 정부' 출범은 다른 정당들보다 포괄적인 사회복지 공약을 내놓았고, 아울러 대통령 개인의 개혁적 성향과 소외 계층에 대한 높은 관심 등은 비록 상대적이지만 사회복지제도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갖도록 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98년 대량실업, 임금삭감, 기업복지 축소 등에 의한 경제, 사회적 위기와 그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대책 및 사회보장제도의 포괄적 확충 등 복지욕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해 신정부가 적절한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가 과거정권과 달리 사회복지 개혁에 있어서 낙제점을 면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현재 IMF 체제하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장기구로부터의 탈락자(실업자)들에 대한 기본 생계보장대책을 국가가 마련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안정과 경제 구조조정도 불가능해 짐으로써 사회통합을 기약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저성장·고실업 사회에서 점차 자유시장과 가족을 통한 민간부문 중심 복지공급체계가 약화되고 붕괴되는 충격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기약하는 소득, 의료, 주거, 교육, 고용, 사회복지서비스 등 6대 영역에서의 국민복지 기본선을 국가가 주된 책임을 지고, 보장하는 국가 사회복지제도의 일대 개혁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복지의 개혁을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가지 과제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정부지출 복지예산을 확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국적 소득조사의 실 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경제위기 하에서 이제 국민 1인당 GNP가 6,000불 수준으로 상당히 떨어졌지만 6,000불 수준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정부의 사회보장비 지출은 여전히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 남북 대치상황을 감안하여 현재 GDP의 1% 남짓한 수준의 사회보장비 지출을 1960년대의 OECD 평균인 7%까지는 못되더라도 5%(교육비 포함 10%) 까지는 끌어올릴 것을 강조하고자 하며, 이에 대한 정부의 예산반영 의지가 분명히 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방비 예산과 안기부 예산 등의 경직성 재원의 감소 및 관변단체 지원, SOC 설계 변경,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예산 낭비의 절감 등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또한, 철저한 자산 및 소득조사를 행하여 조세 형평과 사회보험 운영의 형평을 기해야 합니다. 불로소득 및 공급탄력성이 적은 부동산, 골동품, 귀금속 등의 비생필품 소비에 대한 복지세의 신설, 최저생활 이하 가구에 대한 복지세 상환제도의 도입 등의 과감한 세제개혁에 의한 적절한 재원확보가 필요합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금년 1-3월 상위 계층(20%)의 세금납부액 증가율은 3.6%에 그쳤지만, 나머지 4단계 분류 계층들은 11.7-17.6%가 늘었습니다. 4-6월에는 나머지 4단계 분류 계층들의 세금납부액이 17.2-25.3% 증가하였으나 소득이 늘어난 상위 20% 계층은 오히려 세금납부액이 1.8% 줄어들어 지난 1년간 조세의 형평성이 깡그리 무너졌음을 확인시켜줍니다.

둘째, '빈곤선' 설정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현재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구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에 대한 실체가 불분명한 상태에 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회안전망은 첫째, 프로그램이 전 국 민을 포괄하기 보다 특정한 집단을 표적화하며, 둘째, 제도화하여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라기 보다 경제구조 조정기에 한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며, 셋째, 소득 이전과 함께 공공근로 프로그램과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포함하며, 넷째, 예방적 프로그램이라기 보다 궁핍화가 발생한 이후에 이를 치료 혹은 완화하려는 대증적 사회 프로그램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화된 사회보장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조차도 조직화와 여론선도를 이끄는 보수 이해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압도할 수 있는 정부의 힘과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고용, 복지서비스 등 6대 기초보장을 중심으로 한 국민복지 기본선을 나타내는 빈곤선(poverty line)의 설정이 요구되며, 이를 토대로 전국민의 국민복지 기본선 보장이 확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국가의 책임원리가 강조되는 제도들 가운데 정부의 생활보호사업의 선정기준 및 급여수준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보험인 고용보험과 공공부조인 생활보호사업을 잘 연계시켜 적용해야 합니다. 고용보험제도에 모든 노동자들을 포함하되, 소정 급여일수를 초과한 저소득 실직자들에게는 자산조사를 실시하여 바로 생활보호대상자로 편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저소득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에 대한 생활안정대책을 현행 생활보호제도의 개선을 통해 확립해야 합니다.

세째, 4대 사회보험의 통합이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제도는 각각의 제도에서 독자적인 관리운영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효율성이 매우 낮아 급여지출대비 관리운영비(9.1%)는 OECD 국가의 평균(3.1%)에 비하여 무려 세배에 가깝게 비효율적입니다. 이러한 비효율적 운영은 지속적인 보험료의 증가요인이 되는 한편, 기업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유발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기존 4대 사회보험제도의 하부조직을 지역별로 두게 하는 가칭「사회보험 사무소」로 재조직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단계별 전략은

1단계:의료보험제도의 통합 (사업장 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관리의 통합),

2단계:중앙본부와 지방사무소간의 역할 재조정,

3단계:각 제도별 지방사무소의 위치 집중화,

4단계:유사업무 및 기능의 연계,

5단계:사회보험 일선관리기구의 통합

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4대 사회보험제도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가칭 「사회보험관리공단」을 설립하여 통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야 할 것입니다.

네째, 사회복지서비스의 활성화와 사회복지시설을 개선해야 합니다.

영유아, 아동 및 청소년, 장애인, 노인 및 여성 등에 대한 사회복지사업이 가족을 중시하는 재가복지 중심, 서비스의 충분성과 적절성, 전문화를 통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앞으로 이들 복지대상자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부의 전체 복지정책 목표와 관련하여 정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사회복지시설 수용인들에 대한 인권 보장적 차원에서 부족한 사회복지시설의 확충과 노후된 시설의 현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설직원의 노동조건은 장시간노동(직원의 61.2%가 1일 12시간이상 노동)과 저임금(초과수당이 거의 전무) 등 '중노동, 무복지'로 표현될만큼 열악한 수준으로 인해 이직율이 대단히 높으며, 전문인력의 보충이 어려운 실정이므로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노동조건 개선안이 시급히 나와야 합니다.

다섯째, 사회복지 행정체계를 새롭게 확립해야 합니다.

사회복지 행정체계가 미흡한 경우 복지서비스를 적재적소에 배분할 수 없으며, 충분한 정책의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종래의 중앙정부 중심의 전달체계는 지방정부 내지는 지역사회 중심으로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주민의 요구와 특성의 파악, 필요한 서비스의 개발, 지방의 재정자립도 기반 조성, 전문성의 확보 등을 할 수 있는 국가 전체적인 사회복지 행정체계의 확립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해 현재 일부 시·.군·구나 읍·면·동에 배치되어 있는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전지역에 배치해 나가고, 아울러 지역사회의 종합적인 사회복지 중개센터로서 민간복지기관과의 연계, 조정 등의 전문적인 서비스를 줄 수 있는 기존 동사무소와는 별도의 보건복지사무소(기존 보건소 활용)의 설치가 시급히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처럼 기존 동사무소와 연계되는 보건복지업무를 시·.군·구 단위로 확대 개편하여 보건복지부가 통괄하도록 해야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이 전쟁이나 공황, 경제위기와 같은 사회적 혼란기에 사회보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국민과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사회보장의 확충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정책적 변화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1998. 11. 26

조흥식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1998/11/26 00:00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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