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잘 쇠셨습니까? 해마다 돌아오는 한가위 명절이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느낌은 다릅니다. IMF 이후 처음 맞는 올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있듯이 풍성한 가을걷이 뒤의 한가위는 포근한 그리움으로 안겨오는 따뜻한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의 한가위는 푸근함을 잃어버리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썰렁했습니다. 아마도 저희만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귀향길의 기차 안에서, 또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주치는 그리운 얼굴들. 오랜 만에 만나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다음 해 다시 만날 것을 굳이 약속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년 한가위면, 아니 다음 설이면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 한가위에서 마주친 이들은 하나같 이 지친 얼굴들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돌아서서 제각기 갈길을 가는 이들의 등 뒤에는 감 봉과 실직이라는 고통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직장에 돌아갔을 때 내 일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연휴(連休)가 연휴(年休)가 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었겠습니까?

오랜만에 만난 그리운 사람들, 모여서 떠들썩하게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음식도 함께 하다 보면 지옥같이 느껴지던 교통전쟁의 고통은 씻은 듯 잊어버리고 다음 해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올 한가위는 여느 때보다 차분하게 지나갔습니다. 아니, 끝이 보이지 않는 IMF의 터널 속에서 삶의 활기 를 잃어버렸다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차례상 주변에서 으레 오가던 이야기들도 다 사라져버 렸습니다. 누구도 희망을, 내일을, 개혁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조상에 대한 후손 으로서의 도리만을 다했을 뿐입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뗘맛見
1998/10/08 00:00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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