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호 쓴소리] 죽은 박정희와의 올바른 결별이 필요합니다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1999/05/27 00:00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 약속에 접하고
난마같이 얽힌 국정을 수행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영광보 다는 고통이 더 많을 게 분명한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한 인간으로 서는 평생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오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평범한 국민의 한 사 람으로서 대통령님의 당선 이후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 또한 역시 하는 안도감과 저게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적지 않은 마음고생 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대중씨만 대통령이 된다면……" 이 말줄임표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비원이 서려 있는지 누구보다 대통 령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최근 대통령께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을 건립을 지원하겠노라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대통령께서 친히 이러한 약속을 했다는 사실은 자못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8년에 걸친 박정희 정권 시절, 그의 외세 의존적 개발독재와 반민주적 철권통 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또한 그에게는 현존했던 가장 위 협적인 정치적 라이벌로서 말 그대로 사선을 넘나드는 박해를 받았던 바로 그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그 를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기리는 기념관의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약속을 두고 TK에 대한 일방적 구애의 표현이라고 폄하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말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영남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 현정권의 차기구도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고, 이를 돌파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충격적인 약속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 니다. 그것이 정치가라는 존재들의 슬픈 운명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 는 설사 그러한 정치적 저의와 계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단'의 의 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현정권의 명맥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영 남권과 호남권간의 지역감정의 해소는 민족역량의 낭비를 막고 왜곡된 국가발전구조를 정상화시키는 관건이 되는 일입니다.
설사 그것이 인기 전술이고 득표전략이라고 해도 그 결과가 지역감정의 해소에 도움을 주 는 것이라면 그것은 선(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맥 락에서 오히려 정치라는 행위에 서린 냉혹함과 엄숙성을 다시 생각해보 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명백한 은원관계와 그에 따른 한 사람의 인간적 인 갈등까지도 넘어서게 만드는 정치라는 이름의 공적 강제, 그것은 제 게 온갖 사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하나의 공적인 정언(定言)의 힘이 지닌 엄숙성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게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김대중대 통령을 통해 행사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아이러니의 냉혹성은 더욱 더 증폭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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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통령님의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 약속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많은 국민들의 비원의 하나인 영호남 화해를, 지역갈등의 해소를 이루겠다는 충심어린 의지의 상징으 로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국민들도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 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갔을 수도 있었던 사람의 기 념관을 세우는 일, 그렇게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리 그릇된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상징은 상징이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박정희기념관을 세울 수 도 있다는 의지를 보이는 일과 실제로 박정희를 기리는 기념관의 건립 을 지원하는 일은 다른 차원에 속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정치 적 강제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지역감정의 해소가 비원에 가까 운 절박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은 명확하게 구별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지원하는 일 역시 어느 편 에 속하는 일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박정희는 한 두 마디로 단정지어 과거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도 좋을 단 순한 인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의 개발독재형 근대화 드라이브가 우리 현대사에 드리운 영향이 간단하게 한 두 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것임을, 청년시절 그를 상대로 거의 생사의 싸움을 결심했던 바 있던 저로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의 복잡한 개인적 내력, 미국과의 부단한 갈등, 냉전논리와 파쇼적 폭압에 기반 했음에 틀림없지만 어쨌든 18년을 끌었던 그의 리더십 등은 그를 신비 화하기 위한 증표로서가 아니라 우리 현대사를 특징짓는 하나의 현상으 로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봅 니다. 그러나 그를 연구하고 그의 시대를 엄정히 평가하는 일과 그를 추모하 고 기리는 일은 다른 일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일은 그의 과오를 어둠 에 밀어 넣고 그의 공적만을 빛 속으로 끌어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신 화화입니다.
그를 신화화한다는 것은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했던 그의 지배논리에 일괄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일입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그 를 두고 가장 통속적으로 행해지는 평가로 경제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민 주주의의 정착에는 실패했다거나 장기집권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 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 만 이러한 통속적 이분법에 저는 반대합니다. 민주주의의 토대에 기초 하지 않은 경제개발의 성공을 성공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장기집권의 토대 위에서 이룬 근대화를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라고 해서는 안됩니 다.
사람살이도 그렇습니다만 역사에서도 비약은 없습니다. 그 건너뜀을 통 해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인생도 역사도 그 건 너뛴 부분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도 많은 대 가를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른바 IMF환란의 뿌리는 박정희 시대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봅니다.
양적 경제지표의 팽 창을 위해 부정부패와 특혜로 얼룩진 한국형 경제구조를 생성시키고 확 대재생산해온 결과가 지금의 환난을 낳은 것이 아닙니까. 농촌을 희생 시키고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노동으로 착취하고 이들의 정당한 요 구를 탄압하고, 국민들의 반대하고 저항할 권리를 박탈해온 것이, 부정 부패와 왜곡으로 얼룩진 그 빛 좋은 한국형 경제개발을 강행하고 이를 위해 민중의 권리를 짓밟아온 것이 결국 오늘의 환란과 위기로 이어지 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정치사적으로 보아도 전두환, 노태우, 심지어는 김영삼 정권으로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파행 역시 그 비약 의, 그 독단적인 생략의 결과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 까. 그들은 모두 박정희의 다른 얼굴들이고 그의 복제양 돌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시대의 그 '위대한 비약'에 대한 역사의 대답입니 다. 그런데 그런 박정희를 추모하고 기리는 기념관의 건립을 지원하다 니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라고 믿어왔고 또 믿고 있습니다. 박 정희 시대의 그 개발독재라는 광증에 대한 강한 대안적 항체를 지닌 뛰 어난 지도자들의 앞자리에 대통령님을 세우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았습 니다. 취임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지표를 내세우 실 때도 역시 박정희적 기조에 근본적 변화를 가하는 '인간의 얼굴을 지닌 경제정책'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해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슬그머니 걱정이 됩니다. IMF 위기에 대응하는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 국민의 정부가 펼쳐온 이른바 구조조정 과정에서 민중 의 일방적인 대규모의 희생만 두드러지고 그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재 벌개혁은 자칫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결국 변질된 시 장경제논리에 민주주의가 다시금 희생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희생에 기초한 경제논리--그것이 개 발이든 위기극복이든--의 일방적 강제, 그것에서 저는 박정희의 얼굴을 봅니다. 박정희시대의 조국근대화론과 지금의 신자유주의론은 과연 얼 마나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까. 개발대통령 박정희와 경제대통령 김대 중 간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입니까. 왜 죽은 박정희가 산 김대중의 곁을 다시 떠돌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저는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호남출신이 신 대통령께서 영남의 주민들에게 보다 더 많은 지원과 개발을 약속해 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엔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묵은 감정을 청 산했음을 보여주는 일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라는 한 인물을 추모하고 신화화하는 일을 거드는 데까지는 나아가면 안됩니 다. 그것은 영남지역 주민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정희를 신화화하고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도 살아있는 그의 망령을 올바르게 극복하는 것입니다. 지역감정의 해 소가 하나의 비원이라면 박정희 신화의 극복은 그 모든 것보다 우선하 는 더 큰 비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비원의 해소에 곧 김대중정부의 가장 큰 역사적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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