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도시지역 확대가 휘청거리면서 정부에서는 '좋은 제도에 대한 적극적 홍보 부족'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이번 국민연금 사태 속에는 국민연금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민적 이해를 구하지 못한 행정부의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홍보를 강화하여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라는 것을 알리면 문제가 수습될 것이라는 행정부의 발상입니다. 국민연금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홍보 강화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이고 범정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국민연금은 소득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내고 연금도 자기 소득에 따라 받는 소득비례방식과 강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나도록 설계된 사회복지적 측면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제도입니다. 즉, 퇴직 이후에도 은퇴전 소득의 상당부분을 유지시킴으로써 연금수급자가 은퇴전 생활수준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계층간, 세대간 소득재분배를 강하게 유지하여 은퇴 이후 계층적 위화감을 줄이도록 설계된 사회통합적 연금모델인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수준 유지와 사회통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설계된 이상적인 국민연금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는데, 이 조건은 아무리 홍보를 강화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며,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획기적인 범정부적 대책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첫째로 국민연금의 장점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영자 소득파악에 관한 정부행정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소득비례모형인 국민연금에서 자영자 소득파악이 부실하면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이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로는 소득재분배의 심각한 왜곡 현상이 나타나 제도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의 소득비례모형을 포기하고 기초연금제나 자영자연금 분리 등 다른 연금모델을 찾아보자는 주장이 언뜻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그러나 자영자의 소득파악 문제를 우회하는 대안적 모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자영자연금을 분리한다 해도 소득파악이 부실하면 자영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기 어려운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로자는 소득비례제를 유지하고 자영자만 정액의 기초연금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는 막대한 혜택을 받는 반면 자영자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불공평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11년이나 지속된 근로자의 소득비례모형을 기초연금제도로 바꾸기에는 너무 큰 혼란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올해 안으로 정부는 국세청,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농림부 등 자영자의 소득관련 자료를 보유한 모든 부처를 총동원하여 대통령 직속의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기구에서 자영자 보험료 부과체계를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 국세청에서 발표한 과세특례제 폐지, 신용카드 의무사용 정책 등 자영자 소득파악을 위한 전향적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국민연금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가입자 관리를 위한 행정시스템이 혁신적으로 재구축 되어야 합니다. 실업자, 학생, 군인 등에게 소득신고 통지가 이루어진 어처구니없는 행정은 적어도 각 부처가 관리하는 행정자료를 체계적으로 신속하게 교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입니다. 힘없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힘있는 국세청과 행정자치부의 행정자료를 구걸하다 시피 하여 겨우 얻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민연금은 제대로 정착될 수가 없습니다.

정부는 각 부처가 관리하는 행정자료가 부처간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교환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정부부처간 공공자료 교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단 등 사회보험관리공단의 고질적인 행정편의주의적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혁신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가입자를 보험료를 내는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서비스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공급자 위주의 행정편의주의 문화가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총리실 산하에 '4대 사회보험 통합추진 기획단'이 구성되어 4대 사회보험행정체계에 대한 재편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복지부와 노동부 그리고 '기획단'에서는 이번 국민연금사태를 교훈 삼아 기존의 사회보험행정의 문제점을 철저히 진단하고 사회보험행정을 어떻게 수요자 위주로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국민연금 사태를 일과성 해프닝으로 인식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국민연금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 전체에 있습니다. 국민연금 사태는 부처 할거주의, 공급자 위주의 행정 문화 등 우리 나라 정부행정의 근본적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왜,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했으며 국가행정체계에 어떤 구조적인 허점이 있는가를 처음부터 끝가지 철저히 진단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가행정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학계, 시민단체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민연금사태 진상조사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구성하여 이번 사태의 전모를 철저히 밝혀야 합니다. 국가 전체를 흔들어 놓은 이 사태를 그냥 넘어 간다면 우리 나라 정부행정은 희망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문제의 해결은 복지부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범정부적 과제입니다. 대통령의 의지 없이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전국민연금이라는 획기적 제도가 연착륙 되기 위해 대통령의 강한 개혁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1999/04/02 00:00 199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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