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님께

지난 23일 확정된 정부조직개편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실망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부처를 통폐합하고 기능을 재조정하겠다는 원래의 계획은 부처들의 집요한 로비와 당리당략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습니다. 46억을 낭비했다느니,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느니 이런저런 말이 많습니다. 아마 대통령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중 가장 놀랍고도 우려스러운 사실은 '국정홍보처'의 신설입니다.

이미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전국방송노조연합 등은 성명서를 내고 공보처의 부활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공보처 폐지를 통해 얻어낸 최소한의 성과를 왜 대통령께서는 1년만에 스스로 버리시려 하십니까? 과거 군사정권 이래 정권은 끊임없이 언론을 장악하려 들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던 탓인지, 정권은 방송과 신문을 총동원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또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권력과 언론의 유착, 민심의 왜곡, 인사권과 보도내용에 대한 관리 등 가히 '폭거'이라고까지 이를 수 있는 갖은 만행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공보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셨고, 또 취임 직후의 정부조직개편에서 공보처를 폐지하신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모든 이들의 큰 환영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서 '국정홍보처'라는 이름을 내걸고 새롭게 공보처가 부활하고야 말았습니다.

공보처 폐지 이후, 아니 그 직후부터 공보처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정권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국정홍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청와대의 입장은 단호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공보처가 부활될 필요가 전혀 없고 각 부처가 자신의 선전을 제대로 하면 충분하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확언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단순한 '정치인의 말'에 불과했던 것입니까?

존경하는 대통령님

흩어져 있는 국정 홍보기능을 일원화하는 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의 작은 새싹을 뽑아버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최근 일련의 정부정책의 혼란과 난맥상이 과연 국정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까? 만약 공보처가 있었더라면 국민연금을 둘러싼 국민적 저항과 반감, 한일어업협상에서의 어민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발생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보처가 없었기에 그나마 각 언론사들이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었고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토론의 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홍보되고 추진되는 정부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대통령께서 더욱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국정을 제대로 홍보해야한다는 사실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국정홍보기능과 언론정책기능'까지 갖춘 막강한 '국정홍보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을 통제하려 든다는 사실을 '국정홍보처'는 어떻게 홍보할 수 있겠습니까? 행여 내년 총선, 그리고 내각제 개헌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이 '국정홍보처'의 신설을 부추긴 것이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국민의 정부'는 달라야 합니다. 공보처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신의 정당성을 선전할 수 없었던 과거 정권과 '국민의 정부'는 달라야 합니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라 쓰고, 못한 것은 못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기능일 것입니다. 그 본래의 기능을 왜곡시키지 않고 잘 보호해주면 그 어떤 '국정홍보처'보다 강력한 홍보기능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방송개혁위원회 등의 자율적인 기구를 통해 언론기관이 제역할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억지로 장악하려 든다면 결코 정권이 바라는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국민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자꾸만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1999/03/25 00:00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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