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히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대통령님, 요즘은 영화를 안보십니까? 예전에는 영화를 보시고, 감독이나 배우들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던 소식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곤 했는데, 나라 일이 바쁜 탓인지, 경호 문제 때문인지 대통령이 되신 뒤에는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는 [쉬리]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주례를 서주셨던 오정해 씨가 출연했던 영화 [서편제]의 기록을 깬 [쉬리]가 [타이타닉]의 기록을 깰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쉬리]라는 영화를 기회가 닿으면 꼭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제목은 [쉬리]인데, 영화 속에는 쉬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쉬리는 우리 나라 토종 물고기로서 청정한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쉬리가 나오지 않는 건 아마 우리 물이 더러워지면서 1급수가 거의 없어진 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국회의원은 많아도 국회는 없고, 정치인은 많아도 정치가 없는 게 정치 환경이 깨끗하지 못한 탓은 아닐까 하는 거지요.

정치환경을 깨끗하게 바꾸어나가는 일이 바로 정치개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의 위기에 정치권이 책임이 있고 또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도 정치개혁은 필수과제였으나 전혀 성과가 없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정치개혁을 올해 4월까지 마무리짓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현행법상으로도 2000년 총선 1년 전인 4월초까지는 선거구가 획정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선거제도 및 의원정수 조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명부제라든가 의원정수 축소 문제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정치개혁이 4월까지 제대로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작년에 만들어진 '정치구조개혁입법특위'는 몇 달 동안 회의도 제대로 열지 않고 허송세월하더니 끝내 활동시한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여야 사이에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국회 개혁문제조차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입니다.

특히 여야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서 있는 문제가 인사청문회 대상인데, 인사청문회는 대통령님의 공약사항으로서 반드시 실시되어야 합니다. 인사청문회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여당의 주장대로 국회의 선출 또는 임명동의를 받아야 하는 공직자인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선거관리위원으로만 한정해서는 안됩니다.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그리고 국회사무총장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만일 문제가 된다면 역시 공약사항인 고위공직자인사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만들되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해 서 국무위원과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그리고 차관까지 검증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야 합의가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예결위 상설화문제입니다. 나라의 살림살이 규모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 주요한 권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결산 심사의 졸속으로 국회의 재정 통제 기능이 오히려 정부의 예산요구권에 밀리고 있습니다. 국회의 정부 예산안 조정 비율이 2%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의 예산안 심의는 결국 '통과 의례'에 지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예결위 상설화는 바람직한 결정입니다. 다만 상설특위로 하기보다는 일반상임위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됩니다. 예결위 상설화는 예산안 심의는 물론 정부의 예산안 편성부터 시작하여 예산 결산의 모든 과정을 국회가 연중 심사하는 체제로 바꿔야 그 의의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 예결위원의 임기를 다른 상임위 임기 2년의 절반인 1년으로 하자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예결위원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한 것은 주요 당직자를 제외한 모든 의원이 4년 임기 동안에 한번은 예결위 활동을 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전문성이나 효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의원간 나눠먹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 결산심사가 여전히 소홀히 다루어진 것도 안타까운 점입니다. 예결위가 국정감사가 끝난 뒤 구성됨으로써 결산 심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감사를 실시했고, 따라서 지금까지 결산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의 문제제기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결산을 충실하게 감사하기 위해서 결산위를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산심의에서 발견되는 예산 집행 과정의 위법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무효 또는 취소시킬 수 있는 법적 효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안기부와 국방부 관련 예산, 특별 교부금 등 국회가 제대로 심의하지 못하고 있는 예산 심의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도 다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됩니다.

또 여야의 생각이 다른 것이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문제인데, 일단은 16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의된 것으로 압니다. 국회운영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 선출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당정치의 정신을 생각하면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허용해야겠지만 국회의장 권위가 살아날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당적 보유를 금지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잘못된 여야합의 가운데 하나가 소위원회 공개와 속기록 작성 문제입니다.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대개 5명 안팎으로 구성되는 소위원회가 심사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안건심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위가 비공개로 운영되며 속기록도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법안 심사도 철저하지 않으며 의원 행위의 책임 소재도 밝혀내기 어렵고, 이 과정에서 로비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소수가 최종결정을 내림으로써 실질적인 상임위 역할을 하는 소위원회를 공개하고 속기록도 반드시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야는 소위원회 회의를 공개하기로 합의하면서 필요시 비공개하고, 속기사 부족을 이유로 과도기적으로 요지 회의록 작성을 고려하기로 한 것입니다. 소위는 정보위나 국방위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고, 속기록도 반드시 작성되어야 합니다.

또 국정감사제도의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국회가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행정부를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인 국정감사는 국회의 정책 의지를 국정에 바르게 반영시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국정감사의 목적은 행정부의 과오 및 비리를 찾아내어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고치도록 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정부 정책이 국회의 입법 의도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또는 엉뚱한 방향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는지 따지는 것입니다.

국정감사의 주목적은 예산 결산의 심사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의 수집이나 실제로는 정치적 쟁점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를 지금처럼 20일 동안에 몰아서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기관을 감사하는 것은 효율적이고 깊이 있는 감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국정감사기간에는 행정부가 감사에 매달리는 바람에 국정이 마비될 정도로 국정 공백이 생기므로 국정감사를 위원회별로 중복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감사지정권을 주어야 합니다. 위원회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감사해서 국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하면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대통령 소속의 감사원을 국회 소관으로 옮기는 문제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일정한 기간 동안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예비조사를 하는 예비조사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도 적극 검토했으면 합니다. 국회의원에게 강제수사권이 없으므로 국정조사에 필요한 자료와 증언의 확보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따라서 본회의나 국정조사위의 의결로 국정조사 사안에 대해 특별 검사를 임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원의 활동을 돕기 위한 입법 지원 조직도 강화시켜야 합니다. 국회의 입법 지원 조직은 능률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으며, 의원들도 입법 지원 조직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사무처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유사업무 기구 및 중복조직 통폐합으로 구조 조정한다는 원칙만 세웠을 뿐 성과가 없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국회사무처는 입법지원 체계 중심으로 구조 조정해야 합니다. 현재 국회사무처는 입법보좌조직과 행정관리조직으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입법보좌조직보다 행정관리조직이 더 크고 인원도 더 많고, 입법보좌조직마저 행정관료화되어 있습니다. 행정관리조직을 크게 줄이고, 입법보좌조직을 늘려야 합니다.

아울러 상임위 소속의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 인력과 기능을 입법지원조직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예산 분석 전문 기구 보강도 절실합니다. 예결위 활동을 돕는 입법 보조 기구로 1994년에 신설된 법제예산실이 있으나 예·결산 심사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결위원들이 예산 및 결산 심의를 위한 각종 자료와 정보를 분석·평가하고, 정부 정책의 타당성과 효과 등을 분석·평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법제예산실의 인원을 늘리는 등 기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상임위 심사를 거친 법안은 본회의 상정에 앞서 법사위를 거쳐야 합니다. 법안의 오류를 막기 위해 법안의 체계, 형식, 자구 등을 심사하기 위해서인데 이 과정에서 법안심사가 지연되기도 하며 법사위의 업무도 과중해집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법제실이 담당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임위원회 위원 정수도 인기 상임위 집중을 방지하고 상임위 활동량에 따라 조정해야 합니다. 지금 재정경제위나 건설교통위는 정원이 30명이며, 두 개 부처를 소관으로 하는 환경노동위나 과학기술정보통신위는 18명밖에 되지 않는데, 활동량에 따른 적정한 비율은 아닙니다.

회의 시간의 효율적 운영도 필요합니다. 오후 2시에 열리는 본회의를 오전 10시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 적법한 의사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의안을 처리하는 날치기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횡포'로 소수자의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날치기는 국회 운영의 파행을 불러오곤 했습니다. 날치기를 막기 위해 의사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통과된 안건은 무효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로비 등의 잡음을 막기 위해 기업체 등 다른 직을 겸하는 의원을 유관 위원회에 배정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며, 아울러 정당한 사유 없는 의원의 장기 불출석과 장기 해외 체류를 규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윤리특별위원회가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나 이런 문제가 논의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과 관련된 비리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기에 앞서 국회 스스로 비리 문제를 반성하고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라도 윤리특위 활동이 강회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원래 정치개혁은 정치가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정치개혁을 하는 척 시늉만 하면서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나 지금까지 누리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3월 17일 대통령님과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님이 만나 정치개혁입법을 조속하게 통과시키겠다고 합의한 사실에 기대를 걸어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정치개혁이 이루어져 일하는 국회, 21세기와 통일시대에 대비한 선진적인 깨끗한 정치 구조가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정치개혁이 시급하다는 점, 정치개혁에 실패하면 다른 모든 개혁도 실패한다는 점에서도 정치개혁은 절대절명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정치개혁 논의는 정치 부문의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 등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듯한 경향이 강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 실종, 민주주의 포기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규모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정치개혁을 정치권에게만 맡긴 것도 문제였습니다. 국민과 함께 추진하지 않고 정치권에게만 맡겼으니 아무 성과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국민의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을 강도 높게 밀고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30년만의 문민정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높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을 힘있게 추진해 나갔지만 개혁 세력의 지지기반이 약한데다가 개혁의 청사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김영삼 정부의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가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정 운영 철학 및 개혁의 청사진, 리더십의 수행 능력 등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대통령님의 개혁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또는 개혁을 촉구하는 국민 여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개혁 중심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개혁 실천은 정치적 세력이 중심이 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민 사회의 광범위한 참여 없이는 개혁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또한 사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정감시센타 부소장) 손혁재
1999/03/18 00:00 199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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