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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낙선운동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었지만 이 나라 정치는 아직 낡은 시대의 구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지역감정과 봉건제 보스체제를 축으로 하는 낡은 정치의 문제점은 특히 IMF시대에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나라 전체는 위기에 처했는데 국민의 대표기관은 위기대응능력은 없이 당파싸움이나 일삼고 있는 형국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뇌사국회니 식물국회니 하는 냉소적 농담이 유행했던 것은 그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1999년 가을, 참여연대를 비롯한 40여 개 시민단체는 국정감사모니터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정활동 평가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일제히 시민단체의 의원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국회 상임위 방청자체마저 불허하고 말았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의정활동평가의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적 행동임을 분명히 하고 국감평가는 물론 2000년 총선과정에서 부적절한 후보자에 대한 공천반대, 낙선운동도 불사할 것임을 천명하였습니다.

2000년 1월 12일 5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시민연대를 발족하여 역사적인 낙선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1월 24일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선거법은 시민단체의 선거참여를 불법화하고 있었는데, 문제의 선거법 87조는 시민단체들이 수년간 개정을 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를 개정하지 않아 비판의 표적이 되어온 대표적인 독소조항이었습니다.

총선연대는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는 한편 위헌적 선거법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선언하고 낙선운동을 강행하였고 총선연대의 이 같은 방침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힘을 얻었습니다, 결국 낙선운동은 총 대상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키는 대성공을 거두어 유권자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내외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한국의 낙선운동을 모델로 하는 일본판 낙선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낙선운동은 성공하였지만 낙선운동의 지도부는 그 후 선거법 위반으로 32명이 법정에 서게 되었고 울산과 광주 등 일부지역의 대표자들은 이미 대법원에서 벌금형 확정을 선고받았습니다. 문제의 선거법은 낙선운동과정에서 일부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민단체의 선거참여를 금지하는 독소조항을 지닌 채 국민의 참정권을 옥죄고 있습니다.
2007/12/25 04:02 2007/12/2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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