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를 별 총총 박힌 하늘이 보이는 스탠드 바에서 만나고 싶었다. '심심한' 인물이라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박원순 변호사의 '안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면모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그는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결국 우리는 근처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검은 벨벳 같은 밤하늘 대신 햇볕이 지독히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음악과 손님들의 연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무슨 대수랴.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최근 그가 표지 모델이 된 한 월간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니 그의 첫마디,

"아, 내 머리가 많이 빠졌네. 마치 중늙은이처럼 나왔구먼"
(그의 나이는 마흔 여섯이다).

시작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머리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나이보다 훨씬 중후해 보인다고 했더니 "머리가 빠진 탓"이라고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었다. 지난번 참여연대 총회 때에도 인사말의 첫마디가, "김중배 대표는 아직 머리숱도 많으시고 저보다 더 검게 보이시는데..."하며 자신의 덧없이 나이 듦에 대해 공개 한탄한바 있다. 아마 아침마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가 빠진 앞이마를 가려 손으로 요리조리 가려 볼지도 모른다. "이쪽만 좀 가려주면 한 십 년은 젊어 보일텐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인생은 대머리 아니면 흰머리 둘 중에 하나인데. 내 말이 아니고 내가 살던 런던의 한 동네 이발사의 말이다. 서민동네에서 <뉴 헤어스타일>이란 간판을 내걸고 수 십년째 이발소를 운영해오는 이태리 출신의 이 이발사 영감님은 나이보다 머리가 많이 빠졌다고 투덜거리는 모든 남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인생은 대머리 아니면 흰머리 둘 중에 하나, 선택은 단 한가지다". 얄짜 없는 인생에 대한 그의 교훈은 단번에 손님들을 겸허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순순히 머리를 내맡긴 손님들은 잠시동안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또 매주 국민 복권을 사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있는데 그의 복권철학이 후련하다. 복권이 터지기만 하면 "볼 거 뭐 있어? 당장 이발소 문닫고 카리브 해변으로 가는 거지." 그래도 단골들한테는 인사해야지 않느냐고 했더니 "날 더 이상 찾지 말라"는 메모 정도는 남겨둘 수 있다나. 무지개를 좇다가 지친 현대인들은 복권을 꿈꾼다.


----페라리 스포츠 카를 타고 신나게 달려볼 리가

우리의 박 변호사께서는 복권타면 뭘 하실까? 복권은 사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번 사봐야지 하면서 아직 못 사봤어요.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복권이 당첨되면 당황할 것 같은데 전 당황 안 할 겁니다.
벌써 돈 쓸 데를 마련해 놨거든요. 아름다운 재단, 좋은 일을 하면서 굶어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요.
참여연대 상근자들에게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고, 작으나마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도와줄 방안도 마련할거고, 아이구, 돈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 건이 아니지요. 쓸데가 너무 많아서 한 장 갖고는 안되겠는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진작에 알았다. 누구든지 박원순 변호사를 한번이라도 만나봤다면 단박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페라리 스포츠 카를 타고 신나게 한번 쌩 달려보겠다는 그런 얘기는 절대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아무리 봐도 도덕교과서 같은 인상이다. TV에 나온 그를 보고 어떤 시청자는 "안심이 된다"라고 했단다. "저렇게 생기신 분이 나쁜 얘기를 하실 리가 없다. 그러니 낙천ㆍ낙선 운동은 좋은 일이고 옳은 일임에 분명하다"는 요지의 격려를 보내왔다고 한다.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못할 것 같은 눈빛과 부드럽고 느린 듯 이어지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얘기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까?

"어, 나 굉장히 스타일리스틱한 구석이 많은 사람인데."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그가 정색을 한다.

"일할 땐 굉장히 매섭고 빈틈없이 하고요. 인상 좋게 보인다고 다른 것들도 그렇게 보시면 곤란하지요. 허허.. (또 사람 좋은 웃음) 사람 생김새로 판단하는 것도 고정관념이예요. 전 영국에 가서 일년 있는 동안 유럽의 사회주의적 요소, 즉 복지주의에 굉장히 감동 받고 돌아왔는데 그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러시아의 사회주의만 생각했잖아요. 사회를 단선적으로만 이해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지요. 저만해도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했었지요. 동기 중에도 판검사가 수십 명인데, 그 친구들이 성공한 친구라는 생각을 했고 말이죠. 성적순위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누구나 하는 그런 판에 박힌 생각을 한 거지요.'

-- 만물은 유전한다

그런데 그는 얼마 전 판검사가 '못 되고' 어느 회사의 간부로 낙착된 친구를 만났단다.

"남보다 처진 삶을 산다고 여겨온 그 친구가 뇌성마비 아들을 위해 다른 장애아들까지 집에 데려다 같이 키우는 것을 보고는 과연 우리의 잣대라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판검사 해서 부정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삶보다 백배는 더 훌륭한 삶이지요."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가장 좋아한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짧은 인생에서 사람이 얼마나 변하는지 몰라요.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면 더욱 행운이지요."

그는 자신이 운 좋게도 좋은 방향으로 변한 측에 속한다고 했다. 그도 다른 모두들처럼 대학입학을 하면서 고시공부를 해서 판검사의 자리에 오르는 꿈을 꾸었단다. 그런데 일 학년 때 구속되면서 인생의 길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질 바에야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각오가 마침내 고정된 직업의 장을 넘어서게 해서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이든 작심하고 묻는 말이든 "요즘 얼마 벌고 계십니까"하는 말을 꺼낸다. 시민단체 활동대신 그냥 개업 변호사로 지내면 수입이 꽤 좋을 텐데 그걸 마다하고 지내다니 괜찮으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재물과 관련된 태도가 사람의 품성을 재는 최고의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모두들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으니 특권을 누리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들어가는데 인생에 있어서 특권이라는 게, 글쎄 돈이나 권력이 아니지요. 정말 더 큰 특권은 바로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그것에 따라오는 행복감, 이거야말로 진짜 특권이 아닌가요."

어째 너무 난이도가 높은 말인 것 같다.

"과거 개발독재시대 때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는 것, 그래서 우아한 삶의 질이 확보될 때 그것을 행복하다, 잘 산다라고 여기는 것으로 인식했지만 요즘은 잘 산다는 데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고 저도 그 와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계속 변호사 일을 했더라면 저 정도 빌딩은 소유하고 있겠지요."

그는 늦겨울의 오후 햇빛이 쏟아지는 창 밖 너머 보이는 아담한 4층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신념에 찬 남편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아내

"임대료 받으며, 한 달에 몇 건 정도 일을 맡아 하면 돈 천 만원은 일도 아닐 거예요. 경제적으로는 넉넉하겠지요. 아주 풍족하게 잘 살 겁니다. 사실 요즘은 빚 때문에 고통받는 날들이 많지요. 저야 제가 택한 길이니 그렇지만 우리 집 사람이 힘이 좀 들지요."

이때를 놓칠세라, 물었다. 왜 모든 아내는 신념에 찬 남편이 나를 따르라 하면 자기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건가? 대부분 돈과는 거리가 먼 그 신념이란 게 특히 자유와 민주와 해방, 그리고 이상실현 뭐 이런 단어와 섞이게 되면 아내들은 제대로 입도 못 뗀다. 모본단 저고리를 내다 팔지언정 아녀자의 잔소리는 안하는 게 여전히 미덕인 세상인 모양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아,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박변은 서둘러 말을 잇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인권변호사라고 일 할 때에도 역시 변호사는 변호사니까 수입이 괜찮았지요. 그때 별장을 하나 마련할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니까요. 근데 요즘 생활해보면 세상이 모두 내 별장이 된 거예요. 일하면서 만난 스님 덕분에 선암사 같은 좋은 절에서 며칠씩이라도 묵을 수도 있죠, 좋은 분들이 기꺼이 오라는 데 찾아가면 그곳이 바로 제 별장인 거지요. 혼자서 자기 것이라 소유하고 그 안에 갇히는것보다 백배 좋은 거예요. 전에 그 옛날에 귀했던 카폰까지 갖고 기사가 모는 자가용 뒷좌석에 기대고 앉아 지내 보았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행복하지도 않았지요.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편하고 좋아요. 동시대인들과 더욱 가까이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가난이란 게 고통스런 것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쟎습니까?"


그러나 불편한 것이지요, 하는 말이 나오려다 겨우 들어갔다.

"돈 있고 권력 있는 변호사로서 누리는 삶보다 그것 없이 사는 삶이 오히려 보람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도 결국 그 보람을 공유할 수밖에 없어요."

참고로 그에겐 남매가 있다. 특히 고등학생인 그의 딸 얘기를 할 때는 뭔가 뿌듯한 표정이 된다.

"아, 물론 가족에 대해서 갈등을 하긴 했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어요. 요즘 제가 여러 군데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딸애도 처음에는 돈 못 버는 변호사 아빠에게 불만이 많았어요. 자기는 커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제가 아이를 걱정하게 되었어요. 너무 빠진 것 같아서 말이죠. 지금도 참여연대 엠티에 갔어요. 이젠 아빠가 참여연대 그만둘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요. 우리 집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경제적인 궁핍함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을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지요."

--복사기 앞에서 순직할 뻔한 아름다운 아내

잠깐, 이즈음에서 그의 부인 강난희 여사 얘길 안하고 넘어가면 나로서는 책임을 방기하는 게 된다. 최근 강 여사가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 내부를 직접 손 보았다. 오렌지와 노란색 톤으로 페인트칠을 한 사무실은 아주 생기 있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칠을 하고 있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옆에 있던 누군가가 박변 부인이라고 소개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곧이 듣지 않았다. 귀보다는 눈의 힘이 더 컸던 탓일 게다. 생머리를 뒤로 말아 올린 후덕한 인상의 부인을 두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단박에 뒤엎고 비비안 리같은 레이디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내를 택한 안목을 보면 그는 분명 지루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좀 무지막지한 사람이다. 이 어여쁜 아내를 복사기 앞에서 기절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부인에게 복사를 부탁한 것인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복사거리를 가져다주니 견딜 재간이 있나, 급기야는 복사기 앞에서 쓰러진 것이다.

"좀 심했던가보죠. 자료욕심에 마구 복사를 맡겼던 거죠. 하긴 자원 봉사원 활동수칙에도 복사기 앞에 2시간 이상 있게 할 수 없다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집사람이라고 마음놓고 시킨 건지....하하하"

그는 한가정의 변화가 바로 전체 사회의 변화의 중요한 흐름이라고 지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가 그 동안 경험한 것들은 경제적인 가치와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민가협의 어머니들을 보세요. 처음부터 그런 의식이 있으셨던 분들은 아닐 겁니다. 자식더러 사람 셋 이상 모인 데는 제발 가지 말아라 하신 분들이 더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자식이 감옥으로 끌려 갔을 때 그 부모가 자식을 비난하고 정부를 옹호했나요? 아니지요. 부모는 자식편이라는 말처럼 결국 뜻을 함께 하게 되는 거지요. 저는 그런 것들이 가족의 행복을 뺏어간다고는 안봐요. 더구나 지금은 옛날 독립운동 하던 때와는 다르잖아요. 전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이니 하는 작은 고통을 겪는 대신 더 큰 것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 벽'을 위하여

그는 나이 마흔에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해 6년간 참여연대를 우리 나라 시민단체 활동의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던 권력기구에 대한 저항과 끊임없는 도전은 시민활동의 신기원을 열어놓았다. 시민들에게 진정한 시민의 힘을 알려주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권력기구 중심의 거대한 흐름에 더 익숙하다. 길들여진 사람들은 따지고, 항의하고, 밝히고, 바로 고치고 하는 일들을 성가시다고 여기거나 혹은 언제까지 갈 것인지 두고보자는 그들 식의 냉소주의도 만만찮다. 그 저변에 우리 현대사가 끼워놓은 큰 얼음벽이 있는 게 아닌가? 그 벽이 해빙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고 보지 않는가?

"그런 점도 있지요. 하지만 전 우리사회가 다른 어떤 사회도 경험하지 못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고 봐요. 고정관념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어디서든 볼 수 있잖습니까. 꽁지머리, 염색머리가 예사로 보이고, 흡연문화만 해도 그렇죠. 공공 장소 흡연금지가 금방 이루어졌지요. 처음에는 참여연대 운동이라는 용어 하나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좌파적인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그런 점까지 고민했지요. 하지만 처음엔 이름이 좀 그렇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무도 그런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름 참 잘 지었다고 하지. 사실 요즘 고민은 우리 참여연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민사회에 부합하는 운동을 계속 펼칠 수 있는지 그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가 대중 속에서 뿌리박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험적인 아젠다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도전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니면 우리 앞에 일어섰다 스러져간 다른 단체들과 비슷한 운명을 당하게 될게 뻔하지요.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실험적인 이슈들을 끊임없이 창출해 내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국민 생계최저선 마련, 소액주주운동, 작은 권리 찾기 운동 등 그는 그간 참여연대가 성공시킨 많은 실험적 요소들을 목청 높여 열거하더니 앞으로의 희망을 피력했다.

"우리 사무실 안에 있는 '민주주의 벽'이 사실 앞으로 주목할만한 것이지요. 거기 판검사 2천 6백 명의 파일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안기부만이 가질 수 있었던 자료들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왜 안됩니까? 우리 시민이 우리의 공직자를 감시할 수 있는 겁니다. 언젠가 이 부분에서도 국민적 관심을 유발할만한 운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입법과정, 사법과정에 그 동안 방관자로, 침묵 속에 머물러 왔던 사람들, 평범한 시민들로 하여금 참여하고 소리지르고 따지고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지금까지 그런 활동의 한가운데 우리 참여연대가 있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정말 참여하게 하는 거지요."

---"제 인상이 검사하게 생겼습니까?"

그는 계속 너무나 진지하게, 그것도 옳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얘기만 하게 두지 않으리라고 작정하고 나섰는데 어느덧 그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간 것 같다. 이건 사이버 잡지 아닌가. 공간이동이 필요하다. 과거의 공간, 그래, 누구든 속 지갑에 챙겨 다니는 유년의 아련한 기억은 있는 법이다.

그의 고향은 경남 창녕, 거기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학교까지 가려면 시오리 길을 걸어야했지요, 왕복 삼십리를 걸어다녔지요."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 그의 표정이 창가에 둔 난초 화분과 어울린다.

"그때 걸어다닌 힘으로 지금까지 제 건강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땅의 힘이지요."

어느 글에서 그는 땅콩 서리를 하던 기억을 쓰면서 흙 속의 콩을 가능한 한 많이 걷어올리려면 뿌리를 거두어 올리기 전에 발로 흙을 잘 밟아줘야 한다고 했다. 쿵쿵 큰 발로 부드러운 땅콩밭을 굴려주면서 그는 더러 해지는 가을 들녘에 오래 시선을 두기도 했을 것이다.

"시골에서의 기억이란 게 큰 힘이 되지요. 전 지금도 내가 자라던 곳의 내음을 기억해 낼 수 있어요."

그 시골학교에서 서울의 경기고를 왔으니 아주 수재였던 모양이다.

"서울에 와서 우리 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으신 분들인가 더욱 절감했지요. 소위 명문가의 자제들이 많이 모인 학교를 다니다 보니 부모의 기대에 눌려 자신의 꿈을 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더군요. 저의 부모님은 제게 전혀 부담을 안 주셨지요. 그저 건강하고 오래 살아라는 기대만 하신 분들이지요."

서울대 법대 입학 후 구속되느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검사직도 맡아 일했다. 그런데 일년만 인가 그만 두었다.

왜 그리 일찍 검사를 그만두셨나요?

"제 인상이 어디 검사하게 생겼습니까? 하하..." (그건 맞는 말이다)

--총선연대 일은 검사의 역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일하다보니 영 제 적성에 맞지 않더군요. 한번은 사이비 종교에 얽힌 치정 살인 사건을 맡았는데, 전후사정을 보니 그 범인에게 사형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아내와 그 남자를 죽였는데, 범인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던 겁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범인이 대구의 갓바위를 오르며, 거기가 꽤 높거든요, 거기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적마다 부처님을 외쳐가며 죽이고 싶은 마음을 달래려 괴로워 한 거예요. 그런 과정들을 보니 결과에 있어서는 비난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8년 징역을 매겼더니 차장검사가 두 사람이나 계획적으로 죽였는데! 하며 호통을 쳐서 결국 무기로 타협을 봤지요. 나중에 판사실을 찾아가니 판사들이 저더러 '관선변론하러 왔죠'라고 대번 알아보더군요. 전 역시 누군가를 구형하고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용서하고 구제 해주는데 더 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총선연대 일이 검사의 역할이잖아요. 제겐 즐거운 일이 아니지요.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특히 전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낙천ㆍ낙선운동의 대상이 되시는 분들도 역시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에 하나의 희생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분들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이 많잖아요. 최종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에 실천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번민과 고통과 회의가 따르는 일입니다."


--스스로 회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운동

470개 단체가 모인 단체의 집행 위원장이 지금 이 마당에 그런 소심한 발언을 하다니.

"아니지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지요. 그런 인간적인 고통이 없는 운동은 진정한 운동이 아니지요. 아무리 도도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운동이라도 그 위에서 진지한 고민인 없다면 진실한 게 아니지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싸움의 대상을 닮아간 예가 있는데 그것은 일방적으로 누구를 매도하기만 하고 자기를 둘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거든요. 언제이고 간에 우리의 운동이 내용이나 방식에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그렇게 운동에 열심이었던 분들 중에 지금 우리에게 더 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주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행태를 보여주려고 운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조용히 은퇴를 하는 게 오히려 더 낫지 않은가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후배들이나 다른 이들의 열망을 짓밟는 것이지요. 이번 낙천ㆍ낙선 운동만 해도 음모론이나 유착론 같은 말들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다시 한번 우리를 뒤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다고 봐요. 우리의 자세와 이념을 곧추 세우는 기회로 스스로 만들어 더욱 방향의 일탈 없이 만들어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회의와 반추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건 운동의 대오를 흐트리는 게 아니라 이 운동의 순수성, 공정성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누구도 남을 난도질 하는 것을 즐거이 하진 않을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뇌를 했는지 몰라요."

--볼룸 댄스는 안배울껄

남들을 욕하기도 싫고 남에게 욕 얻어먹기도 싫어한다는 그에게 그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하자 참여연대 일을 하기 전에는 정말 그렇게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아, 정말입니다. 모두 절 좋아했어요. 욕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참여연대 일을 하는 지금도 사람들이 자기를 욕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참여연대 하는 일이 남 잘못하는 거 못 봐주고, 바로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건데, 그 일 하면서 모두에게 칭송들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증거다. 그러면 참여연대는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런 날이 쉬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오면 뭘 할까?

"책 실컷 보면서 지내지요, 뭐."

그럼 그렇지, 그에게서 볼룸 댄스를 배우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리가 있나. 사무실에서 인터뷰 안 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얘기를 했더라면 아마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연대 얘기만 했을 게 분명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참여연대만 꽉 차 있는 것 같다. 이건 정말이다.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2000/03/06 23:03 2000/03/06 23:03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PSPD/trackback/27146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