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 박히면 괜찮아요."

교보문고 지하 서점 한 켠에 있는 멜로디라는 커피숍에서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29세, 한국명: 박 노자)를 일단 만났다가 오래 얘기를 나누기에 주위가 좀 소란스러운 것 같아 나가자고 했더니 하는 소리다. 그래서 커피를 들고 한쪽 구석에 가서 박혀 앉았다. 그래도 시끄럽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뭐, 괜찮았다. 아주 조용한 데 가면 블라디미르의 목소리가 너무 튈 염려도 있었다. 얘기할 때 그는 무지 하이 톤이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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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봄 점퍼 차림의 그는 후줄그레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우산이 밖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지상의 날씨는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고 원래 비올 기미는 없는 날씨였는데도 말이다.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바로 우산을 너무나 꼭꼭 챙겨서 다닌다는 것이다. 의심나면 관광객들의 가방을 살펴 보라. 여차하면 꺼내 쓸 우산이 가방 밑에 꼭 하나씩 들어있을 것이다. 아무리 외국에 산지가 오래 된 사람이라도 비를 맞으면 이국땅에 사는 서러움이 더하기라도 하는 듯 기를 쓰고 우산을 챙겨 다닌다. 나도 그랬으니.

실물로 보니 그는 키가 아주 컸다. 최근 어느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난 키가 작은사람인줄만 알았다. 이제 보니 양어깨가 앞으로 상당히 구부러져 있었던 탓이다. 책상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자세가 그렇게 굳어 버린 것이다. 학자적 자세! 내가 만난 학자들 중에도 어깨가 굽은 사람이 많았다. 세계적인 석학 앤터니 기든스 교수, 에릭 홉스봄 교수도 그랬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하셨나 보군요, 하고 물으니 블라드미르 왈,

"벌써 병신이 되었습니다."

"사이비?"

그는 내가 내민 명함을 보더니 짖궂게 말했다. 사이버 참여연대가 그렇게 읽혀질 수도 있으리라. 사이버가 '가상의 그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니 일리 있는 지적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언어가 재미있게 교차하는 효과를 장난스레 주워 섬기는 그의 모습이 앳되어 보였다. 사실 아직 그른 서른 전의 젊은이다. 교수라는 직함이 아직은 무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참여연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길래 만나자고 한건데, 라고 운을 떼었다.

"아, 그럼요. 깡패를 깡패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었는데요. 한국정치인 중에는 깡패들의 퍼센테이지가 높은데 말이지요. 더 많은 깡패들이 리스트에 포함됐어야 하는데 일부 유명한 사람들만 알려졌잖아요. 이번 기회에 ......"

몽땅 작살을 냈어야 했다는 건가요, 하고 물으려다 그냥 삼켰다.

근데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도대체 시민이 무엇인가?

"아, 그거요. 시티즌이란 말을 시민이라고 한 게 메이지유신 때 일본인들이 옮긴 것이지요.시티의 시, 즌의 민. 희랍적인 의미로는 폴리스 도시공동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시 공동체 일에 그 주장을 갖고 있고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전적 의미로 말이예요."

근데 그런 권리와 역할을 가진 현대 시민들이 있나요?

"한국사람들은 학생 때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가 막상 사회에 나가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대개 빨리 까먹는 것 같아요. 먹고 살아야 하고 진급도 해야하고 하니까. 학생 때는 아무래도 여유가 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게다가 대학 분위기 자체가 그렇잖아요. 물론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런데 졸업하자 말자 금방 싹 바뀌어 버려요."

어투가 발랄하지 않은가,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진다

그럼 사회로 나간 사람들이 만드는 시민의 모습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 얘기를 95년도에 유럽에서 열린 한국학회에서 송두율 선생과 얘기한 적이 있는데 말이지요. 한국에 시민사회가 있는지, 글쎄 한국 사회에는 시민이 있는지, 혹은 파생 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없다고 그러시더군요.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원인이 한국 사회의 구성이 연고주의, 인연위주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시민의식과는 동떨어져 있지요. 근본적이고 태생적인 시민의식은 없다고 봐야지요. 시민의 권리보다는 국가의 권리에 더욱 적극적이지요. 시민이라기보다는 국민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일제시대 고꾸민이죠. 송두율 선생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렇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이해관계와 연고관계의 전근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관계에 얽매여 있어서 근대 민주주의적인 시민사회는 없는 거지요. 발생하고 있는 중, 초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정말 청산유수로 말을 좔좔 쏟아 내었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한국말 정말 잘 하시네요."

"아이 뭘요, 런던에 있는 소아스 사람들이 더 잘 할텐데요. 뭐."

내가 영국에서 살다가 왔다고 하니 블라디미르는 런던대학의 얘기를 꺼냈다.

"러시아에서 처음 이수성 선생님을 뵈었을 때에 겨우 한국 말을 좀 했지요."

적어도 9년전의 일이다. 어떻든 그는 대학 들어가서 한국어를 배웠다. 혹시 주위에 한국에 대해 아는 분이 있었는가?

"아니요. 한국이 뭔지도 몰랐지요. 친구니 뭐니 아무 연고도 없었고 혈통상으로도 전혀 연고가 없었지요. 그 때만 해도 TV에서는 한국이 파시스트 사회라고 했지요. 남한은 전두환의 파시스트 사회이고, 북쪽에서 김일성이가 해먹고 있다는 얘기, 뭐 그런 정도였지요."

그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아직 한-소 두 나라가 수교하기 전이었다. 남한이 경제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렸지만 러시아는 아직 북한과 더욱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뭘 믿고 한국학을 공부했는가?

"조선시대 소설 중 춘향전을 읽었지요. 아주 좋았어요. 내용도 좋았지만 번역하는 분이 아주 잘하셨지요. 공을 아주 많이 들인 것 같았어요."

난 고작해야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발췌해 실어 놓은 것을 읽은 게 전부인데. 러시아 젊은이가 춘향전을 완독하였다니. 이럴 수가. 난 영문소설을 번역할 때 불가능한 대목을 만나면 이렇게 예를 들곤 했다. 이건 말이야. 외국인더러 춘향전 대목 가운데 하나를 집어서 이해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거지, 운운. 음, 그런데 진짜 임자를 만나 버린 것이다. 외국인이 춘향전을 감동 깊게 읽고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아아, 정말 중원은 넓고 고수는 도처에 널려 있도다.

그는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과 교수로 3년간 재직하고 이제 노르웨이 국립대학인 오슬로 대학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기로 되어있다. 전세계적으로 공고가 나가 세계 각처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경합을 벌였는데 이 자리에 그는 두 번째 적임자로 물망에 올랐었다. 일등후보는 어떻게 됐냐고 묻자 그가 깜짝 놀란다.

"제 앞 사람이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병원에 2개월간 입원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된 거지요."

사실 나는 오슬로 대학 교수 모집에 응시한 사람을 알고 있었던 탓에 블라디미르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대학은 임명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모든 후보들의 응모 결과를 다시 모든 후보에게 공지해 주었었다.

"사실 그 분이 저와 아주 잘 아는 분인데 호주 국립대학 한국어과 학과장이시죠. 막상 오라고 하니 다리도 다쳤고, 추울 것 같기도 하니, 에라 젊은 너나 가거라 한 거지요. 후보들 중 절반이 아는 분들이었는데 아주 미안했어요. 자본주의적인 경쟁관계를 아주 싫어하는데...."

아니 이건 무슨 소리야, 자리는 하나고 사람이 많으면 경쟁하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나의 말에 그는 사회주의적인 의아함을 가지고 나를 쳐다보았다. 함께 나눠서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뜻 같았다.

그런데 오슬로로 가면 좀 춥지 않겠는가? 또 겨울에 해가 뜨길 하나, 여름에 해가 지길 하나.

"아니요. 제가 레닌그라드 출신이잖아요. 거기가 거기지요, 뭐."

오슬로와 레닌그라드가 거기가 거기란다. 안국동 사람이 계동 사람 얘기하듯 한다. 자고로 안목은 넓게 가질 일이다. 그런데 출국일이 며칠 안 남았으니 무척 바쁘시겠군요.

"아, 예, 지금 비행기 표도 사야 하고, 저, 정신 없어요, 지금. 그런데 참여연대 하는 사업이 너무 좋아서, 너무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 무조건 하겠다고 했지요. 특히, 뭐라 그래야 할까, 그 낙천낙선운동 얘기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명절 같았어요. 내 생일 같은 분위기였지요. 드디어 한국의 정치깡패들이 이번에 몰락하겠구나. 드디어 한국의 정치판이 현대화는 아니지만 현대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보이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참여연대 얘기만 듣고 인텨뷰하겠다 했지요. 그리고 안경환 선생과도 잘 아는 사이고 해서. 저도 인연주의, 연고주의의 전근대적인 그런 성격으로...우하하."

원자력 연구소 설계사인 아버지와 미생물학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 1녀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영국적인 문화를 향유하며 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디킨즈의 소설을 특히 좋아한 그의 어머니는 동화도 영국 것으로 읽어 주었고 자장가도 영국노래로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스티븐스의 <보물섬>. 레닌그라드 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전공은? 놀라지 마시라. 대가야. 대가야에 대한 그의 강의를 들어보자.

"대가야는 지리적으로 합천과 고령 쪽. 주로 티케이 쪽이지요. 지금 티케이쪽 사람들이 신라의 계승을 얘기를 하는데 사실을 가야 사람들이지요. 김해, 함안, 마산. 김영삼의 파워베이스중의 하나인 마산도 사실은 가야 쪽이에요. 사실은 신라보다 가야지요. 김해 같은 경우 532년도, 또는 대가야 고령가야 같은 경우 562년도에 신라에 병합 당했기 때문에 거의 그 속성이 남아있지 않지요. 그러나 최고 집권자인 김유신의 계통이 가야죠, 하지만 거의 신라화 되었지요. 후손들에게 가야 성격은 찾아 볼 수 없지요. 몰라 쬐금 남았을래나. 가야인들의 속성이 아주 국제적이었지요. 신라가 배타적인데 반해서. 가야는 3세기 초부터 낙랑과 대방, 일본의 중간무역을 했죠. 그에 비해 신라는 촌뜨기였는데, 신라가 강한 게 뭐였냐 하면 지금도 그런 게 있지요, 결속력, 그게 강했지요. 가야는 국제적인 여러 도시 국가가 모였지요. 그러나 가야는 신라에 비해 선진국이었지요. 불교문화도 일찍 받아 들였고. 당시엔 불교가 선진문화였는데 4세기 말 고구려에 처음으로 들어갔고, 백제 5세기말 가야로 들어갔고 다음으로 맨 나중에 신라가 가야보다 백년 뒤에 받아들였지요."

그는 이걸 모두 한국말로 했다. 뻥이 아니다. 외국인한테서 고대 한국사 강의를 듣다니! 그런데 훨씬 더 생동감있고 재미있게 들린다.

바이얼린을 전공한 한국인 아내와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한 그는 한국에 와서 산지 9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러시아를 자주 오고가고 하였지만 한국에 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살기가 어떠신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사생활이 없지요. 외국인이라도 느껴지는데요. 동료들끼리 얘기 할 때도. 아, 애기 없다고요, 왜 없지요? 아, 아줌마가 공부 한다구, 에이 공부하면서도 하나 두지이... 제가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까 이제 만성이 됐지요. 나이든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야, 너 월급 얼마 받노, 뭐 이런 것도 그런가보다 하게 되었지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은 무조건 미국사람이라고 보지 않던가요?

"맞아요, 맞아. 그리고 외국인은 외계인이예요. 구라파에서는 인종차별이 명백히 금지되어 있는데, 법적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백인이라도 다른 유색인종들과 비교했을 때 살기가 좀 낫다는 것이죠. 백인이 아닐 경우 한국은 지옥이지요. 정말 그야말로 지옥이예요. 19세기 미국에서 흑인이 당한 그런 수모를 당하는 거죠. 백인들을 보는 눈은 그놈이 그 놈이라는 거지요. 한국인들이 본성적으로 인종을 차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매스컴이 앞장서서 이런 분위기를 잡는 것 같아요. 뉴스에 아시아 아프리카 뉴스 나오는 것 보셨어요? 대형사고나 나면 몰라도. 한국인에게 해를 끼친 것을 보면 오히려 백인들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원인으로는 미국의 인종주의 적인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조선말기에는 상놈들이 양반행세 하려고 했잖아요. 문서 사고 팔고 하면서요. 이처럼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들이 백인들을 흉내 내려고 하고 더러는 백인이 된 양 행세하고 살지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그런 문화를 알게 모르게 퍼트리는 거지요. 선진국은 미국이고 나머지는 다 별 게 아닌 것이라고 말이지요. 유럽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는 모두 후진국이지요. 한국에서 후진국이란 말은 굉장히 모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지요. 또 하나는 조선말기 사회가 철저하게 중국문화중심의 사회였지요. 중국과 조선, 아마 월남까지는 문화국이었을거예요. 일본은 오랑캐였고 서방은 야만인이고, 유목민은 절대로 인정을 안했지요. 무의식적인 중화의식이 남아 있어요. 중화의식의 근본적인 구도는 그대로 남아 있고 대상만 바뀐거지요. 미국이 신중화이고 한국은 소중화이고 구라파는 중중화이고, 나머지는 쓰레기죠. 아주 철저해요. 클래시컬 인종주의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 후유증이 심할 것 같아요. 문화발전에 커다란 장해 요소이지요.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으려면 힘들 거예요."

그의 말은 폭포수처럼 좔좔 이어진다. 인터뷰어가 얘기할 틈도 주지 않는다.

"전 사실 러시아에 있을 때까지는 미국문화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았지요. 근데 한국 와보니까 내가 미국에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맨 처음에 한국 왔을 때 한국말을 잘못하니까 영어로 얘기를 하는데 막 미국 액센트로 하더라구요. 참 견디기 힘들었지요. 러시아에서는 스탠타드 잉글리시가 옥스퍼드 잉글리시였는데 말이지요. 영어는 영국어이지 미국어가 아니거든요."

난 갑자기 그 원인이 무조건 일반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누구 책임이 더 큰가요?

"이런 사회분위기는 언론, 매스컴의 영향이 지대하지요. 참여연대가 계몽했으면 좋겠어요. 선진국이라고 하면서 특정국을 열거하고, 비구미권 나라에 대한 폄하적인 발언을 하는 신문이나 방송을 모니터해서 그런 신문들을 불매해야 합니다. 인종차별은 범죄예요. 영국에서도 타블로이드와 퀄러티 페이퍼는 다르게 하잖아요? 지식인들이 타블로이드를 볼 리는 없는데, 아마 대학 가서 타블로이드 보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지요? 한국에서는 조선일보같은 경우는 타블로이드죠. 지식인들이 그렇게 의식해야하고 불매운동 해야 하는데.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선>이나 마찬가지죠. 조선일보와 그의 집단은 사이비 종교와 같아요. 박정희 찬양이 종교이고 교주는 조갑제이고. 특히 조선일보가 드러내 놓고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은 구라파에서 누군가가 하일 히틀러 하는 것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것이지요. 조선일보가 애국애족 내세우면서 어떻게 친일파를 그렇게 추켜세우는지 모르겠어요."

난 누드 모델이 반드시 등장하는 <선>지를 사러 아침마다 동네 구멍가게에 줄을 서는 영국 서민층을 떠올리며 왜 조선일보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물어 보았다. 본인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할 부분일텐데.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하니까 그렇지요."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았느냐고 묻자 책보다 재미없었다고 했다. 내가 소녀적 감성으로 설원의 감동을 얘기해도 그는 "러시아를 제대로 모르고 만든 영화" 라고 딱 잘라 버린다. 그러면 <선 플라워>는 어땠냐고 하니까 "아-, 해바라기!-- 안 봤는데요." 블라디미르는 확실히 그림보다는 글자 쪽 사람임에 틀림없는가 보다. 다음 질문, 한국 사람들이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한다는데 정서적으로 러시아인들과 어떤 유사한 점이 있어서인가?

"정서적으로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도 사회구조 사회의식이 비슷한 게 의외로 많지요. 러시아는 구라파치고 주변부예요. 아주 주변부에 있지요. 러시아도 상부로부터의 변혁이 이루어지다가 멈춰서 아직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아요. 그런데 러시아가 다계층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요소도 많이 섞여 있지요. 상당히 재미있는 잡탕이지요. 한국인의 집단의식, 국가의식처럼 러시아도 동원능력이 제일 강한 게 국가주의죠, 외국에서 말하는 코리안 미러클이 가능한 것도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지요. 한국은 위로부터의 국가주의가 국민들에게 강요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먹혀들기도 한 것이죠. 러시아도 사회주의 시대일 때 명색이 초강대국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국가주의 탓이죠. 한국도 아이엠에프로 재벌 경제가 타격을 맞았고 러시아는 망가졌는데 이건 바로 국가주의의 약점이 드러난 거지요."

아까 그는 정치 깡패라는 말을 썼는데 난 그가 한국 정치인들의 어떤 모습에 가장 분노하는지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비정통적인 권력부 출신들이 많지요. 패거리 식의 결속력이 존재할 뿐이지요. 그 안에서는 오직 그 패거리 식의 충성심만 존재할 뿐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바라고 믿는 정직성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거지요.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집단의 논리에 어긋나니 물러나든지 복종하든지 둘 중에 하나인데 대부분 복종하지요. 낙천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제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일은 그 안에 그런 묶음에 이회창씨 같은 사람이 들어갔어야 했다는 거지요. 그 사람 박정희 때 판사 했는데 민족일보사건으로 몇 사람이 사형되었지요. 그때 1심에서 사형 내린 사람이 이회창씨였지요. 지난 전두환 미문화원 방화사건 때 문부식선생한테 사형을 확정시킨게 대법관 이회창씨였지요. 국가적인 테러 행위인 사형을 선고한 사람이 당시 정황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한마디 참회도 없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독재정권 하에서 봉직하고 그 정권을 섬기고 민주인사들을 사형을 내린 사람들을 낙천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개인적으로 안타깝지요. 그런 사람이 집권하면 더욱 독재적이 될 것입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더욱 경색되지요. 북한도 역시 독재 권력인데 한 독재가 다른 독재를 이기지 못해요. 미국 종속이 영구화 될 뿐이지요. 서방진영이 그래도 소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서방진영의 민주주의가 소련지식인들, 소련관리들에게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의식 있는 공산당 간부들이 독일식 사회민주주의에 매력을 느껴 자발적으로 제도개혁에 나선거지요. 만약 서방진영도 소련처럼 전체주의 사회였다면 끝까지 대립했을 겁니다. 민주가 비민주를 이끌어 내부로부터 개혁을 유도한 거지요. 그렇지요? 한국도 좀더 소프트한 정권이 개혁을 유도하기가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요?"

한국정치에 관한 얘기가 너무 아슬아슬해져서 나는 초점을 조금 바꾸고 싶었다. 참여연대를 엄청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그렇다면 친구로서 우리에게 주문 하고픈게 있을텐데,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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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특히 조심하라고 하고 싶군요. 한국에도 이런 속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 경실련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래요. 안타까운 것이지요. 한국이 워낙 권력중심 사회라서 그런 거지요. 한국의 권력은 집단주의 연고주의 라서 가까이 가면 빠져 나올 수가 없어요. 이수성씨 같은 경우만 봐도 그래요. 학자로 남았으면 좋았을 분인데, 한국의 권력이란 사람을 철저히 버려놓고 말아요. 사실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냄새가 안 좋아요. 그러나 권력하고 접촉을 안 할 수는 없지요. 한국이 철저히 권력중심 사회니까 거리를 유지해야해요. 거리를 유지해야해요. 지금까지는 중립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권 비판하면서 독립성 유지하고 엘리트 의식을 배제하라는 거지요. 한국사회는 글쓰는 사람과 글 읽는 사람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지요. 문화적인 권위를 가진 지식인, 그 글을 읽는 지식인. 그리고 글을 읽지 않는 대중들이 있는데 너무나도 글쓰는 사람들이 권위의식을 갖고 있어요. 제가 그걸 많이 느끼는데요. 한국이 원래 선비 나라라 문화적인 것을 높이 사지요. 러시아에서도 대학 교수라면 교육노동자죠. 권위의식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지식인들은 옆에서 자문을 해주는 정도이어야 하고 사회대중인사들이 주축을 이뤄야한다고 봐요. 조선시대 양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해요. 한국은 먹물들이 너무 세요. 이론가들이 너무 득세해요. 학생운동에서도 그렇고 말이지요."

그는 한국지식인들과 대학 사회에서 지내오면서 권위의식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한 듯 보였다. 이제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에 대하여 가르칠 텐데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정립시킬 것인가?

"아, 한국과의 관계요? 사돈간이죠. 아내가 한국인이니까요."

그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일어섰다.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이 아주 흔한데 우리로 치자면 영철이, 영수니 그런 이름이라고 덧붙여 주었다. 그는 인텨뷰 도중 네 번이나 핸드폰을 받았다. 대부분 그의 부인 마리나씨 한테서 온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사야하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인텨뷰 한다고 앉아 있으니 속이 얼마나 탔을까. 핸드폰을 갖고 가리키며 '러시아에서는 이런 것 들고 대학교에 들어갔다가는 잡상인이라고 출입금지 당했을텐데 한국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머쓱해 했다.

한번 이사하는 것은 집에 두 번 불나는 것보다 더하다는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그는 서둘러 복잡한 서점 입구를 빠져 나갔다. 동학혁명이니 갑오경장이니 하며 근대사까지 꿰뚫은 그의 박학다식한 언변과 정연한 논리에 난 한 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저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한국은 똑바로 가르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러시아 사람이 오슬로 가서 한국에 대해 가르친다니 한국인으로서야 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좋은 거지, 뭐. 그렇게 추운 나라에서 온 사나이는 다시 다른 추운 나라로 돌아갔다.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2000/04/03 23:20 2000/04/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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