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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 머리를 빨간 색으로 브리지를 넣어 봐. 난 브리지 한 머리가 예쁘던데.'

이 말이 바로 쉰을 넘은 남자 김종찬(52)씨가 한 말이다.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헤어스타일 변형을 두고 고민하는 한 여자 간사에게 주는 조언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는 날 계속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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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점심 먹으면서 얘기하죠. 샌드위치 잘 하는 곳을 내가 알아요.'

하면서 우리를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 태워 간 곳이 바로 C호텔 베이커리 숍이었다(이 때 빵 가게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우리(김형완 총수, 이미정 사진기자, 그리고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내가 참여연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뭘 먹기 위해 안국동을 벗어난 적이 있었냐 말이다. 그것도 벤츠를 타고! 말이 샌드위치지 호텔 샌드위치 바에서 서빙하는 빵은 확실히 계란 후라이에 토마토 케찹을 조금 뿌려 두 개의 빵을 붙인, 우리가 알아 온 샌드위치 개념을 뒤엎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말은 안 했지만 영국인 바탠더가 더러 한국말을 섞어가며 주문을 받는 그 바에서 우리의 김 총수께서도 세련되게 보이느라 상당히 고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흰 우유와 함께 빵을 주문하는 순진함을 보여 주셨다 (건강에 제일 좋다, 사실).

이렇게 단체로 향응을 제공받았지만 대가성은 아니니(절대로!) 나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보나 마나라고 예단하지 마시길.

가능하면 채식을 한다는 오늘의 주인공 김종찬씨는 얼른 보기에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정도가 아니라 앳되어 보인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벌써 샌드위치의 효과인가?). KBS 제1 라디오의 아침 생방송 <안녕하세요 김종찬입니다>를 진행하는 그에게 방송 일이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초 망설이다가 고백하듯이 입을 연다.

사실은 말이죠. 일 안하고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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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사람의 남자가 이 병을 앓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남자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10억만 있으면, 혹은 매달 얼마만 있으면 하는 등 액수에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결국 일하지 않고 은행이자로 살고 지고가 이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매일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보거나 좋아하는 분야 공부를 하거나 혹은 소설을 쓰면서 인생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은 게 소원인 이 남자들은 대부분 잊지 않고 꼭 단서를 붙인다. '물론 마누라는 직장에 다니고!'. 단군 이래 식솔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온 가련한 남성들에게 존재하는 집단무의식인 것 같다.

캐쉬로 한 30억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한달 이자가 대략 3천만원 정도 나오겠지요. 개인적으로 써봐야 제가 얼마를 쓰겠어요. 그걸로 재미있는 일,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령 예를 들면 신문에 그런 거 나오잖아요. 누가 느닷없이 나타나 돈을 주고 표표히 사라졌다. 그가 누군지 말하지도 않고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 너무 멋있어요. 그런 멋있는 거 해보고 싶은데, 이거 없으니 벌여야지요. 그렇지만 제가 하는 방송 일이 재미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재미 없으면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나와야지요.

그는 드디어 말의 실끝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가 진행하는 아침 방송을 듣고 있다보면 나직나직 톤이 질기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 아무리 시끄러워도 잘 자요. 잔다 마음 먹으면 잠이 들어요. 제가 몸무게가 80킬로그램 나간 적이 있는데 모두들, 잰, 끝났다. 막 그랬죠. 근데 3년만에 65킬로로 만들었지요. 올해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난 60킬로그램으로 되는 거라고 대답하지요. 제가 뭐 남다른 애국심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뛰어난 머리도 아니고 난 오로지 5킬로 빼는데 목숨을 걸겠다 하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뭘 해보고 싶다 하면 아무도 내 고집을 못 꺾은 것 같아요. 내가 뭐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해야겠다 싶으면 한 것 같거든요. 근데 지금껏 내가 결심하지 않은 게 바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거였지요. 2천년에 접어들면서 돈을 벌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목표액은 30억에서 50억. 그걸 통장에 딱 넣어두고서는 야, 참여연대 그림전 뭣하러 하냐 내가 그냥 주께, 최 열 총장 만나서 뭐 재는 기계를 하나 사야 되는데 하면 아, 사, 사 내가 돈 줄게, 할 수 있는 거지요. 연극구경 다니고 영화구경, 그림 구경하다가 아, 그림 좋으네 하면서 하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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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30억이 막상 손에 들어오면 그렇게 되기가 싶지는 않을 거라고 딴지를 걸자 그는 정색을 하면서 되받는다.

'아, 난 할 수 있다니까요. 난 그렇게 해요.'

그럼 구체적으로 돈벌 궁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이런 생각에 공감을 하고 돈벌 궁리를 들고 찾아왔어요. 그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의 도로에 관한 거지요. 기존의 우리 나라 도로에 완전한 혁신을 이룰만한 새로운 공법이 발견되었거든요. 우리나라 사람이 개발해 냈다는 거 아닙니까. 정부에서 신기술상 뭐 그런 것도 주고 그랬는데, 참, 그걸로 공사는 안 해요. 이거 재밌지 않아요? 정부가 이제껏 해 오던대로 하는 것을 안 바꾸겠다는 거예요. 이걸로 하면 노면이 좋아져 빗길에도 차가 미끄러지지 않고 소음도 절반으로 줄어들고, 빗물이 배수가 잘되어 땅에도 좋은 거죠. 환경친화적이라는 의미로 이름하여 에코 팔트예요.'

그는 마치 건설도로 교통부의 실무직원 앞에서 이렇게 좋은 일을 모르고 있어서 애통 터진다는 듯이 열심히 에코 팔트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 내가 건설부에서 힘있는 자라면 '응, 알았어, 그렇게 좋다면 한번 써봐야겠군, 한 이십 킬로 쫙 깔아봐.'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김종찬씨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우수성을 시험해 보여야 하니까 일단 영종도 국제 공항에서 상암동 경기장까지 도로를 깔 겁니다. 월드컵 경기시즌이 우리 나라에서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잖아요. 그때 비오는 도로를 쫙 달려오면서 물 하나 튀지 않는 것을 보면 야, 한국이 대단한 나라구나 하지 않겠어요?'

그의 말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아무도 못 말리게 되었다.

최 열 총장도 만났고 김명자 장관도 만났어요. 이제 대통령께도 자료를 보내드리려고 해요. 이런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이런 걸 해야한다. 그런 말씀을 드릴 거예요. 도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기존의 5분의 1정도 밖에 안 들어요.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서도 수주가 들어와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니 수출도 활발할 겁니다.'

0606_in_5.jpg 그럼 언제 사업에 착수하실 건가요?

지금 펀드를 모으고 있는 중이지요. 돈이 모이면 우리가 거저 깔아주는 거예요. 거저! (특히 강조를 했다) 국민의 돈 한푼 안 들이고, 그리고 나서 맘에 안 들면 그 위에 보통 식으로 다시 깔면 되지 않겠어요.'

이거 완전히 에코 팔트에 대한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랴, 좋은 일 하기 위해 돈벌려는 사람이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는데 매정하게 자를 수는 없는 일이다. 시사 자키라는 말도 있던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요?

아, 저도 그런 말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지금 하시는 일이 바고 그 시사자키라고 일컬어지는 일을 하시는 건데 이런저런 주제로 매일 달라지는 얘길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잖아요?

글쎄, 그게 매일 매일 바뀌면 재미있겠지요.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하는 일이 매번 주제가 바뀌는 것 같지만 그게 하나의 주제인 것처럼 우리나라 방송 일을 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르게 들리지만 결국 한 주제에서 맴을 돌고 있는 거지요. 일년 전이나 이년전이나 같아요. 형식과 외형이 조금 바뀔까 다른 것은 그대로예요. 그건 다시 말하면 본질은 그대로인 거지요.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봐서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지요. 한국사회의 문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요, 보세요. 올해도 린다 김 사건, 지금도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요? 그 사건이 왜 등장했다 왜 사라졌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호기춘 사건, 이건 또 뭐죠? 전부 그런 거예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란 게. 그리고 그런 게 뭐 갑자기 일어난 일인 것처럼 아니, 이럴 수가 한단 말이에요. 깜짝 놀래는 척 해야하고......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는 커피 테이블을 쳐가며 열변을 토했다. 난 내 비싼 녹음기가 떨어질까 봐 사색이 되어 안쪽으로 당겨 놓았다.

'이런 거 얼마예요? 나도 하나 사야겠다.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열흘에 책 한 권은 쓰겠는데.'

그렇게 할 말이 많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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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요. 제가 강연하는 내용이나 방송하는 것들을 책으로 엮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책 안 쓰냐고 물으면 농담으로 이렇게 대답하죠. 예수가 책 쓴 게 있느냐, 공자가 쓴 게 있느냐. 부처가 있느냐, 훌륭한 사람은 책 안 쓰는 법이다. 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아서 쓰는 거다. 하하... 전 게으른 탓에 책을 못쓰고 있는 거지요. 사실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해둔 게 있기 때문에 쓰긴 써야 하는데 자꾸만 미루고 있지요. 출판사에 미안한데... 젊었을 때는 책 쓰는 게 잔소리 같아 우습게 들렸지만, 물론 지금도 젊지만, 나이 오십이 되어 얘기 좀 하면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실수할 확률도 좀 적어지지 않겠어요. 여전히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리고 많이 틀린 말은 안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 딴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보여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욕을 얻어먹든 칭찬을 듣든 간에 제 얘기에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저더러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제 생각에 좀 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하시고 있는 일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들인데 김종찬 만의 독특한 관점, 자신만의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저만의 독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어떤 문제도 개인을 생각하는 문제에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이게 정말 한 사람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걸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다면 차이점이 되겠지요. 사회를 먼저 생각한다, 국가를 먼저 생각한다 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삶, 개인의 행복에 어떻게 작용하나 그걸 미리 생각하지요.'

그럼 개인중심주의적인 면이 아주 강한 것인데 물론 이기적인 것과는 구별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럼요. 전 아주 철저히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없으면 친구가 없고 국가도 없고, 그런 거 아니에요? 나라는 존재, 즉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남도 중요하다는 것, 모두 개체 별로 중요하고 모두 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그게 평화 아닌가요? 인정하지 않으면 그게 전쟁인 거죠. 정말 아주 중요한 점이에요. 어떤 집단, 조직이 개인을 협박하거나 위압하거나 하는 것이 저를 가장 화나게 하고 그 점에 제가 분개하지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는 커피에 설탕을 넣고 젓던 스푼을 손에 들고 높이 흔들며 언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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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중요합니다. 개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결국은 다 진정한 평등주의자도 진정한 평화주의자도 아닌 거예요. 제가 증오하는 게 차별주의자거든요. 차별주의의 시작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데서 시작하거든요. 누구나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런 편견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사회는 차별주의자 투성이에요. 저희 같은 직업의 사람은 프리랜서 아닙니까? 요즘은 돈을 잘 번다고 해서 '뜬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개인으로 뛰는 사람 보기를 우습게 보지 않습니까? 요즘이야 무슨 텔, 넷에 다닌다 하면 높이 봐주고 그랬지만 그전에는 현대니 삼성이니 하면 대단하게 봤지요. 그냥 중소기업에 다닌다하면 안 풀린 애라고 봤을 정도니까요. 개인이 능력껏 일하고 인정받는 사회로 결국 변해야 해요.'


운동 전도사라는 말이 있던데요,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시지요? 하루에 몇 시간정도 하시나요?

전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시간이 있으면 2시간 반에서 3시간하고 시간이 없는 날은 1시간 10분 정도 하지요. 한 달에 스무날 정도 하면 성적이 좋은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아주 건장해 보였다. 아주 보기 좋을 정도의 몸집인데 왜 굳이 체중을 더 줄이려고 하시는지요?.

살이 쪄 봐서 아는데, 살이 찌면 앉으면 기대고 싶고 기대면 드러눕고 싶고 그래요. 그런 것처럼 권세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닌가 싶어요. 탐욕의 시대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전 담배도 끊은 지 몇 년 돼요. 우리 가족병력이 고혈압인데 뇌졸중이 두려운 거지요. 할아버지가 4년, 할머니가 6년, 어머니가 10년 동안 앓아 누워 계셨기 때문에 전 20년이란 세월을 우환과 함께 살았어요. 어둡고 칙칙하고 가슴아픈 일이죠. '소식다동' 동양식 건강법을 지켜 죽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요.'

깨끗하게 죽으려면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그는 실제로 책상에 오래 앉아 일하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나쁜 자세를 예를 들어가며 어깨 올리기라도 꾸준히 해야만 한다고 충심으로 타일러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 꼬박꼬박 어깨를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하겠다고 난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하세요 김종찬입니다> 프로에서 너무 소프트하다는 평을 받지는 않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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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고음으로만 이야기하는데 익숙한 게 사실입니다. 가장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스마트 할 수 있을까 전 그 생각을 해요. 그것을 청취자들과 나누고 싶어요. 모두들 너무 원색적인 것을 좋아해요. 우리에게서 선동적이고 선정성인 성향들이 사라져서 문화적이고 지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래요. 전 사람들이 제게 '그 사람은 너무 부드럽지만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어요. 사람들은 방송을 할 때 상대방을 데리고 논다는 느낌이 들게끔 하는 것을 좋아해요. 히뜩하게 대하는 것이죠. 그러니 방송인들은 상대방을 긁어내리면서 자기가 올라가려는 거죠. 우리나라 방송이 그런 것을 넘어서야 해요. TV는 정말 너무 심해요.'


여기서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물어봐야겠다. 특히 방송과 관련해서.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체육관가서 슬쩍 말 걸어서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지요. 제 기준을 갖고는 있지만 방송이란 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방송이란 매우 공공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가격되는 것이니 지나치다는 말로 수식되는 의견을 내비치면 곤란하지요. 전 될 수 있으면 스팩트럼을 넓게 열어 놓으려고 해요.'

프로그램 진행상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어떤 타입의 사람이 가장 밉나요?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밉지요. 뻔한 얘기를 거짓말하는 것 보면 참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거짓말하느냐고 자꾸만 윽박지를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을 인터뷰 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요. 모르는 산을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하는 사람, 자기 말만 진리라고 하는 사람, 남의 말만 사람, 자기의견은 숨겨놓고 남의 말만 부질없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얘기하기가 싫지요.'

그는 이미 성년이 된 남매를 두었는데 둘 모두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조기 유학 보내셨나보지요?

그렇죠, 그런 셈이죠. 딸아이는 중 1때, 아들은 고1때 보냈지요. 그런데 아들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내려면 중1이나 아니면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 1학년 때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딸아이는 적응이 퍼팩틀리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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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한국교육에 대해 비판적이신 결과였나요? 라고 물으면서 혹시라도 조기 유학을 보낸 것에 대한 비난조로 들리지 않기를 바랬다. 사실 뉘앙스가 달리 들릴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자식 교육에 대해서 누군들 욕심부리지 않겠는가. 돈 있고 형편 되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교육을 시키고 싶은 게 모든 부모들의 바램인 것이다. 외국으로 보내든 부모가 다니던 고향마을의 학교에 그대로 보내든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 조기유학을 한마디로 '있는 사람들의 사치'라고 몰아 붙여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단지 남의 나라 가서 자식교육 시킬 생각이 전혀 눈곱만치도 들지 않게 우리나라 교육환경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그런 점이 없잖아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 가정 형편상 그럴 사정이 있었고...... '

그는 더 이상 그 얘기를 계속하는 대신 한국 교육의 문제점 중 내신 등급제에 대해 일갈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신 등급제 하라고 하면 좋은 학교 나와서 그러면 욕을 얻어먹겠지요. 그러나 전 국민 학교 때부터 한번도 원하는 델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 옛날에 할아버지와 부모님께서 절 사대부국을 보내고 싶어 하셔서 추첨을 했는데 그때부터 중, 고등, 대학 때까지 기구하게도 줄줄이 떨어진 거예요. 전 명문학교의 특혜 같은 것은 모르고 사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등급제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나라 대학도 특화 될 수 있는 거지요.'

그의 얘기를 듣자니 혹시 이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전 이상주의자는 아니예요.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몸바쳐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전 그렇지 못하죠. 제가 하는 일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요. 주변적인 일이예요. 방송 일을 하지만 오도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그런 생각해요. 언론에 대한 자유가 불충분한 이 상황에서 적어도 거짓말하지 않아야겠다, 왜곡된 소리, 오도하는 소리, 이것만 안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하지요.'

매일 아침 일찍 방송을 하고 나서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한 달에 네 다섯 번 강의 요청이 들어오고 글쓰는 일도 있고 다음날 문제에 대해 스터디하고 그러지요. 최근에 한양대에서 강연요청이 와서 갔지요. <21세기 방송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해달라고 갔지요. 뉴스가 이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해 주는 것이라고 믿지 마라, 뉴스는 여타의 상품처럼 생산되고 있다. 미디어는 돈이 되며 뭐든지 하는 것이다, 돈 되는 것은 다 판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21세기 방송 미디어 소비자의 역할, 수용자의 역할이다. 너희가 정의를 원한다고 하면 모두 정의를 파는 사회가 안 되겠느냐 뭐 그런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이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더니 결국 공감하더군요. 참여연대 가서 깔깔거리고 노는 거, 환경연합 가서 깔깔거리고 노는 거 그게 저의 낙이죠.

시민단체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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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학창시절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제일 그리운 시절인데, 그 이유는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이해타산 없이 해치워 보는 그런 시절이기 때문이지요. 시민단체에 가면 그 시절이 생각나요. 이해타산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치워 보는 것, 성인이 된 사람들이 모여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고통 때문에 번뇌하던 그 학창시절이 지금 돌이켜 보면 즐거운 시절이었어요. 시민운동이란 뭐겠어요? 제 생각에는 시민운동은 감시기능으로 치자면 핕터 같은 역할이죠. 꿈같은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 그렇게 바꾸자는 노력 아니겠어요.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유쾌해지고 쾌적해지고 편해지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니 결국 즐거운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그는 시사문제를 다루는 프로 아닌가. 나도 시사문제 전문 진행자 처럼 폼을 잡고 물어봐야겠다.

현재 남북 정상회담으로 모두들 한창인데 어떻게 보시나요?

꼭 필요한 일이죠. 통일을 향해 나가는 더 있어서 중요한 만큼 순결한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고 믿는데 과연 그런가 걱정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염결한 회담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혜로운 선지자가 있어 남북한 7천5백만 동포들에게 조금도 기대하지 말고 조금도 흥분하지 말고 그래서 조금도 실망하지 않게 그냥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이건 나의 바램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져요. 같이 살던 부부가 헤어지면 원수처럼 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인데 남북한 사이에도 이런 문제가 있죠. 그러니 더욱 따지고 번민하고 해서 만나야 하는데 만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털어내야 한다고 하면 아무 성과도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요.

대대로 서울에서 살아온 그는 특히 조부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넉넉한 살림의 할아버지께서는 새벽 세시 반이면 기침하여 가난한 이웃들이 밥 굶고 일터로 가는 것을 일일이 챙겨주신 분이다. 아침마다 신문을 받아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날의 뉴스를 읽어주시기도 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기대를 반도 채우지 못한 자신을 송구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 <아홉시의 앵커>였던 할아버지 처럼 그는 지금 출근길 시민들에게 세상살이를 성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손자를 아주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2000/06/06 23:33 2000/06/0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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