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파워인터뷰7] 성을 깨는 변호사, 최은순
인터뷰 :
2000/07/12 23:36

최은순 변호사요? 누구시더라? 갸웃거리던 사람도 성희롱 사건이나 군가산점 위헌소원건에 대해 얘기하면 아, 하고 도통하는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최 변호사는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은 세 명의 변호사중 홍일점이었고 군가산점 위헌판결을 받아낸 변호사 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그 동안 주로 우리사회 내에서 당연시 여겨왔던 문제들에 대해 정면도전하는 일을 해 왔다. 그래서 주로 남자들이 괴로웠다. 특히 성희롱 사건은 덜떨어진 남성들이 새로운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삶이 힘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 변호사를 만나러 가기 전 그가 들꽃 같은 인상의 여인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지만 난 그가 아주 당차고 터프한 여변호사임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벤더 색깔의 투피스가 아주 잘 어울리는 그의 모습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정말 데이지 꽃을 보는 듯 하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 창 밖으로 떡 버티고 서 있는 법원건물이 보였다. 창 밖의 건물과 내 앞의 여자 변호사. 영화나 TV드라마 무대 세팅으로는 그만이다. 영국 TV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법정드라마 <Q.C 카버나>나 존 그리샴의 소설 속 주인공 변호사들이 떠올랐다. 검은 가운을 길게 끌고 헨델의 머리 같은 가발을 덮어쓰고 재판정에 서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는 모습, 아니면 멋들어진 수트 차림으로 청산유수같고 딱 떨어지는 변론으로 검찰 측을 공박하는 변호사!
'우리 나라 변호사가 나오는 영화는 굉장히 시시할 거예요. 대사도 별로 없어요. 얼마나 심심한데요.' 그는 확실하게 진짜모습을 말해준다.
사실, 우리모두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거지요, 우리도 구두변론주의이긴 하지만 서류로 왔다갔다해요. 집중 심리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재판이 액티브 하거나 스피디 한 게 아니예요. 증인이 없을 경우 30초, 혹은 1분 안에 끝날 수도 있어요. 서면으로 소장을 내고, 변론하시지요 하면 소장 진술합니다. 하고 그러면 저쪽에서 서류가 던져지고 증거 내시지요, 하면 또 서류로 내고 ..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 영화로 만들면 시시하지요. 물론 형사재판일 경우 그보다는 다르지만 한 법정마다 하루에 사 오십 건 잡혀 있는데 나 혼자서 잘 났소 하면서 한시간씩 쓸 수도 없어요. 그랬다간 재판부도 싫어하고 다음 순서 기다리는 다른 변호사들한테 밉상 받기 쉽지요. 그러니 대부분 서면으로 제출하고 그 서류를 보고 판단 내리는 거지요.
어린 시절을 소읍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면 지방법원이나 검찰지청 앞의 <합동법률 사무소> 간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흰색 페인트칠이 된 미닫이 유리문 위에 검은 붓글씨로 무슨 무슨 변호사라는 이름이 무미건조하게 쓰여져 있었다. 어린 생각에도 저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벌어먹고 사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쯔쯔, 정말 부질없는 걱정이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들어서 보는 변호사 사무실, 최 변호사가 일하는 로 펌은 아주 바빠 보였다.

우리 말로 하면 법무 법인인데 기존에는 대형 로 펌이 몇 개 있었지만, 우리 정도의 규모(새길 로 펌은 모두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되어있다)로는 별로 없었지요. 요즘은 개인변호사들이 함께 사무실을 열고 있어 이런 형태가 늘어나고 있어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과도기인거지요. 법률사무소가 로 펌 형태로 늘어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법률수요가 다양화 되어간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지요. 또 변호사 혼자서 개업하기에는 비용부담이 되니까요. 인건비, 운영비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여럿이 모여 있으니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법률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야지 경쟁력이 생기니까요.
올해 서른 중반에 이른 최변호사는 참여연대 정보공개단 단장이며 서울 YMCA 급발진 법률 구조단 일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의 전문분야가 제조물 결함문제이라서 그럴 것이다. 제조물 책임법 연구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말인가?
최근 제조물 결함과 관련해서 관심을 끄는 분야가 음, 자동차 급발진, 이런 걸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제조물이라는 것은 모든 것들이죠. 그런데 ...........
전문가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대부분 자기들의 설명에 귀기울여 듣고 있는 사람들이 실은 대부분 매우 어리둥절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조 결함에 대한 고의적인 결함, 등등 정말 맹렬히 귀를 세우고 들었지만 법률용어는 왜 이리 어려워야하는 것인가. 그래도 막상 내 일로 닥치면 이해가 되려나? 예를 들어 집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참 신나게 허준을 보고 있는데 TV가 펑 하고 폭발한다면? 그리고 얌전하게 주차해 있던 자동차에 키를 꽂는 순간 차가 앞으로 튕겨 나가버리는 경우? 그런데 이것을 사용자의 잘못으로 몰고 가려는 제조회사에 대고 제품에 대한 결함을 증명해야 하니 복잡하긴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자동차 급발진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문제이고 또 제조회사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결함을 밝혀 내기가 어려워요. 사실 아주 힘든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글쎄요, 뭐랄까? 다른 파트 일을 하게 되면 논리적으로 내가 왜 이 일을 할까하는데 대한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는데 여성진영의 일은 마치 그 일들이 모두 내자신의 일 같은 생각이 들어요. 대학 다닐 때 법대 여학생회를 만들고,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80년대 학번들의 특성이 사회적 대의 명분에 껌뻑 죽는 그런 분위기였잖아요. 86학년도인가 총여학생회가 조직되고 페미니즘이 퍼져나가고 그런 가운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법을 공부했으니 법이라는 무기로 여성들을 위해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사회에 나와 자연스레 된거지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건 없지요.
우조교 성희롱 사건을 맡게 된 배경은요?
지금은 성희롱이라면 그냥 통용되는 말이지만, 그때는 성희롱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때였지요. 여성분야 쪽에 계신 분들과 함께 공부하다가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접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지요. 그때 마침 그 사건이 터진 거지요. 박원순 변호사님, 이종걸 변호사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요.
그 판결로 어떤 변화가 있나요? 분위기가 좋아진 건가요?
일단 제도화가 되었지요.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시행되고, 여성특별위원회도 생겼고,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성희롱 조항이 들어가서 이젠 사업주에게 의무적으로 교육을 시키게 되었지요. 사회일반인들의 인식 정도를 계량화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제도 변화는 된 거죠. 당시 우리가 의도했던 게, 사회 전반적인 여성비하의식을 바꾸고자 한 거죠. 성희롱에 포인트를 맞추고 싶었던 것은 직장내 성희롱이었거든요. 사실 근로권이라든지 그런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다른 면으로 퍼진 측면이 있지요.
다른 방향이라면?
성희롱 개념 자체가 단순히 가벼운 정도의 성폭력, 즉, 처벌까지는 안 되는 단순한 지분거림이나 귀찮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직장 내 힘 관계, 즉, 상사와 여성 부하 사이의 힘 관계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많이 맞추려고 했지요. 그렇게 되면 단순히 가벼운 정도의 성폭력 같은 것, 요즘 흔히 말하는 성희롱에서부터 강제추행, 강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요즘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희석되어버리고 단순한 직장내 성희롱 정도로 그쳐 버렸어요. 아주 안타깝지요. 변호사들이 단체와 결합해서 일할 때 법리적인 자문을 하는 것 이상으로 정책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고 봐요. 성희롱 사건 경우 그 케이스에서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과 어떻게 제도화되고, 시행되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거든요.

혹시 법조계 안에서는 성희롱 사건 같은 게 없을까? 같은 판사들이나 변호사들 사이에서야 있기야 할까만(!) 법률 사무실이란 게 어차피 남녀직원들이 어울려 일 하는 곳이다.
성희롱 사건 소송하고 그럴 때 서울지방변호사회 모 변호사가 이화여대 졸업생 3명 인텨뷰 과정에서 음담패설하고 해서 그 징계를 당했지요. 여성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는 된 거지만 근본적인 의식 변화는 멀었지요. 여성에 대한 진정한 파트너쉽을 갖고 있느냐, 그게 문제인 거지요.'
얘기는 성 (sex)차별에서 젠더(gender)차별로 넘어갔다. 가령 사무실에서 늦게 일하는 여직원에게 '아니, 아줌마가 집에 가서 밥 안하고 뭐 한다고 이러고 있느냐' 고 한 말씀 건네면 그게 바로 젠더 해라스먼트이다. 반대로 낮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남자더러 '아저씨가 밖에 나가 돈 벌 생각은 안하고 이래도 되는거냐' 하면 이것도 젠더 해라스먼트이다. 즉 다시 말하면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발언을 한 것만으로도 손해배상 책임유무 문제로 바로 들어간단다.
자기 능력에 맞게 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고용에 있어서 학력, 성, 나이가 원인으로 인해 차별이 있을 경우 다른 기구를 통해 해결하자는 그런 이야기가 최근에 있었지요. 능력이란 게 반드시 학력에 따라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성별, 학력, 나이 심지어는 용모까지 조건으로 나오는데 말이 안되지요. 그런 것으로 인해 능력, 기회의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결국 성희롱사건의 가장 베이스에 깔려야 하는 것인데, 많이 사장되었지요.
이때 전화가 울렸다. 그의 전화음성은 실제모습보다 더 프로페셔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도 개인적인 일로 최 변호사와 대면하게 된다면 벽에 걸린 저 시계의 초침이 달리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업의 경우와 일반 개인가사사건의 경우와는 다르지요. 그리고 케이스 별로 달라요. 상담단계에서는 무료로 할 경우도 많아요. 대기업의 경우 법률 자문을 할 때 변호사 일년 차는 12만원 기준이죠. 그리고 연차가 올라 갈 때마다 2 만원이 올라가요. 제가 8년 차이니 그렇게 계산하면 시간당(!!) 28만 원이 되지요. 그러나 조절을 하는 편이지요. 20만원에서 25만원 선으로. 큰 로 펌의 경우라 할지라도 일-삼년 차가 상담을 해서 문서를 작성하고 저 같은 연배가 스크린을 하도록 하지요. 일 이년 차가 다섯 시간 걸려 쓴 것을 저 같은 경우 30분에서 1시간 정도 스크린 하는 걸로 해야지 아니면 고객들 입장에서 볼 때 가격이 너무 높게 나오니까요.
맞는 말이다. 아무리 발등에 불이 떨어져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일단 급한 불이 꺼지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도대체 그깟 얘기 몇 마디 해주고 뭐 그리 비싸게 받는 거요'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고, 주사 맞고, 약 받고 해야 돈 값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법률 상담을 하고 많은 돈을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다 싶을 것이다. 마리오 푸조도 <대부>에서 서류가방을 든 변호사 한 명이 백 명의 건맨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다음 해에 사법시험에 패스했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대구에 나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대에 들어갔다. 어렸을 적에 아주 공부를 잘한 학생이라고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넌 공부를 잘하니 법대에 가라고 모두들 말했을 것이다.
제가 사시에 합격한 것은 순전히 운이죠. 바로 사시의 맹점이예요. 하하.. 전 특별히 법대에 가야지 하는 결심은 하지 않았는데 그냥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는 바로 변호사 개업을 했다. 시골에서 부모님들이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자식이 법대진학을 하면 그 순간부터 영감님 소리를 듣게 될 그날을 학수 고대하시는 게 그분들의 낙이 아닌가 말이다. 부모님 뜻을 그냥 어겼단 말인가, 무슨 특별한 결심이라도 있었나?
얼마 전 꽤 큰 로 펌에 있는 변호사가 얘기하기를 그 사무실에는 벌써 사법 연수생들이 50명씩이나 변호사 연수를 받겠다고 지원을 했대요. 그전에는 연수원 나올 때 지망순위가 법원, 검찰청, 그리고 변호사였거든요. 솔직히 법원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살기는 편하지요. 전관예우의 전통도 있고, 고객들이 '어느 법원에 계셨나요?' 라고 물으면 대답하기도 좋고......바로 변호사 시작하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부모님들께서는 단 3일이라도 좋으니 네 법복 입은 것보고 싶다고 저를 많이 말리셨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요.
부모님의 간청을 뿌리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기어코 설득을 시키고 자기 길을 고집한 최변호사도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정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진리를 체험하고 있다. 첫째는 이제 만 세살이고 둘째 아이는 겨우 오 개월 된 갓난쟁이다. 육아 이야기로 넘어가니 최변호사가 가장 심각한 표정이 된다.

영국 수상 부인 셰리 부스의 직업도 변호사이다. 얼마 전 마흔 다섯에 넷째 아이를 낳아 관심과 부러움을 샀던 그는, 물론 우리와는 '몸조리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해산한지 이틀만에 법정에 나서는 등 괴력을 보여주는 여성이다. 우리 나라 여성 변호사들은 출산휴가를 어느 정도 받나?
제가 이 사무실의 운영자, 사업주이기 때문에 비우면 비우는 만큼 저한테 손해가 되고 다른 변호사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니 쉬면서도 불안한 거지요. 우리 업무가 대체성이 없는 것이라서 자리를 비우기가 더욱 어렵지요. 서면작성에서부터 상담, 법정가는 것, 접견 가는 것...하여튼 변호사가 아니면 되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 고객 당사자들도 꼭 변호사와 직접 얘기해야지 안심을 해요. 출산 휴가 가 있는 동안 얼마나 원성이 자자했겠어요. 같은 여자들도 누군 애 안 낳아 봤냐라고 해요. 급한 상담 같은 경우 집 근처로 오라고 해서 하기도 했지요. 총 6주를 쉬었지만 중간중간 사무실에도 나오고 집에서도 일하고 했지요.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이 쉬셨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핏 내색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여자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할 거야. 그러나 마음 불편하게 산후조리를 했다손 치더라도 변호사란 직업은 특히 여성의 경우 최고 전문직이 아닌가. 높은 수준의 수입과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이니 남부러울 것 없겠다고 하니 펄쩍 뛴다.
로 펌에 고용되어 있는 여자 변호사들은 불쌍할 정도예요. 밥 12시 넘어서야 퇴근하고 아침 8시 반에 출근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밤을 새요. 돈을 번다고 하지만 어디에다 쓰겠어요. 삶의 질이란 게 돈만으로 해결이 안되지요. 첫 애를 2년 반 봐준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애들을 보자면 자기 집 아이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얘기해주시더군요. 삶의 질이니 주관적인 행복도로 치자면 변호사들은 그다지 행복하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모두들 소원이 일찍 은퇴하는 거라고 하는데 다들 그렇게 못하지요.
얼마 전 군가산점 위헌판결이후 거의 성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견디셨나요?
우리 사회가 저급해서 논쟁을 할 줄 몰라요. 논쟁이 싸움으로 가버려요. 논쟁이란 변증법적으로 나가서 합일점을 찾자는 것인데 판 깨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었어요. 남자들도 위헌소송하고 그랬잖아요. 물론 각하 되었지만. 그렇지만 조금씩 발전을 해가서 그나마 희망이 있는 거지요.

저나, 재판관, 청구인인 이화여대생들 모두에게 겁을 주더군요. 너의 신상정보가 모두 공개되어있다, 차 탈 때 조심해라 등등 정말 굉장했어요. 익명성 뒤에 숨어서 참 비겁한 거죠. 근데 독설, 욕설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어요.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결국면으로 끌고 가서 그렇지 사실 냉정하게 보자면 군대가서 당했던 것들을 거기다가 쏟아 붓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 말겠지 하고 지냈지요. 점차 수그러들더니 이젠 그런 말도 그쳤지요.
최변호사를 겁주려고 했던 남자들이라면 굉장히 머쓱해질 대목이다.
의사들 폐업에 대해서 전문직 이기주의라고 맹렬한 비난을 받았잖아요. 그전에 변호사들도 수입공개를 하자는 요구에 반대를 한 적이 있었지요? 전문직 이기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문직뿐만 아니라 모두들 자기가 처한 지위나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를 해결 할 때 합리적인 선과 사회적인 합의선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도가 지나친 거지요. 전문집단의 이기주의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긴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자면 전문가 처우문제가 부족한 것인데 이것을 함께 짚어 줘야 한다고 봐요. 전문가들에 대해서 해줄 것은 해주고 또 책임은 강하게 지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딸애가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어서 저금통을 하나 가득 채우면 사자고 했단다. 원하면 쉽게 살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란다. 종일 애와 떨어져 지내는 엄마치고는 엄한 교육법이다. 아이 원하는 것을 얼른 사주기가 더 쉬울텐데.
앞으로는 아동,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안티(anti -) 문제에서 일했다면 이제는 뭔가를 키워나가는 일에 주력하고 싶어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만, 예를 들어 성폭력이라면 어린이 성폭력 등 좀더 세분화된 파트로 일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요. 건전한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 변호사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아마 세상의 더 많은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제 그의 앞에 새로운 단계의 일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그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꿈꾸는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고 건강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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