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파워인터뷰9] 시민운동으로 인생을 바꾼 이옥숙
인터뷰 :
2000/08/24 23:38
그를 보자말자 '애교만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입고 온 무릎길이의 하얀 주름치마는 한바퀴 돌면 팽그르르 귀여운 나팔꽃이 피어날 것 같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며 착착 붙는 말솜씨가 녹아날 듯하다. 세상 괴로운 민원거리를 들고 참여연대를 찾아온 그 누구라도 안내 데스크에서 우리의 열혈 자원봉사 활동가 이 옥숙씨의 물음에 일단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뭘,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일'이라고 하자 그는 대뜸 정정한다.
일이 아니지요. 전 일한다고 생각해 본 적 한번도 없어요. 그냥 놀러 나오는 기분으로 해요. 재밌어서 하지요. 남들이 저더러 열성회원이라고 하는데 전 여가선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참여연대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바로 들어왔으니 초기 멤버예요. 그러니까 그때가 음.. 응 맞아, 김영삼 대통령 레임덕이니 김현철 독직사건, 한보사태 뭐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였어요. 어떻게 저런 일을 그냥 두나 하고 발을 동동 구를 때 참여연대가 소송도 하고 그러는 걸 보고 마음에 들었어요. 테레비에 난 박 변호사 얼굴도 처음 보고 그랬지요. 그러다가 한겨레신문에 참여연대 아카데미 강좌 광고를 보게된 거지요.
그는 압구정동 아줌마로 알려져 있다. 강남 쪽의 그 동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동네 사람들보다 부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삶의 관심사나 태도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들 한다. 서울토박이인 그는 압구정동으로 시집가서 이십 년 넘게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한겨레,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고 있다. '반골기질'로서는 충분조건. 혹시 한겨레의 창간멤버는 아니었나?
창간은 아니구요. 한겨레 나오기 전에는 동아일보를 봤는데 김중배 선생님 칼럼을 늘 읽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분 칼럼이 사라졌어요. 그러니 신문의 맛이 없어지더군요. 소금의 짠맛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이것저것 보다가 가판대에서 한겨레를 사서 보게 되었지요. 90년대 초반인가 그때부터 정기구독을 하였어요. 호호호...
그는 귀여운 웃음을 섞어가며 한겨레 구독경위를 얘기해준다. 민족신문이니, 국민의 신문이니, 당시 우리가 볼게 그것밖에 더 있었나 하는 말들보다 부담 없어 듣기 좋다.
그럼 참여연대 좋아할 분위기가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군요.
호호호 그렇지요. 전 그랬어요. 전 결혼을 일찍 했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금방 했으니 직장생활 경험 하나 없고 그랬어요. 완전 전업주부죠. 78년 12월에 결혼을 했는데, 아이 기르면서 박정희 유고, 12.12 사태 맞고 굉장히 우울했었어요. 80년 광주항쟁 보면서 울분이 솟고 화가 나더라구요. 발만 동동 구르고 그랬지요. 그리고 또 뭐가 있었나, 아, 학생들 데모 할 때, 학생들 데모 많이 했잖아요. 강기훈 분신사건, 이한열, 박종철..., 살림하면서 굉장히 속상했어요. 이 악몽 같은 세상, 좋은 세상이 올려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할 데도 없었어요.
시대 상황은 그 선봉에 선 청춘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아이 기저귀 갈아주던 한 새댁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그 시절 어느 날 아침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박종철을 생각했었다. 이렇게 머리를 물 속에 처박히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아마 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 홀로 선 채로.
주문한 팥빙수가 날라져 왔다. 넓은 유리그릇에 그득하니 담긴 빙수는 양이 많아 보였다. 저거 녹기 전에 먹어야 하는 건데, 얘기하면서 잘 되려나 하는 나의 고민은 그의 말에 빙수 그릇 안 얼음 녹듯이 없어졌다.
아, 푸짐하네. 우리 천천히, 편안하게 먹으면서 얘기해요. 네?
각자 앞으로 그릇을 당겨 놓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용산역 시절의 참여연대의 아카데미 강좌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한국현대사를 듣고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이뤄 심장을 강타하는 전율'을 느끼며 바로 참여연대로 발을 들여놓게 된 거다. 호감과 호기심의 환상적인 결과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지요. 전 그리고 교통편이 좋잖아요.집에서 30분밖에 안 걸려요. 그 전에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골프 많이 치고 수영도 많이 하고 백화점에서 하는 취미강좌도 열심히 다녔지요. 꽃꽂이니 뭐니 안 해 본 게 없어요. 그런 게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럼 다른 세상을 이미 한바퀴 돌아보신 거로군요?
아, 그럼요. 결혼은 일찍 했지. 몸에 에너지는 넘치지. 그래서 활동한 거예요... 호호호...요즘 젊은 부인들 보면 그렇잖아요. 아이 키우는 정보 교환한다고 만나고, 친목회 모여서 먹고, 동창회하고 그러잖아요.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고 해봤는데 그것도 싫증이 나더라구요, 뭔가 내게 유익하고 재밌는 게 없나 하던 중에 참여연대 강좌를 잘 들은 거지요. 백화점 강좌하고는 수준이 다르잖아요.
그는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위에 큰애는 대학생이고 둘째는 고등학생.
엄마가 바뀐 것에 대해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바뀌었나? 아, 골프 치고 다니던 것과 비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좋아진 거지요. 제가 골프친지 10년이 되었는데 그때는 한번 나가면 10만원 정도 들었는데 열심히 다닐 때에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갔거든요. 그러니 한 달에 아무리 못써도 50만원은 골프비용으로 쓴 거죠. 그런데 그 돈이 그대로 여유가 되니 좋아할 수 밖에요. 자동차도 있었는데 여기 다니니 지하철 타고 다니지요. 자동차 한집에 두 대 있을 필요가 없었어요. 자동차 유지비 안 들지, 생활비가 남았어요. 소비적인 생활을 지양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지향하게(그는 지양과 지향의 발음에 특히 힘줘서 말했다) 되었으니 잘된 거지요. 간사들도 검소하고 모두들 음식을 먹으면 나눠내고, 음식들도 소박한 것을 먹고 해서 본받았죠. 보통 여자들은 남편하고 돈 때문에 많이 싸우잖아요. 압구정동 그 안에서만 살면 상대적 빈곤감을 안 느낄 수가 없어요. 남들이 더 부자인 것 같고. 친구들하고 골프시합 했다가 지면 내 골프채가 나빠서 졌다고 바가지 긁고,. 누가 내차보다 더 좋은 차 갖고 나오면 신경질 나고, 골프 칠 때 입는 티 셔츠 하나에도 상표가 어느 게 더 좋은가 따지게 되고. 여기 오니까 그런 것 없잖아요. 난 압구정 아줌마라고 아무렇게 입고 다녀도 부티 난다 그러니.. 행복하지요. 호호호...'
그의 자원봉사활동은 처음엔 단순노동으로 시작했다가 차츰 내용이 난이도를 더해가면서 고급노동으로 옮겨갔단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가정 주부잖아요. 물론 운동이야 잘하지만 써먹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머리 안 쓰는 거, 단순작업 뭐 봉투 붙이기, 이사갈 때 청소하기, 떡나르기...(그는 팥빙수를 식기 전에 먹기 위해 간간히 말을 멈추었다. 그래서 난 기다려야만 했다.)... 음식 만들어 오기... 가정 주부들이 위축되잖아요. 전 제 자신이 굉장히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는 참여연대 4년 활동을 통해 무지무지 발전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모든 신문에 난 참여연대에 관한 기사를 오려 모으는 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여러 신문을 놓고 관련기사를 오려내면서 세상의 여러 관점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떻게 얘기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차이도 절감할 수 있었다. 자꾸 읽게되니 자신의 식견이 넓어짐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스크랩하는 짬짬이 요리기사도 오리고 실내장식 기사도 오리고 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핸드백 안에 '신문 쪼가리'가 넘쳐났었다.
그가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활동내용은 라디오 프로그램<여성시대>에 진출한 사건이다. 그 일은 단순노동에서 진일보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도 집에서 일할 땐 라디오 틀어두고 그러거든요. <여성시대>들으면서 언젠가 나도 편지 한번 보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제가 <100인 유권자 위원회>, <시민 로비단>모임을 했는데, 지금도 순진하지만 그때도 순진해서 뭘 하자 그러면 열심히 해요.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일하고 모임 있으면 출석도 잘하고 그랬지요. 그걸 편지로 써본 거예요. 일반시민들이 좀 알았으면 싶어서요. 그랬더니 정찬용 피디께서 이건 새로운 가정주부다,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싶어서 내줬지요. 새로운 운동을 할 때마다 편지를 썼지요. 프로진행상 같은 사람 것을 계속 실어 줄 수가 없다면서도, 그 사안 자체가 새로운 것이고 알려지면 좋은 거니까 결국 소개되었지요. 그래서 일년사이에 한 예닐곱 번 소개되었어요. 그게 고급운동이죠.
최장집 사건 터졌을 때는 여러 신문을 보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동아, 조선신문들이 전부 시커멓더라구요. 선전 문구도 참 자극적으로 뽑고. 가슴이 철렁하더라구요. 서점에 가서 월간 조선을 봤는데 나 같은 아줌마가 보기에도 이건 짜집기한 거드라구요. 그래갖구 큰 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제가 갖고 있는 한국현대사 책하고 비교해 가면서 읽고 밤새 글을 썼지요. 다 쓰고 나니까 새벽이 되었더라구요. 참 정열이 있었어요. 아침에 여성시대에 글을 보냈지요. 정피디께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신속하게 반응하는 가정주부가 다 있나 아주 신통한 가정주부라고 칭찬을 해주었지요. 방송에 글 썼다는 게 참 보람있었어요.
그는 참여연대 다니면서 컴퓨터 실력도 늘었다. 회원광장에 글 올리며 자신의 의사표현과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는데 그 재미가 너무 좋단다. 최근에는 파출소 소장 사건에 들어가 네티즌들과 의견을 모으고 있다. 딸이 엄마의 행동을 인터넷에 올려 세상에 알리고 그 엄마는 직위해제 되고...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어머니인 김경희 경위의 편에 서 있다.
이 문제야말로 가정주부들이 힘을 합치고 관심을 보여야할 문제인 것 같아요. 사법권, 정치권에 비리가 있다면 그런 것은 전문가들의 몫이 더 큰 것이지만, 이 문제는 건전한 상식만 갖고 있으면 가정주부도 여론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봐요. 혁명을 이룰 수 있는 거죠. 간통죄를 폐지할 수 있구요. 여성이 공적인 역할과 관계없이 사생활로 인하여 직위해제 당하는 거 부당하죠. 만약 남자였으면 이렇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이것을 문제삼는다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보통 여성들, 우리주부들이 할 수 있는 문제예요. 이건 전문가들이 안 나서도 되는 문제예요. 저더러 제발 그런 일에 나서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다해 준다면서 말리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일 인치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진보라고 봐' 막 그러죠.
그는 간통법과 국가 보안법은 같은 성질이라 열변을 토한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나라를 지켜주지 못해온 것처럼 간통법이 우리 가정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면서 파출소 소장 문제에 대해 분개해야 할 사항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이미 인터넷에다 그는 많은 이야기를 올려놓았기에 여기서 굳이 그의 의견을 더 이상 소개하지 않는다.)
전 잘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엄마도 아니에요. 우리 남편은 저더러 살림 잘못하면 비리를 폭로한다고 협박할 정도예요. 호호호..... .하지만 지금 성향보다 조금 바꿔 보자는 거, 그게 진보인 것 같아요. 이거 말되나? 호호호......
그는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 나면 TV와 라디오, 컴퓨터를 동시에 켜두고 일한다. 여성시대 들으면서 증권시세 보고, 회원광장에 글 올리고 그러면서 오전을 바쁘게 보낸다. 그는 참여연대 하는 건 뭐든지 좋아서 소액주주 운동 시작 할 때 삼성전자 증권을 사두었다가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소액주주 운동 참여하고, 돈도 벌었죠, 참여연대 와서 돈벌었죠, 실력 늘었죠. 주변 사람들이 존경해주죠. 이런 경우가 없어요, 호호호..... 그런데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싫어하세요. 보수적이신 분들이라서요. 재벌 개혁하자는 것 그런 것 싫어하시죠. 예를 들어 집안에 고려대 출신이신 어른들 말씀이, 우리는 하나라도 더 취직시켜주려고 애쓰는데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가 그러면 그 기업에서 고려대 출신 받아주니? 막 이러시는 거예요. 하하하...그리고 저더러 빨갱이래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시대가 풀렸으니 남이 듣건 말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이지만 괜히 난 주위를 살핀다.
제가 통일주의자거든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했는데 그 이후 공안사건 이런 거 굉장히 정독하고 관심을 기울였지요. 일찌감치 이 방면 사건에 눈을 뜬 거지요. 독재자들이 정권에 위기가 오면 간첩사건을 일으키는구나 그런걸 알았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관계가 냉전구도가 깨어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재는 계속되고,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면 정경유착이 될 수 밖에요. 독재정권일수록 정통성이 없으니 정치자금이 많이 들지요. 정권이 또 해먹고 또 해먹고 그러자니 정격유착 되죠. 그러니 국민들만 못살게 되죠. 그래서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에는 김경희 사건으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아 참 얼마 전 까진 아주 레미콘 문제가 있었죠.'
그는 마치 박식한 사회운동가처럼 좔좔 말을 쏟아낸다. 누가 이 여인을 아무 것도 모르는 전업주부라고 할 것인가! 직업이 주부이면 시장바구니 밖의 문제는 모른다고 쉽게 치부한 몰상식한 사람들은 이리 나와서 이 옥숙 여사를 바라봐야 한다. 여기 똑똑하고 솔직하고 마음 따뜻한 한 여성이 있다.
처음엔 제가 의도적으로 아주 레미콘 그분들을 멀리했지요. 왜냐하면 우락부락하니 시커먼 아저씨들이라서 나하고는 다른 부류구나 싶어서였죠. 우연한 기회에 제가 그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잖아요. 참여하고 보니 우리가 너도나도 잘살려면 노동운동이 필요하구나, 저 사람들이 혼자하기 힘드니 도와줘야겠다 했지요. 우리가 열심히 하니 그분들 말씀이 '자기 일이 아닌데 남의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 처음 봤다' 그러시더라구요.... 하하하. 전 먹고 살만하니까 남 돕는 게 재밌고 보람이지요. 정말 보람있었어요. 학벌은 국졸, 중졸이지만 참 교양 있고 좋으신 분들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서로 격려하면서 마침내 권리를 쟁취했지요. 전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어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시민운동에 대하여 주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주부들이 시민운동을 하면 우선 스스로들한테 좋다고 생각해요. 주부들은 시간이 융통성이 있으니까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지요. 시위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이런 데 나오면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자극이 되니까요. 교제 범위도 넓어지고. 주부들은 출산기, 육아기가 끝나면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그걸 활용해서 참여하고 배워가면서, 일을 통해 자신감도 얻을 수 있고, 세상 보는 눈도 넓어지고... 모든 주부들이 시민운동 하면 좋을 거예요. 나를 보더라도, 그쵸?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한 의도로 사회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도 주위에서 '출마 한번 해보시지요'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와이 낫'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정치판을 갈아보겠다는 의지와 새로운 세상 내 손으로 일궈 보겠노라는 부푼 꿈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 문제를 나쁘게 볼 수는 없겠지요?
에이, 어느 주부가 그런 야심을 갖고 나오겠어요. 하지만 제가 봐도 그래요, 자기 능력을 개발하고 자기 능력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어서 자신감이 생기지요. 그럼 '내가 큰일을 해보자'하는 생각에 '제가 의욕적으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는 분들이 자치단체에 있지요. 그런 분들을 야심이 있다라고 사람들은 매도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발성을 해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발성처럼 에너제틱한 게 없지요. 정치권에 시민운동가가 진출하는 게 언젠가는 필요하다고 봐요. 주부들이 세력화가 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참여연대 활동하시면서 실망한 일은 없었나요?
이런 말 막 해도 되나? 처음에는 좋은 일 한다는 환상을 갖고 일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있다보니 장단점이 보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무오류일 수 없는 것처럼 참여연대 전체 사업이 모두 옳고 완벽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지난번 옷로비 사건 경우, 전 참여연대가 너무 깊이 집요하게 개입했다고 봐요. 그렇게 크게 다뤄져야할 문제라고 보지 않았거든요. 특검제니, 청문회까지 열고, 넌센스라고 느껴졌어요. 그런데 부정부패방지 문제와 결부되어서인지 참여연대는 아주 전역량을 투입했잖아요. 참여연대라고 모든 일을 하느님 같이 해결할 수 있다고는 안 봐요.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요?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녹음기는 안보면서 주위를 살핀다. 난 '물론 해도 되지요. 그러자고 만난건데요. 못 할말이 뭐 있나요.' 하면서 확실하게 부추켰다. 인텨뷰의 제일원칙은 일단 상대방을 안심시켜서 말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과제다.
흔히 바깥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성스럽고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건 아니잖아요. 도덕운동단체가 아니잖아요. 억압된 권리를 찾기 위해 일하는 단체죠. 시민단체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모여서 힘을 모아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그 점이 좋은 거잖아요. 나쁜 사람도 시민단체에 들어올 수 있잖아요. 좋은 사람만 좋은 일 하란 법 있어요? 시민운동이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일부터 의식을 개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하기 쉽고 주변에 일어나기 쉬운 일들 말이에요. 제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래요. 아주 레미콘 일처럼 저변에서 시작되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운동, 그런 것들이 많아졌음 좋겠어요.
그는 오는 시월이면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대기업 이사로 있던 남편이 직장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간다. 그러나 그는 다소 불안해하고 있다. 제일 넓게 경험한 세계가 안국동이라는 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가서도 참여연대 캐나다지부를 만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무슨 일에나 참여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면서 난 당부했다.
'이제 누구 앞에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 전업주부라고 하지 마세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일'이라고 하자 그는 대뜸 정정한다.

그는 압구정동 아줌마로 알려져 있다. 강남 쪽의 그 동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동네 사람들보다 부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삶의 관심사나 태도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들 한다. 서울토박이인 그는 압구정동으로 시집가서 이십 년 넘게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한겨레,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고 있다. '반골기질'로서는 충분조건. 혹시 한겨레의 창간멤버는 아니었나?
창간은 아니구요. 한겨레 나오기 전에는 동아일보를 봤는데 김중배 선생님 칼럼을 늘 읽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분 칼럼이 사라졌어요. 그러니 신문의 맛이 없어지더군요. 소금의 짠맛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이것저것 보다가 가판대에서 한겨레를 사서 보게 되었지요. 90년대 초반인가 그때부터 정기구독을 하였어요. 호호호...
그는 귀여운 웃음을 섞어가며 한겨레 구독경위를 얘기해준다. 민족신문이니, 국민의 신문이니, 당시 우리가 볼게 그것밖에 더 있었나 하는 말들보다 부담 없어 듣기 좋다.
그럼 참여연대 좋아할 분위기가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군요.
호호호 그렇지요. 전 그랬어요. 전 결혼을 일찍 했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금방 했으니 직장생활 경험 하나 없고 그랬어요. 완전 전업주부죠. 78년 12월에 결혼을 했는데, 아이 기르면서 박정희 유고, 12.12 사태 맞고 굉장히 우울했었어요. 80년 광주항쟁 보면서 울분이 솟고 화가 나더라구요. 발만 동동 구르고 그랬지요. 그리고 또 뭐가 있었나, 아, 학생들 데모 할 때, 학생들 데모 많이 했잖아요. 강기훈 분신사건, 이한열, 박종철..., 살림하면서 굉장히 속상했어요. 이 악몽 같은 세상, 좋은 세상이 올려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할 데도 없었어요.

주문한 팥빙수가 날라져 왔다. 넓은 유리그릇에 그득하니 담긴 빙수는 양이 많아 보였다. 저거 녹기 전에 먹어야 하는 건데, 얘기하면서 잘 되려나 하는 나의 고민은 그의 말에 빙수 그릇 안 얼음 녹듯이 없어졌다.
아, 푸짐하네. 우리 천천히, 편안하게 먹으면서 얘기해요. 네?
각자 앞으로 그릇을 당겨 놓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용산역 시절의 참여연대의 아카데미 강좌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한국현대사를 듣고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이뤄 심장을 강타하는 전율'을 느끼며 바로 참여연대로 발을 들여놓게 된 거다. 호감과 호기심의 환상적인 결과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지요. 전 그리고 교통편이 좋잖아요.집에서 30분밖에 안 걸려요. 그 전에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골프 많이 치고 수영도 많이 하고 백화점에서 하는 취미강좌도 열심히 다녔지요. 꽃꽂이니 뭐니 안 해 본 게 없어요. 그런 게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럼 다른 세상을 이미 한바퀴 돌아보신 거로군요?
아, 그럼요. 결혼은 일찍 했지. 몸에 에너지는 넘치지. 그래서 활동한 거예요... 호호호...요즘 젊은 부인들 보면 그렇잖아요. 아이 키우는 정보 교환한다고 만나고, 친목회 모여서 먹고, 동창회하고 그러잖아요.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고 해봤는데 그것도 싫증이 나더라구요, 뭔가 내게 유익하고 재밌는 게 없나 하던 중에 참여연대 강좌를 잘 들은 거지요. 백화점 강좌하고는 수준이 다르잖아요.
그는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위에 큰애는 대학생이고 둘째는 고등학생.
엄마가 바뀐 것에 대해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바뀌었나? 아, 골프 치고 다니던 것과 비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좋아진 거지요. 제가 골프친지 10년이 되었는데 그때는 한번 나가면 10만원 정도 들었는데 열심히 다닐 때에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갔거든요. 그러니 한 달에 아무리 못써도 50만원은 골프비용으로 쓴 거죠. 그런데 그 돈이 그대로 여유가 되니 좋아할 수 밖에요. 자동차도 있었는데 여기 다니니 지하철 타고 다니지요. 자동차 한집에 두 대 있을 필요가 없었어요. 자동차 유지비 안 들지, 생활비가 남았어요. 소비적인 생활을 지양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지향하게(그는 지양과 지향의 발음에 특히 힘줘서 말했다) 되었으니 잘된 거지요. 간사들도 검소하고 모두들 음식을 먹으면 나눠내고, 음식들도 소박한 것을 먹고 해서 본받았죠. 보통 여자들은 남편하고 돈 때문에 많이 싸우잖아요. 압구정동 그 안에서만 살면 상대적 빈곤감을 안 느낄 수가 없어요. 남들이 더 부자인 것 같고. 친구들하고 골프시합 했다가 지면 내 골프채가 나빠서 졌다고 바가지 긁고,. 누가 내차보다 더 좋은 차 갖고 나오면 신경질 나고, 골프 칠 때 입는 티 셔츠 하나에도 상표가 어느 게 더 좋은가 따지게 되고. 여기 오니까 그런 것 없잖아요. 난 압구정 아줌마라고 아무렇게 입고 다녀도 부티 난다 그러니.. 행복하지요. 호호호...'
그의 자원봉사활동은 처음엔 단순노동으로 시작했다가 차츰 내용이 난이도를 더해가면서 고급노동으로 옮겨갔단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가정 주부잖아요. 물론 운동이야 잘하지만 써먹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머리 안 쓰는 거, 단순작업 뭐 봉투 붙이기, 이사갈 때 청소하기, 떡나르기...(그는 팥빙수를 식기 전에 먹기 위해 간간히 말을 멈추었다. 그래서 난 기다려야만 했다.)... 음식 만들어 오기... 가정 주부들이 위축되잖아요. 전 제 자신이 굉장히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가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활동내용은 라디오 프로그램<여성시대>에 진출한 사건이다. 그 일은 단순노동에서 진일보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도 집에서 일할 땐 라디오 틀어두고 그러거든요. <여성시대>들으면서 언젠가 나도 편지 한번 보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제가 <100인 유권자 위원회>, <시민 로비단>모임을 했는데, 지금도 순진하지만 그때도 순진해서 뭘 하자 그러면 열심히 해요.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일하고 모임 있으면 출석도 잘하고 그랬지요. 그걸 편지로 써본 거예요. 일반시민들이 좀 알았으면 싶어서요. 그랬더니 정찬용 피디께서 이건 새로운 가정주부다,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싶어서 내줬지요. 새로운 운동을 할 때마다 편지를 썼지요. 프로진행상 같은 사람 것을 계속 실어 줄 수가 없다면서도, 그 사안 자체가 새로운 것이고 알려지면 좋은 거니까 결국 소개되었지요. 그래서 일년사이에 한 예닐곱 번 소개되었어요. 그게 고급운동이죠.
최장집 사건 터졌을 때는 여러 신문을 보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동아, 조선신문들이 전부 시커멓더라구요. 선전 문구도 참 자극적으로 뽑고. 가슴이 철렁하더라구요. 서점에 가서 월간 조선을 봤는데 나 같은 아줌마가 보기에도 이건 짜집기한 거드라구요. 그래갖구 큰 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제가 갖고 있는 한국현대사 책하고 비교해 가면서 읽고 밤새 글을 썼지요. 다 쓰고 나니까 새벽이 되었더라구요. 참 정열이 있었어요. 아침에 여성시대에 글을 보냈지요. 정피디께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신속하게 반응하는 가정주부가 다 있나 아주 신통한 가정주부라고 칭찬을 해주었지요. 방송에 글 썼다는 게 참 보람있었어요.
그는 참여연대 다니면서 컴퓨터 실력도 늘었다. 회원광장에 글 올리며 자신의 의사표현과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는데 그 재미가 너무 좋단다. 최근에는 파출소 소장 사건에 들어가 네티즌들과 의견을 모으고 있다. 딸이 엄마의 행동을 인터넷에 올려 세상에 알리고 그 엄마는 직위해제 되고...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어머니인 김경희 경위의 편에 서 있다.
이 문제야말로 가정주부들이 힘을 합치고 관심을 보여야할 문제인 것 같아요. 사법권, 정치권에 비리가 있다면 그런 것은 전문가들의 몫이 더 큰 것이지만, 이 문제는 건전한 상식만 갖고 있으면 가정주부도 여론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봐요. 혁명을 이룰 수 있는 거죠. 간통죄를 폐지할 수 있구요. 여성이 공적인 역할과 관계없이 사생활로 인하여 직위해제 당하는 거 부당하죠. 만약 남자였으면 이렇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이것을 문제삼는다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보통 여성들, 우리주부들이 할 수 있는 문제예요. 이건 전문가들이 안 나서도 되는 문제예요. 저더러 제발 그런 일에 나서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다해 준다면서 말리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일 인치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진보라고 봐' 막 그러죠.

전 잘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엄마도 아니에요. 우리 남편은 저더러 살림 잘못하면 비리를 폭로한다고 협박할 정도예요. 호호호..... .하지만 지금 성향보다 조금 바꿔 보자는 거, 그게 진보인 것 같아요. 이거 말되나? 호호호......
그는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 나면 TV와 라디오, 컴퓨터를 동시에 켜두고 일한다. 여성시대 들으면서 증권시세 보고, 회원광장에 글 올리고 그러면서 오전을 바쁘게 보낸다. 그는 참여연대 하는 건 뭐든지 좋아서 소액주주 운동 시작 할 때 삼성전자 증권을 사두었다가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소액주주 운동 참여하고, 돈도 벌었죠, 참여연대 와서 돈벌었죠, 실력 늘었죠. 주변 사람들이 존경해주죠. 이런 경우가 없어요, 호호호..... 그런데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싫어하세요. 보수적이신 분들이라서요. 재벌 개혁하자는 것 그런 것 싫어하시죠. 예를 들어 집안에 고려대 출신이신 어른들 말씀이, 우리는 하나라도 더 취직시켜주려고 애쓰는데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가 그러면 그 기업에서 고려대 출신 받아주니? 막 이러시는 거예요. 하하하...그리고 저더러 빨갱이래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시대가 풀렸으니 남이 듣건 말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이지만 괜히 난 주위를 살핀다.
제가 통일주의자거든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했는데 그 이후 공안사건 이런 거 굉장히 정독하고 관심을 기울였지요. 일찌감치 이 방면 사건에 눈을 뜬 거지요. 독재자들이 정권에 위기가 오면 간첩사건을 일으키는구나 그런걸 알았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관계가 냉전구도가 깨어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재는 계속되고,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면 정경유착이 될 수 밖에요. 독재정권일수록 정통성이 없으니 정치자금이 많이 들지요. 정권이 또 해먹고 또 해먹고 그러자니 정격유착 되죠. 그러니 국민들만 못살게 되죠. 그래서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에는 김경희 사건으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아 참 얼마 전 까진 아주 레미콘 문제가 있었죠.'

처음엔 제가 의도적으로 아주 레미콘 그분들을 멀리했지요. 왜냐하면 우락부락하니 시커먼 아저씨들이라서 나하고는 다른 부류구나 싶어서였죠. 우연한 기회에 제가 그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잖아요. 참여하고 보니 우리가 너도나도 잘살려면 노동운동이 필요하구나, 저 사람들이 혼자하기 힘드니 도와줘야겠다 했지요. 우리가 열심히 하니 그분들 말씀이 '자기 일이 아닌데 남의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 처음 봤다' 그러시더라구요.... 하하하. 전 먹고 살만하니까 남 돕는 게 재밌고 보람이지요. 정말 보람있었어요. 학벌은 국졸, 중졸이지만 참 교양 있고 좋으신 분들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서로 격려하면서 마침내 권리를 쟁취했지요. 전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어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시민운동에 대하여 주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주부들이 시민운동을 하면 우선 스스로들한테 좋다고 생각해요. 주부들은 시간이 융통성이 있으니까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지요. 시위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이런 데 나오면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자극이 되니까요. 교제 범위도 넓어지고. 주부들은 출산기, 육아기가 끝나면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그걸 활용해서 참여하고 배워가면서, 일을 통해 자신감도 얻을 수 있고, 세상 보는 눈도 넓어지고... 모든 주부들이 시민운동 하면 좋을 거예요. 나를 보더라도, 그쵸?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한 의도로 사회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도 주위에서 '출마 한번 해보시지요'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와이 낫'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정치판을 갈아보겠다는 의지와 새로운 세상 내 손으로 일궈 보겠노라는 부푼 꿈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 문제를 나쁘게 볼 수는 없겠지요?
에이, 어느 주부가 그런 야심을 갖고 나오겠어요. 하지만 제가 봐도 그래요, 자기 능력을 개발하고 자기 능력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어서 자신감이 생기지요. 그럼 '내가 큰일을 해보자'하는 생각에 '제가 의욕적으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는 분들이 자치단체에 있지요. 그런 분들을 야심이 있다라고 사람들은 매도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발성을 해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발성처럼 에너제틱한 게 없지요. 정치권에 시민운동가가 진출하는 게 언젠가는 필요하다고 봐요. 주부들이 세력화가 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참여연대 활동하시면서 실망한 일은 없었나요?
이런 말 막 해도 되나? 처음에는 좋은 일 한다는 환상을 갖고 일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있다보니 장단점이 보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무오류일 수 없는 것처럼 참여연대 전체 사업이 모두 옳고 완벽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지난번 옷로비 사건 경우, 전 참여연대가 너무 깊이 집요하게 개입했다고 봐요. 그렇게 크게 다뤄져야할 문제라고 보지 않았거든요. 특검제니, 청문회까지 열고, 넌센스라고 느껴졌어요. 그런데 부정부패방지 문제와 결부되어서인지 참여연대는 아주 전역량을 투입했잖아요. 참여연대라고 모든 일을 하느님 같이 해결할 수 있다고는 안 봐요.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요?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녹음기는 안보면서 주위를 살핀다. 난 '물론 해도 되지요. 그러자고 만난건데요. 못 할말이 뭐 있나요.' 하면서 확실하게 부추켰다. 인텨뷰의 제일원칙은 일단 상대방을 안심시켜서 말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과제다.

그는 오는 시월이면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대기업 이사로 있던 남편이 직장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간다. 그러나 그는 다소 불안해하고 있다. 제일 넓게 경험한 세계가 안국동이라는 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가서도 참여연대 캐나다지부를 만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무슨 일에나 참여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면서 난 당부했다.
'이제 누구 앞에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 전업주부라고 하지 마세요!'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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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 ㅋㅋㅋ ..근데 8년만에 이런 인터뷰가 있었나 ..신가하기만.,..
글구 풋풋한 내모습 좋구만요..^^
권은정 샌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