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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첩과 볼펜을 높이 든 채 물었다.

'나이는요?'

'마흔 한 살입니다. 2000에서 59를 빼기하면 그렇게 나오죠 '

'결혼하신 지는 얼마 되셨나요?'

'아.... 그건 계산을 좀 해야되는데, 정확하게 말해야 됩니까?'

'그럼요'

'칠, 팔, 구..............팔십 칠 년인가 육 년인가....' 적어도 이십 초 이상 지났다, '아마 팔십 오 년에 결혼한 것 같습니다.'

결혼한지 십 몇 년째라는 대답을 얻기 위해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변호사에게 취조 조의 질문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 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결혼 기념일 같은 거 안 챙기시나 보지요?'

'그건 뭐, 결혼 초창기에 가족회의를 열어서 각종 기념일에 관한 폐지안을 내서 통과시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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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회의 참가인원은 두 명. 그와 신혼의 아내 이외에 누가 있었겠는가! 신랑이 제안해서 주장하고, 새댁의 의견을 묵살하고 (분명히!) 통과를 시킨 것이겠지. 아내생일, 결혼기념일 등등 영국신사 같으면 해마다 수첩에 옮겨 적어야 할 주요일정들을 아예 폐지한 이후 아들하나, 딸 하나 두고 행복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아주 편합니다.'

생활의 지혜로 알아두라는 듯이 권고한다.

'진짭니더' 덧붙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부인은 아주 서운하실텐데요?

'잘 모르겠심미다.'

차병직 변호사는 인텨뷰 약속에 맞춰 왔다는 성의를 보이려는지 콧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늦긴 했지만 다행히 그보다 일찍 온 나는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방을 잊어버리고 왔다. 자동차에 내려서야 손에 들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아시다시피 그는 마흔을 겨우 넘은 사람이다.

'자주 이런 일이 있으신가요?

'뭐 있긴 하지만 조희연 교수만큼은 아니지요.'

애꿎은 우리의 조희연 교수만 또 롤 모델이 된다. 조 교수는 자동차를 몰고 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타고 갔다가 다음날 어디다 차를 두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꽤 애를 잡수셨다는 전설이 있다. 그 외에 '헤일 수' 없는 많은 사건이 있지만, 오늘은 차변호사의 차례니까. 약속장소에 오기 직전 그는 이화여대에 있었다. 이번 학기부터 대우교수라는 이름으로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기로 했단다. 오늘 처음으로 강의를 나갔다가 학과 사무실인지 어느 교수 연구실인지에 가방을 두고 그냥 나온 것이다. 혹시 아름다운 여대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넋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신가?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지요.'

그는 강하게, 아주 강하게 저항을 한다. 누가 뭐랬나, 그냥 물어본 건데. 어떤 남자들은 이런 류의 질문을 받으면 정말 완강하게 거부하는 몸짓으로 '아니라'고 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5월의 화단보다 더 아름답고 6월의 바람보다 더 싱그러운 여대생들의 눈빛에 정신을 잃는다는 것은 정상인의 반응이다. 하긴 강의실 천장에만 눈길을 둔다는 교수도 있다지만. 아무튼 차 변호사의 부인은 너그럽기도 하지, 나 같으면 여자대학 강의는 못나가게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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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그럴 겁니다. 근데 제가 이화여대에 강의 나가는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일정을 아내한테 알리는 정상적인 남편이 아닌 모양이다. 그럼 화목한 가정생활은 어떻게 하시나?

'주말이면 야구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러지요. 아이들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아이들도 아빠를 격의 없는 사이로 지내지요. 궁금하시면 집에 전화해 보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증거 입각주의, 아니 증언 제일주의.
그러나 금방 알 듯하다. 아들 광민이와 딸 수민이가 방학하면 그는 온 가족을 차에 태워 옛날 살아온 길을 거슬러 갈 줄 아는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김민기의 노래 '백구'를 듣고 눈물을 지을 줄 알게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 나는 그의 부인 이선주씨를 만난 적이 있다. 울산 방어진 국민학교 3학년때 하얗고 동그란 얼굴의 소녀로 다가와 결국 평생을 함께 하고 있는 그의 부인은 '차 변호사님이 잘해 주실 것 같다'는 주위 사람들의 인사에 고운 한숨을 폭-하고 내쉬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밖에서 내가 너무 못하니 걱정되시는 분들이 그렇게 물어봐 준 거지요. 너무 같은 대답을 들으니 뭐 한심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는 아내와의 일을 주로 '인 듯 하다, 일 것이다.'는 추측형을 많이 쓴다. 그의 가정 경영법은 독특하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안과 밖에서 다 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에너지 절감 의미에서 한군데에서만 잘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집안에서 잘하기보다는 집 밖에서 잘하는 게 더 낫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를 미남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쩐지 그 말이 얼른 나오지 않는다. 머리를 조금만 더 길게 하면 컴퓨터광고에 나오는 어느 청년과 닮아 보일 것 같고, 아주 길게 기른다면 '비천무'의 예고편에 나오는 검객과 닮을 것 같고(본영화는 아직 못 봤음). 문제는 머리다. 갑자기 내리지른 절벽같이, 어울리지 않은 길이로 깍은 그의 숱 많은 직선의 머리는 '차라리 박변이 부럽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도 고민거리다. (박변의 머리에 대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맹세코). 머리카락에서 시작된 그의 인상은 정말이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두 눈썹은 이제라도 금방 얼굴 밖으로 뛰쳐나가기 일보직전이다. 어떤 무엇이 그의 균형을 흔들어 놓았다. 잘 배열된 구조를 일부러 흩뜨려 놓은 것은 아마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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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할 때도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데는 일부러 가지 않지요. 남들이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데를 골라가기도 하고 일도 그런 것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지요.'

이런 것을 학술용어로 '괴팍하다'고 한다.

'난 절대로 누구 말을 듣고 하지는 않아요. 전 직업을 선택하거나 할 때 누구로부터 조언을 받거나, 특히 부모로부터 이런저런 간섭을 전혀 받은 사실이 없거든요. 예를 들어 법과대학을 선택한 거나, 변호사가 된 거라든가 제가 혼자서 결정한 거지요.'

그의 가방 안에는 원고지가 들어있다.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그 종이에 플러스 펜으로 글을 쓴다.

'전 컴퓨터 사용 안합니다. 처음에 컴퓨터 나왔을 때 써 봤지요. 그러다가 모두들 컴퓨터가 없으면 난리 난다는 듯해서 전 다시 펜으로 돌아섰지요. 아마 우리 나라의 정치적인 모순, 구조적인 모순에 맞닥뜨리려는 심정의 발로가 아닌가 싶어요. 학교 다닐 때는 욕까지 먹어가면서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거부했지요.'

그럼 참여연대 일은 어떤 연유에서 하시는 것인가요?

'전혀 자발적이지 않은 동기지요 '

'누가 등을 떠밀었나요?

'박원순, 조희연, 서준식 이런 이들이 준비를 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하는 중에 포섭된 거지요. 그 꾐에 빠져서 시작한 거지요.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나와서 회의도 참석하고 해달라고 해서요. 이날 이때까지 온 거지요. 한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박 변호사가 하는 것을 보니까 미안해서 혼자 하라고 할 수가 없더군요.'

좋은 일은 그런 식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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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때문에 전화가 왔는데요.' 누군가 그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아, 거기 그 연구실에 없으면, 수위실에 가서 제 이름을 말하면 가방을 줄 겁니다.' 퀵서비스에 가방을 찾아 달라고 일을 시킨 모양이다. 가방을 놓고 다니는 그는 얼마 전 <긴 여행 짧은 생각>이라는 여행감상문을 엮어낸 덕분에 여행 전문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썩 잘 써내는 글 때문에 명칼럼니스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다시 자리로 앉은 그에게 물었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으셨나 보지요?

'뭐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고, 그냥 제목만 훑어본 정도죠. 중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문학에 대한 향수, 이런 게 많챦습니까, 그지요, 고등학교 친한 친구 중에는 문학평론가 된 이도 있어요. 전 아주 우스운 계기로 법과대학을 갔지요. 원래는 영문학과나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하자니 점수가 좀 남는 것 같아서 법과대학을 간 거지요. 근데, 이런 거 이야기 다해야 됩니까?'

'그럼요.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씀 하셔야지요' 마치 거짓말 기계를 앞에 두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순하게 얘기를 술술 풀어낸다.

'법과대학 출신이지만 다른 예술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습니까, 국내든 외국이든. 그래서 전공을 뭘 하든 무슨 관계 있으랴 하면서 갔지요. 중간에 독문과나 영문과로 전과를 할까 고민을 한 적도 있었지요. 그 대신 영문과로 가서 학점을 많이 땄지요.'

그에게 문학과 법학의 중간지점을 가리키라고 할 때쯤 퀵맨이 왔다. 가죽 조끼를 입은 그 맨은 검은 가방을 건네 준 다음 '칠천원입니다'라고 속삭였다. 주위를 살피면서 현금을 받아 쥔 그는 모든 퀵 맨이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른 데 미리 가야 되는 거 안가고 바로 왔습니다.' 아마 이 말이 팁을 요구하는 말인지를 차변호사가 알아들었을 때는 이미 오토바이탄 사나이는 다음 손님한테 가서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가방을 옆에 둔 그는 한결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는 한결 법무법인 사무실에 속해 있다. 돈은 많이 버시나요?

'우리 사무실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분배를 하기 때문에, 저 같이 일을 적게 하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미안해하면 깨끗하게 해결되는 거지요. 예, 쓸만큼은 벌지요. 지금 정도면 풍족한 거지요. 집에 생활비 갖다주면 되고, 사실 요즘이야 고정된 월급을 받으니 한달 수입이 얼마인지 알지만 그전 까진 내가 얼마나 버는지 잘 몰랐지요. (어, 주로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믹 재거 같은 인물들이 이런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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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시나요?

'다시 태어나도 저 이 직업을 선택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개혁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괜찮은 직업이지요. 싫으면 그만두지요. 그만 두는 사람도 있잖습니까(누군지 여러분도 아신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지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지요.'

예를 들면?

'지금하고 있는 일이지요. 참여연대 일이야 사회적으로 요구된 부분이고 또 여러분들이 칭찬도 해주고 하니까요. 학교 일도 지금까지 6년간에 해오고 있는데 처음 이년간은 아주 재밌었지요. 그런데 이젠 교수 안 하길 잘했다 싶어요. 자유롭게 연구활동해서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는 게 아니고 학교 일이란 게, 가서 떠들어야 되지요. 학생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보나 실용적으로 받아들이지요. 학교 내부에서는 수많은 잡무가 있지요. 큰 학교 같은 경우 교수들간의 파벌이 있지요.... 물론 아버지께서 교직에 몸담으셨던 분이라 늘 동경하던 직업이고, 학생들하고 얘기도 나누고 나름대로 과목의 의미를 전해주는 즐거움도 있지요.'

그는 아이들을 위한 인권교육을 주제로 한 책을 곧 펴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장점은 많다. 누가 뭐래든 사회적인 지위는 높고 풍기는 향취는 고급스럽지 않은가, 거기다가 경제적인 보증수표가 있다. 즉 있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으레 변호사라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고 또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변호사들은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요. 그것도 무리하게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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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철 대법관의 경우 3년간 7억을 벌었다. 변호사 수임료가 몇백만원에서 몇억원까지 가는 것이라니 전직대법관이면 그 정도를 그냥 눈도 깜짝 안하고 받게 되는가 보다. 보통 대졸자 일반 월급쟁이들은 평생 안쓰고 모아도 될까말까한 액수의 돈이다. 어떻게 하여 변호사라는 사람들은 그리 쉽게 벌 수 있을까?

'수임료라는게 옛날부터 높게 매겨진 전통 때문이지, 전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댓가라는게 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데서 얻어진 것인가 싶어요.'

'윤영철 같은 사람은 명예가 뭔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요. 대법관까지 하고 나서 책을 읽거나 집필활동을 하거나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헌법재판소로 불려가면 얼마나 보기 좋고 듣기 좋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더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대대손손 부를 누리도록 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상속제도를 아주 강화해서 재산의 팔구십 퍼센트를 세금으로 떼면 좀 덜하지 않겠습니까? 당대에 다 쓰게 말이지요.'

그는 사건을 맡는 것을 일종의 '사기치는 행위'나 같지 않느냐고 한다.

'사실, 전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고 약도 잘 안 먹는 편이죠. 내 몸을 내가 잘 모르는데 의사인들 뭘 알겠느냐 싶어서요. 마찬가지로 변호사의 도움을 빌어 일을 처리해야 할 정도면 그 일은 잘 안 풀리는 일이란건데, 한 가닥 희망을 걸고 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니 바로 '사기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거지요.'

들고 일어날 변호사 많을 것이다. (이 말 듣고 화내는 사람은 진짜 사기치는 사람일 가능성이 백퍼센트라고 하면 무마가 될까?) 그는 올해로 거의 12년째 변호사 일을 해오고 있다. 애초에 돈벌 생각이 없었으니 모은 돈이 없단다. 그냥 만족할 만큼 책 사보고 후배들 술값 내고, 맛있는 에스프레소 마시고.....

'아이들한테 재산 물려줄 생각은 애초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들이 알아서 벌어서 살겠지요.'

그는 테니스광이다. 자기 말로야 그냥 좋아하는 정도라고 하는데 오래전 부터 테니스를 해왔고 국제 경기 심판도 해봤다. 십여년 전에 베이징까지 가서 심판 연수를 받았다. 동네마다 룰이 다르고 그걸 갖고 하도 싸워대니 유권해석에 무게를 싣기 위해 심판 자격을 갖추었단다. 그런데도 아직 테니스 코트의 룰은 평정이 안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혹시 테니스경기 도중 도저히 분쟁이 풀리지 않으신 분들은 차변호사한테로 문의바람. 전화번호 02-723-5300)

킬리만자로를 오르셨지요? 책에서 힘들었다고 고백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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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스릴 있고 모험심이 발동하는 게 좋아요. 킬리만자로 정상도 아주 신비로울 정도는 아니지요. 알프스 설경보다야 못하지요. 감동 자체가 없진 않은데 그것 때문에 또 가고 싶지는 않지요. 감동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즐길 수 있을까, 없을까,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내려 와서 며칠간 다시는 못 올라 갈 것 같았는데 일주일 지나고 나니까 더 고난도의 산을 가고 싶어지더군요. 고통을 억지로 참는 쾌감 (이것을 마조히스트라고 하나? 사디스트라고 하나? 난 언제나 헷갈린다, 하여튼 둘 중에 하나 아닌가?)이 있지요. 제 정신에 이상이 있는지.'

그는 햄릿형 인간이다. 죽느냐 사느냐 머리를 싸매고 있어서가 아니다. 죽음 이후 어떤 것도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 햄릿은 죽음 이후에도 꿈을 꿔야 한다면 죽기도 저어된다라고 했다. 한 점 바람으로 살다가 가버리고 싶은 소망. SF 영화를 보면 레이저 총으로 순식간에 존재는 사라진다. 꿈도 슬픔도 없는 상태.

'요즘 장례문화에 대해 얘기 많이 하지요. 전 아직 죽는다는 생각은 안 해 봤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한번 죽는 거니까요. 전 납골당 같은 것도 싫어합니다. 그냥 강에 뿌려졌으면 좋겠어요. 실제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하셨어요. 범절 있는 집안이고 살림살이도 꽤 일구신 분이었는데, 매장준비까지 다해 두었는데 발인 전날 꿈에 나타나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작년에 저의 할머니가 오래 수를 하시고 돌아가셨는데 역시 화장했지요'

그는 죽은 후에 뭔가를 남기는 게 구질구질해서 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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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그에게 참여연대에 대하여, 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거의 상근하라는) 압력이 있어오지만 그는 승복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간사들이 내 말을 안들을 것' 같아서다. '이제까지 농담으로만 얘기하면서 지내왔는데, 내 말을 누가 진지하게 들어줄 것이냐'는 게 그가 내세운 이유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속박에 매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솔직히 이런 단체활동을 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없잖아 그런 점이 있지요.'

참여연대 나올 때는 어떤 감정으로 나오는가요?

'각오하고 오는 거지요.

무슨 각오?

'참자는 거지요. 전 참는 것은 아주 잘합니다.'

그의 말은 아주 잘 새겨 들어야한다. 아마 그가 참자고 하는 대상은 섬이 되고 싶은 그를 육지로 몰아가는 참여연대의 물결이 아니리라.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이 사회의 사악한 면면이다. 인간이 되어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는 이들의 몽매함과 그들의 폭력을, 그의 힘을 보태어 시민의 힘으로 분해시킬 때까지 참자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자유와 의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 아침 참여연대 회의에 나오고, 낮 동안 재판 틈틈이 참여연대 일을 하고, 그리고 일과 후, 다시 참여연대 계단을 오른다. 깡마르고 말수가 적은 듯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는 이 사나이는 자유로운 여행 같은 삶을 위해 어느 정도 타협한 듯 하다. 처마 아래 자유를 위해 의무의 마당에 나가 비를 맞기로.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2000/09/08 23:39 2000/09/0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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