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호] 우리나라 합의회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점 (3)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03/15 00:00
연재순서 (4회 분재)
1. 합의회의의 출발
2. 과민모의 참여
3. 합의회의 주제의 선정
4. 조정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5. 시민패널의 구성과 준비
6. 전문가패널의 선정
7. 언론의 문제
8. 정치권의 반응
9. 시민단체의 역할
10. 국제적 협력의 문제: TA기구, 외국 시민단체
11. 프로젝트책임자/사무국/주최기관의 문제
12. 본행사에 대한 평가 ( 평가의 기준: 합의회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인가?)
* 3회에 나눠 실으려고 했지만, 필자의 사정으로 1회 늘립니다.
7. 언론의 문제
합의회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합의회의란 대중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하고 논쟁적인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의 참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 합의회의에서 일반시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역할은 15명 내외의 시민패널 구성원에게 맡겨져 있다. 따라서 합의회의 개최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시민패널의 보고서 내용이 널리 보도되어 대중 사이에 다양한 형태로 토론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합의회의는 결국 소수 시민의 참여만으로 국한되어 그 의미가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회의의 개최 사실을 알리기 위한 작년 6월 15일의 워크샵(명동 유네스코회관)에 언론사 기자의 참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충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시도되었다. 언론에 대한 초기의 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조정위원중 한 분이었던 한겨레신문의 조홍섭 생활과학부장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황급하게 마련된 것이 7월 2일 오전 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가졌던 과학기술부 출입기자들에 대한 합의회의 소개브리핑이었다. 당초에는 10여개의 신문사 기자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참석하여 브리핑을 들은 것은 너댓 명뿐이었고 나중에 별도로 연락하여 보도자료만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보도가 된 것은 한겨레신문과 몇몇 경제신문, 시민의 신문 등이었고 아무튼 이로부터 이번 합의회의 개최가 일반인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언론에 대한 대책에서는 처음부터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고민하였다. 특정 신문사와 방송사를 후원사로 끌어들여 여기를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할 것이냐, 아니면 합의회의를 보다 광범위한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모든 언론사를 상대로 공평하고 무차별하게 자료를 주고 보도를 요청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또한 합의회의의 개최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언론 광고(시민패널 모집광고, 합의회의 본행사 개최공고)가 반드시 필요하였는데 이를 어느 언론사가 해줄 것이냐가 가장 절실한 사항이었다. 광고비를 내고 언론사에 정식으로 광고를 요청하는 것은 애초부터 예산의 제약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합의회의처럼 중요한 참여민주주의의 역사적 실험(그것도 전문가의 독점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과학기술분야에서!)을 언론사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다투어 보도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합의회의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거의 없는 국내 언론의 사정을 감안할 때, 그리고 주최기관이 언론에서 보도의 의무를 크게 느끼지 않는 (반)민간기구인 점을 감안할 때, 그런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긴 힘들었다. 아무도 경험이 전혀 없는 첫번째의 합의회의에서 그런 불확실성에다 모험을 거는 건 무리였고 결국 보다 현실적이라 생각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문사로는 한겨레신문을, 방송사로는 KBS-TV를 선택하여 후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는데, 전자는 합의회의에 처음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후자는 상업성보다 공익성을 우선해야 할 공영방송이라는 점이 주로 고려되었다. 신문사간, 방송사간의 경쟁구조와 친소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렇게 특정 언론사를 후원사로 선택하는 것이 나머지 언론사들을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지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실제로 초기엔 매일경제신문과도 후원 건이 논의되었으나 이런 이유 때문에 결국 성사되지 못했음), 안정적인 보도 창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이는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희생이라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말해 한겨레신문을 선택한 건 성공이었고 KBS를 선택한 건 대실패였다. 한겨레신문은 후원사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시민패널 모집광고와 본행사 개최광고는 물론이고, 이번 합의회의의 의의와 본행사의 경과 및 주요 결과를 알리는 여러 차례의 보도를 통하여 적극적인 후원 역할을 해주었다. 이렇게 합의회의에 대한 직접적인 보도뿐만이 아니라, 이번의 주제인 '유전자조작식품' 문제에 대한 국내외 기사 발굴(예컨대 카길사로부터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국내 수입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 등)을 통해 이번 합의회의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까지 해주었다. 덕분에 다른 언론사에도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한 기사가 간간히 실려, 사실 우리나라에선 합의회의를 열 만큼 널리 알려진 사회적 이슈가 못되었던 이 문제가 다행스럽게도 본행사 개최 무렵엔 꽤 중요한 이슈로 부각이 되었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1월 초에 정기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이완구의원에 의해 유전자조작 콩의 수입 사실이 폭로되고 이에 대처하여 정부에서 서둘러 '유전자변형 농수산물 표시제'의 도입방침을 발표한 일이었다.
KBS를 후원사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은 지금도 명확히 이유를 알 수 없고 불쾌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물론 TV방송사의 후원을 얻는다는 것은 신문사보다 훨씬 힘든 일로 여겨졌기에 일찌감치부터 더 정성스러운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부탁했던 것은 적절한 다큐멘터리프로("일요스페셜"이 주로 논의되었음)에서 합의회의를 다루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KBS 사장 등 공식적인 경로와 담당 PD들을 통한 비공식적 경로의 두 가지 설득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그런데 마침 사장단의 교체후 KBS는 대규모의 인사이동과 '개혁'으로 인한 내부 진통을 겪고 있었고, 따라서 "기다려보라"는 대답 외에는 몇 달 동안 아무런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10월말이 되어서야 그쪽 사정이 정리되어 새로 임명된 국장과 PD를 만나볼 수 있었으나, 반응은 "합의회의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시도이긴 한데 TV라는 매체에서 다루기엔 지루할 수 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영상효과도 있고 좋은 주제이지만, 국내외의 방대한 취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프로를 만들긴 어렵다.." 등의 소극적인 것이었다. 얼핏 그럴싸한 것 같지만 이런 이유들에 내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KBS보다 훨씬 적은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도 외국과 국내의 방송이 합의회의 관련프로를 훌륭히 만들었기 때문이다(아래 참조). 내 생각에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KBS의 인식부족과 무관심, 제작진의 타성, 시청률제일주의와 관료적 의사결정구조에 있지 않나 여겨졌다. 결국 KBS로부터는 합의회의 본행사가 끝나기까지 다큐멘터리 제작은 물론 간단한 뉴스 취재조차 전혀 없어 수개월에 걸친 설득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MBC나 SBS에도 일찌감치 알아보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무래도 상업성에 더 치중하는 그곳들보다는 공영성이 강한 KBS가 더 낫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처음 판단에 너무 매달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기다려보라'는 한마디에 다른 방송을 알아볼 생각을 못하고 질질 끌려만 다닌 꼴이 아닌가...
뜻밖의 곳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수확도 있었다. EBS-TV의 <하나뿐인 지구>라는 시리즈에서 "유전자조작식품, 과연 안전한가"라는 프로를 제작한다고 연락이 왔고 취재할 내용에 대해 자문을 구해 왔다. 8월 24일 방영된 이 프로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실체와 찬반론을 소개하면서, 후반에 관련 시민단체의 움직임으로서 우리 과민모의 회의 모습과 박병상선생과의 인터뷰, 그리고 사회적 대안 마련의 방향으로서 이번 합의회의 개최 사실을 소개하고 시민패널 후보 두 사람과의 인터뷰 등을 보여주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해 제작방영된 최초의 TV프로그램으로 기록될 이 프로는 내가 보기에 내용면에서도 상당히 짜임새가 있는 것이었다고 여겨진다("열악한 사정의 EBS가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프로를 만드는데, 재벌격인 KBS가 못만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프로는 9월 5일에 있었던 시민패널 1차 예비모임에서 유용한 오리엔테이션자료로 활용이 되었다.
또 하나의 수확은 케이블방송인 방송대학TV(OUN, 채널47)에서 후원을 받게된 일이다. 비록 공중파 방송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의회의 본행사를 본격적으로 취재하는 방송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본행사 첫날의 전문가발표만 취재해갔기 때문에 합의회의 전체의 모습이나 시민패널의 생생한 활동상을 소개할 기회를 잃은 점이 아쉬웠지만, 이는 방영될 프로가 <학술중계석>이라는 성격 때문에 갖는 제한점으로 이해되었다. 이 프로는 나중에 별도의 좌담회와 함께 편집되어 12월 16일과 12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되었다. 외국의 방송사에서도 우리 합의회의에 관심을 보인 곳이 나타났는데 그건 일본의 텔레비젼방송국인 TBS(Tokyo Broadcasting System)이다. 여기서 올해 3월중에 방영할 합의회의 뉴스다큐멘터리에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합의회의 내용도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마침 우리가 나중의 다양한 용도를 위해 별도로 의뢰 제작한 비디오필름이 있어 이것을 보내주었다. 아직 일본에서 만든 프로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외국의 방송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우리의 합의회의가 정작 국내의 공중파방송으로부터는 무관심 속에 외면당하는 현실이 서글프게 여겨졌다.
결국 이번 합의회의의 결과를 짤막하게라도 보도한 국내의 언론사를 꼽는다면,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신문사로는 한겨레신문, 국민일보, 조선일보, 시민의 신문, 환경일보, 보건신문, 녹색신문 등이고, 방송사로는 방송대학TV가 유일하며 그 외에 연합통신이 나중에 보도를 해주었다. 프로젝트책임자인 나의 욕심으로선 이 정도의 언론 보도로는 솔직히 불만족스럽다는 생각이다. 합의회의가 소수 시민의 참여로 끝나는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그 결과가 알려지고 이것이 시민사회 내부에 진지한 토론을 촉진하여 자연스럽게 여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돼야 할텐데, 이번의 합의회의 결과가 그 정도로 알려졌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합의회의 결론이 곧바로 정부의 유전자조작식품 규제조치로 반영된 작년 프랑스의 경우처럼 될 수야 없겠지만(프랑스의 합의회의는 정부의 위탁으로 열린 것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민간의 자발적 주최였으므로...), 적어도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은 보통 시민들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사려깊게 내린 결론에 사회가 경청하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임무가 아니던가?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며 이 정도의 언론 보도만으로도 우리나라 현실에선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영희교수의 말이 위로가 되지만, 이번 합의회의에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주요 언론의 무심한 태도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다음 번 합의회의를 추진할 때에도 언론에 대한 대책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다음과 같은 의문이 여전히 나에겐 남아 있다. 특정 언론사를 후원사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과연 효과적인가 아닌가? 공중파 TV방송이 합의회의에 관심을 갖게하는 묘안은 무엇인가? 혹은 이 모든 것이 민간기구로서는 한계가 있는 일인가?
▶ 다음 호에 계속
1. 합의회의의 출발
2. 과민모의 참여
3. 합의회의 주제의 선정
4. 조정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5. 시민패널의 구성과 준비
6. 전문가패널의 선정
7. 언론의 문제
8. 정치권의 반응
9. 시민단체의 역할
10. 국제적 협력의 문제: TA기구, 외국 시민단체
11. 프로젝트책임자/사무국/주최기관의 문제
12. 본행사에 대한 평가 ( 평가의 기준: 합의회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인가?)
* 3회에 나눠 실으려고 했지만, 필자의 사정으로 1회 늘립니다.
7. 언론의 문제
합의회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합의회의란 대중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하고 논쟁적인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의 참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 합의회의에서 일반시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역할은 15명 내외의 시민패널 구성원에게 맡겨져 있다. 따라서 합의회의 개최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시민패널의 보고서 내용이 널리 보도되어 대중 사이에 다양한 형태로 토론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합의회의는 결국 소수 시민의 참여만으로 국한되어 그 의미가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회의의 개최 사실을 알리기 위한 작년 6월 15일의 워크샵(명동 유네스코회관)에 언론사 기자의 참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충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시도되었다. 언론에 대한 초기의 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조정위원중 한 분이었던 한겨레신문의 조홍섭 생활과학부장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황급하게 마련된 것이 7월 2일 오전 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가졌던 과학기술부 출입기자들에 대한 합의회의 소개브리핑이었다. 당초에는 10여개의 신문사 기자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참석하여 브리핑을 들은 것은 너댓 명뿐이었고 나중에 별도로 연락하여 보도자료만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보도가 된 것은 한겨레신문과 몇몇 경제신문, 시민의 신문 등이었고 아무튼 이로부터 이번 합의회의 개최가 일반인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언론에 대한 대책에서는 처음부터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고민하였다. 특정 신문사와 방송사를 후원사로 끌어들여 여기를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할 것이냐, 아니면 합의회의를 보다 광범위한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모든 언론사를 상대로 공평하고 무차별하게 자료를 주고 보도를 요청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또한 합의회의의 개최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언론 광고(시민패널 모집광고, 합의회의 본행사 개최공고)가 반드시 필요하였는데 이를 어느 언론사가 해줄 것이냐가 가장 절실한 사항이었다. 광고비를 내고 언론사에 정식으로 광고를 요청하는 것은 애초부터 예산의 제약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합의회의처럼 중요한 참여민주주의의 역사적 실험(그것도 전문가의 독점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과학기술분야에서!)을 언론사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다투어 보도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합의회의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거의 없는 국내 언론의 사정을 감안할 때, 그리고 주최기관이 언론에서 보도의 의무를 크게 느끼지 않는 (반)민간기구인 점을 감안할 때, 그런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긴 힘들었다. 아무도 경험이 전혀 없는 첫번째의 합의회의에서 그런 불확실성에다 모험을 거는 건 무리였고 결국 보다 현실적이라 생각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문사로는 한겨레신문을, 방송사로는 KBS-TV를 선택하여 후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는데, 전자는 합의회의에 처음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후자는 상업성보다 공익성을 우선해야 할 공영방송이라는 점이 주로 고려되었다. 신문사간, 방송사간의 경쟁구조와 친소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렇게 특정 언론사를 후원사로 선택하는 것이 나머지 언론사들을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지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실제로 초기엔 매일경제신문과도 후원 건이 논의되었으나 이런 이유 때문에 결국 성사되지 못했음), 안정적인 보도 창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이는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희생이라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말해 한겨레신문을 선택한 건 성공이었고 KBS를 선택한 건 대실패였다. 한겨레신문은 후원사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시민패널 모집광고와 본행사 개최광고는 물론이고, 이번 합의회의의 의의와 본행사의 경과 및 주요 결과를 알리는 여러 차례의 보도를 통하여 적극적인 후원 역할을 해주었다. 이렇게 합의회의에 대한 직접적인 보도뿐만이 아니라, 이번의 주제인 '유전자조작식품' 문제에 대한 국내외 기사 발굴(예컨대 카길사로부터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국내 수입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 등)을 통해 이번 합의회의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까지 해주었다. 덕분에 다른 언론사에도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한 기사가 간간히 실려, 사실 우리나라에선 합의회의를 열 만큼 널리 알려진 사회적 이슈가 못되었던 이 문제가 다행스럽게도 본행사 개최 무렵엔 꽤 중요한 이슈로 부각이 되었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1월 초에 정기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이완구의원에 의해 유전자조작 콩의 수입 사실이 폭로되고 이에 대처하여 정부에서 서둘러 '유전자변형 농수산물 표시제'의 도입방침을 발표한 일이었다.
KBS를 후원사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은 지금도 명확히 이유를 알 수 없고 불쾌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물론 TV방송사의 후원을 얻는다는 것은 신문사보다 훨씬 힘든 일로 여겨졌기에 일찌감치부터 더 정성스러운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부탁했던 것은 적절한 다큐멘터리프로("일요스페셜"이 주로 논의되었음)에서 합의회의를 다루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KBS 사장 등 공식적인 경로와 담당 PD들을 통한 비공식적 경로의 두 가지 설득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그런데 마침 사장단의 교체후 KBS는 대규모의 인사이동과 '개혁'으로 인한 내부 진통을 겪고 있었고, 따라서 "기다려보라"는 대답 외에는 몇 달 동안 아무런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10월말이 되어서야 그쪽 사정이 정리되어 새로 임명된 국장과 PD를 만나볼 수 있었으나, 반응은 "합의회의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시도이긴 한데 TV라는 매체에서 다루기엔 지루할 수 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영상효과도 있고 좋은 주제이지만, 국내외의 방대한 취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프로를 만들긴 어렵다.." 등의 소극적인 것이었다. 얼핏 그럴싸한 것 같지만 이런 이유들에 내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KBS보다 훨씬 적은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도 외국과 국내의 방송이 합의회의 관련프로를 훌륭히 만들었기 때문이다(아래 참조). 내 생각에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KBS의 인식부족과 무관심, 제작진의 타성, 시청률제일주의와 관료적 의사결정구조에 있지 않나 여겨졌다. 결국 KBS로부터는 합의회의 본행사가 끝나기까지 다큐멘터리 제작은 물론 간단한 뉴스 취재조차 전혀 없어 수개월에 걸친 설득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MBC나 SBS에도 일찌감치 알아보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무래도 상업성에 더 치중하는 그곳들보다는 공영성이 강한 KBS가 더 낫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처음 판단에 너무 매달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기다려보라'는 한마디에 다른 방송을 알아볼 생각을 못하고 질질 끌려만 다닌 꼴이 아닌가...
뜻밖의 곳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수확도 있었다. EBS-TV의 <하나뿐인 지구>라는 시리즈에서 "유전자조작식품, 과연 안전한가"라는 프로를 제작한다고 연락이 왔고 취재할 내용에 대해 자문을 구해 왔다. 8월 24일 방영된 이 프로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실체와 찬반론을 소개하면서, 후반에 관련 시민단체의 움직임으로서 우리 과민모의 회의 모습과 박병상선생과의 인터뷰, 그리고 사회적 대안 마련의 방향으로서 이번 합의회의 개최 사실을 소개하고 시민패널 후보 두 사람과의 인터뷰 등을 보여주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에 관해 제작방영된 최초의 TV프로그램으로 기록될 이 프로는 내가 보기에 내용면에서도 상당히 짜임새가 있는 것이었다고 여겨진다("열악한 사정의 EBS가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프로를 만드는데, 재벌격인 KBS가 못만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프로는 9월 5일에 있었던 시민패널 1차 예비모임에서 유용한 오리엔테이션자료로 활용이 되었다.
또 하나의 수확은 케이블방송인 방송대학TV(OUN, 채널47)에서 후원을 받게된 일이다. 비록 공중파 방송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의회의 본행사를 본격적으로 취재하는 방송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본행사 첫날의 전문가발표만 취재해갔기 때문에 합의회의 전체의 모습이나 시민패널의 생생한 활동상을 소개할 기회를 잃은 점이 아쉬웠지만, 이는 방영될 프로가 <학술중계석>이라는 성격 때문에 갖는 제한점으로 이해되었다. 이 프로는 나중에 별도의 좌담회와 함께 편집되어 12월 16일과 12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되었다. 외국의 방송사에서도 우리 합의회의에 관심을 보인 곳이 나타났는데 그건 일본의 텔레비젼방송국인 TBS(Tokyo Broadcasting System)이다. 여기서 올해 3월중에 방영할 합의회의 뉴스다큐멘터리에 일본과 더불어 한국의 합의회의 내용도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마침 우리가 나중의 다양한 용도를 위해 별도로 의뢰 제작한 비디오필름이 있어 이것을 보내주었다. 아직 일본에서 만든 프로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외국의 방송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우리의 합의회의가 정작 국내의 공중파방송으로부터는 무관심 속에 외면당하는 현실이 서글프게 여겨졌다.
결국 이번 합의회의의 결과를 짤막하게라도 보도한 국내의 언론사를 꼽는다면,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신문사로는 한겨레신문, 국민일보, 조선일보, 시민의 신문, 환경일보, 보건신문, 녹색신문 등이고, 방송사로는 방송대학TV가 유일하며 그 외에 연합통신이 나중에 보도를 해주었다. 프로젝트책임자인 나의 욕심으로선 이 정도의 언론 보도로는 솔직히 불만족스럽다는 생각이다. 합의회의가 소수 시민의 참여로 끝나는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그 결과가 알려지고 이것이 시민사회 내부에 진지한 토론을 촉진하여 자연스럽게 여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돼야 할텐데, 이번의 합의회의 결과가 그 정도로 알려졌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합의회의 결론이 곧바로 정부의 유전자조작식품 규제조치로 반영된 작년 프랑스의 경우처럼 될 수야 없겠지만(프랑스의 합의회의는 정부의 위탁으로 열린 것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민간의 자발적 주최였으므로...), 적어도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은 보통 시민들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사려깊게 내린 결론에 사회가 경청하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임무가 아니던가?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며 이 정도의 언론 보도만으로도 우리나라 현실에선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영희교수의 말이 위로가 되지만, 이번 합의회의에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주요 언론의 무심한 태도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다음 번 합의회의를 추진할 때에도 언론에 대한 대책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다음과 같은 의문이 여전히 나에겐 남아 있다. 특정 언론사를 후원사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과연 효과적인가 아닌가? 공중파 TV방송이 합의회의에 관심을 갖게하는 묘안은 무엇인가? 혹은 이 모든 것이 민간기구로서는 한계가 있는 일인가?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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