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호]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중시되는 기술정치*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03/15 00:00
150여년 전에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자신의 저서에서 정치적으로 활기에 가득차 있던 당시 미국의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의 미국 사회는 증기기관차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공동체 생활에 대해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정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던 그런 곳이었다:
어떤 나라들을 보면 그곳의 주민들은 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정치적 특권들을 이용하는 데 대단히 인색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간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를 편협한 이기주의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이 그의 행위반경을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로 제한하도록 선고를 받는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의 절반을 강탈당한 격이 될 것이다; 그는 일상적으로 영위했던 생활 속에서 엄청난 공허함을 느낄 것이고, 그의 비참함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1
이러한 상황은, 과반수를 간신히 넘는 수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선거에 참여하고 지역정치에 대한 참여는 이보다 훨씬 더 저조한 오늘날의 미국에는 분명 적용되지 않는다.2 이처럼 정치적 참여가 줄어든 것에는 분명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그 중에서 특히 기술의 발전이 미친 영향은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도 복잡미묘한 것이었다. 여기서 대서양 건너편에서 있었던 사례를 하나 생각해 보면 유익할 것 같다:
스페인 북동부의 작은 마을인 이비에카(Ibieca)에서는 1970년대 초반을 통해 집집마다 수도물이 공급되었다. 수도관이 각 가정에 설치되자 이비에카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각 가정은 점차적으로 세탁기를 구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마을의 부녀자들이 빨래를 손으로 비벼 빨기 위해 공공 빨래터에 모이는 일은 드물어졌다. 기술도입의 결과 이제 힘든 작업들을 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의 사회생활은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한때 활발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소였던 마을의 공공 우물과 빨래터는 이제 거의 버려졌다. 남자들은 예전에 물을 운반하는 것을 도와 주었던 아이들이나 당나귀들과 가졌던 편안한 친숙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빨래터에 모이는 것을 그만두었고, 이에 따라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부여해 주었던, 남자들이나 마을 생활에 대한 가십(gossip)도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수돗물의 공급은 이비에카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주었던 강한 유대감―사람들 서로서로간에, 동물들에 대해, 그리고 대지에 대해 갖고 있었던―을 파괴하는 데 일조한 것이었다.3 그러한 공동체의 상실은 그 자체로도 뼈아픈 것이지만, 이와 함께 특정한 정치적 위험까지도 같이 가져왔다: 사회적 결속력이 약해짐에 따라 정치적 행동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마저도 약화되었던 것이다.4
이 얘기는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의 우화인가? 이비에카 사람들처럼, 우리도 겉보기에 유익하고 해가 없어 보이는 기술 변화들을 묵인하고 있다. 이비에카 사람들은 편리함과 생산성, 경제적 성장을 약속해 주는 기술혁신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뒤에 숨겨진 대가를 미처 예측하지는 못했다: 바로 그 기술혁신은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소외, 공동체의 해체와 정치적 무력화를 동시에 가져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 변화는 경제적 보상과 사회정치적인 퇴락 사이의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항상 포함하는 것인가?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거래를 피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기술정치를 완전하게 발전시켜야만 한다―아직 정치적 진보파들조차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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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민주주의
여기서 제안하는 기술정책에 대한 접근방법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기본적인 사회적 환경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덕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참여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동시에 러트거스 대학(Rutgers University)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가 "강한 민주주의(strong democracy)"라고 불렀던 평등주의적 분권화와 연합의 체계를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5 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로는 뉴 잉글랜드(New England)의 마을 모임, 스위스의 자치촌락이나 자치주(州)들의 연합, 그리고 동료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에 의한 재판의 전통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강한 민주주의는 19세기 말 미국농민동맹(American Farmers Alliance), 1960년대의 민권 운동, 1980년대 폴란드의 연대노조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방법론이나 운동목표에서도 잘 드러난다.6 이 각각의 경우들에 있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나서서 행동하는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소리높여 외쳤다.
만약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만약 기술이 그러한 사회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면, 이로부터 기술적 설계와 실행은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내용상의 측면에 있어, 기술은 강한 민주주의 그 자체를 지키려는 우리의 근본적인 관심사와 양립가능해야만 한다. 그리고 절차상의 측면에 있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발전해 나가는 기술적 질서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확장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표 1. 민주적 기술을 위한 설계기준의 잠정적 체계
민주적 공동체를 향하여:
A. 공동체적/협동적 기술, 개인화된(individualized) 기술, 그리고 공동체간(inter -community) 기술 상호간의 균형을 추구한다. 권위주의적 사회관계를 세우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노동을 향하여:
B. 작업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실행들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것을 추구한다. 무의미하고, 심신을 쇠약하게 하며, 또 여타의 다른 방식으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기술적 실행들을 피한다.
민주적 정치를 향하여:
C. 사회경제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사회·정치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추구한다.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집단간, 조직간, 정체(政體)간의 위계적 권력관계를 부추기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자치(self-governance)를 확립하기 위하여:
D.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 결과들(예컨대, 환경적 위해나 사회적 해악)이 지역적인 정치체의 관할 경계 내부에 한정되도록 한다.
E. 지역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한다. 대외의존을 심화시키고 지역적 자율성의 상실을 초래하는 기술을 피한다.
F. 전지구적 의식을 지님(globally aware)과 동시에 평등주의적인 정치적 분권화 및 연합과 양립가능한 기술(공공적 공간에 대한 건축 포함)을 추구한다.
민주적 사회구조의 영속화를 위하여:
G. 생태적 견지에서 인간의 건강과 생존을 파괴하고 민주적 제도의 영속화를 가로막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기술의 설계기준
표 1에서는 민주주의와의 양립가능성에 기반해서 기술들을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 기준들의 목록이 완결된 것도 아니고 최종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기준들에는 "잠정적"인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이 기준들은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논쟁을 통해 보다 향상된 기준들의 집합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기준은 강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구조건들―즉, 민주적 공동체, 민주적 노동, 민주적 정치―를 충족시키도록 의도된 것이다.7 기술적인 결정들은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기술적(그리고 비기술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어떤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우리가 자유롭게, 그리고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우선적으로 주목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다른 사회적 목표들의 달성을 미묘하지만 중대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가로막을 것이다.
아래에서 제시한 일련의 사례들은 이러한 기준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기준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설계하는 것이 실제로 실현가능함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례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사례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가치있는 사회적·민주적인 목표를 예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기술 변화들이 하나씩 고립되었을 때에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에서 중대한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 전체의 민주화는 복합적인 민주적 설계기준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 기준들은 광범하게 민주화된 기술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다양한 기술들에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바꿔말해, 완전한 민주적 기술정치를 위한 모든 요소들은 일시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기준 A: 기술과 민주적 공동체
평등주의적인 공동체 생활은 시민들간의 상호존중, 이해(理解)의 공유, 정치적 평등, 그리고 사회적 참여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하다. 공동체 생활은 집단 속에 존재하는 개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부당한 권력 집중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양한 기술적 발전들은 지역공동체의 쇠락에 기여해 왔다. 도로 교통의 소음과 위험, 서로 분리되어 한 가족씩만 거주하는 주택들, 에어 컨디셔닝, 텔레비전, 이 모두는 가족들을 다른 가족들로부터 떼내어 고립시키는 동시에 집단적 목표의 관념을 침식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공공 공간들의 상실에 따라 더욱 악화되어 왔다 (예컨대 마을의 공유지들은 점차 사라지고 보행자 전용 상가가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았다).8
그렇다면 가능한 대안이 있는가? 스위스의 쮜리히에서는 공동체 내부의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려는 목표로 시내 각 구역(neighborhood)들에 법적 조언과 건축상의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부분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9 이 프로그램에 힘입어 이웃들은 뒷뜰의 울타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산책길과 정원, 그 외의 공동체 시설을 만들었으며,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들의 체계였던 곳을 사적 공간, 반(半)공공 공간, 공공 공간들이 균형있게 섞여 있는 곳으로 전체적으로 재구성해 냈다.10
1960년대 중반에 덴마크에서 시작된 주택 운동(housing movement)은 전통적인 마을 생활의 바람직한 측면들을 도시화, 핵가족, 편부모 혹은 일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 더욱 확대된 성적 평등 등과 같은 오늘날의 현실과 통합시키려는 작업을 보다 야심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은 "공동주택(co-housing)"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오늘날 6가구에서 80가구에 이르는 가족들이 모여 사는 거주자 계획형 공동체(resident-planned community)를 말한다. 100개가 넘는 그러한 공동체들이 현재 덴마크와 네덜란드에 존재하며, 이는 미국과 그 밖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코펜하겐 근방에 위치한 트루데스룬트(Trudeslund) 공동주택 공동체는 33개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가족을 위한 집들은 정원에 난 두 개의 보행자용 도로를 따라 모여 있고, 이는 넓은 개방형의 공간과 숲이 우거진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각의 가정에는 자체적인 부엌, 거실, 침실이 딸려 있지만 이 방들은 그 크기를 다소 축소하여 이로부터 남은 차액을 공유 시설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유 시설에는 피크닉용 테이블, 모래 놀이통(sandbox), 주차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유 가옥(common house)"이 포함되며, 공유 가옥에는 커다란 부엌과 식당, 놀이방, 암실, 작업실, 세탁실, 공동체 상점이 들어 있다. 매일 밤 거주자들은 공유 가옥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책임은 공동체 내의 모든 성인들이 번갈아 맡는다. 이 공동체는 거주자들이 주차장에서 각 가정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공유 가옥을 거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공유 가옥은 자연스럽게 모임 장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트루데스룬트는 많은 측면에서 성공적이다. 공유 시설들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주간 탁아(day care)와 애봐주기가 공동체 생활의 양식에서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며, 프라이버시의 침해 없이도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기차게 나타나고, 자동차들을 공동체 주변으로 추방함으로써 안전함과 유쾌함 모두가 흘러넘치게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혐동이 자라났고, 거주 가족들은 공동으로 연장을 장만하고 차와 요트, 휴양지 별장을 공동 구입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거주자들은 자기들만 따로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고 트루데스룬트 바깥의 사회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이 때 공유 가옥을 다른 활동을 위한 활동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11
상호존중과 평등이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로 계속 남아 있는 한, 평등주의적 공동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증진을 나타낸다. 이에 더해, 만약 그러한 공동체들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면, 이제 공동체들 상호간에 더 많은 상호존중, 관용, 공통의 목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더 넓은 범위에서 민주화를 위한 유익한 함의를 지닐 것이다.12
기준 B: 민주적 노동
사회과학자들은 노동생활의 질이 우리의 도덕적 발달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행동하는 시민―강한 민주주의에서의 적극적인 참가자―으로서 우리가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에도 영향을 준다고 가정해 왔다.13 한편 기술은 우리의 노동 경험을 형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수년 전, 사회학자이자 한때 노동조합 활동가였던 로버트 슈랭크(Robert Schrank)는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Corporation, GM)의 노동조합 대표자 집단과 함께 대안적인 노동 배치에 대해 토론했다. 슈랭크는 먼저 스칸디나비아의 공장들에서 진행중인 몇몇 실험들을 소개했는데, 여기서는 좀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업 절차를 도입하고 매일매일의 의사결정과정에 좀더 많은 노동자들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슈랭크는 노동조합 대표자들에게,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 자신의 공장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답변은 회의적이었고 열의가 결여된 것이었다. 나중에 슈랭크는 "이들 노동자들의 준거 틀은 그들이 경험했던 바대로의 선형 일관작업대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넘어서기란 상상 속에서조차 힘들어 보였다. . ."라고 회고했다.14
선형 일관작업대는 노동자들의 자율관리, 유쾌함, 의미있는 노동의 가능성을 제약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기술적인 대안을 상상해 보는 능력마저도 손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슈랭크는 결국, 이미 여러 해 동안 사용되어 왔던 보다 민주적인 자동차 생산 기술을 GM 노동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예컨대 스웨덴 칼마(Kalmar)에 위치한 혁신적인 볼보 공장에서는 전통적인 일관작업대 대신에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자 반송차(electronic dolly)―이들 각각이 자동차 차체를 하나씩 운반한다―를 이용한다. 반송차들 덕분에 소규모의 노동자 팀들은 자동차의 하부시스템을 조립함에 있어 그들 자신이 수행하는 매일매일의 작업 절차를 계획하고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15
보다 창조적이고 자율관리가 가능한 작업장은 그 자체로도 민주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런 작업장들은 또한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넘어선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덕적 신념, 기능(skill), 확신을 발전시키도록 도울 수 있다.
기준 C: 기술과 권력
정치적 평등이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모든 정치 시스템들은 사회적·정치적 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고 있는 집단들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술들은 이러한 불공평한 권력의 배치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기술들이나 건축 설계는 종종 그들을 권력의 회랑(回廊)으로부터 배제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노동절약적" 가정 용구들은 가정주부들을 "해방시켜" 한때 다른 가족 성원들에 의해 행해지던 가사 일까지 도맡게 만들었다. (예컨대, 개방형 벽난로에서 요리를 하던 지난 시절에는 남자들이 장작을 패고 아이들은 물을 길었으며, 따라서 가족들이 가사 유지에 보다 평등하게 기여하였다.)16 이와 유사하게, 오늘날의 구역 설계(neighborhood design)는 종종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의한 신체적인 위협에 취약하게 하며, 육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제한한다. 전형적인 교외 주택가에는 보행자를 위한 인도이나 공동 모임 공간이 없으며, 집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없다.17 대부분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전형적으로 여성이 맡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되어 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가 어떻게 유모차를 전통적인 형태의 버스에 올리거나 뉴욕 시 지하철 역으로 밀고 내려갈 수 있겠는가?18 많은 작업장들은 소외, 지배, 스트레스, 상해의 특별한 위험을 지니고 있는 직무들을 여성의 몫으로 할당해 왔다. 비서나 천공기 오퍼레이터 직에는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성 정서 질환 및 신체 질환으로 고통받는다. 대중매체의 마케팅 기교들은 종종 여성을 비하하고, 보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성취불가능한 미적 표준을 내세운다.19
기술의 이러한 모든 결과들은 여성들이 사회적·정치적 생활―기술 관련 의사결정까지를 포함해서―에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제한한다. 이러한 결과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성 혐오(misogyny)나 음모 이론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비록 그런 유혹이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중심적 제도나 설계 전문가들의 무관심과 무감각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좀더 그럴듯하다.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여성들의 판단은 남성중심적 제도 속에서 아예 토의 주제로 간주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준 D: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기술의] 해악들
지역 자치는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구성요소이다. 평균적인 시민은 국가적 차원보다는 지역적 차원에서 좀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지역간의 정치적 평등이나 지역이 누리는 자율성은 시민들이 지역을 넘어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은 하나의 공동체가 스스로를 통치하는 능력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접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기술은 공동체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보다 상위의 정치적 권력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자치를 손상시킨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도시들은 깨끗한 물을 외부로부터 끌어오거나 도시로 유입되는 물을 여과·처리하여 사용한 후, 이로부터 나오는 하수는 강이나 호수에 그냥 방류했다. 다양한 하수 처리 방법이 이미 알려져 있었거나 당시 개발되는 중이었지만 (하수가 그 지역 내에서 어떤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 한) 그것을 도입한 도시들은 거의 없었다. 하수의 방류로 말미암아 강 하류 쪽의 공동체들에서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게 되자, 주 정부들은 수질 보호를 위한 사전예방 법률을 제정하고 법의 집행을 담당할 주 보건국을 설립하였으며 물 공급과 하수 처리 시스템의 통합 관리를 책임질 새로운 지역정부 기관("특별 지구")을 창설하였다. 이러한 주 정부 개입의 결과는 수질과 공공 보건의 비약적인 개선으로 나타났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들이 누리던 자율성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지역 수질 관리의 사례는 이후에 하나의 전례를 제공하여 교통, 전기 보급, 전화 등을 규제하는 기관들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시 정부들이 이웃하는 공동체들에 대해서 기술적 책임을 지는 데 실패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지역적 자치의 전통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20
오늘날에도 유사한 경향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보다 상위의 정치체(즉, 지역에서 주 정부로, 주 정부에서 연방 정부로, 궁극적으로는 국제 기구에까지)에서 환경 규제를 수행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전략은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지역에서 중앙으로 권력을 재배치시킴으로써 환경 관련 의사결정을 지역적인 풀뿌리 참여가 상대적으로 도달하기 힘든 영역으로 옮겨 놓았고, 그 결과 대기업들은 지역적 단위에서 선호하는 강한 규제 표준이 통과되는 것을 막고 약한 환경 표준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왜 기업들이 1970년의 미국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과 1990년의 몬트리올 협약(Montreal Protocol, 지구 대기의 오존층에 손상을 입히는 산업화학물질들의 방출을 규제하는 조약) 수정안을 지지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21 오염을 통제함에 있어 지역 정치체가 갖는 권위가 침식당한 것은 표 1에서의 기준 G―"생태적 지탱가능성을 추구하라"―가 위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준 E: 지역의 경제적 자립
만약 지역의 경제적 사활이 지역적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조직이나 힘들에 의해 좌우된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의 운명을 제대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지역의 정치적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강한 민주주의에 핵심적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역과 주의 경제적 자립을 확보하는 것은 정치적 자율성에 있어 핵심적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의 기술들은 경제적 자립을 전복시킬 수 있다.
한 세기 전에 런던은 세계의 다른 주요 도시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주요한 전기 회사나 대규모의 발전소들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는 전기 공급 체계를 갖고 있었고 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력망도 구축하지 않았다. 대신 수십 개에 달하는 작은 전기 회사들―그 중 일부는 개인 회사였고 다른 것들은 공공 소유였다―이 런던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들은 다양한 배치의 소규모 발전 기술들을 이용했다. 그렇다면 런던의 전기 공급 체계는 당시 다른 지역의 엔지니어들이 일반적으로 간주했던 것처럼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런던의 전기 회사들은 이윤을 보면서 가동하고 있었고, 지역적 필요에 부합하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전력을 공급하였다. 런던의 자치구(區) 정부들은 자신들이 지닌 정치적 중요성과 자율성이 그들이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하부구조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력망을 구축하려는 의회의 노력에 일관되게 반대했다. 자치구들은 그들 각각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고도로 분산된 전기 공급 시스템을 선호했다.22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많은 미국의 도시들과 소도시들, 구역들은 인근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생산을 추구하는 지역 소유의 기업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로키 마운틴 연구소(Rocky Mountain Institute)는 분석을 위한 일련의 절차와 이를 보조하는 교육 자료들을 개발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도시들이 (원격지로부터의 공급에 의존하는 대신) 외부로부터 끌어온 에너지, 물, 식량의 소비를 줄이고 (수천 마일 떨어진 은행가들의 손아귀에 자본을 안겨 주는 대신) 지역 자본을 재투자하기 위해 그 절차와 자료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23 이러한 공동체들이 일단 외부의 시장질서나 다국적 기업의 결정으로부터 보호되어 좀더 안정적으로 되고 나면, 그들은 지역 내에서 민주적 기획을 인지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24
이러한 경제적 자립 전략은 많은 공동체들이 현재 널리 이용하고 있는 전략들, 예컨대 양여세를 감면하는 특전을 부여한다든지, 환경 표준을 포기한다든지, 지역적 기반을 자주 옮기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저임금을 약속하는 등,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파멸적인 전략들과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현재까지 제안된 대부분의 진보적 기술전략들은 기업 유치를 위한 이러한 방책들을 대체로 비난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제의 자립을 침식할 것임이 분명한 방식으로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여전히 골몰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25
(다음 호에 계속)
* 출전: Richard Sclove, "Technology Politics As If Democracy Really Mattered: Choices Confronting Progressives," Michael Shuman and Julia Sweig (eds.), Technology for the Common Good (Washington, DC: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1993). [Reprinted in Albert H. Teich (ed.), Technology and the Future, 7th ed. (New York: St. Martin's Press, 1997), pp. 223-245.]
후주
1. Alexis de Tocqueville, Democracy in America, ed. Phillips Bradley, rev. ed. (1848; reprint, New York: Vintage Books, 1945), Vol. 1, p. 260.
2. John J. Kushma, "Participation and the Democratic Agenda: Theory and Praxis," in Marc V. Levine et al., The State and Democracy: Revitalizing America's Government (New York: Routledge, 1988), pp. 14 48. 하우드 집단(Harwood Group)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은 공공적인 사안들에 대해 더 많이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느낀다. Citizens and Politics: A View from Main Street America (Dayton, OH: The Kettering Foundation, 1991)을 보라.
3. Susan Friend Harding, Remaking Ibieca: Rural Life in Aragon under Franco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4).
4. Samuel Bowles and Herbert Gintis, Democracy and Capitalism: Property, Community, and the Contradic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New York: Basic Books, 1986). [국역: 차성수·권기돈 공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백산서당, 1994) ― 역주] 이와는 반대로, 공동체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정치적 권한 부여가 증대된 경우로는 애미쉬(Amish) 공동체의 예를 들 수 있다. 사회적 연대의 전통이 강한 애미쉬 공동체들은 의무적 공공교육이나 군사적 강제징집, 연방 사회복지 시스템에의 참여 등의 연방정부 정책에 저항함에 있어 성공을 거두었다. Donald B. Kraybill, The Riddle of Amish Cultur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9)를 보라.
5. Benjamin Barber, Strong Democracy: Participatory Politics for a New 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국역: 박재주 역, {강한 민주주의}(인간사랑, 1992) ― 역주]
6. 예를 들어, Sara M. Evans and Harry C. Boyte, Free Spaces: The Sources of Democratic Change in America (New York: Harper and Row, 1986)을 보라.
7. Richard E. Sclove, Democracy and Technology (New York: Guilford Press, 1995)에서는 이러한 민주적 설계기준들과 몇몇 추가된 기준들이 어떻게 이끌어내어졌으며, 어떤 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8. 예를 들어, Kenneth T. Jackson, Crabgrass Frontier: The Suburb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그리고 Barber, Strong Democracy, pp. 267 73, 305 06을 보라.
9. 나는 기술(technology)을, 물질적 인공물뿐만 아니라 그것의 창조나 사용에 수반되는 실행 혹은 신념까지를 포괄하도록 폭넓게 정의한다. 따라서 나는 건축과 공동체 계획 역시 기술의 하위영역으로 간주한다.
10. Dolores Hayden, Redesigning the American Dream: The Future of Housing, Work, and Family Life (New York: W.W. Norton, 1984), pp. 189 91.
11. Kathryn McCamant and Charles Durrett, Cohousing: A Contemporary Approach to Housing Ourselves (Berkerly, CA: Habitat Press, 1988).
12. 몇몇 보완적인 증거들은 "자매결연 도시들(sister cities)"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나타나고 있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Michael Shuman, "From Charity to Justice," Bulletin of Municipal Foreign Policy, 2:4 (Autumn 1988), pp. 50 59을 보라.
13. Edward S. Greenberg, Workplace Democracy: The Political Effects of Participation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6); William M. Lafferty, "Work as a Source of Political Learning Among Wage-Laborers and Lower-Level Employees," in Political Learning in Adulthood: A Sourcebook of Theory and Research, ed. Roberta S. Sigel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pp. 102 42; Melvin L. Kohn et al., "Position in the Class Structure and Psychological Functioning in the United States, Japan, and Poland,"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5:4 (January 1990), pp. 964 1008.
14. Robert Schrank, Ten Thousand Working Days (Cambridge, MA: MIT Press, 1978), p. 226.
15. Ibid., 221 27.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볼보 공장들에 여전히 남아 있는 단점들에 관해서는 Stephen Hill, Competetion and Control at Work: The New Industrial Sociology (Cambridge, MA: MIT Press, 1981), pp. 49와 104 05를 보라. 민주적 작업장 기술과 비민주적 작업장 기술의 최근의 예를 좀더 보려면, Shoshana Zuboff, In the Age of the Smart Machine: The Future of Work and Power (New York: Basic Books, 1988)을 참조하라.
16. Ruth Schwartz Cowan, More Work for Mother: The Ironies of Household Technology from the Open Hearth to the Microwave (New York: Basic Books, 1983)을 보라. [국역: 김성희 외 공역, {과학기술과 가사노동}(학지사, 1997) ― 역주]
17. Hayden, Redesigning the American Dream; Ray Oldenburg, The Great Good Place: Cafes, Coffee Shops, Community Centers, Beauty Parlors, General Stores, Bars, Hangouts, and How They Get You through the Day (New York: Paragon House, 1989).
18. Women and Transport Forum, "Women on the Move: How Public Is Public Transport?" in Technology and Women's Voices: Keeping in Touch, ed. Cheris B. Kramarae (New York: Routledge & Kegan Paul, 1988), pp. 116 34을 보라.
19. Barbara Drygulski Wright, Women, Work, and Technology: Transformations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87); Naomi Wolf, The Beauty Myth: How Images of Beauty Are Used against Women (New York: William Morrow, 1991).
20. Joel A. Tarr, "Sewerage and the Development of the Networked City in the United States, 1850 1930," in Technology and the Rise of the Networked City, eds. Joel A. Tarr and Gabriel Dupuy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88), pp. 159 85와 Gerald E. Frug, "The City as a Legal Concept," Harvard Law Review, 93:6 (April 1980), pp. 1057 1154를 보라.
21. 다음을 보라. Samuel P. Hays, Beauty, Health, and Permanence: Environmental Politics in the United States, 1955 1985 (Cambridge, Engla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pp. 443 5, 456 7; Gareth Porter and Janet Welsh Brown, Global Environmental Politics (Boulder, CO: Westview Press, 1991), pp. 64, 66; Wolfgang Sachs, "Environment and Development: The Story of a Dangerous Liasion," The Ecologist, 21:6 (November/December 1991), pp. 252 57. 새뮤얼 보울즈 등에 의해 제안된 바 있는 환경 권리장전(Environmental Bill of Rights)과 같은 지원 법률이 제정된다면, 오염물질의 방출을 줄이도록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지역의 역량이 상당히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Samuel Bowles, David M. Gordon, and Thomas E. Weisskopf, Beyond the Wasteland: A Democratic Alternative to Economic Decline (Garden City: Anchor Press/Doubleday, 1983), pp. 344 6을 보라.
22. Thomas Parke Hughes, Networks of Power: Electrification in Western Society, 1880 1930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Chapter 9.
23. 다음을 보라. Robert Gilman, "Four Steps to Self-Reliance: The Story Behind Rocky Mountain Institute's Economic Renewal Project," In Context, 14 (Autumn 1986), pp. 41 6; Barbara A. Cole, Business Opportunities Casebook (Snowmass, CO: Rocky Mountain Institute, 1988); and David Morris, "Self-Reliant Cities: The Rise of the New City-States," in Resettling America: Energy, Ecology and Community, ed. Gary J. Coates (Andover, MA: Brick House Publishing Co., 1981), pp. 240 62.
24. John Gaventa, Power and Powerlessness: Quiescence and Rebellion in an Appalachian Valley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0), Chapter 8; and Frug, "The City as a Legal Concept."
25. 예컨대 Stephen S. Cohen and John Zysman, Manufacturing Matters: The Myth of the Post-Industrial Economy (New York: Basic Books, 1987); Michael L. Dertouzos, Richard K. Lester, Robert M. Solow, and the MIT Commission on Industrial Competitiveness, Made in America: Regaining the Productive Edge (Cambridge, MA: MIT Press, 1989); Lester C. Thurow, The Zero-Sum Solution: Building a World-Class American Economy (New York: Simon & Schuster Inc., 1985); and Joel S. Yudken and Michael Black, "Targeting National Needs: A New Direction for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World Policy Journal, 7:2 (Spring 1990), pp. 282 3 등을 보라. Robert B. Reich, The Work of Nations (New York: Vintage Books, 1992)에서는 경제 민족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 더 철저하게 세계화되어 가는 경제 속으로의 점증하는 통합 경향을 가정하고 있다. 국가적 자립보다는 지역적 역량을 크게 하는 전략이 지닌 중요성에 관해서는 Ann J. Tickner, Self-Reliance versus Power Politics: The American and Indian Experiences in Building Nation Stat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7)을 보라.
어떤 나라들을 보면 그곳의 주민들은 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정치적 특권들을 이용하는 데 대단히 인색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간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를 편협한 이기주의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이 그의 행위반경을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로 제한하도록 선고를 받는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의 절반을 강탈당한 격이 될 것이다; 그는 일상적으로 영위했던 생활 속에서 엄청난 공허함을 느낄 것이고, 그의 비참함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1
이러한 상황은, 과반수를 간신히 넘는 수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선거에 참여하고 지역정치에 대한 참여는 이보다 훨씬 더 저조한 오늘날의 미국에는 분명 적용되지 않는다.2 이처럼 정치적 참여가 줄어든 것에는 분명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그 중에서 특히 기술의 발전이 미친 영향은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도 복잡미묘한 것이었다. 여기서 대서양 건너편에서 있었던 사례를 하나 생각해 보면 유익할 것 같다:
스페인 북동부의 작은 마을인 이비에카(Ibieca)에서는 1970년대 초반을 통해 집집마다 수도물이 공급되었다. 수도관이 각 가정에 설치되자 이비에카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각 가정은 점차적으로 세탁기를 구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마을의 부녀자들이 빨래를 손으로 비벼 빨기 위해 공공 빨래터에 모이는 일은 드물어졌다. 기술도입의 결과 이제 힘든 작업들을 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의 사회생활은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한때 활발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소였던 마을의 공공 우물과 빨래터는 이제 거의 버려졌다. 남자들은 예전에 물을 운반하는 것을 도와 주었던 아이들이나 당나귀들과 가졌던 편안한 친숙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빨래터에 모이는 것을 그만두었고, 이에 따라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부여해 주었던, 남자들이나 마을 생활에 대한 가십(gossip)도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수돗물의 공급은 이비에카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주었던 강한 유대감―사람들 서로서로간에, 동물들에 대해, 그리고 대지에 대해 갖고 있었던―을 파괴하는 데 일조한 것이었다.3 그러한 공동체의 상실은 그 자체로도 뼈아픈 것이지만, 이와 함께 특정한 정치적 위험까지도 같이 가져왔다: 사회적 결속력이 약해짐에 따라 정치적 행동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마저도 약화되었던 것이다.4
이 얘기는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의 우화인가? 이비에카 사람들처럼, 우리도 겉보기에 유익하고 해가 없어 보이는 기술 변화들을 묵인하고 있다. 이비에카 사람들은 편리함과 생산성, 경제적 성장을 약속해 주는 기술혁신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뒤에 숨겨진 대가를 미처 예측하지는 못했다: 바로 그 기술혁신은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소외, 공동체의 해체와 정치적 무력화를 동시에 가져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 변화는 경제적 보상과 사회정치적인 퇴락 사이의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항상 포함하는 것인가?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거래를 피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기술정치를 완전하게 발전시켜야만 한다―아직 정치적 진보파들조차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 * *
기술과 민주주의
여기서 제안하는 기술정책에 대한 접근방법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기본적인 사회적 환경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덕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참여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동시에 러트거스 대학(Rutgers University)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가 "강한 민주주의(strong democracy)"라고 불렀던 평등주의적 분권화와 연합의 체계를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5 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로는 뉴 잉글랜드(New England)의 마을 모임, 스위스의 자치촌락이나 자치주(州)들의 연합, 그리고 동료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에 의한 재판의 전통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강한 민주주의는 19세기 말 미국농민동맹(American Farmers Alliance), 1960년대의 민권 운동, 1980년대 폴란드의 연대노조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방법론이나 운동목표에서도 잘 드러난다.6 이 각각의 경우들에 있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나서서 행동하는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소리높여 외쳤다.
만약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만약 기술이 그러한 사회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면, 이로부터 기술적 설계와 실행은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내용상의 측면에 있어, 기술은 강한 민주주의 그 자체를 지키려는 우리의 근본적인 관심사와 양립가능해야만 한다. 그리고 절차상의 측면에 있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발전해 나가는 기술적 질서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확장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표 1. 민주적 기술을 위한 설계기준의 잠정적 체계
민주적 공동체를 향하여:
A. 공동체적/협동적 기술, 개인화된(individualized) 기술, 그리고 공동체간(inter -community) 기술 상호간의 균형을 추구한다. 권위주의적 사회관계를 세우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노동을 향하여:
B. 작업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실행들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것을 추구한다. 무의미하고, 심신을 쇠약하게 하며, 또 여타의 다른 방식으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기술적 실행들을 피한다.
민주적 정치를 향하여:
C. 사회경제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사회·정치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추구한다.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집단간, 조직간, 정체(政體)간의 위계적 권력관계를 부추기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자치(self-governance)를 확립하기 위하여:
D.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 결과들(예컨대, 환경적 위해나 사회적 해악)이 지역적인 정치체의 관할 경계 내부에 한정되도록 한다.
E. 지역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한다. 대외의존을 심화시키고 지역적 자율성의 상실을 초래하는 기술을 피한다.
F. 전지구적 의식을 지님(globally aware)과 동시에 평등주의적인 정치적 분권화 및 연합과 양립가능한 기술(공공적 공간에 대한 건축 포함)을 추구한다.
민주적 사회구조의 영속화를 위하여:
G. 생태적 견지에서 인간의 건강과 생존을 파괴하고 민주적 제도의 영속화를 가로막는 기술을 피한다.
민주적 기술의 설계기준
표 1에서는 민주주의와의 양립가능성에 기반해서 기술들을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 기준들의 목록이 완결된 것도 아니고 최종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기준들에는 "잠정적"인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이 기준들은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논쟁을 통해 보다 향상된 기준들의 집합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기준은 강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구조건들―즉, 민주적 공동체, 민주적 노동, 민주적 정치―를 충족시키도록 의도된 것이다.7 기술적인 결정들은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기술적(그리고 비기술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어떤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우리가 자유롭게, 그리고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우선적으로 주목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다른 사회적 목표들의 달성을 미묘하지만 중대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가로막을 것이다.
아래에서 제시한 일련의 사례들은 이러한 기준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기준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설계하는 것이 실제로 실현가능함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례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사례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가치있는 사회적·민주적인 목표를 예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기술 변화들이 하나씩 고립되었을 때에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에서 중대한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 전체의 민주화는 복합적인 민주적 설계기준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 기준들은 광범하게 민주화된 기술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다양한 기술들에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바꿔말해, 완전한 민주적 기술정치를 위한 모든 요소들은 일시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기준 A: 기술과 민주적 공동체
평등주의적인 공동체 생활은 시민들간의 상호존중, 이해(理解)의 공유, 정치적 평등, 그리고 사회적 참여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하다. 공동체 생활은 집단 속에 존재하는 개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부당한 권력 집중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양한 기술적 발전들은 지역공동체의 쇠락에 기여해 왔다. 도로 교통의 소음과 위험, 서로 분리되어 한 가족씩만 거주하는 주택들, 에어 컨디셔닝, 텔레비전, 이 모두는 가족들을 다른 가족들로부터 떼내어 고립시키는 동시에 집단적 목표의 관념을 침식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공공 공간들의 상실에 따라 더욱 악화되어 왔다 (예컨대 마을의 공유지들은 점차 사라지고 보행자 전용 상가가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았다).8
그렇다면 가능한 대안이 있는가? 스위스의 쮜리히에서는 공동체 내부의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려는 목표로 시내 각 구역(neighborhood)들에 법적 조언과 건축상의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부분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9 이 프로그램에 힘입어 이웃들은 뒷뜰의 울타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산책길과 정원, 그 외의 공동체 시설을 만들었으며,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들의 체계였던 곳을 사적 공간, 반(半)공공 공간, 공공 공간들이 균형있게 섞여 있는 곳으로 전체적으로 재구성해 냈다.10
1960년대 중반에 덴마크에서 시작된 주택 운동(housing movement)은 전통적인 마을 생활의 바람직한 측면들을 도시화, 핵가족, 편부모 혹은 일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 더욱 확대된 성적 평등 등과 같은 오늘날의 현실과 통합시키려는 작업을 보다 야심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은 "공동주택(co-housing)"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오늘날 6가구에서 80가구에 이르는 가족들이 모여 사는 거주자 계획형 공동체(resident-planned community)를 말한다. 100개가 넘는 그러한 공동체들이 현재 덴마크와 네덜란드에 존재하며, 이는 미국과 그 밖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코펜하겐 근방에 위치한 트루데스룬트(Trudeslund) 공동주택 공동체는 33개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가족을 위한 집들은 정원에 난 두 개의 보행자용 도로를 따라 모여 있고, 이는 넓은 개방형의 공간과 숲이 우거진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각의 가정에는 자체적인 부엌, 거실, 침실이 딸려 있지만 이 방들은 그 크기를 다소 축소하여 이로부터 남은 차액을 공유 시설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유 시설에는 피크닉용 테이블, 모래 놀이통(sandbox), 주차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유 가옥(common house)"이 포함되며, 공유 가옥에는 커다란 부엌과 식당, 놀이방, 암실, 작업실, 세탁실, 공동체 상점이 들어 있다. 매일 밤 거주자들은 공유 가옥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책임은 공동체 내의 모든 성인들이 번갈아 맡는다. 이 공동체는 거주자들이 주차장에서 각 가정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공유 가옥을 거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공유 가옥은 자연스럽게 모임 장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트루데스룬트는 많은 측면에서 성공적이다. 공유 시설들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주간 탁아(day care)와 애봐주기가 공동체 생활의 양식에서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며, 프라이버시의 침해 없이도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기차게 나타나고, 자동차들을 공동체 주변으로 추방함으로써 안전함과 유쾌함 모두가 흘러넘치게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혐동이 자라났고, 거주 가족들은 공동으로 연장을 장만하고 차와 요트, 휴양지 별장을 공동 구입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거주자들은 자기들만 따로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고 트루데스룬트 바깥의 사회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이 때 공유 가옥을 다른 활동을 위한 활동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11
상호존중과 평등이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로 계속 남아 있는 한, 평등주의적 공동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증진을 나타낸다. 이에 더해, 만약 그러한 공동체들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면, 이제 공동체들 상호간에 더 많은 상호존중, 관용, 공통의 목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더 넓은 범위에서 민주화를 위한 유익한 함의를 지닐 것이다.12
기준 B: 민주적 노동
사회과학자들은 노동생활의 질이 우리의 도덕적 발달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행동하는 시민―강한 민주주의에서의 적극적인 참가자―으로서 우리가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에도 영향을 준다고 가정해 왔다.13 한편 기술은 우리의 노동 경험을 형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수년 전, 사회학자이자 한때 노동조합 활동가였던 로버트 슈랭크(Robert Schrank)는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Corporation, GM)의 노동조합 대표자 집단과 함께 대안적인 노동 배치에 대해 토론했다. 슈랭크는 먼저 스칸디나비아의 공장들에서 진행중인 몇몇 실험들을 소개했는데, 여기서는 좀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업 절차를 도입하고 매일매일의 의사결정과정에 좀더 많은 노동자들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슈랭크는 노동조합 대표자들에게,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 자신의 공장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답변은 회의적이었고 열의가 결여된 것이었다. 나중에 슈랭크는 "이들 노동자들의 준거 틀은 그들이 경험했던 바대로의 선형 일관작업대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넘어서기란 상상 속에서조차 힘들어 보였다. . ."라고 회고했다.14
선형 일관작업대는 노동자들의 자율관리, 유쾌함, 의미있는 노동의 가능성을 제약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기술적인 대안을 상상해 보는 능력마저도 손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슈랭크는 결국, 이미 여러 해 동안 사용되어 왔던 보다 민주적인 자동차 생산 기술을 GM 노동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예컨대 스웨덴 칼마(Kalmar)에 위치한 혁신적인 볼보 공장에서는 전통적인 일관작업대 대신에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자 반송차(electronic dolly)―이들 각각이 자동차 차체를 하나씩 운반한다―를 이용한다. 반송차들 덕분에 소규모의 노동자 팀들은 자동차의 하부시스템을 조립함에 있어 그들 자신이 수행하는 매일매일의 작업 절차를 계획하고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15
보다 창조적이고 자율관리가 가능한 작업장은 그 자체로도 민주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런 작업장들은 또한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넘어선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덕적 신념, 기능(skill), 확신을 발전시키도록 도울 수 있다.
기준 C: 기술과 권력
정치적 평등이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모든 정치 시스템들은 사회적·정치적 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고 있는 집단들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술들은 이러한 불공평한 권력의 배치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기술들이나 건축 설계는 종종 그들을 권력의 회랑(回廊)으로부터 배제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노동절약적" 가정 용구들은 가정주부들을 "해방시켜" 한때 다른 가족 성원들에 의해 행해지던 가사 일까지 도맡게 만들었다. (예컨대, 개방형 벽난로에서 요리를 하던 지난 시절에는 남자들이 장작을 패고 아이들은 물을 길었으며, 따라서 가족들이 가사 유지에 보다 평등하게 기여하였다.)16 이와 유사하게, 오늘날의 구역 설계(neighborhood design)는 종종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의한 신체적인 위협에 취약하게 하며, 육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제한한다. 전형적인 교외 주택가에는 보행자를 위한 인도이나 공동 모임 공간이 없으며, 집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없다.17 대부분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전형적으로 여성이 맡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되어 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가 어떻게 유모차를 전통적인 형태의 버스에 올리거나 뉴욕 시 지하철 역으로 밀고 내려갈 수 있겠는가?18 많은 작업장들은 소외, 지배, 스트레스, 상해의 특별한 위험을 지니고 있는 직무들을 여성의 몫으로 할당해 왔다. 비서나 천공기 오퍼레이터 직에는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성 정서 질환 및 신체 질환으로 고통받는다. 대중매체의 마케팅 기교들은 종종 여성을 비하하고, 보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성취불가능한 미적 표준을 내세운다.19
기술의 이러한 모든 결과들은 여성들이 사회적·정치적 생활―기술 관련 의사결정까지를 포함해서―에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제한한다. 이러한 결과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성 혐오(misogyny)나 음모 이론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비록 그런 유혹이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중심적 제도나 설계 전문가들의 무관심과 무감각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좀더 그럴듯하다.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여성들의 판단은 남성중심적 제도 속에서 아예 토의 주제로 간주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준 D: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기술의] 해악들
지역 자치는 강한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구성요소이다. 평균적인 시민은 국가적 차원보다는 지역적 차원에서 좀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지역간의 정치적 평등이나 지역이 누리는 자율성은 시민들이 지역을 넘어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은 하나의 공동체가 스스로를 통치하는 능력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접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기술은 공동체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보다 상위의 정치적 권력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자치를 손상시킨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도시들은 깨끗한 물을 외부로부터 끌어오거나 도시로 유입되는 물을 여과·처리하여 사용한 후, 이로부터 나오는 하수는 강이나 호수에 그냥 방류했다. 다양한 하수 처리 방법이 이미 알려져 있었거나 당시 개발되는 중이었지만 (하수가 그 지역 내에서 어떤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 한) 그것을 도입한 도시들은 거의 없었다. 하수의 방류로 말미암아 강 하류 쪽의 공동체들에서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게 되자, 주 정부들은 수질 보호를 위한 사전예방 법률을 제정하고 법의 집행을 담당할 주 보건국을 설립하였으며 물 공급과 하수 처리 시스템의 통합 관리를 책임질 새로운 지역정부 기관("특별 지구")을 창설하였다. 이러한 주 정부 개입의 결과는 수질과 공공 보건의 비약적인 개선으로 나타났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들이 누리던 자율성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지역 수질 관리의 사례는 이후에 하나의 전례를 제공하여 교통, 전기 보급, 전화 등을 규제하는 기관들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시 정부들이 이웃하는 공동체들에 대해서 기술적 책임을 지는 데 실패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지역적 자치의 전통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20
오늘날에도 유사한 경향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보다 상위의 정치체(즉, 지역에서 주 정부로, 주 정부에서 연방 정부로, 궁극적으로는 국제 기구에까지)에서 환경 규제를 수행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전략은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지역에서 중앙으로 권력을 재배치시킴으로써 환경 관련 의사결정을 지역적인 풀뿌리 참여가 상대적으로 도달하기 힘든 영역으로 옮겨 놓았고, 그 결과 대기업들은 지역적 단위에서 선호하는 강한 규제 표준이 통과되는 것을 막고 약한 환경 표준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왜 기업들이 1970년의 미국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과 1990년의 몬트리올 협약(Montreal Protocol, 지구 대기의 오존층에 손상을 입히는 산업화학물질들의 방출을 규제하는 조약) 수정안을 지지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21 오염을 통제함에 있어 지역 정치체가 갖는 권위가 침식당한 것은 표 1에서의 기준 G―"생태적 지탱가능성을 추구하라"―가 위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준 E: 지역의 경제적 자립
만약 지역의 경제적 사활이 지역적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조직이나 힘들에 의해 좌우된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의 운명을 제대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지역의 정치적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강한 민주주의에 핵심적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역과 주의 경제적 자립을 확보하는 것은 정치적 자율성에 있어 핵심적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의 기술들은 경제적 자립을 전복시킬 수 있다.
한 세기 전에 런던은 세계의 다른 주요 도시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주요한 전기 회사나 대규모의 발전소들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는 전기 공급 체계를 갖고 있었고 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력망도 구축하지 않았다. 대신 수십 개에 달하는 작은 전기 회사들―그 중 일부는 개인 회사였고 다른 것들은 공공 소유였다―이 런던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들은 다양한 배치의 소규모 발전 기술들을 이용했다. 그렇다면 런던의 전기 공급 체계는 당시 다른 지역의 엔지니어들이 일반적으로 간주했던 것처럼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런던의 전기 회사들은 이윤을 보면서 가동하고 있었고, 지역적 필요에 부합하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전력을 공급하였다. 런던의 자치구(區) 정부들은 자신들이 지닌 정치적 중요성과 자율성이 그들이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하부구조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력망을 구축하려는 의회의 노력에 일관되게 반대했다. 자치구들은 그들 각각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고도로 분산된 전기 공급 시스템을 선호했다.22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많은 미국의 도시들과 소도시들, 구역들은 인근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생산을 추구하는 지역 소유의 기업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로키 마운틴 연구소(Rocky Mountain Institute)는 분석을 위한 일련의 절차와 이를 보조하는 교육 자료들을 개발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도시들이 (원격지로부터의 공급에 의존하는 대신) 외부로부터 끌어온 에너지, 물, 식량의 소비를 줄이고 (수천 마일 떨어진 은행가들의 손아귀에 자본을 안겨 주는 대신) 지역 자본을 재투자하기 위해 그 절차와 자료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23 이러한 공동체들이 일단 외부의 시장질서나 다국적 기업의 결정으로부터 보호되어 좀더 안정적으로 되고 나면, 그들은 지역 내에서 민주적 기획을 인지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24
이러한 경제적 자립 전략은 많은 공동체들이 현재 널리 이용하고 있는 전략들, 예컨대 양여세를 감면하는 특전을 부여한다든지, 환경 표준을 포기한다든지, 지역적 기반을 자주 옮기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저임금을 약속하는 등,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파멸적인 전략들과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현재까지 제안된 대부분의 진보적 기술전략들은 기업 유치를 위한 이러한 방책들을 대체로 비난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제의 자립을 침식할 것임이 분명한 방식으로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여전히 골몰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25
(다음 호에 계속)
* 출전: Richard Sclove, "Technology Politics As If Democracy Really Mattered: Choices Confronting Progressives," Michael Shuman and Julia Sweig (eds.), Technology for the Common Good (Washington, DC: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1993). [Reprinted in Albert H. Teich (ed.), Technology and the Future, 7th ed. (New York: St. Martin's Press, 1997), pp. 223-245.]
후주
1. Alexis de Tocqueville, Democracy in America, ed. Phillips Bradley, rev. ed. (1848; reprint, New York: Vintage Books, 1945), Vol. 1, p. 260.
2. John J. Kushma, "Participation and the Democratic Agenda: Theory and Praxis," in Marc V. Levine et al., The State and Democracy: Revitalizing America's Government (New York: Routledge, 1988), pp. 14 48. 하우드 집단(Harwood Group)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은 공공적인 사안들에 대해 더 많이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느낀다. Citizens and Politics: A View from Main Street America (Dayton, OH: The Kettering Foundation, 1991)을 보라.
3. Susan Friend Harding, Remaking Ibieca: Rural Life in Aragon under Franco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4).
4. Samuel Bowles and Herbert Gintis, Democracy and Capitalism: Property, Community, and the Contradic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New York: Basic Books, 1986). [국역: 차성수·권기돈 공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백산서당, 1994) ― 역주] 이와는 반대로, 공동체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정치적 권한 부여가 증대된 경우로는 애미쉬(Amish) 공동체의 예를 들 수 있다. 사회적 연대의 전통이 강한 애미쉬 공동체들은 의무적 공공교육이나 군사적 강제징집, 연방 사회복지 시스템에의 참여 등의 연방정부 정책에 저항함에 있어 성공을 거두었다. Donald B. Kraybill, The Riddle of Amish Cultur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9)를 보라.
5. Benjamin Barber, Strong Democracy: Participatory Politics for a New 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국역: 박재주 역, {강한 민주주의}(인간사랑, 1992) ― 역주]
6. 예를 들어, Sara M. Evans and Harry C. Boyte, Free Spaces: The Sources of Democratic Change in America (New York: Harper and Row, 1986)을 보라.
7. Richard E. Sclove, Democracy and Technology (New York: Guilford Press, 1995)에서는 이러한 민주적 설계기준들과 몇몇 추가된 기준들이 어떻게 이끌어내어졌으며, 어떤 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8. 예를 들어, Kenneth T. Jackson, Crabgrass Frontier: The Suburbanization of the United Stat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그리고 Barber, Strong Democracy, pp. 267 73, 305 06을 보라.
9. 나는 기술(technology)을, 물질적 인공물뿐만 아니라 그것의 창조나 사용에 수반되는 실행 혹은 신념까지를 포괄하도록 폭넓게 정의한다. 따라서 나는 건축과 공동체 계획 역시 기술의 하위영역으로 간주한다.
10. Dolores Hayden, Redesigning the American Dream: The Future of Housing, Work, and Family Life (New York: W.W. Norton, 1984), pp. 189 91.
11. Kathryn McCamant and Charles Durrett, Cohousing: A Contemporary Approach to Housing Ourselves (Berkerly, CA: Habitat Press, 1988).
12. 몇몇 보완적인 증거들은 "자매결연 도시들(sister cities)"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나타나고 있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Michael Shuman, "From Charity to Justice," Bulletin of Municipal Foreign Policy, 2:4 (Autumn 1988), pp. 50 59을 보라.
13. Edward S. Greenberg, Workplace Democracy: The Political Effects of Participation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6); William M. Lafferty, "Work as a Source of Political Learning Among Wage-Laborers and Lower-Level Employees," in Political Learning in Adulthood: A Sourcebook of Theory and Research, ed. Roberta S. Sigel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pp. 102 42; Melvin L. Kohn et al., "Position in the Class Structure and Psychological Functioning in the United States, Japan, and Poland,"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5:4 (January 1990), pp. 964 1008.
14. Robert Schrank, Ten Thousand Working Days (Cambridge, MA: MIT Press, 1978), p. 226.
15. Ibid., 221 27.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볼보 공장들에 여전히 남아 있는 단점들에 관해서는 Stephen Hill, Competetion and Control at Work: The New Industrial Sociology (Cambridge, MA: MIT Press, 1981), pp. 49와 104 05를 보라. 민주적 작업장 기술과 비민주적 작업장 기술의 최근의 예를 좀더 보려면, Shoshana Zuboff, In the Age of the Smart Machine: The Future of Work and Power (New York: Basic Books, 1988)을 참조하라.
16. Ruth Schwartz Cowan, More Work for Mother: The Ironies of Household Technology from the Open Hearth to the Microwave (New York: Basic Books, 1983)을 보라. [국역: 김성희 외 공역, {과학기술과 가사노동}(학지사, 1997) ― 역주]
17. Hayden, Redesigning the American Dream; Ray Oldenburg, The Great Good Place: Cafes, Coffee Shops, Community Centers, Beauty Parlors, General Stores, Bars, Hangouts, and How They Get You through the Day (New York: Paragon House, 1989).
18. Women and Transport Forum, "Women on the Move: How Public Is Public Transport?" in Technology and Women's Voices: Keeping in Touch, ed. Cheris B. Kramarae (New York: Routledge & Kegan Paul, 1988), pp. 116 34을 보라.
19. Barbara Drygulski Wright, Women, Work, and Technology: Transformations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87); Naomi Wolf, The Beauty Myth: How Images of Beauty Are Used against Women (New York: William Morrow, 1991).
20. Joel A. Tarr, "Sewerage and the Development of the Networked City in the United States, 1850 1930," in Technology and the Rise of the Networked City, eds. Joel A. Tarr and Gabriel Dupuy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88), pp. 159 85와 Gerald E. Frug, "The City as a Legal Concept," Harvard Law Review, 93:6 (April 1980), pp. 1057 1154를 보라.
21. 다음을 보라. Samuel P. Hays, Beauty, Health, and Permanence: Environmental Politics in the United States, 1955 1985 (Cambridge, Engla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pp. 443 5, 456 7; Gareth Porter and Janet Welsh Brown, Global Environmental Politics (Boulder, CO: Westview Press, 1991), pp. 64, 66; Wolfgang Sachs, "Environment and Development: The Story of a Dangerous Liasion," The Ecologist, 21:6 (November/December 1991), pp. 252 57. 새뮤얼 보울즈 등에 의해 제안된 바 있는 환경 권리장전(Environmental Bill of Rights)과 같은 지원 법률이 제정된다면, 오염물질의 방출을 줄이도록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지역의 역량이 상당히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Samuel Bowles, David M. Gordon, and Thomas E. Weisskopf, Beyond the Wasteland: A Democratic Alternative to Economic Decline (Garden City: Anchor Press/Doubleday, 1983), pp. 344 6을 보라.
22. Thomas Parke Hughes, Networks of Power: Electrification in Western Society, 1880 1930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Chapter 9.
23. 다음을 보라. Robert Gilman, "Four Steps to Self-Reliance: The Story Behind Rocky Mountain Institute's Economic Renewal Project," In Context, 14 (Autumn 1986), pp. 41 6; Barbara A. Cole, Business Opportunities Casebook (Snowmass, CO: Rocky Mountain Institute, 1988); and David Morris, "Self-Reliant Cities: The Rise of the New City-States," in Resettling America: Energy, Ecology and Community, ed. Gary J. Coates (Andover, MA: Brick House Publishing Co., 1981), pp. 240 62.
24. John Gaventa, Power and Powerlessness: Quiescence and Rebellion in an Appalachian Valley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80), Chapter 8; and Frug, "The City as a Legal Concept."
25. 예컨대 Stephen S. Cohen and John Zysman, Manufacturing Matters: The Myth of the Post-Industrial Economy (New York: Basic Books, 1987); Michael L. Dertouzos, Richard K. Lester, Robert M. Solow, and the MIT Commission on Industrial Competitiveness, Made in America: Regaining the Productive Edge (Cambridge, MA: MIT Press, 1989); Lester C. Thurow, The Zero-Sum Solution: Building a World-Class American Economy (New York: Simon & Schuster Inc., 1985); and Joel S. Yudken and Michael Black, "Targeting National Needs: A New Direction for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World Policy Journal, 7:2 (Spring 1990), pp. 282 3 등을 보라. Robert B. Reich, The Work of Nations (New York: Vintage Books, 1992)에서는 경제 민족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 더 철저하게 세계화되어 가는 경제 속으로의 점증하는 통합 경향을 가정하고 있다. 국가적 자립보다는 지역적 역량을 크게 하는 전략이 지닌 중요성에 관해서는 Ann J. Tickner, Self-Reliance versus Power Politics: The American and Indian Experiences in Building Nation Stat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7)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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