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과학의 날 집회선언문



부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을 요구한다.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한동안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세계를 지배했던 적이 있었고, 아직까지 그 믿음은 고집스레 이어져 오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과학적인' 농업방식으로 해결해 보겠다던 녹색혁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유전자조작 기술에 열광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이 남자들의 정자 수를 감소시켜도 여전히 플라스틱의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산업재해로 몇 명의 사람이 죽어나가건, 2010년까지 개발된다는 암 치료법과 에이즈 백신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새롭던 과학기술이 진부해지면 사람들은 다시금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과학기술에 기대를 건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왜 개발하게 되었는지조차 망각한 채, 더 비싸게 팔 수 있고,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에만 매달리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우리의 견해는 '그것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과학기술은 역사적으로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키거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과학기술은 환경오염을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은 환경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각종 기술들, 플라스틱, 프레온가스, 원자력발전소는 이제 더욱 치명적인 환경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농업혁명은 단위 면적 내의 농업생산량을 증대시켰지만 전세계적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단작농업과 대규모 목축사업은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버렸다. 칭송받던 항생제는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의학기술이 진보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예방조처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각종 전염병에 걸려 죽고 있다. 인간복제 기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그것에 사용되는 난자의 출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도 우리들에게 전자민주주의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프라이버시 노출 위협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곳에서 장밋빛 과학기술은 어둠의 과학기술이 되어 갔다.

물론 모든 과학기술이 다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현재의 과학과 기술은 인류 보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고 사용되지 않는다. 현재 최첨단 과학기술의 개발 목표는 단지 세 가지라고 단언해도 좋다. 새로운 것은 과거의 것에 비해서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에 이용되거나, 더욱 완벽하게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된 과학기술은 또다시 권력과 부를 가진 소수의 손에 머무른다. 이런 상태에서 모두에게 봉사하는 과학기술을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닌가.

하지만 항상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으로 포장되어지고 부풀려진다. 현재의 문제를 발전하지 못한 과학기술의 탓으로 돌리면서 정부와 기업은 자신들의 착취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번에는 이러저러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것이 현실화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더욱 이런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50년대 종전 이후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과 70년대의 고속성장의 경험은 그 어두운 이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을 희망으로 기억하게 한다. 더군다나 이른바 IMF체제가 들이닥치면서 사람들은 다시금 과학기술을 새로운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만능열쇠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대로라면 과학과 기술은 현재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또다른 모순과 불평등을 양산할 뿐이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그것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개발된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사회에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의 혜택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누릴 것인지에 대해서 발언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멈출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발전된 과학기술의 산물에 대한 지나친 경외와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과학기술을 우리 통제 안에 두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두 가지 극단이다. 무조건적인 믿음이나 거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과학기술에 대해 발언하고 민중을 위한 과학기술을 요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소외와 불평등에 무관심한 과학기술을 거부하고 민중적 과학기술을 요구한다.

― 사회의 문제를 과학기술만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발상을 비판한다.

― 가치와 윤리를 무시하는 개체 복제 기술을 거부한다.

― 환경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는 과학기술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자신의 정보를 타인이 관리하도록 조장된 기술체계를 거부한다.

― 지역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반대한다.

― 보다 정교한 의료체계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의료체계를 요구한다.

― 여성의 소외를 조장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방해하는 기술체계에 반대한다.

1999.4.20

제 32회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과학기술동아리협의회/관악여성모임연대/관악정보운동체ARG

서울대공대신문사/서울대환경동아리Eco-echo



1999/06/15 00:00 1999/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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