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꼬마가 있는 가정은 병원에 들락거리기 마련이다. 유아는 면역체계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않고 외부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주 병에 걸린다. "꼬마에게 맞혀야 할 예방주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혹은 "우리집 꼬마는 감기를 달고 다닌다"는 따위의 말이 거론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집 꼬마의 경우에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매우 활달한 놈인데, 너무 신나게 놀아 종종 몸살에 걸리곤 한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는다. 병원의 벽면에는 원장의 자격과 우수성을 선전하려는 각종 전시물로 가득차 있다. 우리 식구가 처음에 갔던 병원의 의사는 소아과전문의에다가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었고 무슨 학회에서 회장을 맡은 경력도 가진 사람이었다. 한번은 내가 꼬마를 데리고 거기에 갔다. 그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는 친절하지 않았다. 몇 가지 간단한 사항을 물어보는 데도 별 성의없이 대답했다. 그 병원에 3일 동안 다녔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의료보험증을 가져가야 했다. 그래도 병만 나으면 좋을 텐데 3일이 지나도 꼬마의 감기가 잘 낫지 않았다. 그 병원은 1주일 정도 다녀야 감기가 떨어진다는 소문이 돈다는 아내의 얘기가 맞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원은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로 득실거렸다.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소아과는 그 병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사당동에 있고 처가집은 방배동에 있다. 우리집에서 처가집까지의 택시 요금은 2-3천원 정도이다. 꼬마의 병이 잘 낫지 않자 아내는 처가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꼬마를 데려갔다. 그 병원은 우리집 꼬마가 갓난 아기 때 많이 다녔던 병원이다. 그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 먹으니 신통하게 잘 나았다. 택시비가 더 들긴 하지만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봐도 나쁘지 않았다. 그로부터 우리 꼬마의 단골 병원은 우리 동네 병원에서 처가집 동네 병원으로 바뀌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병원에 다니는 우리 동네 사람도 제법 되었다.

방배동을 들락거려야 하는 불편함은 우리 동네에 새로운 병원이 하나 생김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닥터 맥가이버의 열린 진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그 병원의 의사는 가정의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가정의학과 출신은 특정한 1가지 병과를 전공하지 않고 대신에 3가지 병과를 배운다고 한다. 대부분의 전문의가 특정한 병과를 깊이 공부한다면 가정의학과 출신은 여러 병과를 필요한 만큼 공부하는 셈이다. 가정의학이 내세우는 것은 "주치의" 개념이다. 일반 가정에서 병원을 찾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간단한 병 때문이고 따라서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병을 한 병원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가정의학을 칼에 비유한다면 맥가이버가 적절하다. 정육점에 가면 여러 가지 칼이 있다. 덩어리를 대충 자르는 무식하게 생긴 칼, 뼈 사이에 붙어 있는 비계를 손질하는 예리한 칼, 손님들에게 고기를 썰어 주는 일반적인 칼 등... 병원에 비유하면 외과, 안과, 내과에 비유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가정의학은 여러 가지 병을 보니 그야말로 맥가이버가 아니겠는가?

가정의학 병원은 기존의 병원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가정의학 병원에서도 수술을 하긴 하는데, 포경수술, 점 제거 수술, 정관수술 등 매우 간단한 수술만 한다. 작년에 나는 정관수술을 하려고 어떤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그 병원에서 수술을 기피하려고 했다. 수술로 인한 수입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마침 맥가이버 병원에서도 정관수술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또한, 가정의학 병원은 간단한 병을 주로 보기 때문에 큰 의료장비를 별로 갖추지 않는다. 한번은 우리집 꼬마의 감기가 심해서 폐렴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했다. 의사는 부근에 있는 방사선과에 연락을 취했고 나는 꼬마를 데리고 X선 촬영을 갔다. 그 사진을 보고 의사는 폐렴이 아니다고 판정해 주었다. 그렇다면, 가정의학 병원이 취하는 영업전략의 요체는 소규모 질병을 많이 치료함으로써 수익을 거두는 것과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병원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에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맥가이버 병원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원장이 친절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장은 미리 만들어둔 자료집을 활용하면서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에 대해 상세히 그리고 쉽게 설명해 준다. 게다가 서비스도 만점이다. 한번은 우리집 꼬마가 열이 많이 나서 병원을 찾았는데, 밤에 너무 열이 많이 나면 알콜로 몸을 닦아 주라고 하면서 알콜과 솜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또한, 원장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을 정도로 컴퓨터에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 병원에는 한번만 의료보험증을 가져 가면 컴퓨터에 등록되어서 그 다음에는 의료보험증을 안 가져가도 된다. 의사가 주사나 약을 처방할 때에도 컴퓨터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컴맹들에게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보다 더욱 특이한 점은 그 병원에 남자 간호원이 있다는 점이다. 남자 간호원은 아주 상냥한 미소를 띠면서 인사도 하고 약도 지어주고 했다. 게다가 그 간호원은 다른 용도에도 매우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 꼬마들은 주사를 맞기 싫어하고 주사를 맞을 때 몸부림을 치기 마련인데, 그 병원에서는 주사를 맞힐 때 꼬마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남자 간호원이 꽉 잡아 준다. 앞서 우리 꼬마가 방사선과에 간 얘기를 했는데 그 때 남자 간호원은 차를 몰아 바래다 주었다. 날씨가 짖궂은 날이면 환자들을 집까지 태워다 주기도 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남자 간호원도 맥가이버인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맥가이버 병원은 짧은 시간 내에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처음에 이야기했던 소아과의원은 요즘에 파리를 잡고 있다. 맥가이버 병원은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전문의가 필요할까? 글자 그대로 전문의가 "전문적인" 의술을 베푸는 경우는 어느 정도 될까?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과도하게 전문화된 것이 아닌가?... 일반인들은 병원에 가면서 무엇을 바랄까? 단지 의술만이 아니라 친절한 태도와 적절한 서비스를 원하지 않을까? 병 치료 중에 순수히 기술적인 것은 어느 정도 될까? 순수히 기술적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맥가이버를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도 가볍다.

송성수 (우리모임 총무)
1999/07/15 00:00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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