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호] 외국 운동단체 소개 ⑥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08/15 00:00
사회, 종교 및 기술 프로젝트
(Society, Religion and Technology Project)
1997년 2월, 이제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소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이용한 동물복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CNN을 비롯한 유수 방송·언론사들이 복제양 돌리와 로슬린 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그러나 주목을 받게 된 스코틀랜드의 기관은 로슬린 연구소만은 아니었다. 돌리의 소식이 전해지자 방송·언론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cloning'을 검색하였는데, 생명복제에 관해 이미 1년 전에 씌어진 한 편의 글을 발견하였다. 이 글은 곧 CNN 등의 '복제' 홈페이지에 링크되었고, 이 글을 작성한 그룹은 이후 생명복제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서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회, 종교 및 기술 프로젝트(Society, Religion and Technology Project: 이하 SRT)가 바로 이 그룹이다.
SRT는 서구에서 기술발전과 산업문명에 대한 의문이 고조되던 1970년, 현대 기술의 사회적·윤리적 파급효과와 예기치 않은 위험을 검토할 목적으로 스코틀랜드 국교회(Church of Scotland)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SRT의 활동이 교회를 자문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SRT는 설립 초기부터 기술적 사안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촉진시키고, 과학기술자가 연구개발의 윤리적 함의에 대해 성찰하도록 독려하며, 정부 정책을 감시·견제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참여 인사도 기독교 신자로 국한되지 않으며, 과학기술, 윤리학, 신학, 사회학 및 과학기술정책학 전문가 등으로 폭넓게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생명복제 관련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SRT는 인간개체 복제의 윤리적 측면 외에도, 복제기술의 불확실성, 복제기술의 의료 응용(즉, 비생식복제 Non-reproductive Cloning)이 야기할 수 있는 신체적·사회적 위험과 심리적 파급효과, 위험규제 의사결정에의 대중참여 필요성, 연구개발 비밀주의의 문제점 등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비교적 균형잡힌 논의를 전개해 왔다. 또한 인간수정및발생학기구(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uthority)와 인간유전학자문위원회(Human Genetics Advisory Commission)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영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데 힘을 쏟고 있으며, 국제적 차원의 연구지침 제정 노력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많은 종교단체들이 인간개체의 복제가 자신들의 교의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선언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에 비해 한 걸음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에 대한 SRT의 관심은 복제양 돌리의 출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동물, 식물 및 미생물 유전공학의 윤리적 측면에 관한 연구'라는 장기 프로젝트에 착수한 이래, SRT는 유전자조작 식품, 생명체 특허, 동물 보호, 생명공학이 제3세계에 미치는 영향 등의 이슈들을 검토하여 왔다. 이 프로젝트의 일부 결과는 1998년 Engineering Genesis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다. 1995년과 1996년에는 체강 및 배종 유전자치료 등 인간유전학 분야와 이종(異種) 동물로부터의 장기이식, 인공수정, 인간배아 연구 등, 기타 생명·의료기술 분야로 조사·연구활동을 넓히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들 때문에 SRT를 생명·의료기술의 사회·윤리적 측면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SRT의 활동 범위는 광범하다. SRT가 1970년 설립 이후 다뤄 온 주제들을 살펴보면, 생명·의료기술 외에도 작업장 신기술 도입 문제로부터 군축, 핵발전, 에너지 효율성, 재생가능 에너지, 지속가능한 발전, 제3세계와 적정기술, 기후 변화, 토지 사용 및 교통 문제, 광우병, 인터넷, 위험규제, 과학과 종교 등에 이른다.
여러 주제들을 포괄하고는 있지만 SRT 활동의 기저에는 일관된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1) 기술과 인체건강, 생태계 및 사회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복잡하여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거나, 2) 기술이 인체건강, 생태계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경험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 기술의 개발, 도입 및 규제에 관한 의사결정은 잠재적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 그것이다. 그런데 불확실성은 위험이 매우 작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특정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종종 다른 종류의 위험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예방적 원칙은 따라서 어떤 유일한 해답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가치판단들이 민주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 개발자는 물론이거니와 특정 기술에 반대하는 시민·환경단체들도 이러한 접근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실제 SRT는 핵발전이나 유전자조작 식품의 모라토리엄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찬·반의 태도를 거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일부 환경운동 진영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과학기술 민주화'를 추구하는 우리 모임에게 있어 이같은 측면은 특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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