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농촌 혹은 농사와 관계하고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의 고향이 쌀 농사를 하는 곳이라는 것과 학부 1학년, 2학년 때 참외 하우스가 많은 곳으로 농활을 갔다 왔다는 것뿐이다. 피뽑기, 참외 따기, 김매기 등이 가장 많이 했던 일. 하루 호미를 잡으면 물집이 바로 생기는 연약한 도시인(?)이던 나에게 농촌과 농사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인터넷에 유기농산물 직거래 사이트를 만드는 목적으로 현장조사에 참가할 사람을 찾는 선배의 말에 덥석 하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통틀어 조사를 두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홍성으로, 괴산으로 돌아다니면서 몇 가지 주워 들은 재미있는 것들을 여기에 한번 소개해 보겠다.

유기농은 농약을 적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농사, 혹은 화학비료 대신에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는 농사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학약품이 해결해 주는, 아니 해결해 준다고 믿고 있는 벌레와 잡초의 제거, 그리고 영양물질 보충 등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유기농사를 하는 논밭에 가면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볼 수 있다.

첫째, 논에서 오리가 산다. 거기에서는 오리가 농사짓는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새끼 오리들은 벼 사이사이로 돌아다니면서 벌레들을 잡아먹고 작은 풀들을 뜯어먹는다. 또 오리들이 하도 논바닥을 많이 밟고 다녀서 작은 풀들이 아예 잘 자라지를 못한다. 오리의 배설물은 그대로 비료의 효과를 가져온다. 오리로 농사를 지으면 수확도 약간 더 많고, 농약·제초제 등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에 오리를 사는 것이 농가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연계하여 이를 해결하고 있다. 소비자가 오리를 사주고 농민은 그 오리를 가지고 농사를 지은 후에, 오리가 크면 다시 그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방법이다. 오리를 논에 넣을 때는 축제가 열리는데 도시 가족들이 모두 모이고, 농촌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함께 모여 오리를 풀어주는데, 이 행사가 소비자와 농민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끈이 되고 있다.

둘째, 우렁이도 농사를 짓는다. 우렁이가 잡초를 씹어먹는 모습이 상상이 안가지만 실제로 제초효과를 낸다고 한다. 단, 우렁이가 골고루 잘 돌아다니기 위해서 논바닥이 평평해야 하고 물이 적어 땅이 드러나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지만, 한해마다 시기를 잘 맞춰서 새로 넣어주어야 하는 오리와는 다르게 우렁이는 한번 넣어주면 자기가 알아서 새끼를 치고 잘 살아가는 좋은 점이 있다. 겨울에는 좋은 놈만 골라서 겨울을 나게 해주고 봄이 되면 다시 넣는다. 그 우렁이를 수확해서 먹기도 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맛있는 우리 나라 우렁이는 풀을 잘 안 먹어서 농사용으로는 사용을 못하고 대신 열대지방 우렁이를 써야 한다는데 그 맛이 맹맹해서 아쉽다고 한다.

셋째, 논에 어항이 있다. 논의 한쪽 끝은 벼가 없이 물만 있고 다른 곳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어항이었다. 여기에는 물고기가 살고 여러 곤충들도 산다. 겨울 지나고 봄이 되면 이 곳 바닥의 흙을 파서 논 곳곳에 뿌려주면 바로 비료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짚과 신문지가 유용하다. 논농사와 비교해 밭농사는 제초문제가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보통 일반농가에서는 검은 비닐을 많이 깐다. 그러나 이것이 농촌 환경문제의 주범 중의 하나. 대신 (전통적인 방법인) 짚이나 신문지를 깔면 풀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것을 사용하면 비닐과는 달리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땅이 숨쉴 수 있어 땅 건강에 좋다. 참, 신문지는 아무거나 사용하면 안된다. 식물성 기름으로 인쇄했다고 하는 ○○일보가 더 효과가 좋다고 하니, 확실히 식물성은 다르긴 다른가보다(^^).

다섯째, 화장실은 퇴비를 만드는 곳이다. 시골의 냄새나는 화장실을 상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퇴비를 만드는 그 화장실은 너무나 쾌적한 곳이다. 구덩이가 없는 것이 가장 특이하고 그 대신 큰 플라스틱 간장통을 옆으로 잘라 만든 간이 변기가 화장실 가운데 놓여있다. 여기에 작은 것을 본 후 옆 소변통에 버린다. 큰 것을 보면 좀 복잡한데, 일단 나무삽으로 톱밥을 퍼서 간이변기에 넣고, 손잡이로 간이변기를 들어 앞뒤로 흔든다. 톱밥과 큰 것을 잘 섞은 후 뒤를 돌면 흙더미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거기에 "어이~"하고 버리면 된다. 여기에서 퇴비가 되고 이것은 바로 문밖 화단으로 나간다. 신기한 건 냄새가 전혀 안 난다는 것이다. '청결하다는 것'이 변기에 시원하게 물을 내보내 씻어 내려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런 것을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농약과 비료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람의 손으로 실제로 그리고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다는 게 내 눈엔 신기하게만 보인다. 아무래도 기계나 화학 약품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이런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듯 하다.

농사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는 내가, 인공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유기농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농부들이 자연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태친화적인 작은 기술들을 고안해내고 또 옛 기술들을 찾아내는 것이 도농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나 생태계를 위해서나 또 농촌 살리기를 위해서나 더 좋은 일이고 또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은숙 (학생사업팀)
1999/08/15 00:00 1999/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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