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회원글밭] 일상 속의 과학기술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10/15 00:00
서울대 실험실 폭발사고와 U F O
몇 주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3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현재 담당 교수는 사표를 낸 상태이고 형사 입건도 불가피하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다시 서울대 화학과에서 유독가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학교 안팎에서는 누구의 책임이냐 에서부터 열악한 실험실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나 사회적으로 팽배한 안전불감증에 대한 우려 등 이번 사고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내가 여기서 꺼내놓는 이야기는 이런 것은 아니다. 그냥 '실험'에 대해 이야기에서 시작할까 한다.
나는 실험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책이나 강의로 통해 과학을 공부해오던 나에게 실험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내용 속의 과학은 상당히 '깨끗한' 것이다. 바람도 없고 습기도 없는 진공에다 온도와 중력도 일정하고 주위는 조용하고 잡스런 전자기파도 없는 그런 곳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유에서부터 결과가 정연한 논리와 수식들로 아름답게 그려진 그런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실험을 하는 것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사실은 무지무지 더러웠다. 온통 공기 투성이고 습기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전선이란 전선에서는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는 노이즈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소음과 진동이 꽉 차있고 온도도 짜증나게 출렁댄다. 간단한 저항을 측정하려 해도 그냥 전류재고 전압 재서 전압 나누기 전류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물체의 저항에 따라 변하게 되는 전류 량을 일정하게 해주고 많은 노이즈 속에서 물체의 전압을 찾아야하고 측정하는 동안 저항 때문에 물체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이처럼 상황 상황마다 어떤 요인이 실험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고, 적당히 바꿔주고 수시로 실험이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에서 든 예처럼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많은 경우 특히 처음 하는 실험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힘들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실험이 맞는지 틀린지조차 불확실한 경우도 있다.
원자핵공학과 사고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확히 어떤 원인 때문에 일어났는지는 지금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어제 잘 되던 실험도 오늘의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원자핵공학과에서 하던 실험은 금속가루를 이용한 폭발실험이었는데 원래 금속가루는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면 안전하지만 습기와 반응하면 쉽게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아마 실험을 하던 학생들도 이런 사실은 잘 알고 평소 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비가 왔기 때문에 맑은 날 실험을 할 때보다 상황이 더 위험했을 지도 모른다.
책이나 논문에서 확실한 것처럼 표현된, '과학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간결한 문장들은 그 속에 확실하지 않을 수 있는 가정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가정 중에 어떤 것들은 실제 상황에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래서 실험을 할 때에는 될 수 있으면 깨끗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하고 의심한다.
책에서 그나마 깨끗한 실험실로 나온 과학이 이 정도인데 과학이 세상으로 나갔을 때는 어떻겠는가? 과학이 종교 비슷하게 된 요즘 세상에서는 실험이나 이론을 통해 나온 '과학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비과학적인 사람', 즉 뭔가 꿍꿍이가 있어 '진실'을 외면하려는 사람이거나 무식해서 겁이 많은 사람처럼 되는 반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이 알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이 되곤 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해서 걱정할 것 없는 원자력발전이나 이미 많은 실험을 거쳐 안전한 것으로 검증되었다는 유전자조작이 위험하다고 말했다가는 금새 최첨단 밀레니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맞
'인간조건'과 기술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조건 The Human Condition}(1958)을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아렌트는 인간실존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생명을 꼽았고, 지구가 생명의 근원적 조건인 탄생성을 가능케 하는 토대라는 점에
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만큼의 변화된 상황에 대한 주의와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전자조작 생물이 실험실에서 만든 환경에서 괜찮았다고 나중에 세상에 나왔을 때 수많은 SF에서 나온 괴물영화처럼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비행기가 원자력발전소 돔에 충돌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해도 관리 소홀 이나 무리한 사용으로 고의든 사고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과학적인 결과든지 결과를 낳은 조건과 가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바로 안전불감증이고 "비과학적인" 태도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들었던 썰렁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미국 어디엔가 UFO가 떨어졌다는 기사를 읽고 한 학생이 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를 찾아가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교수는 단호하게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황한 학생이 다시 묻기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라고 하자 그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지금까지 UFO의 비행 모습으로 보면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우주선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지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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