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의 접목, 현실에 대한 발언

- 사진에 대한 단상 -



나는 {제 7의 인간}(글: 존 버거, 사진: 장 모르, 눈빛, 1991)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사진을 하는 나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옮긴이(차미례씨)의 글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옮긴다. 아마도 이 글은 내가 "합의회의"에 관한 사진 작업에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동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화, 세분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문화계의 지적 공백은 커지고 인접분야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 다양성 속의 빈곤이라 하겠다. 특히 과학과 예술의 접합,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적인 접근과 감성적인 접근의 통합은 거의 시도되고 있지 못하며 구체적인 생산물도 드문 실정이다.

물론 나의 작업을 "예술과 과학의 접목"이라고 부르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왜냐하면 {제 7의 인간}에서 장 모르의 사진의 힘은 나의 작업과 견주어 볼 때 쉽게 평가될 수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접근방식을 지지하며, 이것이 진정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 합의회의는 사진으로서 과학의 문제로의 접근을 시도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사진의 발명시점에서 사진은 예술과 과학의 합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사진은 회화를 위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로 과학과 예술은 서로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다. 물론 과학사진, 의학사진이 계속 발전되었지만 예술은 낭만주의로 그들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1909년 창립된 "미래파 운동"에서 다시 만난다. 미래파는 과학기술을 극도로 찬양하며, "속력이라는 신흥종교"를 탄생시킨 예술운동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은 1,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지만, 미래파 화가들은 기계의 눈으로 실현된 과학적 형상을 회화에 결합시키려 했다. 이렇듯 예술은 과학과 무관할 수 없다. 예술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과학을 찬양하기도 하며, 비난하기도 하고, 또한 과학 그 자체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지금도 컴퓨터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 이미지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 부르주아지의 권력 이데올로기 속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진이 발명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사진은 현실의 모사이며, 진실 그 자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사진 속에 자본주의, 과학, 국가, 가부장제, 인종차별의 이데올로기가 은폐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나의 사진이 이것에 대항하는 대안으로서의 작업이 되기를 바란다.

150년 전, 사진의 발명은 인간의 사고에 대 전환점이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과학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생명복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과학혁명보다 더 큰 인간사고의 변환을 요구할 것이다. 1839년 아라고Arago는 사진이 발명되었음을 공표하는 자리에서 "사진의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이 말이 오늘날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합의회의"의 취지와 연장선상에 있음을 느낀다. 예술가들은 지금도 사진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으며, 때로는 그 힘의 위력을 두려워하며, 통제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생명과학도 마찬가지이다. 21세기에 생명과학은 권력의 중심이 될 것이다. 과학자, 예술가, 인문사회학자들이 저마다의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시민의 참여가 또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 있는 첫 장이 1999년 세기말 "합의회의"에서 시작되었으며, 사진 기록자로서 그 회의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시민합의회의 사진 기록자로서 느낀 바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나의 빈약한 사진에 거창한 글을 붙이는 것이 부끄럽지만 사진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첫째, 나는 이 사진 작업이 "합의회의"를 부연설명하는 일종의 기념사진 정도로 취급되길 원하지 않는다. 이 사진은 합의회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독립된 주체이며, 또한 글로써는 표현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다. 나는 이 연속된 사진이 모여 하나의 발언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 나는 과학과 예술의 의사소통을 바란다. 다시말해서, 과학자와 예술가가 한자리에 모여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셋째, 이번 사진작업이 내가 사진가로서 참여할 수 있었던 실천적 사회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삶과 과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 작은 실천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유진희 (우리모임 회원, 2차 합의회의 사진작업 담당)
1999/12/15 00:00 1999/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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