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특·집·글·⑦조직구조의 부침으로 본 과민모 2주년 평가와 앞으로의 조직전망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12/15 00:00
0. 과민모의 지난 2년간을 돌아보면 한국사회에서는 생소한 문제의식을 담은 신생 조직으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측면들이 있었던 반면, 애초의 의도에 못미치는 측면들도 있었다. 몇몇 개별사업영역(생명공학, STS교육)에서 문제제기에 성공한 것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제도연구' 사업의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지지기반이나 활동인력의 확대에 실패한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먼저 모임 초기에 구상했던 내부조직을 다시 상기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자. 모임은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하는 운영위원회 외에 제도연구사업팀, 출판 및 시민교육사업팀, 국제협력사업팀, 기관지사업팀, 학생사업팀 등 5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 중 제도연구사업팀은 다시 환경 및 생명공학 분과, 정보 및 산업기술 분과, STS교육 분과의 3개 분과로 구성되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여기서 활동의 구심은 과학기술 민주화의 문제의식을 새로운 시민참여 제도의 활성화로 풀어낼 제도연구사업팀이었다.
2년이 지난 현재, 이 중 살아남은(즉, 매번 운영위에서 보고할 내용이 있는) 것은 제도연구사업팀의 STS교육 분과와 출판 및 시민교육사업팀뿐이다. 국제협력사업팀은 애초부터 활동이 거의 없었으니 논외로 한다면, 다른 팀이나 분과들의 추이는 이렇다: 환경 및 생명공학 분과는 생명공학 사업이 모임 전체의 중심 사업으로 자리잡고 주요 인력 중 한 사람이 활동을 중단함에 따라 자체적인 모임을 접게 되었다; 정보 및 산업기술 분과는 모임 초기에 몇 차례의 분과모임을 가진 후 활동이 이내 중단되었다; 기관지사업팀(다른과학 편집위)는 모임합류 8개월만인 작년 7월에 분리를 선언했다; 학생사업팀(강한모임)은 구성원 내부의 상이한 지향점과 마땅한 사업 부재로 인해 올 초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 각각에 대한 평가가 우선 필요하다.
2-1. 제도연구사업팀의 전반적인 실패는 우선 가장 아쉽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제도연구사업팀의 주된 임무는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각종의 제도적 장치들을 연구하고 국내 상황에 맞는 형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공청회, 토론회, 기술영향평가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제도적 형태뿐만 아니라 합의회의, 과학상점, 참여설계 등 80년대 이후 유럽 국가들에서 제도화된 실험적 장치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는 실제 활동에서는 거의 살려지지 못했다. 예컨대 적어도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모임의 중심 사업으로 자리잡아 온 생명공학 관련사업들은 한국 생명공학 운동의 태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성과이고 개가였지만,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시민참여 제도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기존 시민단체들의 무관심 속에서 과민모는 전문가그룹, 윤리·종교집단, 시민참여그룹의 1인3역을 도맡아야 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몇몇 사람들에게만 일이 몰림으로써 모임 내부 논의구조가 흐트러지는 결과가 생겨났다(기묘한 형태의 전문가주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민모가 지난 2년간 거둔 제도화의 가장 훌륭한 성과가 모임 외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설적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두 차례 열린 합의회의가 그것인데, 비록 과민모 사람들의 절대적인 역할과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임 내 제도연구사업팀의 동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뼈아픈 점이다.
2-2. 다른 두 분과, 정보 및 산업기술 분과와 STS교육 분과의 경우는 어떤가? 먼저 전자는 지금와서 돌이켜보건대 다소 과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제도연구사업팀은 굳이 사업영역별로 쪼갤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정보 영역은 이미 모임 외부에 많은 운동세력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좀더 '경제적'인 접근방법은 또 하나의 분과를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과학기술 민주화의 문제의식을 기존의 운동세력들에 전달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건, 정보 및 산업기술 분과의 실패(좀 다르게 말하자면 정보관련 사업이 모임의 주된 사업영역 중 하나가 되지 못한 것)는 제한된 인력 여건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것이었다.
반면 STS교육 분과는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상당한 성과를 이뤄내긴 했지만 과민모 전체의 사업과는 거리를 두면서 진행되었고(혹은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일관된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제도연구사업팀의 전반적인 문제의식과는 별반 유기적인 연관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하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는 별도의 고찰을 요하는 문제인 듯싶다. 모임의 인적 구성만으로 보면 STS교육 분과는 제도연구사업팀에 속해 있는 것보다는 독립적인 분과로 존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3-1. 기관지사업팀과 학생사업팀에 대한 논의는 사실 약간 다른 궤의 분석을 요한다. 이들 두 모임은 과민모 출범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향도 과민모와 완전히 겹치기보다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중 과민모로부터 독립해 나간 다른과학 편집위의 경우에는 지향의 차이가 좀더 분명했던 경우에 속하는데, 당시 독립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필자는 그 중에서 과민모가 과학기술자의 활동에 그다지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활동가 중심의 시민지향조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이 점은 과민모 내부 논의에서보다는 다른과학 편집위 게시판에서 오간 토론 내용에서 더 잘 드러난다). 반면 일명 '강한모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부 구성원들간의 전망 차이가 분명해진 경우인데, 무엇에 반대하는지는 분명했지만 무엇을 같이 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점차로 드러나게 되었다. 내부 구성원들의 역관계와 실용적 이유 때문에 과민모 내에 잔류해 있었고 실제로 몇몇 성원들은 '학생사업팀'의 위상에 걸맞는 활동을 펼쳐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과민모 전체의 지향을 고려해 볼 때 강한모임의 한계는 분명했던 것 같다.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과연 과민모 내에 기관지사업팀과 학생사업팀이라는 이름을 단 분과조직이 앞으로도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기관지사업팀의 역할 중 일부는 현재 소식지 {시민과학}이 담당하고 있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시민과학}의 틀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 믿어진다. 그리고 대학 내에 각종의 과학기술 관련 활동조직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역시 별도의 학생사업팀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조직들을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현재 그런 조직들이 존재하지 않는 대학들에 대한 모종의 지원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터이다.
3-2. 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약간 드러난 것으로, 과학기술자집단과 과민모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있다. 과민모가 애초에(그리고 현재에도) '(과학기술 정책에서의) 전문가주의 반대'를 강하게 기치로 내걸긴 했지만, 그럼에도 '비판적 과학기술자'들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을 출범사에서 밝힌 바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활동은 다분히 소극적인 차원에서 그쳤던 것이 현실이다. 물론 과학기술자 집단과의 관계에 섣불리 얽히면 수십 년의 전사(前史)를 지닌 엄청나게 골치아픈 문제와 인적 네트워크 속으로 본의아니게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있었고,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판적 과학기술자'를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개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몇몇 개별 인사들의 참여는 간간히 있었지만, 대체로 월례토론회 참가 이상의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활동은 이론적·실천적 양면에서 모두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예컨대 이론적 입장에서도 전문가주의 반대만이 막연하게 제시되었을 뿐, '전문성(expertise)' 혹은 '전문직업(professional)'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탐구는 없었던 것 같고, 실제 활동에서도 과학기술자 집단과 적당한 선을 그으며 같이 활동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급진적인 문제의식 위주의 서울대 과학상점 특위가 2년째 헤매고 있는 반면, 대학에서 약간의 재정을 따낸 이공대 교수 위주의 전북대 과학상점이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90년대 초반의 (구) 청과기협 그룹과 과민모가 같이 뭔가를 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4. 이상의 논의에 기반하여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도출하는 것은 너무 방대한 작업일 것이고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메워질 것으로 생각되므로, 여기서는 토론을 위한 몇 가지 생각의 단초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5. 우선 조직의 문제인데,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현재 활동이 거의 없는 팀들을 회생시키려는 노력은 포기하는 편이 일단 나을 듯하다. 그러면 출판 및 시민교육 사업팀과 STS교육 분과가 남는데, 이 중 STS교육 분과는 별도의 팀으로 독립시킨다. 그리고 소식지 {시민과학} 팀을 출판 및 시민교육 사업팀 산하 혹은 별도의 팀으로 새로 꾸려 기관지사업팀의 자리를 메운다. 그리고 제도연구팀을 별도의 연구팀으로 신설하고, 그 외의 활동들을 한시적으로 담당할 활동팀(예컨대 생명공학 활동 팀, 실험실안전 활동 팀)들을 운영한다. 이상의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예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제도연구팀은 과거에 제도연구사업팀에서 해야 했던 과학기술 민주화의 정책적 개입수단을 연구하는 일종의 내부연구팀으로 상정되었다. 이 팀은 자체 연구를 통해 특정한 과제에 대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외부에 존재하는 제도화 움직임(예컨대 현재 진행중인 TA 도입을 위한 사전연구 등)에 결합하는 것 외에도 각종의 시사적인 쟁점들에 대한 신문기고나 여타의 대중매체에 대한 기고 등을 통해 과학기술 민주화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도 맡는다. 예컨대 {한겨레} 같은 지면에 정례적인 브리핑 지면을 얻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과학기술 관련 사건들을 과학기술 민주화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글을 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민주화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글들이 주로 각종 매체의 학술면에 실려 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글들이 정치면이나 사회면에 실릴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교육, 출판에 해당하는 사업팀들은 기존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되, 세부적인 활동 내역에 있어서는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예컨대 실무역량이 충분히 확보되는 경우, {시민과학}을 정례화된 월간매체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활동 팀들은 제도적인 차원으로 한정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의 논리들을 지니는 구체적 개별 사업들을 담당하되, 내부 역량에 맞는 수위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활동 팀은 구체적인 사안들의 부침에 따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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