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서구적 의료보건 체계는 현재 전세계 모든 사회들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 서구적 의료보건 체계가 오늘날 이렇게 성공을 거둔 것은 부분적으로 의료장비 생산회사들이나 제약회사들의 공세적인 판매전략에 힘입은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서구적 의료보건 체계는 엄청난 실패를 겪기도 했고, 심각한 범죄를 영속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정부와 의료종사자들을 매수함으로써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되어 왔다.

의료산업은 현대 세계에서 강력한 정치적 힘이다. 이제 사람들의 건강은 더 이상 보건 체계의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쓸모없고 위험하기까지 한 의약품들이 급격히 확산되어 왔다. 예컨대 1982년 이전 방글라데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약품이 1700여 종이나 팔리고 있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유통되고 있는 조제 약품의 수는 25,000가지가 넘는다.

현대의 의약품 산업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들이 지닌 두려움을 이용하여 이들에게 불필요한 약을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하지만 마른 사람에게는 몸무게를 불리기 위해 강장제를 먹게 하고, 임신과 같은 정상적인 과정을 병으로 간주하여 모든 임산부들이 비타민을 복용하게 만드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제3세계에서의 보건 교육은 단지 서구 모델의 모방에 불과하다. 이 모델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치료 위주의 보건 제공 체계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비싼 가격에 수입되는 의료 기술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함으로써 제3세계 국가들의 예산 중 상당 부분을 소진하고 있다.

현재 몇몇 "기이한 질병(exotic disease)"들에 관해 엄청난 자원과 자금을 투입하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제3세계 사람들 대다수에게 영향을 주는 보다 더 심각한 질병들에 투입되어야 할 관심과 자원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예를 들어 점점 더 많은 자금이 에이즈(AIDS) 연구에 투입되고 있는 반면, 아시아 사람들을 괴롭히는 심각한 질병인 B형 간염에 대해 안전하고 값싸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백신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는 무시되고 있다. 말라리아나 설사병과 같은 열대병에 관한 연구개발 역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과 빈곤, 보건 사이의 연결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사람들 및 서구 국가들에서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소외 계층 사람들의 건강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이들의 건강은 지난 두 세기 동안의 "근대적" 개발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된 빈곤과 불안정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개발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토착 문화의 자립을 파괴했다. 그 뿌리에서부터 자본주의 윤리와 결합되어 있는 서구 과학기술이 이러한 파괴 과정에서 주요한 이데올로기적·물질적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

토착 보건 체계의 억압

비서구 사회들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 지배가 지난 200여년간 계속되는 동안, 비서구 사회의 토착적이고 자립적인 보건 체계 역시 억압되어 왔다. 비서구 사회의 토착 보건 체계는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물, 동물 및 광물의 이용에 기반한 것이었고 고도로 분권화되어 있었다. 이 체계는 주요한 보건상의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광범한 민속 문화를 수천 년 동안에 걸쳐 발전시켜 왔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민속 보건 문화는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이 문화는 자율적·자립적인 본성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갖는데, 이는 지식의 구전(口傳) 전통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많은 아시아 사회들에는 또한, 민속 전통의 경험에 경험적 뿌리를 두고 있는 포괄적인 토착 과학이 존재한다.

보건 영역에서의 도전

현재 비서구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토착 문화의 빈곤성에 관한 신화가 서구 세계에 의해 왜곡되어 선전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자신들의 뿌리에 내재한 강점과 잠재력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 영역에서 비서구 사회 앞에 놓인 가장 커다란 도전은 자신의 토착 보건 체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헌신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이다. 200여년에 걸친 억압으로 인해 토착 보건 체계가 "현재" 갖게 된 많은 취약점들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안적 보건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적 단계에서, 당장 시급한 과제는 그 동안 민중을 착취해 온 서구 의료 체계를 시험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제안

1) 제3세계 정부들은 핵심 약품들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책에 근거해 합리적인 약품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총 200가지 정도의 약품이면 한 나라의 약품 필요를 충당하고도 남는다고 권고하고 있다.

2) 이 정책과 관련해 제3세계 정부들은 위험하고 효력이 없는 약물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3) 제3세계 정부들은 양질의 상표명 없는 약품(generic drug)을 사용하고 생산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4) 제3세계 정부들은 각국의 특수한 필요를 고려하여 국가적 차원의 보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국가 보건 정책은 위에 나열한 제안들에서 논의된 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

5) 국가 보건 정책은 예방 보건에 치중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6) 질병이나 상처에 대해 가정에서 처치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7) 병원은 그 지역의 문화적·사회적 다수에 맞도록 계획되고 설계되어야 한다.

8) 국가 보건 정책은 토착 의료의 이용과 실행도 그 속에 포함해야 한다.

9) 제3세계 정부들은 보건 전통의 현재 상태, 그 전통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 그 전통에서 이용하는 약용 식물, 광물 및 동물, 그리고 그 전통이 기능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에토스 등을 시급히 문서화해야 한다.

10) 제3세계 정부들은 토착 과학과 현대적 평가 도구들의 도움을 얻어 토착 전통을 평가해야 한다. 서구의 보건 체계는 완전히 다른 원리, 개념 및 범주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착 전통을 해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11) 제3세계 정부들은 토착 의학을 연구하고 교육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12) 제3세계 정부들은 제3세계 전역에 걸쳐 수천 개의 약초 재배지와 약재 삼림(medicinal forest)을 지역 단위에서 만들도록 장려해야 한다.

13) 토착 의학의 다양한 이론적·실제적 측면들에 관한 과학 정보들을 교환하기 위해 비정부기구(NGO)들간에 네트워크를 만들어져야 한다.

14) 제3세계의 토착 의료를 보호하고 다국적기업들이 그것을 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허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원격통신과 극소전자공학

많은 이들은 극소전자공학(micro-electronics)과 원격통신(telecommunication), 새로운 정보 기술을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전으로 간주한다. 이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은 인간 두뇌의 능력과 힘을 증가시킬 "정보 혁명(information revolution)"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는데, 이는 산업혁명이 인간 신체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몇몇 기술관료적 "미래학자"들은 이 새로운 기술이 노동과 사회를 민주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증거들은 극소전자공학 산업의 본질이 자본, 지식 및 권력을 소수의 국가들과 다국적기업의 손아귀 속에 엄청나게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도입은 단조롭고 지긋지긋한 노동을 제거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작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기능(skill), 존엄성, 직무에 대한 관심 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진국에서 일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노동에서 창조적인 측면에 종사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수백만에 이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격통신과 극소전자공학에 대한 서구 다국적기업의 통제

극소전자공학 분야의 연구개발, 상품 개발 및 생산, 그리고 원격통신 서비스의 판매 등에 대한 통제는 대부분의 다른 주요 산업들에 비해 볼 때 소수의 강력한 다국적 거대기업들에 집중되어 있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마이크로칩의 연구개발은 미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적으로 서구에 기원을 둔 표준, 부호, 개념들에 기반하고 있다. 현재는 심지어 유럽 기업들도 자본집약적인 극소전자공학 연구개발 영역에서 미국 및 일본과 경쟁이 되지 않음을 자인하고 있다.

전자공학과 원격통신 분야의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작업의 많은 부분을 군대와의 계약에 의존한다. 그 결과 기업들은 기술의 개발 단계에서 군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민간 용도로 쓰이는 극소전자공학의 산물들 중 많은 수가 이러한 군사적 작업의 결과 2차적으로 도출된 것들이며, 군사적 목적과 민간 용도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에 민간 용도는 군사적 작업에 우선순위가 밀려 부차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연구개발 단계가 자본집약적인 것과는 달리, 극소전자공학 생산의 과정은 부분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때문에 극소전자공학은 소수의 다국적기업들에 그 통제권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생산은 전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값싼 미조직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재정적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공학 관련 생산은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중 제3세계 국가들에 유치된 단계들은 노동자들에게 기능을 전수하거나 기술을 이전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것들이다. 또한 이 생산 공장들은 장소 이동이 쉽게 가능하기 때문에, 조건이 변화하면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입히지 않은 채 다른 장소로 옮기거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다.

전자 산업은 이제 제3세계 국가에서 행해지는 가장 불안정한 형태의 외국 투자 중 하나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자 산업과 종종 결부되는 "청정"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전자 산업의 공장 노동자들은 그 종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고도로 복잡한 화학물질들로부터 나오는 대단히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화학물질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암, 불임증, 중독 현상 등을 낳을 수 있는 이러한 화학물질들에 더해, 전자 산업은 [미세한 부품들을 다루어야 하는] 작업의 특수성 때문에 노동자들의 눈의 피로와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

전자공학이 응용된 원격통신 분야에서도 이러한 통제와 지배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극소수의 다국적기업들이 인공위성과 해저 케이블 시스템의 설계와 설치를 독점하고 있으며, 또다른 소수의 기업들이 이 기반 위에서 원격통신 서비스의 운용을 담당하고 있다.

제3세계에 대한 함의

원격통신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기업들은 거의 모두가 북미나 유럽의 기업들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국제 통신 시스템의 설계와 운용에 내재한 문화적 편향 ― 사용되는 언어, 개념 부호, 축약 형태 등의 문제에 있어서 ― 은 사용자들에게 표준화와 순응을 분명 강제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는 의사소통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변화시킬 것이다.

주요 원격통신 시스템들은 기업과 은행들에 유용한 정보가 제3세계로부터 수집되어 그들이 경쟁상의 우위를 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가장 효율적인 통신 채널은 제1세계를 가로지르거나 제3세계와 제1세계를 연결해 주지만, 제3세계 국가들을 서로 연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런 기반시설을 가지고 기업과 은행들은 재정, 경제, 정치 및 노동에 관한 정보들을 신속하게 전달하여 경쟁자들의 전략을 압도하고 자신들의 계획에 반하는 노동자들이나 정치세력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도입되면서 각국 정부들은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규제력을 잃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이 새로운 컴퓨터, 통신 및 통제 기술에 힙입어, 디터 에른스트(Dieter Ernst)가 예견한 바대로 "전략적 자산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중앙집중적 통제를 유지하면서 전지구적 규모에서 탈집중화된 생산을 상호조율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 원격통신 시스템의 통제와 구조는 또한 서구의 오락거리, 뉴스 및 광고가 제3세계에 침투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이는 다시 서구의 문화적·정치적 가치들을 강제하고, 서구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확장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업들이 원격통신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업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국 정부들은 이런 정보 기술을 치안, 감시, 그리고 반대집단과 반체제 인사들에 관한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등 사회 통제 목적에 악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를 통해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대규모의 억압을 위한 초석을 놓고 있다.

원격통신 서비스를 운용하는 기업들 역시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윤을 극대화하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이 기업들의 조직과 경영은 시스템을 실제로 다루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건강상의 위험들, 예컨대 전자파의 위험이나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다봄으로써 생기는 눈의 피로,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소외된 노동 조건 등에 대해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제안

1) 브라질과 같은 몇몇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의 극소전자공학 생산을 지역 기업들에게만 허용하고 전자 제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자생적인 극소전자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는 외국 상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의 필요와 조건에 보다 잘 들어맞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들은 무역 협상의 일환으로 극소전자 산업에서의 시장 개방을 요구함으로써 브라질에서와 같은 움직임을 막으려 애쓰고 있는데, 이런 노력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2) 제3세계 정부들은 전자 산업에서 사용되는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물질과 생산 공정들이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되어야 한다. 그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첨단기술 산업에서의 건강상의 위험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3) 제3세계의 과학자, 엔지니어, 설계자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본질과 그것에 내재한 착취에 관해 교육받아야 한다. 그들은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동시에, 가능한 경우에는 창조적인 재프로그래밍과 재설계를 통해 그것에 내재한 문제점을 제거하려 노력해야 한다.

4) 소수의 핵심 다국적기업들이 극소전자 산업을 통제하는 것은 기술과 노하우의 독점에 기반하고 있다. 제3세계 정부와 비정부기구들은 제1세계 국가들이 제3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저작권과 특허법에 관한 현재의 기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특히 보건, 주택, 교육, 식품 생산 등과 같이 제3세계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영역에서 보다 균형잡힌 대안을 도입할 수는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5) 비정부기구들은 최신의 원격통신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외국 기업이나 지역의 대기업, 혹은 정부만이 누릴 수 있는 배타적 권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시스템이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해 비영리·비정부 조직과 개인들에게도 개방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 이와 동시에, 제3세계 정부들은 다국적기업들이 원격통신 시스템을 악용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다국적기업들이 자금을 빠르게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시킴으로써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이며, 또한 다국적기업들이 정보를 수집·전송함으로써 지역 경제나 개별 국가, 노동자들, 지역 기업들에 대해 부당한 영향이나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7) 제3세계 국가들은 기업이나 정부가 개인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들에 대한 등록과 통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한 정보의 축적은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거나, 그들이 시민으로서 갖는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거나 혹은 그들에 대해 부당한 상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이용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전산화된 정보를 통제하는 법률에는 정부가 비정부기구나 반대집단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구절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8)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풀뿌리 집단들이 정보기술에 대해 배우고, 적용하고, 가능한 경우에는 소규모의 분권화되고 민주적인 대안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응용할 때에는 그들이 도입하는 장비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부당한 위계를 만들어내지는 않는지를 모든 조직들이 주의깊게 검토해야 한다.

9) 극소전자공학의 응용 결과가 국가의 감시 및 억압이나 일자리 수의 감소 목적에 이용되는 경우에는, 연관된 기술을 파괴하는 집단에 지원이 주어져야 한다.

적정기술과 산업화의 개념

적정기술과 산업화는 발전(development)을 촉진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전이란 다음의 사항들을 통해 존엄성(dignity)을 가진 삶을 영위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간주한다:

가장 궁핍한 사람들의 필요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자립(self-reliance)하는 것;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

적정기술에서는 그것의 선택, 생산, 전파라는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선택은 선진 산업국가들의 기술(이들은 불평등을 확대하고 자립을 침식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등의 경향을 지닐 가능성이 높으므로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조사해야 한다)에서부터 전통적인 기술(본래의 형태 그대로, 혹은 변형된 형태로)까지 전체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이용가능한 기술들의 풀(pool)에서 적절한 것을 골라내는 과정이다.

선택, 생산, 전파의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제3세계간의 네트워크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적정기술의 선택 과정에서 [제3세계 국가들간의] 상호 협력은 선진 산업국가의 기술에 맞닥뜨렸을 때 특히 중요하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은 생산의 문제에서 협력함으로써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은 적정기술을 공동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을 전파시키는 경험도 공유될 필요가 있다.

적정기술의 범위는 소규모의 분권화된 기술과 대규모 혹은 중앙집중적인 기술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자 모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기술이 이용되는] 모든 부문(산업뿐 아니라 농업, 보건, 교통 등까지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궁핍한 계층이 특히 필요로 하는 의식주와 보건, 교육 등의 기본적 필요를 (자립적이고 생태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적정기술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제안

1) 개발도상국들은 농업, 산업, 보건, 주택, 수자원 관리, 교통, 에너지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자신들 나름의 적정기술과 기법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특정한 기술이나 생산물이 적정한 것인가의 여부는 또한 부분적으로 특정한 국가가 처한 조건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인식이 현재 생겨나고 있다. 그러한 적정기술은 가능한 한 그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 그것은 작동법을 상대적으로 쉽게 전수할 수 있어야 하고, 건전한 생태적 원칙들에 입각해야 하며,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사용하기에 알맞도록 규모가 작아야 한다.

2) 적정기술은 제3세계뿐만 아니라 특히 선진 산업국가들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부유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사치스럽거나 불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전세계의 자원을 다 써버리는 고도로 자본집약적인 기술의 운용을 중단해야 한다. 설령 제3세계에서 자원 효율이 높은 적정기술을 도입한다고 해도, 부유한 국가들이 자원을 낭비하는 산업 기술을 계속 사용한다면 현존하는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한 배분은 영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선진 산업국가의 의식있는 개인 및 단체들은 자국민들과 정부를 대상으로 생산기술 및 기법들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라 과학에 대한 접근방향을 다시 정의할 필요성을 설득시켜야 한다.

3) 오늘날 과학지식 ― 이는 또다른 종류의 경험으로 볼 수 있다 ― 의 영역에서 정확성(exactness)은 최고의 목표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성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단 우리가 이 점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연구대상에 대한 폭력까지 수반하는 이러한 불필요한 정확성을 열망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과학연구의 방법은 인간적인 가치 혹은 기준에 분명히 부합해야 한다. 만약 어떤 연구방법이 잔혹함을 수반한다면, 그런 류의 정확성은 전적으로 불필요하며 따라서 무조건 폐기되어야 한다. 기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가치 혹은 기준이 당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지구상의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행복한 삶이란 과도한 낭비, 사람과 동물들에 대한 과도한 고통 부여, 식물과 토양의 파괴 등이 없이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가치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4) 기술혁신은 보통 사람들의 필요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들의 통제하에 놓여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정부, 비정부기구, 그리고 대중의 대표자들을 포함하는 조직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과학교육

제3세계에서의 과학교육은 서구적 교육체계에 뿌리를 둔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우리 사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는 서구에서 계획되고 설계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핵심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애초에 고안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이 불운한 유산 때문에, 오늘날 제3세계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노력은 서구의 선도자들의 프로그램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제3세계에서 서구의 영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은 좀더 훈련을 받고 연구를 하기 위해 서구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과 연구자들이다. 그들은 서구적 사고방식이 더욱 강해진 채로 돌아와서 그 지역에 고유한 과학의 문제를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과학 연구는 외국 과학자들의 지도 아래 수행했던 박사학위 논문의 연장일 뿐이다. 다시 말해, 외국에서 훈련받은 과학자들은 우리가 그에 대항해 면역을 얻고자 노력하는 서구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많은 수의 제3세계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서구로 이주해 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두뇌 유출은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원 고갈의 또다른 형태이다.

현재의 상황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제3세계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사회적 뿌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고유한 환경에서 유래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과학적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들에 대한 과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토착 과학기술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교육체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의 과학 강의요목(syllabus)을 다시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과학교육 자체의 틀 구조에 있어 개념적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과학교육의 목표는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인간형을 창출하고 재능과 책임감을 동시에 갖춘 개인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따라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토착 문명의 가치체계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또한 학생들은 서구 과학기술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편향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제안

1)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적 현실에 대해 배워야 하며, 특히 세계체제 속에서 제3세계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지배에 관해 배워야 한다.

2)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과학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이의 관계 ― 과학이 야기할 수 있는 유해한 결과들을 포함해서 ― 에 대해 완전하게 접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과 과학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들은 과학자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

3)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토착 과학과 그 뿌리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토착적인 의료, 주거, 식량, 산업, 교통의 요소들을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4) 과학은 엘리트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며, 일반 대중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쓰일 수 있도록 농부, 어부, 노동자, 여성 등의 이익과 복지를 위해 제공되고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교육은 대중이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5) 과학교육에서 생태적·환경적 측면은, 특히 다양한 자연 요소들 간에 상호연관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학생들과 연구자들은 인간의 활동이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본성을 지녔음을 인식하고, 이를 피하면서 가능한 한 자연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6) 과학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농업, 산업, 의료, 주거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쓸모있는 토착 기술, 과학적 가치와 체계, 지식 및 과정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들은 보호되고 발전되어야만 한다.

과학정책과 관리

제3세계 국가들 중 극히 적은 수만이 과학 정책을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이 천명한 과학 정책은 그 국가 내에서 과학기술 하부구조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하부구조는 많은 경우에 국가 자립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개발되어 왔으며, 그 결과 제3세계의 새로운 과학기술 제도는 선진 산업국가들의 과학 체제를 단순히 연장한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시적 과학 정책을 갖고 있는 국가들은 고급 과학(prestige science) 영역과 첨단기술 프로젝트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 왔다. 따라서 이렇게 만들어진 하부구조 중 많은 부분은 그 국가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과학 정책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표현으로 되어 있지 않을 뿐, 암묵적인 형태의 과학 정책은 어디서나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전반적인 강조점은 기술 이전, 기술적·재정적 원조를 통한 일류 연구센터의 설립, 그리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국인 자문역의 고용 등에 두어져 있다.

이러한 명시적 혹은 암묵적 과학 정책의 틀 구조 속에서, 위계, 일방향적인 상의하달식의 의사소통, 숨막히는 관료제에 의지하는 관리 구조가 도입되어 왔다. 이러한 관리 구조는 정책결정자들을 일선에서 종사하는 과학자 및 기술자들로부터 유리시킬 뿐 아니라 지역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으로부터도 떼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안

1) 제3세계의 정부와 과학자들은 현대적·자본집약적·반인간적 기술에 치우쳐 있는 현재의 편향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한다. 제3세계의 국가 과학 정책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의 부적절성과 파괴적 본성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추구되어야 한다.

2) 제3세계의 과학 정책은 과학기술의 생산, 이용 및 확산을 위한 지역 고유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반면 기술 이전이나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수행된 과학 연구, 기술 원조, 외국인 자문역에 대한 의존에 전적으로 치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제3세계의 과학 정책은 그 지역에 고유한 지식과 노하우의 전통적·현대적 원천들을 장려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원시부족 단계에서 문명화된 단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문화적 환경 속에는, 우리 자신의 문화적 뿌리와 우리 사이에 없어서는 안될 유기적 연계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적 기술, 과학적 통찰 및 방법론으로 가득 차 있다. 과학이 정치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고려에 넣는 새로운 관리 구조가 새로 만들어져 제도화되어야 한다.

3)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은 밀접하게 상호연결되어 있고, 신기술은 거의 직접적으로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이 예속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면 그들은 서로간의 교차 연결점을 찾아내고 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교차 연결된 집단들은 서로 협력하여 자립적이고, 기본적 욕구를 지향하며, 생태적으로 건전한 과학기술을 만들어낼 것이다.

4) 새로운 과학기술의 탐색을 위해,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사회 의식도 갖추고 있는 집단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한 집단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계속 유지되어 창의적이고 사회지향적인 과학기술이 생산될 수 있게 하는 기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아울러, 그와 같이 사회적으로 깨어 있고 창의적인 집단들이 다수 대중과의 연계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다양한 기득권 집단의 압력으로부터는 보호받을 수 있는 기제 역시 발전시켜야 한다.

제3세계 네트워크
2000/01/15 00:00 2000/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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