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경계해야 할 멋진 신세계, 멋진 정보화 세계



시대의 물결, 정보화

산업사회에는 늦었지만 정보화사회에는 늦을 수 없다는 협박을 여러 매체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 불과 2-3년 전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그런 협박 자체가 아주 우습게 들리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예전의 PC통신에 대한 강조는 인터넷에 대한 강조로 바뀌었으며,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인터넷 기사의 색조는 아예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인터넷"이라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또한 물건 선전뿐이거나 거기에 PC통신 아이디나 게시판 알리아스를 적어놓았던 광고물이 거의 전부였던 지하철 광고물에 인터넷 사이트 광고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과 관련된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시대의 변화는 빠르다. 이렇게 현재의 변화에 감탄을 하다 보면, 몇몇 사람들이 5년도 더 전부터 정보화사회의 도래와 그에 대한 대응 및 활용을 생각했던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에 대한 수긍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왔다. 정보화사회는 필연적이라는 담론은 결국 '정보화'라는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발전만 있으면 장밋빛 유토피아가 도래한다고 선전하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그 마뜩찮음의 전제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대략 세 가지이다 : 1) 정보화는 모든 것을 멋지게 만들지는 못하며, 현실에서 불편한 것을 조금 개선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본적지에 가서 서류를 떼어야 하는 것을 집 주변의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편리함 정도를 가지고 올 뿐이다. 그 정도의 편리함이 자동차의 편리함과 무엇이 그렇게 다르단 말인가. 2) 정보화사회에 대한 선전은 정보화에 새겨진 사회 내부의 갈등이나 정보화의 편리함에 대한 접근이 한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예컨대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의 일종인 IC 카드나 감시카메라가 쓰이고 있다. 또한 20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펜티엄급 이상의 컴퓨터가 없으면 인터넷의 원활한 사용은 매우 어렵다. 3) 정보화사회의 기반인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을 수 있으며, 그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여러 가지 독성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 수 있으며, 미국 실리콘 밸리는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정보통신 관련 산업이 낳는 유해물질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이다.

멋진 정보화 세계!

그러나 요새는 나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조금 흔들린다는 것을 고백해야 겠다.

1-1) 정보화는 모든 것을 멋지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사실 예전보다 멋지게 만드는 것이 정말 많음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PC에서 글을 쓰고 대화를 하고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은 PC통신의 경험으로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읽어만 왔던 파일을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실 파격적인 경험이었다. 회사에서 워크맨이 아니라 PC에 이어폰을 꽂고 일한다는 것을 바로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C 하나로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one-PC, multi-media)은, PC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2)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한 만남이 사람들이 직접 만났을 때 얻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회사에 억류되기(!) 쉬운 사회생활 속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통신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연락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다. 일하다가 전화를 하기 위해 마우스에서 손을 떼기보다는, 마우스를 그대로 쥐고 아이콘만 눌러주면 보고픈 사람들의 흔적을 더 빠르고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1) 정보화의 혜택 중 대표적인 인터넷 서핑을 누리려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회사나 학교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망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PC방과 ADSL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정보화의 혜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2) 최근 총선연대의 활동이나 3년 전의 총파업 때 행해진 인터넷과 PC통신을 통한 선전은 정보화의 열매가 정부나 기업의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국제 동향에 더 민감하게 되어, 국내의 잘못된 관행을 외국의 잘된 사례와 비교하기가 쉬워진다. 또한 여러 사회단체들이 외국 단체와의 협력을 위해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통해야만 했던 비용상의 부담이나 시간적인 제약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멋지지만 않은 정보화

위와 같은 긍정적인 사례를 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정보화 사회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다. 내가 든 정보화 사회의 멋진 점들은 인간 감각 연장(延長)의 가능성과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활용과 의사소통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 한정되어 있다.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의 가능성이 다음의 문제를 바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2') 정보화의 그런 장점이 IC카드와 감시카메라를 노동자나 시민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자동화와 자료의 전자화는 오히려 노동자를 쉴새없이 일하게 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 않는가? 네트워크의 AOL과 미디어의 타임워너의 합병이 암시하는 것처럼, 인터넷 공간도 거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자료로만 대부분 채워지는 것은 아닌가?

3')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이 낳는 환경오염은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환경오염의 피해는 주변 지역주민에게로 한정되고, 정보화의 혜택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온전히 누리게 되는 사회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인간을 닮은 사이보그 등장의 가능성은 복제양보다 더한 파문을 낳는 것은 아닌가?

정보화 사회가 정말로 멋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문제들이 풀려야만 한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는 사용자와 생산자, 노동자와 경영자, 지역주민과 기업 등의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며, 거대 기업의 지배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와 노동자와 시민의 활동이 필요하며, 기술이 개발된 결과나 개발 및 생산 과정이 낳는 문제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사전 토론과 그 토론의 반영이 필요하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나 그 대안에 대한 모색도 모두 '산업사회'에서도 있어왔던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결국 정보화사회는 현재의 산업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이는 절대 건전할 수 없다. 이제는 생활이 되어가고 있는 정보화, 새로운 것에 눈멀지 않는 비판과 성찰과 실천이 더 필요한 대상임에 틀림없다.

김영웅 (우리모임 회원, 회사원)
2000/02/15 00:00 2000/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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